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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를 여행하는 현대인을 위한 안내서/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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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를 여행하는 현대인을 위한 학문별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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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미술
2.1. 조각2.2. 서예
3. 문학4. 음악

1. 개요

예술은 현대인이 판타지 세계로 갔을 때 가장 도입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다. 왜냐하면 일단 예술은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즐겨야 하는데, 중세인과 현대인의 관점 차이는 달라도 너무 다르고,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문화가 다른것은 중세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모든 분야에서 마찬가지지만, 현대의 기술은 판타지 세계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반면, 유명한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을 아무리 많이 보여줘도 관점이 다른 중세인들은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특히 현대미술이나 〈 4분 33초〉 같은 걸 선보였다간 미친 사람 취급받기 딱 좋다. 게다가 중세시대 예술의 대부분은 종교 관련이었기 때문에, 소재도 한정되어 있었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예술만으로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은 현대 이전에도 거의 비슷했단 점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거장 미술가들이 대거 출현한 것은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 간의 미술가 섭외 경쟁의 덕이었고, 그 거품이 없던 시대의 예술가들은 그 풀도 극히 한정되어 있었고 취업할 곳도 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2. 미술

미술가라면 그 때의 미술 화풍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미술 화풍은 그 세계의 가치관과 문화에 따라 다르기에, 작품에 대한 평가도 이에 따라 바뀐다.
예를 들어 정물화는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에 의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누드화는 중세 때까지는 그려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시기의 작품 중 누드가 나오는 아담 이브의 누드화는 중요한 부분을 가린다는 전제 하에 허용되었을 정도다. 그리고 풍경화를 밖에서도 그릴 수 있게 하는 데 큰 공헌을 한 튜브 물감의 발명 여부도 알아 보는 것도 중요하다.

해부학지식이 있다면 시대에 따라서 가치 높은 지식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다. 특히 근육과 관련된 지식은 보다 실물 같은 인물화를 그리는데 큰 도움이 되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이러한 지식을 얻기 위해 시체를 해부했다는 일화가 있다.

하지만 미술은 이하의 문학이나 음악과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의 기준으로 우열이 존재하는 지점이 있기 때문에 비교적 유리한 편이다. 그냥 실제와 비슷하게 묘사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놀라 자빠질 것이다. 현대 미술이 상당수의 현대인들조차 "뭐야, 저거 그냥 낙서 아니야? 뭐 저런 걸 미술작품이라고 해?"라는 평가를 내리는 형태가 되어 버린 것은, 기본적으로 사진기의 출현으로 실제와 모사한다는 것 자체로는 대단할 것이 없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진기가 없는 이세계라면 그냥 현실의 것과 비슷하게 그리는 기술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 입을 떡벌어지게 할 수 있다. 지구에서는 입시미술이나 그리던 예비 미대생이 이세계에서는 천재 화가?가 실제로 가능할 것이다. 원근법, 소실점 등 수학적인 이론도 동원해서 남을 가르칠 수 있다면 웬만한 국가 정부의 공식 화가로 섭외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2.1. 조각

전근대 시대의 조각품은 유럽 기독교(특히 가톨릭) 문화권의 성모상 및 성인상, 인도 문화권의 신상, 불교 문화권의 불상, 나한상 및 보살상, 기타 원시 종교 사회의 토템상 등 종교와 관련된 적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조각가로 살아남으려면 일단 그 세계의 지배 종교와 관계를 맺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만 우상 숭배를 강경하게 배격하는 이슬람교나 성상을 입체상이 아닌 평면상으로 만드는 정교회, 전구 교리가 없는 개신교, 초자연적 인격신 개념이 없거나 부정하는 종교(유교, 자이나교 등)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2.2. 서예

서예는 동아시아 문화권과 이슬람 문화권 이외에서는 그다지 활성화되지 않은 장르로서 서양권의 캘리그래피도 인쇄술, 타자기 등의 영향으로 한동안 잊혀졌다가 근래에 와서야 재정립되고 있다. 따라서 글씨를 잘 쓰면 명필로 대접받는 동아시아 문화권이 아닌 이상 글씨를 멋지게 쓰는 것보다는 빠르게 쓰는 것을 연습하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할 것이다.

