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0> 페르디난트 피에히 Ferdinand Pië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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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37년 4월 17일 |
오스트리아 연방국 빈 | |
사망 | 2019년 8월 25일 (향년 82세) |
독일 바이에른 로젠하임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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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기업인 |
학력 |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 (기계공학 / 학사) |
부모 |
아버지 아톤 피에히 어머니 루이제 피에히 |
형제자매 |
형 에른스트 피에히 누나 루이제 피에히 남동생 한스 미셀 피에히 |
배우자 |
코리나 본 플란타(이혼) 마를린 포르셰(이혼) 헤르마 허터(이혼) 우르줄라 피에히(재혼) |
자녀 |
슬하 8남 5녀 장녀 아리안 피에히 차녀 코리나 삼녀 데지레 피에히 장남 페르디난트 난도 피에히 차남 재스민 피에히 삼남 한스 포르셰 사남 안톤 피에히 오남 발렌틴 피에히 육남 페르디난트 피에히 주니어 사녀 캐롤라인 피에히 칠남 마르쿠스 피에히 오녀 플로리나 루이스 팬틱 피에히 팔남 그레고리 피에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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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의 기업인. 포르쉐와 폭스바겐의 창업주인 페르디난트 포르셰의 외손자다.2. 생애
할아버지 페르디난트 포르셰와 외사촌 알렉산더 페르디난트 포르셰(왼쪽)와 페르디난트 피에히.(오른쪽)
1937년 오스트리아에서 변호사였던 아버지 안톤 피에히와 포르셰의 딸인 어머니 루이제 피에히의 3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 기계공학 학사 학위를 땄다.
1963년부터 1971년까지 포르쉐에서 근무하다가 1972년에 아우디로 옮겨서 회장으로 재직하였다. 이후 1993년, 폭스바겐 그룹 회장이 되었고 2009년 마침내 포르쉐까지 인수했다.
2014년,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2015년 4월, 폭스바겐 그룹 감독 이사회 의장에서도 물러나면서 자동차 업계에서 은퇴하였다.
은퇴 이후 노후를 보내던 중, 2019년 8월 25일 로젠하임의 한 레스토랑에서 아내와 함께 저녁식사 도중 갑작스럽게 쓰러져 병원에 이송됐으나, 결국 회복하지 못한 채 향년 8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3. 여담
- 1982년부터 1993년까지 폭스바겐 그룹의 회장으로 재직했던 칼 한(Carl Hahn)은 피에히의 성격이 대인관계에 있어 매우 나빴다고 한다. 그래서 한때 피에히 회장을 지식과 경험은 뛰어나지만 성격이 좀 안좋은 사람들이 대부분인 기술 관료로 두고 싶어했다고 하는데, 이와 관련하여 한가지 일화가 있다. 칼 회장은 피에히와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하는 동안 피에히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하나하나에 다 신경이 쓰였는데, 한 신도 사제가 신사의 골동품 도검 수집품을 피에히에게 보여주었고 피에히는 그 검을 검사하면서 그것이 가짜라고 신부에게 말했다고 한다. 이후 밝혀진 진실에 따르면 피에히가 옳았는데, 아키히토 천황이 도검을 전문가들에게 검사를 받은 결과, 검이 가짜였다고 한다. 이 당시 칼 회장은 1991년 도쿄 모터쇼에서 아우디 아부스 콰트로 컨셉트카를 직접 선보였고, 피에히의 참가를 허락하지 않았다고도 하는데, 이 때문에 개인적으로 아부스 콰트로 제작에 광범위하게 관여했던 피에히 회장은 화가 났다고 한다. #
- 부가티를 좋아해서 부가티가 적자 덩어리임에도 계속 폭스바겐 그룹 산하에 두었으며 부가티 라 부아튀르 누아르를 주문 제작했다. 하지만 차가 완성되기도 전에 사망해서 인도받지 못했다.
4. 가족관계
자세한 내용은 포르셰-피에히 가문 문서 참고하십시오.정력도 꽤 좋은지 총 네명의 부인과의 사이에서 슬하 8남 5녀를 낳았다. 막내인 그레고르 피에히는 1994년생으로 본인과 57살이나 차이가 나며, 막내가 태어났을때도 어머니 루이제 피에히가 살아있었다. 할머니랑 90살 차이고 할아버지랑 100살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