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출처2018년 파자마 수호자 스킨 발매와 동시에 공개된 별 수호자 세계관 관련 단편 소설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스킨 세계관 및 별 수호자 문서 참고 바람.
2. 본문
2.1. 1막
그래, 바로 앞에서 문을 쾅 닫은 건 조금 심했을지도 몰라. " 룰루야." 나는 침착하게 말을 꺼냈지만, 오븐 장갑을 낀 손이 땀으로 축축해졌다. '저녁 식사 준비 중이라는 걸 잊으면 안 돼.' 나는 바싹 긴장한 손으로 현관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복도에서 하염없이 빙글빙글 돌던 룰루가 내 옆으로 다가와 섰다. 한 번 더 심호흡하고 룰루에게 몸을 돌렸다. "현관에 왜 아리네 팀원들이 서 있는지 알아?" "응." 룰루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슴을 쭉 펴며 말했다. " 럭스 네가 그랬잖아. 무.조.건. 참석해야 하는 별 수호자 회의라고." '내 팔자야.' 나는 쾌활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또박또박 내 흉내를 내는 룰루의 말을 듣고 그냥 잡고 있던 현관 손잡이를 놓았다. 분명히 난 그렇게 말했다. 징크스에게. 정작 당사자는 아직 오지도 않았지만. 룰루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손잡이에 손을 뻗었다. "쟤네도 별 수호자잖아, 안 그래?" 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네." 룰루는 현관문을 활짝 열었다. 세 사람은 여전히 아까처럼 현관에 서 있었지만 각자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즈는 평소보다 훨씬 더 짜증이 난 듯한 사라 포츈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아니, 사라가 아니지.' 나는 다시 한번 상기했다. '사라는 친구들만 부르는 이름이니까.' 지난 여름 캠프에서 확실히 깨달은 사실이었다. 평소와 같은 비웃음을 거두고 화난 듯 얼굴을 찌푸린 미스 포츈은 휴대폰으로 격하게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그 뒤에는 조용한 민트색 머리 소녀, 소라카가 판테온 빵집의 상자를 들고 있었다. 세 사람은 내가 다시 문을 쾅 닫을지 궁금한 듯 날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밖에서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침묵이 흘렀다. 그때 룰루가 불편한 침묵을 깨고 이즈리얼과 포츈의 손목을 잡아 집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포츈은 놀라서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이즈리얼이 지나가며 나를 향해 씩 웃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나는 오븐 장갑을 낀 손을 살며시 흔들었다. 소라카가 가까이 다가와 마치 암호라도 대는 것처럼 내 귀에 속삭였다. "시나몬 롤." 미소를 지으며 무거운 빵 상자를 건넨 소라카는 서둘러 먼저 들어간 둘을 따라갔다. "어서 와." 거실에서 룰루의 큰 목소리가 들렸다. "별 수호자 파자마 파티에 온 걸 환영해!" 어색하다. 불편할 정도로 조용한 집 안에서는 부엌에 있는 시계의 초침이 똑딱거리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작은 소파에 앉은 이즈리얼은 여전히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고 있는 포츈과 시나몬 롤을 야금거리며 조용히 룰루를 보고 있는 소라카 사이에 끼어 있었다. 잔나와 뽀삐는 룰루가 다른 방에서 끌고 나온 딱딱한 식탁 의자에 앉아 있었다. 룰루는 탁자에 몸을 숙인 채 종이를 복잡한 모양으로 접고 있었다. 대체 뭘 만드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룰루의 흥얼거리는 소리만이 시계 소리와 함께 이 집에서 나는 유일한 소리였다. |
2.2. 2막