3. 문학

문학에 소질이 있고 현지의 어문에 능통하다면 작가에 도전해 볼 수 있다. 만일 문자가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인쇄술이 어느 정도 발달해 있는 사회라면 소설가로, 문자 사용이 소수의 식자층에 국한되어 있고 일반 백성들 대다수가 문맹인 사회라면 시인이나 극작가로 나서는 게 유리하다. 특히 문자보다 암송, 구전에 많이 의존하는 사회라면 매우 엄격한 운율적 형식에 맞출 것을 요구하므로 그러한 형식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또한 18세기 말~19세기 초 낭만주의 사조가 유행하기 이전까지는 참신한 구상력과 천재적 영감보다는 익히 알려진 종교적, 신화적, 역사적 소재들을 얼마나 맛깔나게 표현하는가, 고전적 형식을 얼마나 잘 준수하였는가가 작가의 역량을 가늠하는 주요 척도였으므로, 작품의 소재가 되는 인물 및 사건 등을 잘 이해하고 그것을 잘 표현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단, 일반적인 판타지의 배경인 중세 유럽의 글자는 기본적으로 자국어가 아닌 라틴어였고 그것 또한 소수의 귀족과 사제들만이 알았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애초에 책과 종이는 근대 이전에는 생각보다 훨씬 귀해서 당신이 거장의 글을 라틴어로 베껴 쓰고 그것을 어찌어찌해서 높으신 분에게 보여도 그것이 당신에게 직접적인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는 확실할 수 없다.

현실에서 이미 있는 작품을, 당신이 처음으로 쓴 것처럼 위장하여 발매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현실의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유명하고 뻔한 이야기가, 판타지 세계의 주민들에게는 참신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소설의 내용을 현지의 상황에 맞게 고치는 센스는 필수.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작품의 내용이 그 세계의 윤리관에서 허용한다는 전제에서만 가능하다. 예를 들어 성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곳에서 《 채털리 부인의 연인》 같은 것을 썼다가 돌맞아 죽을 수도 있다. 뭐, 엄숙주의 유교세계인 조선시대에도 야설이 암암리에 돌아다녔고, 가톨릭 세계에도 사드 후작 같은 사례도 있었으니만큼, 본인의 재능이 그 뿐이라면야 어둠의 세계에선 이름을 날릴 지도 모르지만... 사드 후작의 말년을 보고서도 따라할 마음이 있다면야.

4. 음악

견해가 좀 갈리는 편이지만, 일단 중세 및 근세의 생활사 관련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는 꽤 대접이 좋은 편이다. 근대 이전에는 녹음을 할 수 없기때문에 음악을 듣기 위해선 반드시 공연장에 가야만 했기 때문에 음악을 듣고자하는 사람은 많았으나, 음악가는 항상 귀한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복잡한 화음 체계가 사용된 클래식, 현대 음악보다는 단조로운 멜로디 위주의 음악이 더 대접받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복잡한 음악은 높은 확률로 소음 취급을 받을 수 있다. 근대 이전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어난 곳에서 몇십 킬로미터 안에서 평생을 보냈고, 보통 그 지역의 고유문화에 동화되어 살아갔다. 따라서 음악도 자신이 태어난 지역에서 유행하는 것을 들으며 평생을 살았다. 다른 문화권의 음악을 듣기는 불가능하고, 들었다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실제로 제국주의가 판을 치던 시절, 아프리카 원주민에게 클래식을 들려주었지만 아예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음악을 즐기려면 기본적으로 운율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음악이라도 익숙한 박자를 가지고 있다면 듣기 쉽다. 예를 들어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박자 리듬은 3박자이며, 이 덕분에 서양 음악이 처음 들어왔을 때 한국인이 가장 익숙하게 느낄 수 있었던 음악이 바로 3/4박자인 왈츠였다. 즉, 현지의 음악과 동일한 박자를 사용하는 음악이라면, 사람들이 최소한 귀를 기울여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박자는 어디까지나 음악의 한 요소일 뿐이다. 가사, 사용하는 악기, 곡의 구성 등 음악의 형태를 결정하는 요소는 매우 많다. 그리고 시기와 유행도 적절하게 고려하지 못한다면, 음악으로 성공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에 가깝다.

