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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 부룬디의 경우 임기가 중간에 단절되었다가 다시 집권해도 처음 집권했을 당시의 대수를 유지한다. | }}}}}}}}} |
피에르 부요야 Pierre Buyoy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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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000> 출생 | 1949년 11월 24일 |
루안다-우룬디 루토부 (現 부룬디 루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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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2020년 12월 18일 (향년 71세) |
프랑스 일드프랑스 파리의 병원 | |
국적 |
[[부룬디| ]][[틀:국기| ]][[틀:국기| ]] |
사인 | 코로나바이러스-19 |
재임 기간 | 부룬디 제3대 대통령 |
1987년 9월 9일 ~ 1993년 7월 10일 (1차) | |
1996년 7월 25일 ~ 2003년 4월 30일 (2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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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피에르 부요야(Pierre Buyoya, 1949년 11월 24일 ~ 2020년 12월 18일)는 부룬디의 군인이자 제3대 대통령으로, 2번이나 집권했던 독재자이다.[1]2. 생애
1949년 11월 24일 루안다-우룬디(현 부룬디)의 루토부(Rutovu)에서 태어났다. 벨기에 브뤼셀 왕립사관학교 출신으로 1976년 8월부터 1977년 1월까지 프랑스에서 참모대학을 다녔고 1980년부터 1982년까지는 서독에서 지휘참모대학(Command and Staff College)을 나온 엘리트 군인이다. 1978년 결혼해 4명의 자녀가 있다. 이때쯤 국민진보연합당(UPRONA)에 입당했고 1979년 중앙위원회 회원 자격을 얻었으며 1984년에는 당원 자격을 갱신했다. 1982년부터 육군 참모부에서 일했다. 군에서 승승장구하며 매우 빠른 승진을 거듭해 '노인'이라는 별명이 있었다고 한다. 동료나 부하 군인들로부터 평판은 좋았다고 한다.1987년에 쿠데타로 제2공화국의 대통령을 물러나게 만들고 자신이 제3공화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후투족과 투치족과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1992년에 새 헌법을 발표하고, 1993년엔 새로운 부룬디의 대통령을 뽑기 위한 대통령 선거를 했다. 선거가 끝난 후 새로운 대통령인 멜키오르 은다다예(Melchior Ndadaye)가 뽑혔지만, 새 대통령을 싫어하던 반대파 군 세력으로 인해 암살 당하면서 부룬디 내전으로까지 번져 일이 커졌다. 1996년에 다시 부요야가 쿠데타를 집권을 하면서 정권도 다시 잡았다. 국제적인 비난과 비판, 경제의 제재를 받던 끝에 결국 2003년 4월 30일 물러나고, 도미시앵 은다이제예(Domitien Ndayizeye) 부통령에게 정권을 이양했다. 2007년 미국의 외교관인 밥 크루거(Bob Krueger)는 저서를 통해 1993년에 멜키오르 은다다예의 암살을 부요야가 주도했다고 증언을 했다. 2020년의 부룬디 대법원은 이 혐의로 인해 부요야에게 종신형을 선고 했다.
2020년 12월 18일 부요야는 말리에서 코로나 19에 감염되어 말리 바마코의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프랑스까지 옮겨졌다가, 이후 프랑스 파리의 병원으로 이송 도중 사망하였다.
[1]
1차 집권: 1987년 9월 9일 ~ 1993년 7월 10일
2차 집권: 1996년 7월 25일 ~ 2003년 4월 30일
2차 집권: 1996년 7월 25일 ~ 2003년 4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