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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가몬 왕국 초대 군주 Φιλέταιρος | 필레타이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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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 | 한국어 | 필레타이로스 |
그리스어 | Φιλέταιρος | |
영어 | Philetaerus | |
존호 | 사트라프 → 바실레프스(추존) | |
생몰 년도 | 기원전 343년 ~ 기원전 263년 | |
재위 기간 | 기원전 282년 ~ 기원전 26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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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페르가몬 왕국 초대 군주. 환관 출신 장군으로, 리시마코스의 부관이었다가 셀레우코스 1세에게 귀순한 뒤 페르가몬 일대를 장악했다.2. 생애
기원전 343년 흑해 연안의 티오스(Τῖον, 오늘날 터기 필요스 인근)에서 출생했다. 아버지 아탈로스는 마케도니아인이었고 어머니 보아는 파플라고니아인이었다. 그는 일찍이 환관으로서 알렉산드로스 3세의 궁정에서 일했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 3세가 죽은 뒤 안티고노스 1세 휘하에서 복무하다가 기원전 301년 안티고노스가 입소스 전투에서 전사한 뒤 리시마코스에게 충성을 바치고 은 9천 달란트의 금고를 보관하고 있던 페르가몬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기원전 282년, 리시마코스는 전처 니케아와의 사이에서 낳은 장남 아가토클레스를 모반 혐의로 처형하고 후처 아르시노에 2세와의 사이에서 낳은 프톨레마이오스를 후계자로 삼았다. 이에 아가토클레스의 아내이자 아르시노에의 이복 누이인 리산드라는 아가토클레스의 지지자들과 함께 셀레우코스 1세에게 귀순했다. 이때 그 역시 리시마코스를 배신하고 셀레우코스에게 페르가몬를 바쳤다. 셀레우코스는 기원전 281년 2월 사르데스 인근의 코루페디온 전투에서 리시마코스를 전사시키고 그의 영토를 모조리 확보했다. 그 후 자신에게 협조한 그에게 페르가몬 일대에서 자치권을 누리도록 허용했다.
기원전 281년 9월, 셀레우코스 1세가 트라키아 원정에 착수했다가 리사마키아 인근에서 희생제를 치르고 있을 때 프톨레마이오스 케라우노스에게 암살당했다. 이후 셀레우코스 제국이 혼란에 휩싸이면서 자신에게 별다른 신경을 쓰지 못하는 틈을 타, 그는 페르가몬 너머로 영향력을 확장했다. 델포이와 델로스 신전을 포함하여 이웃 도시와 신전에 막대한 자금을 자금을 지원했고, 켈트족의 침략에 대항하는 키지코스 시에 군대, 돈, 식량을 지원했다. 그 결과, 그는 소아시아와 그리스 일대에 상당한 지지자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는 40여 년간 통치하면서 페르가몬의 아크로폴리스에 데메테르 신전과 아테나 신전, 궁전을 건설했으며, 요새를 상당히 증축하는 등 기반을 탄탄히 다졌다. 다만 독립국을 세우지는 않고 셀레우코스 제국의 사트라프로 남았다. 기원전 263년 사망했을 때 환관이라서 아들이 없었고, 조카 에우메네스 1세가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