실제로 당장 현대인들조차도 어려서부터 다양한 박자의 다양한 음악을 고루 들어왔기 때문에 어떤 박자의 음악이든 소음으로 인식하지 않고 들을 수 있음에도, 매번 새로운 음악이 나올 때마다 기성세대와 신세대가 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시로 로큰롤을 들 수가 있는데, 지금이야 대중적이지만 몇십년 전만 해도 로큰롤은 소음에 속했다. 영화 〈 백 투 더 퓨처〉를 보자. 주인공 마티 맥플라이가 80년대에서 50년대로 돌아가 50년대의 스타인 척 베리의 음악을 따라하니 관객들이 환호를 하다가, 80년대 스타일로 지랄발광을 떨었더니 바로 흥이 뚝 떨어져서 정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1] 50년대나 80년대나 록음악의 리듬은 똑같이 4/4박자였는데 말이다.

물론, 기존의 음악에서 완전히 벗어난 음악을 함으로써 센세이션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이를 이해하는 사람은 소수일 것이며, 기성세대의 반발과 싸워야 할 것이다. 당장 현재에서도 이를 느껴볼 수 있다. DAW로 만들어지는 수많은 전자음악 장르들 중 하나인 하드코어 테크노를 들어보자. 어떤 사람은 난해한 박자와 찢어지는 듯한 소리에 컴퓨터가 오류가 난 게 아니냐며 당황할 것이지만, 어떤 이는 굉장히 맘에 들어 할 것이다. 비단 이 뿐만 아니라, 코어 장르 등등 호불호가 갈린다는 다른 모든 음악 장르들도 마찬가지. 모두 즐겨 듣는 팬층도 두텁고 하나의 장르로써 인정받는 엄연한 음악의 한 줄기들이지만, 호와 불호가 나뉜다는 것은 당신이 칭찬을 듣는 만큼 욕을 듣게 될 확률도 높아질 것 이라는 의미이다.

일단 음악으로 성공하고 싶다면, 길은 두 가지다. 지역의 고유 음악을 배워서 귀족이나 군악대에 들어가거나, 낮은 확률이지만 현대 음악의 우월함(...)을 보여주어 센세이션을 일으키던가.

대신, 만약 당신이 충분한 음악적 지식을 가지고 있고, 기적을 뚫고 다시 현대로 돌아온다면, 오히려 현대에서(주로 클래식계에서) 큰 음악적 혁명을 일으킬 수도 있다. 애초에 새로운 거 찾겠다고 여기저기 쏘다니면서 민요를 수집하고 있는데, 아예 다른 세계의 음악을 당신 혼자서 가져왔다고 생각해 보자. 심지어 출처조차 설명할 필요 없이 자신이 창조해냈다고 할 수 있는 것을애초에 출처를 설명하면 그게 더 큰일이지 않나?. 아주 높은 확률로 그곳에서 사용하는 음계와 박자, 악기는 지구의 것과는 어느 정도 유사함은 있을지언정 다를 것이고, 머리 하나로 고작 수십 년만에 그런 것을 창조해야하는 여타 작곡가들과는 달리, 사회 전체가 수백년간 쌓아온 지혜를 꿀꺽할 수 있는 것이다.


[1] 정확히는 처음에는 신나하다가 마티가 점차 흥분하면서 난리부르스를 치자 정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