그리고 나는 낡아 빠진 카펫 위를 서성였다. 가장 먼저 침묵을 깬 사람은 포츈이었다. 문자를 보내고 있던 포츈은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더니 마침내 무릎 위에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휴대폰 끝에 달린 작은 총 모양 장식물이 요란하게 짤랑거렸다. 포츈은 색이 바랜 커튼 무늬부터 베이지색 소파까지, 처음으로 거실에 있는 모든 것을 둘러보았다. 실망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포츈이 다시 뒤에 놓인 쿠션에 몸을 기대자 이즈가 앞으로 몸을 숙였다. "자주 이렇게 놀아? 다 모여서?" 뽀삐와 잔나가 이즈리얼을 빤히 바라봤다. 뽀삐는 여전히 왜 이즈가 별 수호자로 선택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난 태초의 별이 선택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계속 말해 주었지만, 뽀삐는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 듯 팔짱을 끼고 이즈를 쳐다보았다. "응, 너희 팀은 안 그래?" 잔나가 물었다. 겉으로 보기에 잔나는 침착해 보였다. 하지만 천장에 달린 팬이 돌아가지 않는데도 거실에 미풍이 감도는 걸 보면 잔나도 세 사람이 있어서 나만큼 긴장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리는…" 말을 꺼낸 이즈가 포츈을 쳐다봤다. 포츈이 눈을 위로 치켜뜨며 고개를 젓자 한쪽으로 내린 앞머리가 찰랑거렸다. 이즈는 말을 이었다. "아리는 나가서 노는 걸 좋아해. 집순이가 아니거든. 집에는 재미있는 일이 없기도 하고." '헐. 우리를 다 그냥 집순이로 보네. 너무해.' "그래서 아리하고 신드라는 안 온 거야? 더 재미있는 일이 있어서?" 뽀삐가 발로 의자 발치를 초조하게 두드리며 물었다. 신드라 얘기가 나오자 잔나의 몸이 경직되었다. 소라카가 끼어들어 화제를 바꿨다. "너희 친구 중에 그 빨간 양 갈래 머리를 한—" "시끄러운 애." 포츈이 끼어들었다. "로켓포 가지고 다니는 애 말이야." 소라카가 말을 이었다. "그래, 번쩍이는 폭탄을 가지고 다니는 걔도 오늘 오는 거야?" "징크스? 징크스는 항상 늦어." 나는 시계를 봤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걸 좋아하거든." 말을 끝내자마자 현관문이 열리더니 거세게 쾅 닫혔다. 시로와 쿠로, 폭죽으로 가득 찬 손가방이 복도 바닥에 내던져지는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럭시! 살랑아! 꼬맹아!" 징크스가 노래를 부르듯 소리쳤다. "나 왔다!" 룰루가 의기양양하게 종이접기를 끝낸 순간 징크스가 어슬렁거리며 거실로 들어왔다. 징크스는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코끝까지 내렸다. 밖은 어두웠다. 해는 한 시간도 더 전에 저문 상태였다. "나 빼고 파티를 시작한 모양이네." 징크스는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는 것을 즐기며 미소 지었다. 소파 한가운데에 파묻힌 이즈를 발견할 때까지는. "아, 쟤도 왔구나." 징크스가 바람이 빠지는 풍선처럼 순식간에 힘이 빠져 말했다. 징크스는 룰루의 머리에 매인 리본을 잡아당기며 룰루의 손에 있는 큰 집게 모양의 종이를 바라봤다. "그게 뭐야?" 접은 종이에서 손을 뗀 룰루가 징크스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아무 숫자나 말해봐." 서성이던 나는 발을 멈추고 룰루가 만든 별 모양 종이를 자세히 바라봤다. 동서남북 종이접기였다. 초등학교 때 이후로 처음 보는 것이었다. 선택한 숫자만큼 종이를 접었다 폈을 때 마지막에 나오는 문구가 그 사람의 신비로운 운명을 알려 준다나 뭐라나. 내 운명은 항상 불행으로 끝나고는 했다. 언제나 징크스와 어울려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4." 내가 말했다. 룰루의 동서남북 놀이를 빨리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12." 징크스가 말했다. "246." 다시 히죽이는 낯으로 돌아온 포츈이 말했다. "246이란 말이지." 포츈을 향해 미소 지은 룰루는 탁자에서 펜을 집어 들고 종이 한쪽에 숫자를 휘갈겼다. 그리고 소라카의 발치에 앉아 게임을 시작할 수 있도록 소라카에게 종이를 들이밀어 숫자를 고르게 했다. "서로 머리카락도 땋아 줘?" 