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데리크 바지유
Frédéric Bazille |
|
|
|
자화상 | 프레데리크 바지유 作, 시카고 미술관 소장 | |
<colbgcolor=#261e1c,#261e1c><colcolor=#b8bdc3,#b8bdc3> 본명 |
장 프레데리크 바지유 (Jean Frédéric Bazille) |
출생 | 1841년 12월 6일 |
프랑스 왕국 랑그도크루시용 몽펠리에 | |
사망 | 1870년 11월 28일 (향년 28세) |
프랑스 공화국 루아레 봉라롤랑드 | |
직업 | 화가, 군인 |
부모 |
부 가스통 바지유 모 카미유 빅토린 마르그리트 비알라르 |
[clearfix]
1. 개요
프랑스의 화가.그는 비록 20대의 나이에 요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생전에 인상주의 회화의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무엇보다도 그는 작업실 내에서 상상 혹은 기억에 의지해 풍경을 그리는 것이 아닌 야외에 나가 직접 자연광 아래에서 풍경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방식인 앙플레네르(en plein air)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기존의 미술과 구별되는 인상주의 회화의 정체성을 형성했다.
2. 생애
어렸을 적 미술과 의학을 병행해 공부했다. 하지만 의사 면허 시험에는 낙방하였으며 그 이후 그림 외길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는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를 존경해서 그림체를 외젠과 거의 유사하게 그렸다.1862년 바지유의 나이 21세 때 파리로 진출한 바지유는 그의 인생을 바꿀 몇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아직 유명해지지 않은 인상파 화가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와 알프레드 시슬레(Alfred Sisley)였다. 이들과 교류 중에도 그는 의학 공부를 계속하여 1864년 의사 면허 시험에 재차 응시하였으나 실패한 뒤 본격적으로 화가 수업을 받았다.
화가로 전향한 바지유는 야외에서 외광 아래의 풍경을 직접 보며 그리는 방식인 앙플레네르(en plein air)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뭇 작품들을 남겼다. 그리고 1870년 <콩다민 가(街)에 있는 화가의 작업실(L'Atelier de la rue Condamine)>이라는 작품을 끝으로 그는 프랑스군에 입대했고 머지않아 부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가 입대한 지 불과 한 달만에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발발했다. 전투 중에 지휘관이 전사하자 그를 대신해 부대를 지휘했으나 그 역시 전사하고 말았으며 그의 부대는 궤멸당했다.
3. 대표작
|
가족 재회 (1867) (Réunion de famille) 오르세 미술관 |
|
여름 풍경 (1869) (Scène d’été) 하버드 대학교 포그 미술관 |
|
화장실 (1869–1870) (La Toilette) 파브르 미술관 |
|
콩다민 가에 있는 화가의 작업실 (1870) (L'Atelier de la rue de La Condamine) 오르세 미술관 |
4. 여담
- 개인 아틀리에를 구비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유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