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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원전 171년 페르세우스가 이끄는 마케도니아군과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맞붙은 전투.2. 상세
칼리니코스 전투에서 승리한 뒤, 페르세우스는 로마군 사령관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에게 평화 회담을 제안했다. 그러나 크라수스는 로마에 항복하지 않는다면 협상을 논할 수 없다고 답했다. 페르세우스는 막대한 돈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해 협상에 임하도록 유도해봤지만 크라수스의 고집을 꺽지 못했다. 이에 시큐리움으로 철수한 뒤 로마군의 동태를 살폈다. 로마군 장병들이 자기들 곡식을 수확한 뒤 남을 짚을 진영 앞에 버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야간에 습격을 가해서 그 짚에 불을 지른다면 로마군 숙영지를 불태워서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야간 기습이 도중에 발각되자 철수했고, 로마인들은 이를 추격해 마케도니아 병사 수십 명을 사살하거나 사로잡았다.그 후 로마군은 더 많은 곡식을 수확하기 위해 라리사 남동쪽의 크라논으로 이동했다. 페르세우스는 로마군 진영이 내려다봬이는 언덕에 기병과 경보병대를 배치시켜서 적을 도발해봤지만, 로마군이 꿈쩍하지 않자 시큐리움으로 철수했다. 로마군이 뒤이어 팔라나로 이동한 뒤 곡식을 추가로 확보하기 위해 다수의 병사를 사방에 보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 때를 틈타 적을 습격하기로 했다.
페르세우스의 마케도니아군은 기병 1,000명과 트라키아 및 크라타 경보병 2,000명을 이끌고 적 수송부대를 습격해 1,000대의 수레와 600명의 적병을 사로잡았다. 뒤이어 로마병 800명으로 구성된 분대를 공격했다. 이들은 언덕으로 올라가서 방패벽을 세워서 원거리 무기를 막을 준비를 갖춘 후 원군이 올 때까지 버티기로 했다. 마케도니아군은 언덕을 포위했지만 적의 방비가 강해서 언덕을 올라가기 힘들자 새로 발명된 무기인 케스트로펜돈(κεστροσψνδόνη)을 활용해 적의 방진을 흐트러놓으려 했다. 폴리비오스는 이 무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케스트로펜돈은 페르세우스의 전쟁 당시 새로운 발명품이었다. 다트의 길이는 2큐빗이었고 튜브의 길이도 이와 같았다. 다트에는 길이가 한 뼘, 굵기가 손가락 한 뼘 정도 되는 나무 자루가 끼워져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아주 짧은 날개 모양의 막대기 3개가 단단히 붙어 있었다. 다트가 발사되는 슬링의 끈은 길이가 같지 않았고, 그 사이의 고리에 삽입되어 쉽게 풀릴 수 있었다. 거기에는 끈이 팽팽하게 빙빙 돌면서 고정되어 있었지만, 끈이 풀리는 순간 끈 중 하나가 풀리자 고리에서 벗어나 물매에서 납탄처럼 발사되어 큰 힘으로 치니, 맞은 사람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이 신무기의 공격을 받은 로마군은 많은 사상자를 입고 기력이 쇠약해졌고, 페르세우스는 항복하라고 거듭 요구했다. 이 소식을 뒤늦게 접한 크라수스는 누미디아 기병과 전투 코끼리를 포함한 경보병과 기병을 이끌고 서둘러 달려왔고, 로마 군단병들이 그 뒤를 따라왔다. 페르세우스는 마케도니아 중보병대를 서둘러 소집했지만 그들이 제때에 팔랑크스 진형을 갖추기 전에 로마군이 공격을 가했다. 이에 마케도니아군은 퇴각했고, 로마군은 마케도니아 보병 300명과 기병 24명, 적장 한 명을 사살하고 많은 중보병을 생포했다.
그 후 페르세우스는 테살리아에서 마케도니아로 진입하는 진군로가 지나가는 템페 계곡의 입구인 고누스에 강력한 수비대를 배치한 뒤 마케도니아로 철수했다. 크라수스는 마케도니아군이 테살리아로 재차 남하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고누스를 공격했지만 공략에 실패하자 말로나와 트리폴리스를 포함한 여러 마을을 점거하고 라리사로 귀환했다. 이듬해인 기원전 170년 초, 그는 페르세우스를 상대로 거둔 전공이 별로 없는 것을 만회하고자 보이오티아의 여러 도시를 무자비하게 약탈하고 수많은 이들을 노예로 팔아넘겼다. 함대 사령관 가이우스 루크레티우스는 훨씬 더 무자비하고 탐욕스러운 모습을 보여 그리스인들의 반감을 샀다.
페르세우스는 이런 상황을 예의주시하다가 소규모 병력을 이끌고 에우보이아의 오룸 섬에 정박한 로마 함대를 기습 공격해 전함 5척과 곡식을 실은 수송선 20척을 나포하고 나머지 배들을 침몰시킨 뒤 마케도니아로 귀환했다. 이렇듯 페르세우스가 로마를 상대로 선전하자, 로마군의 악행에 분노하고 있던 그리스인들은 페르세우스를 자신들을 지킬 수호자로 여겼고, 많은 이가 마케도니아로 넘어갔다. 여기에 에페이로스 연맹도 로마의 통제에서 벗어날 때가 왔다고 여기고 마케도니아 왕의 편에 섰다. 이리하여 로마가 쉽게 이길 것으로 예상됐던 전쟁은 장기전으로 치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