포츈이 룰루와 소라카를 보며 빈정거리는 투로 물었다. "아니—" 나는 입을 열었다. "가끔." 동시에 뽀삐가 포츈의 말을 듣지 못한 룰루를 대신해 황급히 말했다. 잔나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윽. 다들 좀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없어?' "그러니까, 항상 그런 건 아니야. 항상 서로 머리를 땋아주진 않아." 나는 더듬거렸다. "내 말은, 우리는 작전 회의를 하거든. 중요한 별 수호자 관련 문제에 대해서." 기침이 나왔다. "그 있잖아, 우주를 구하는 일 같은 거." "그리고 서로의 머리도 땋는 거지." 뽀삐가 솔직히 덧붙였다. 포츈은 눈을 위로 치켜뜨더니 다시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파자마 파티는 관두고 중대한 별 수호자 관련 문제를 의논하는 게 어때?" 난 제안했다. "재미없어." 징크스는 소라카를 위해 천천히 반복해서 종이를 접었다 펴고 있는 룰루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것보다 더 빠르고 흥미진진한 게임을 하는 건 어때?" 방아쇠가 달칵이며 시로와 쿠로가 깨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이즈리얼이 흥미로운 듯 손뼉을 치고는 두 손을 비볐다. "뭔가 화끈할 것 같네. 난 할래." "좋아. 그럼 시작하자." 징크스는 씩 웃더니 재빨리 이즈를 향해 돌았다. "진실을 말하거나, 시키는 걸 해야 해. 우리 럭스한테 관심이 있다는 게 사실이야?" "징크스!" 난 소리쳤다. 이즈는 진실 게임을 예상하지 못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으로 뭍에 올라온 물고기처럼 입만 뻐끔거렸다. "사실." 잔나가 큰 소리로 말했다. 고조되던 분위기가 촛불이 꺼지듯 가라앉았다. 모두가 고개를 돌려 잔나를 바라봤다. "이즈가 대답해야 해." 징크스는 이즈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을 보며 말했다. "먼저 자원하는 사람부터 하는 게 규칙이야." 뽀삐가 말했다. "알았어." 징크스는 불만스럽게 말했다. "네가 뽀삐의 망치보다 오래 살았다는 게 사실이야?" 나는 잔나의 시선이 징크스에게서 뽀삐로 옮겨 가는 것을 지켜봤다. 징크스는 잔나가 잠시라도 허둥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신이 나 보였고, 뽀삐는 멍하니 의자에 기대어 놓은 망치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잔나의 눈길이 잠시 소라카에게 머물더니 다시 움직였다. "거짓이야." 뽀삐는 새삼 경외심이 담긴 눈으로 망치를 바라봤다. "정말?" 징크스가 한쪽 눈썹을 추켜올렸다. "하지만 꼬맹이의 망치가 너보다 더 인간적인 건 사실이지?" "다른 질문은 할 수 없어, 징크스." 뽀삐가 지적했다. "이제 잔나가 질문할 차례야. 그게 규칙이지. 잔나, 누구한테 질문할 거야?" "소라카. 진실을 말할래 아니면 시키는 대로 할래?" 잔나가 온화하게 말했다. 시나몬 롤을 반쯤 먹어 치운 소라카는 중얼중얼 숫자를 세며 종이를 접었다 펴는 룰루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라라는 미간을 찌푸린 채 소라카의 어깨에 앉아 모든 움직임을 관찰했다. 룰루가 무얼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룰루가 최대한 집중할 수 있도록 함께 몰입하고 있었다. 룰루는 라라의 허락을 받고 숫자를 계속 세면서 팔꿈치로 소라카의 무릎을 찔러 잔나가 불렀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응." 딴 데 정신이 팔린 소라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 불렀어?" "진실을 말할래 아니면 시키는 대로 할래?" 뽀삐가 다시 말했다. 스스로 자처한 심판 역할에 제대로 심취한 듯했다. "어... 진실을 말할래." 잔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럼 기억나는 것 중에—" "음." 게임에 참여해 신난 소라카가 말을 가로챘다. "아까 이즈리얼이랑 같이 판테온 빵집에 갔어. 나는 시나몬 롤을 먹었고 이즈리얼은 아이스커피를 마셨는데 유제품이 소화가 안 돼서 우유는 안 넣었—" 뽀삐가 혀를 찼다. "잔나, 질문할 때는 '사실이야?'