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04 23:14:48

폴 티비츠

폴 워필드 티비츠 주니어
Paul Warfield Tibbets Jr.
파일:1000130401.jpg
출생 1915년 2월 23일
미국 일리노이주 퀸시
사망 2007년 11월 1일 (향년 92세)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복무 미합중국 육군
미합중국 공군
최종 계급 미국 공군 준장
복무 기간 1937~1966
학력 얼턴 군사학교
플로리다 대학교
신시내티 의과대학교

1. 개요2. 생애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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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

2. 생애

1915년 일리노이주 퀸시에서 폴 워필드 티비츠 시니어와 에놀라 게이[1]사이에서 태어났다. 이후 아이오와주,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로 이주했다가 일리노이주로 돌아왔다. 1928년에 일리노이주 얼턴의 군사학교에 입학했다. 1933년에 플로리다 대학에 입학해 학사학위를 땄고 신시내티 의과대학에 입학해 1937년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 하지마자 오하이오주 데이턴의 라이트 필드에서 육군 항공대에 입대했다. 1937년 2월 25일에 켄터키주 포트 토머스에서 육군 사관후보생이 된다. 태평양전쟁이 시작되면서 제29폭격대에서 B-17 폭격기를 조종했다. 그 후 플로리다주 탄파의 마크디르 공군 기지에서 제40항공단 97폭격대의 지휘관이 된다. 1942년에는 나치 독일을 폭격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1944년 12월, 원자폭탄 투하 항공대인 제509폭격비행단 대장으로서 임명되어 부대를 편성한다. 이후 네바다주의 사막의 네바다 핵실험장에서 원자폭탄 투하 훈련을 진행했고 다음 해에 태평양의 티니언섬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제509혼성비행대는 일본 제국 본토에서 펌킨 폭탄으로 불리는 모의 원자 폭탄을 사용해 교토, 히로시마, 니가타, 기타큐슈 등을 폭격해 일본제국 민간인 백여 명을 죽이면서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장소를 히로시마로 선정했다.

1945년 8월 6일 오전 2시 45분 ,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를 티니언섬에서 직접 이륙한 후[2] 북항해 7시간 비행하여 일본 혼슈 히로시마에 도착했다. 오전 8시 15분, 히로시마시 상공 9,000m에서 리틀 보이를 떨어뜨렸다. 이후 나가사키의 원자폭탄 투하에도 참가했다.[3]

전후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에 걸쳐 많은 원자폭탄 실험에 조언했고 미국 최초 제트 폭격기인 B-47의 개발에도 기여했다. 1954년에는 나토공군의 수뇌부로 프랑스 파리에서 일했다. 1959년에는 준장으로 승진해 마크디르 공군기지의 사령관으로 부임했다. 1966년 8월 31일 공군에서 퇴역했다. 

1976년에는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 본거지를 둔 항공사인 제트 에이비에이션사의 사장으로 취임했다. 1976년, 텍사스의 에어쇼에서 버섯구름까지 연출하는 원자폭탄 투하쇼를 재현했다. 이 쇼는 일각에서 강하게 비난받아 미국 행정부가 일본 행정부에 공식으로 사과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에 "일본인을 모욕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라고 변명했다.

한편 그는, 자신이 관여한 핵 공격 임무를 "군인으로서 명령받은 이상,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자부했지만, 싸우기 좋아하는 사상을 바람직하지 않게 생각했다. 1995년 한 인터뷰에서 "나는 일본제국의 항복을 받아내려고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하려고 했다. 악당들을 죽이고 싶었다!"라며 " 죽인 사람보다 많은 사람을 구했다는 내 확신은 바뀌지 않았다. 원자폭탄을 보유하면서도 사용하지 않아 더 많은 사람을 죽게 했다면 더 큰 잘못이었을 것이다."이라고 주장했다.

2007년 11월 1일, 심장병을 앓던 폴 티비츠는 뇌졸중으로 92세에 죽었다. 폴 티비츠는 원자폭탄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눈길을 의식해서 친구에게 사후에 장례식을 실시하거나 묘비를 만들지 말도록 부탁했다. 유언에 따라 그의 유해는 화장하여 바다에 뿌려졌다.

3. 여담

  • 손자인 폴 티비츠 4세 역시 공군 소속으로 스텔스기를 몰았으며 할아버지가 속해있던 제509폭격비행단에 있었으나 여러 사고를 쳐 2018년 불명예제대했다.


[1] 자신이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기체의 이름으로 붙였다. [2] 본래 티비츠는 부대장이였고 이 기체를 모는 조종사가 아니었으나 기존의 조종사 로버트 루이스 대위를 부조종사로 바꾸고 본인이 직접 기체를 몰았다. [3] 다만 직접 떨어뜨리지 않고 기상정찰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