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9-06 21:56:30

플라크라케텐베르퍼 타이푼


플라크라케텐베르퍼 타이푼(Flakraketenwerfer Taifun)

1. 소개2. 개발과 실험, 또 실험3. 구조4. 작동 원리

1. 소개

태풍이란 의미를 가진 이 무기는 1944년 발트해 연안의 도시 칼스하겐(Karlshagen)에 있던 엘렉트로메카니셴 베르케(Elektromechanischen Werke GmbH : EMW) 사에서 개발된 지대공 로켓이었다. 크기는 작지만 액체로켓 모터를 동력으로 삼은 이 대공무기는 최대 10,000 m 고도에서 편대를 지어 날으는 중폭격기를 향해 발사되어 요격하는 것을 상정해 만들어진 것이다. 무유도 로켓이어서 전투기 공격기 같은 작고 빠른 공중 표적보다는 편대비행하는 공습 부대에 한꺼번에 대량으로 발사하여 격추하는 효과를 노렸다. 이를 위해 48발의 로켓을 일제히 발사하는 발사기 여러 대가 하나의 포대로 구성되는 타이푼은 명중률이 낮고 요격고도에도 제한이 따르는 88 mm 대공포를 대신할 계획까지 세워졌었다. 하지만 이 신무기는 독일이 그즈음 만들고 있던 다른 분데어바페들과 마찬가지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도 실용 시험조차 완료되지 않아 실제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독일 공군은 타이푼 로켓을 연합군의 폭격기들을 일소해버릴 비장의 카드로 기대하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수백 대의 발사기를 완성시켜 놓고 있었으나, 액체로켓 같은 다른 필수 부품들이 연합군의 공습으로 인해 모을 수 없어서 완성품을 조립할 수가 없었다.

2. 개발과 실험, 또 실험

EMW 기술진들이 타이푼 개발을 시작했을 때 우선 실험용으로 80발의 샘플을 1944년 9월 14일에 발주받았고, 빌레펠트(Bielefeld)에 있는 벤텔레르 공장(Benteler-Werken)도 420발을 추가 생산할 것을 지시받았다. 같은 해 10월, 타이푼은 개발과 생산, 실용 테스트를 책임질 실무 그룹이 만들어져 프로젝트에 채찍질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많은 기술자와 직공들이 군에 징집되어 전선에 끌려가버려 12월 즈음에는 숙련된 인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밝혀져 필수적인 실험인 탄도 테스트조차 4주나 늦춰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로켓은 개발 초기 단계에서 일직선으로 곧게 비행하는 것이 어려웠다. 비행 테스트를 시작해 이듬해인 1945년 1월 중순까지 2.5초의 연소시간을 보인 로켓은 발사대를 떠나는 순간 마구 흔들려 어디로 날아갈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기술진들은 이러한 결점을 수정하기 위해 간단한 해결책을 고안했는데, 그것은 발사 레일을 늘려 안정성을 높이는 방안이었다. 이 때문에 연장형 발사대가 따로 개발되었고, 이 아이디어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연속 실험 도중에 초당 2,000 kp(킬로파운드)까지 추력이 증가해 발사 궤도가 안정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1945년 1월 초에는 타이푼의 세부 설계에 몇 가지 구조적 변화가 있었고, 섣부른 수정으로 인해서 이 무기의 실용화를 방해했던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노즈콘을 날카롭게 다듬어 공력저항을 줄이는 효과가 기대되었던 신형 타이푼 로켓은 1월 13일의 발사 시도에서야 목표 고도까지 비행을 상정한 시간이 흐르고 자폭했고, 그 탄도의 산포도와 신관 작동의 정확도는 상당히 높았다. 또한 타이푼은 복잡한 액체 로켓 대신 고체 로켓을 채용한 파생형도 실험되고 있었다. 이 형식의 첫 번째 발사 테스트는 토르겔로(Torgelow)에서 실시되었는데 육안으로도 뚜렷이 좋은 궤적을 볼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타이푼은 무기로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정한 효과를 얻기까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했다. 1월 말까지 실시된 추가 테스트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값이 얻어진 것이다. 예를 들어 11발의 "Taifun F"가 좋은 결과를 보였는가 하면, 또 다른 시험에서는 20발의 로켓 중에서 6개가 요격 고도까지 오르지 못하고 허공에서 폭발해버렸으나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이 무렵 프로젝트 성사와 추진에 관한 결정권을 쥐고 있던 루프트바페는 더 이상 신무기의 완성을 기다려 줄 시간도, 지원해줄 자원도 바닥 나 있었다. 2,500발의 "Taifun P"와 알려지지 않은 수의 타이푼 F가 3월 말을 끝으로 생산을 중단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 발주수량은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았고, 심지어 테스트도 완료할 수 없었다.