라고 물어봐야지." 소라카는 무릎을 꿇고 소파에 똑바로 앉아 기다렸다. 서풍이가 부엌 쪽에서 날아와 잔나의 무릎 위에서 몸을 말았다. 잔나가 서풍이의 몸에 손을 얹자 잔잔한 바람이 서풍이의 털을 살랑였다. "소라카, 태초의 별이 온전했을 때를 기억한다는 게 사실이야?" 잔나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이나 다름없이 낮고 침착했다. "그럼." 소라카가 온몸으로 대답했다. "그러니까, 사실이야." 거실이 괴상할 정도로 조용해졌다. 소라카는 주변을 둘러봤다. 모두가 소라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징크스는 오늘 먹은 점심 메뉴도 기억하지 못했다. 뽀삐와 룰루도 부름을 받았을 때 어땠는지 정도만 기억했다. 전에 잔나에게도 태초의 별과 그 인도에 대해 물은 적이 있지만, 잔나 역시 드문드문 희미하게만 기억할 뿐이었다. "잠깐, 다들 기억을 못 한다고?" 소라카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하지만—" "질문하려면 한 사람을 골라야 해, 소라카." 뽀삐가 게임의 규칙을 들먹이며 소라카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 그 사람이 진실을 말하겠다고 하면—" "우리도 알아, 꼬맹아." 징크스가 끼어들어 잔나와 내가 소라카의 기억에 대해 더 묻기도 전에 화제를 전환해 버렸다. 나중에 따로 조용히 소라카와 얘기해 봐야겠다. "내가 고를 차례구나. 어디 보자…" 소라카가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이즈리얼을 향해 돌아앉았다. "이즈. 이즈를 고를래!" "치사해. 이즈는 내가 고르고 싶었다고." 징크스가 입을 삐죽였다. 뽀삐가 고개를 저었다. "넌 이미 했잖아." "자 자, 나 때문에 싸우지들 마. 앞으로도 시간은 많으니까." 손깍지를 끼어 뒷머리를 받친 이즈가 소파에 편히 기댔다. 포츈은 뒤에 있던 쿠션을 꺼내 푹신하게 부풀리더니 이즈 쪽으로 세게 내리쳤다. 이즈에게서 말 그대로 맥이 빠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오븐 장갑을 낀 손으로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를 틀어막았다. 얼굴이 빨개진 이즈는 침착하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거부할게." 이즈가 목멘 소리로 말했다. "난 벌칙을 받겠어." "내가... 시킬... 벌칙은…" 소라카는 띄엄띄엄 말하며 뽀삐를 보고 자신이 맞게 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뽀삐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감에 찬 이즈는 뒷말을 기다렸다. "네가 항상 하는 그걸 해 줘." 마침내 소라카가 말했다. 소라카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이즈가 어깨를 으쓱였다. "왜 있잖아, 네가 토토랑 하는 거." 소라카가 들뜬 듯 손뼉을 치며 말을 이었다. "그 차원문 말이야." "아, 그거. 좋아. 식은 죽 먹기지." 이즈는 가방에 손을 뻗어 파랗게 빛나는 수호자의 상징을 톡톡 쳤다. "일어나, 토토. 우리가 나설 시간이야." "차원문? 위험할 것 같은데." 뽀삐의 말과 동시에 하얀 날개가 달린 요정이 거실에 튀어나왔다. 날개를 활짝 펴고 공중으로 뛰어오른 요정은 이즈리얼처럼 밝은 푸른색 눈을 지니고 있었다. "차원문은 위험해. '아주' 위험하지. 하지만 내가 있으니 걱정하지 마. 게다가 그냥 차원문이 아니야. 엄밀히 따지면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지름길이지." 뽀삐에게 씨익 미소를 날린 이즈가 거실을 둘러보더니 검은 도자기로 만든 책 고정대와 작은 화분에 눈길을 주었다. "어때, 소라카. 저걸로 신비한 마법의 힘을 조금 보여 줄까?" 소라카는 코를 찡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공중을 빙빙 돌며 조잘거리는 토토의 소리 사이로 룰루가 열중해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244, 245, 246!" 숫자를 모두 센 룰루가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끝났어, 소라카." 