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5-18 19:11:04

페데리코(토스카나)

파일:카노사 가문의 문장.png
토스카나 변경백 및 후작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font-size: 0.95em; letter-spacing: -1.4px"
보니파초 1세 보니파초 2세 아달베르토 1세 아달베르토 2세 귀도
람베르토 보소네 우베르토 우고 보니파초 3세
라니에리 보니파초 4세 페데리코 마틸다 라보도
콘라트 엥겔베르트 3세 하인리히 오만공 울리히 폰 아템스 벨프 6세
크리스티안 1세 폰 부흐 슈바벤의 필리프 }}}}}}}}}}}}

 
{{{#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font-size: 0.95em; letter-spacing: -1.4px"
랑고바르드 왕국 치하
파로알트 1세 아리울프 테오델라피우스 아토 트라사문트 1세
파로알트 2세 트라사문트 2세 힐데리크 트라사문트 2세 아지프란트
트라사문트 2세 루푸스 알보인 기술프 테오디키우스
힐데프란트
프랑크 왕국 치하
위니게스 수포 1세 아델라트 마우링 아델치스
랑베르 베렝게르 귀도 1세 람베르토 1세 수포 2세
람베르토 1세 귀도 2세 귀도 3세 람베르토 2세 귀도 4세
이탈리아 왕국과 신성 로마 제국 치하
알베리크 보니파초 1세 피에트로 테오발트 1세 안스카리오
사를리오 우베르토 보니파초 2세 테오발트 2세 트라사문트 3세
판둘프 1세 트라사문트 4세 우고 1세 콘라트 아데마르
라니에리 1세 우고 2세
카푸아 가문 치하
보니파초 3세 페데리코 마틸다 라니에리 2세 마틸다
신성 로마 제국의 대리인
베르너 2세 엥겔베르트 3세 하인리히 1세 울리히 폰 아템스 벨프 6세
벨프 7세 벨프 6세 콘라트 1세 판둘프 2세 콘라트 1세
교황 대 신성 로마 제국
콘라트 2세 하인리히 2세 디에폴트 베르톨트 1세 레이날트 1세
콘라트 3세 베르톨트 2세 레이날트 2세
}}}}}}}}}}}} ||

토스카나 13대 변경백
스폴레토 47대 공작

Federico | 페데리코
성명 한국어 페데리코
이탈리아어 Federico
영어 Frederick
생몰 년도 1040년 ~ 1055년 7월
재위 기간 1052년 - 1055년(토스카나 변경백)
1052년 - 1055년(스폴레토 공작)

1. 개요2. 행적

[clearfix]

1. 개요

토스카나 백국 13대 변경백, 스폴레토 공국 47대 공작.

2. 행적

1040년경 토스카나 변경백이자 스폴레토 공작이며 만토바, 브레시아, 모데나, 페라라, 레지오의 백작을 역임한 보니파초 4세와 상로렌 공작이자 바르 변경백 프리드리히 2세의 딸 베아트릭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누이로 베아트리체(1053년 이전에 사망)와 마틸다가 있었다. 1052년 5월 6일 아버지가 산 마르티노 또는 스핀다 숲에서 사냥하던 중 암살자들의 습격으로 피살된 뒤 12살의 나이에 아버지의 직위를 물려받았고 어머니 베아트릭스가 섭정을 맡았다.

그러나 보니파초 4세를 위시한 카노사 가문의 강력한 권세를 질시하던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3세는 보니파초 4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카노사 가문이 혼란스러워진 틈을 타 이들을 약화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페데리코의 직위 승계 인정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영지를 몰수하려는 기미를 보였다. 황제의 의도를 눈치챈 베아트릭스는 1054년 중반 황제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상 로렌 공국을 빼앗긴 고드프리 3세와 재혼했다.

하인리히 3세는 베아트릭스와 고드프리의 결혼은 자신의 허락없이 이뤄졌으니 유효하지 않으며, 황위에 도전하려는 음모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1055년, 하인리히 3세는 친히 피렌체로 진격해 베아트릭스와 페데리코, 그리고 마틸다를 체포하고 독일로 끌고 갔다. 페데리코는 독일로 끌려가던 중인 그 해 7월 병사했다. 그 후 로렌에서 반란을 일으킨 고드프리트 3세를 진압할 준비에 착수하던 하인리히 3세는 1056년 10월 5일 보드펠트에서 급사했고, 뒤이어 황위에 오른 6살된 하인리히 4세의 섭정을 맡은 아그네스 황후는 베아트릭스와 마틸다 모녀의 귀국을 허락했다. 이리하여 피렌체에 복귀한 마틸다는 토스카나 여변경백에 등극했고 어머니 베아트릭스가 섭정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