4월 5일, EMW의 책임 엔지니어는 타이푼 특급(Taifun-Express)이라고 불리는 열차에 50명의 민간인 직원과 40명의 강제노동자들과 함께 오스트리아의 트라운제(Traunsee)를 향해 발사기 견본 몇 대와 도면과 설계도를 비롯한 관련 서류들을 싣고 떠났다.

3. 구조

타이푼 로켓의 중앙은 얇은 금속판을 말아서 제작된 몸체이며, 내부에 설치된 개스 발생기가 고체 연료를 태워 만든 고압 개스로 로켓 연료를 밀어내 연소실에 공급하게끔 되어 있었다. 또한 선단 내부에는 폭발 타이밍을 결정하는 신관도 내장되어 있었다. 그 뒤로는 SV액(SV-Stoff : 94% nitric acid + 6% dinitrogen tetroxide 또는 85% nitric acid + 15% sulfuric acid)[1]과 R액(R-Stoff : 57% monoxylidene oxide + 43% triethylamine)[2]을 채운 연료와 산화제 탱크가 뒤따랐다. 1개의 단일 노즐이 있는 연소실이 로켓의 후방에 설치되었다. 안정적인 탄도를 확보하기 위해 로켓의 꽁무니에는 4장의 핀이 추가되었는데, 각각 155 cm2의 면적을 지녔다.

4. 작동 원리

알아본 바와 같이 이 로켓은 SV액과 R액을 혼합해 작동되는 액체로켓 엔진으로 추진력을 얻고 있었다. 8.3 kg의 SV액이 채워진 탱크와 2.5 kg의 R액 탱크는 로켓 본체 중앙에 배치했다. SV액은 부식성이 높은 탓에 압력 용기는 부식을 막는 특수한 소재로 만들어져 타이푼 로켓의 코어를 형성하였으며, 만일을 대비해 발사 직전에 주입되었다. 지상에서 SV액을 공급해주는 용기도 로켓에 내장된 용기와 같은 재질로 만들어졌다.

로켓의 뒤에는 액체 연료와 산화제를 밀어내는 압력을 만들어내는 개스 발생기가 있는데, 이 장치는 코르다이트 폭약 분말을 태워서 발생한 개스에서 힘을 얻는다. 이 개스가 순환되는 봄베와 연료 탱크 사이에 폭발성 멤브레인 구조로 설계된 칸막이가 설치되었는데, 이 격벽은 약 2.5~5 bar의 내압으로 분쇄된다. 고체 폭약으로 끌어낼 수 있는 최대 압력은 51 bar였다. 또 다른 폭발성 멤브레인은 연료 탱크와 연소실 사이에 있었다. 이 멤브레인은 타이푼 로켓을 저장하고 있을 때 연료가 채워져 사용할 준비가 된 탱크의 누출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시운전을 할 때면 먼저 R액을 사용한 다음 SV액을 연소실에 주입해 점화하게끔 설정되어 있었다. 점화는 별도의 전기적 충격이나 스파크를 일으킬 필요가 없었고 두 액이 뒤섞이는 순간 곧바로 폭발이 일어나며 추력을 만들어낸다. 연소 시간이 2.5초인 이 로켓모터는 800 kp의 추력을 제공했다.


[1] 적연질산으로 풀이되는 이 산화제는 인간의 피부 같은 유기물부터 금속 같은 무기물까지 녹이는 매우 높은 산성을 띤 용액으로 불임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보관과 유지가 어려워 현재는 잘 쓰이지 않지만 북한에서는 노동 1호부터 꾸준히 이용되고 있다. [2] 톤카-250이라고도 불리는 이 추진제는 원래 나치 지대공 미사일 바서팔의 연료로 연구된 것이었으나 구소련과 북한이 만든 로켓의 연료로도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