룰루는 동서남북 종이를 손에 쥐고 흔들었다. "동서남북!" 소라카가 키득거렸다. "깜빡하고 있었네." "동서남북, 좋아! 토토, 가자. 우리의 솜씨를 제대로 보여 줄 시간이야." 토토는 공중에서 포물선을 그리더니 방향을 바꿔 이즈에게 돌진했다. 이즈와 토토는 곧장 충돌할 것처럼 보였지만, 마지막 순간에 둘은 하나가 되었다. 이즈의 몸에서 눈부신 하얀 날개가 나타나 거실을 가득 채웠다. 순식간에 아른거리는 차원문 속으로 사라진 이즈는 룰루의 위쪽에서 다시 나타나 룰루의 손에서 동서남북 종이를 빼냈다. "잠깐 빌릴게." 이즈는 잠시 후 눈 깜짝할 사이에 소파로 돌아와 행복한 듯 가르랑거리는 토토와 함께 쿠션에 편히 몸을 기대고 있었다. 날개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이즈는 종이를 펼쳐 적혀 있는 운세를 크게 읽었다. "'준비된 자가 기회를 얻는다.' 흠. 좋은 말이야, 룰루." 뽀삐가 끙 소리를 냈다. "어젯밤 사 온 과자에서 나온 걸 베낀 거잖아." "그 운세가 아니야." 룰루는 오른쪽을 가리켰다. "그 옆에 있는 거야." 이즈는 룰루가 가리킨 두 번째 종이쪽을 펼쳐 모두에게 읽어 주었다. "빛은 어둠 속에서만 밝게 빛날 수 있다." "태초의 별이 얘기해 준 거야." 룰루가 말했다. "태초의 별이 너한테 말을 건다고?" 포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옆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아직도?" "응." 룰루는 차분히 미소를 지었다. "이즈리얼, 차원문을 열면 네가 어디로 간다고 했지?" "이런." 이즈리얼이 나직이 말했다. "뭐가 '이런'이라는 거야?" 징크스는 이즈가 접힌 종이를 잡고 있으려 애쓰자 그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이걸 없애야 해." 이즈가 힘없이 웃었다. "지금 당장." 그 얘기에 누군가 움직이기도 전에 동서남북 종이가 이즈의 손에서 멋대로 튀어나왔다. 종이는 마치 악령에 빙의된 가을 낙엽처럼 거실을 마구 돌아다녔다. 종이에서 나는 듯한 새된 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수차례 접었다 펴지기를 반복하던 종이는 마침내 검은색과 초록색으로 빛나는 땅딸막한 괴물을 뱉어냈다. 모두가 벌떡 일어섰다. "네가 그 차원문이 아닌 차원문의 힘을 사용하는 바람에 다른 차원에서 저 성가신 악마가 딸려 온 거야?" 징크스는 괴물이 소파 팔걸이에서 카펫으로 뛰어내리는 것을 보며 말했다. "그랬나 봐." 이즈가 소곤거렸다. "비전 마법은 사용 설명서 같은 게 따로 없거든." "자랑이다." 징크스가 말했다. 이즈는 날 보더니 '미안해'라는 입 모양을 했다. "이런 적은 딱 한 번밖에 없었는데." 포츈이 팔꿈치로 이즈의 옆구리를 찔렀다. "알았어." 이즈는 정정했다. "한 번보다는 많았던 것 같기도 해. 한 여섯, 일곱 번?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는 마." 작은 괴물이 탁자 위로 뛰어올랐다. 뽀삐가 망치를 뒤로 젖혔다가 크게 휘둘렀다. 나무가 갈라지는 소리가 나더니 탁자가 박살났다. '고쳐 쓰기는 글렀구나.' 검은 형체의 괴물은 멀쩡한 상태로 잽싸게 도망갔다. 잔나가 일어서 양팔을 괴물 쪽으로 들어 올렸다. 미풍이 불기 시작하더니 탁자의 잔해가 흩날리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탁자 위에 있던 책이 펄럭였다. "나한테 맡겨, 잔나." 징크스가 복도에서 돌아왔다. 시로와 쿠로가 그 뒤를 따랐다. "아니." 포츈이 말했다. 고개를 홱 돌리자 포츈의 빛나는 흰 쌍권총이 나를 겨누고 있는 게 보였다. "워, 사라야. 잠깐 기다려. 너무 가까운 거 아냐?" 이즈는 총을 밀어내기 위해 천천히 포츈에게 다가갔다. 몸 안에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며 간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이게 다 포츈의 계획이었어. 난 여기까지구나. 포츈이 나를 죽일 거야.' "포츈—" 내가 말을 꺼냄과 동시에 방아쇠를 당기는 소리가 들렸다. "잘 가." 포츈이 말했다. 무엇인가 풍선처럼 터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재빨리 손으로 코와 눈을 더듬어 전부 제자리에 붙어 있는지 확인했다. 