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카스카 롱구스 라틴어: Publius Servilius Casca Long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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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미상 ~ 기원전 42년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공화국 마케도니아 속주 필리피 |
지위 | 파트리키 |
국가 | 로마 공화국 |
가족 | 가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카스카(형제) |
직업 | 로마 공화국 원로원 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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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의 원로원 의원.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 사건의 가담자이다.2. 행적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소꿉친구로 전해지며, 카이사르의 내전 때 카이사르의 편에 섰다. 그러나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와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가 주동한 카이사르 암살 음모에 가담했는데, 그 이유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료에서는 형제 가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카스카도 음모에 가담했다고 전하나, 디오 카시우스는 당시 호민관이었던 가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카스카는 음모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기술했다.기원전 44년 3월 15일,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원로원 회의장에 들어와서 황금 의자에 앉았다. 회의가 정식으로 열리기 전에 음모자들이 카이사르 주위로 모여들었다. 루키우스 틸리우스 킴버르가 열렬한 폼페이우스파였던 형제 푸블리우스의 추방형을 해제시켜달라고 탄원했다. 다른 사람들도 카이사르의 주위를 둘러싼 채 탄원에 합세했고, 카스카는 카이사르의 의자 뒤에 슬며시 섰다. 카이사르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들의 탄원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때, 킴버르가 카이사르의 토가를 잡고 어깨 아래로 끌어내렸다. 이것이 암살을 결행하라는 신호였다. 그 직후, 카스카가 단검을 꺼내 카이사르를 찔렀다. 수에토니우스에 따르면, 카스카의 검을 카이사르의 목 아래를 스쳤다고 한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고 한다. 카이사르는 뒤돌아서서 카스카의 팔을 비틀어 단검을 떨어뜨리며 외쳤다.
"카스카, 대체 무슨 짓인가?"
카스카가 동지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형제들이여, 도와주시오!"
이에 음모자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어 카이사르를 공격했고, 카스카는 바닥에 떨어진 단검을 주워 카이사르의 옆구리를 찔렀다. 결국 카이사르는 검에 수십 차례 찔러 절명했다.
기원전 44년 12월 10일, 카스카는 기원전 43년 호민관에 당선되었다. 기원전 43년 6월 말, 카스카는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와 세르빌리아가 주관한 회의에 참석해 마케도니아 총독으로 부임한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가 군대를 이끌고 이탈리아로 와야 하는 지 여부를 논의했다. 얼마 후 옥타비아누스가 양아버지 카이사르의 복수를 명분삼아 로마로 진군하자, 그는 호민관 직임에서 물러난 뒤 마케도니아로 피신해 브루투스와 합류했다. 이후 브루투스의 함대를 지휘해 리키아를 장악하는 데 공헌했다.
기원전 42년 가을 필리피 전투에 참전한 그는 첫번째 전투 후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가 자살하자 두 명의 포로를 카시우스의 무덤 앞에서 처형하라고 명령했다. 그 후 필리피 전투가 완전한 패배로 끝나자, 그는 형제와 함께 검으로 목을 찔러 자살했다. 두 사람의 유해는 한 무덤에 묻혔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