잠시 후, 악마는 사라지고 폭발로 산산이 조각난 동서남북 종잇조각이 비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거실에 눈이 내리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룰루는 그 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봐, 이제야 좀 파티 같네." 룰루가 외쳤다. 시로와 쿠로는 탁자의 잔해 안에서 뒹굴었고, 라라는 완전히 엉망이 된 거실에서 즐거워하는 둘의 모습에 혼란스러워 보였다. 아쉽게도 내가 멀쩡히 살아 있다는 데서 오는 안도감은 오래 가지 않았다. 부엌에서 흘러나온 매캐한 연기가 온 집 안으로 퍼지며 격렬한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타는 냄새가 나는데." 징크스가 말했다. '아차, 저녁 식사...!' 부엌에는 연기가 더 자욱했다. 팀원들을 위해 만들고 있던 저녁 식사는 쟁반에 새까맣게 눌어붙어 버렸다. 나는 기침을 하며 오븐 장갑을 낀 손을 흔들어 주변 연기를 흐트러뜨렸다. 창문을 열자 차가운 가을 공기를 들어왔고, 마침내 경보음이 멎었다.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연기와 엉망이 된 오븐 때문일 거라고 스스로 다독였지만, 사실 거실에서 벌어진 난장판이 진짜 원인이었다. "완전 망했어." 내 목소리는 내가 듣기에도 작고 애처로웠다. 그때 타일 바닥 위에서 끌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잔나나 이즈가 날 위로하기 위해 연기를 무릅쓰고 온 것이 분명했다. 재빨리 눈물을 닦고 뒤로 돌아선 나는 깜짝 놀랐다. 포츈이었다. "먹기는 글렀네." 포츈이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포츈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문자 메시지가 온 모양이었다. '분명히 아리가 잘나가는 애들은 뭘 하고 있는지 보낸 거겠지.' "금요일 밤을 이런 식으로 보내고 싶지는 않았을 텐데." 내가 말을 꺼냈다. 나는 알루미늄 포일에 싸인 저녁거리에서 새까맣게 탄 조각을 집어 들었다. "룰루 때문에 이런 일에 휘말리게 해서 미안해. 저녁 식사는 망했어. 파티도 망했고. 그냥 가겠다고 해도 충분히 이해해. 여긴 우리가 알아서 할게." '으으, 말이 너무 많았나. 왜 항상 포츈 앞에서는 횡설수설하게 되는 걸까?' 나는 심호흡을 하고 목소리를 진정시켰다. "포츈—" "사라." 포츈이 끼어들었다. "사라라고 불러." "사라는 친구들만 부를 수 있는 이름이잖아." 포츈의 휴대폰이 다시 진동했다. 포츈은 휴대폰을 보지 않고 뒷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사과하러 왔어. 아까 많이 놀란 것 같아서." "네 총에 겨눠져 본 적 있어?" 포츈이 키득거렸다. "아니, 없는 것 같네." 그러더니 갑자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같은 수호자를 절대 해치지 않아. 절대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라의 말에는 그 이상의 무언가, 사라가 아직 극복하지 못한 괴로움이 담겨 있었다. "이즈가 평소처럼 사고를 치긴 했지만, 여기 계속 있어도 될까? 소라카는 시나몬 롤만 있으면 저녁이 없어도 괜찮을 거야. 이즈가 사과의 의미로 피자를 시키기도 했고. 물론 우리가 가길 바란다고 해도 충분히 이해—" 나는 오븐 장갑을 낀 손을 들어 올렸다. 이제 횡설수설하는 쪽은 사라인 듯했다. "잠깐, 계속 있고 싶다고?" 사라는 입을 열었지만, 주변에 파스텔색 천과 리본 다발을 마구 흘리며 깡충깡충 부엌에 들어온 룰루 때문에 가로막혔다. 룰루는 손질된 흰색 잠옷을 한 아름 들고 와 사라와 내 손에 넘겨주었다. |
2.3. 3막
"너희들 거야." 그렇게 재잘거린 룰루는 다시 깡충거리며 부엌을 나갔다. "룰루, 이게 뭐야?" 나는 룰루의 뒤에 대고 외쳤다. 사라는 룰루의 선물을 어깨높이까지 들어 올려 자세히 살펴봤다. "네 말이 맞아." 사라가 웃으며 말했다. "평소에 이런 식으로 금요일 밤을 보내지는 않아. 하지만 파자마 파티도 생각보다 꽤 재미있을 것 같네." "정말?" "뭐, 응." 사라가 짖궃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즈리얼이 머리를 땋는 것도 항상 보고 싶었거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