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24 14:24:29

트랜스남성의 음경 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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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트랜스남성의 음경 재건에 대한 문서이다.

2. 트랜스남성의 음경 재건

잘라내기 붙여넣기로 끝나는 질 재건에 비해 음경 재건은 없는 걸 만들어야 하기에 매우 고도의 난이도와 위험을 담보로 한 수술이다. 특히 성관계의 용이성 뿐만 아니라 요도의 연장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 다르다. 소변을 보는 과정에서 소변이 새는 등의 요로 감염 같은 문제로 합병증이 많이 발생하기도 하고, 조직의 괴사, 감염 같은 문제도 잦다. 과정도 매우 복잡해서 한 번에 안 끝나고 전 수술의 단계가 끝나고 회복기를 거친 뒤에 다음 수술을 하는 등 본인에게도 매우 힘든 수술이라고 한다. 시술 비율도 더 적은 편. 전반적으로 질 재건술에 비해 예후도 좋다고는 못 하는 편이고 신체에 끼치는 부담과 비용이 워낙 크다보니 성별 정정에서 성기 수술을 기본으로 요구하는 대한민국 법원마저 트랜스남성의 성별 정정 조건에서는 성기 수술을 제외하는 추세다.[1]

이 수술도 흔히 쓰이는 방법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성기의 기존 조직을 성형하는 것과 외부 조직을 가져오는 방법으로 나뉨은 질 재건술과 같지만 음경 재건술의 역사는 질 수술과 반대로 외부 조직을 가져오는 피판술이 더 오래되었다.

2.1. 음경형성술(Phalloplasty)

우선 자궁과 난소, 난관을 적출하고 질 내벽을 잘라 붙여서 질을 완전히 없애버리며[2], 요도신경 등을 아래쪽으로 내린 다음, 음경을 만들기 위한 피판을 이용한 음경형성술을 시행한다. 다른 부위에서 엄청난 흉터를 남기며 뜯어낸 조직[3][4]을 이식한 다음, 이 이식된 조직에 실리콘 튜브로 아직은 짧은 요도를 연결해서 배설에 문제 없이 만든다. 이 상태에서 요도 조직을 양성하기 위해 우선 수술을 끊는데 이 상태로 조직 육성에 걸리는 시간이 무려 6개월. 가장 힘든 시기라고 한다.

요도 조직 양성이 끝나면, 전완부와 엉덩이살 등을 적절히 잘라서 새 음경(Neopenis)을 만든다. 그 다음 대음순 부분에 실리콘으로 고환을 만들어 넣으면 완성. 성교를 위해 발기 기능까지 만들길 원하면 추가적으로 음경 쪽에 임플란트를 넣는다. 인공 음경은 버튼을 누르면 실린더에 유압으로 유체를 채워 발기시키는 방식이 일반적이며 이 경우 수의적인 발기 온/오프가 가능하다.[5] 다만 어디까지나 피부조직은 일반적인 몸 피부라 성기형태가 부자연스러운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구강점막을 이식하는 방법으로 보다 진짜같은 남성기 형태를 만드는 수술법이 개발되었다. 음경에다 옅은 문신을 하는 방법도 있다.

기록상 나타나는 최초의 트랜스남성 음경 재건 수술[6] 피시술자는 영국의 의사 마이클 딜런(Michael Dillon)이다. 원래 로라라는 이름의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호르몬 대체 요법을 처방받고 남성으로서 살았다. 다만 영국 본토 항공전 등 영국 전체가 전쟁에 뛰어들었던 시절 주치의 해럴드 길리스 박사(Sir Harold Gillies)가 제2차 세계대전의 부상병 재건성형수술이 좀 많이 밀렸던 터[7]라 1946년에야 십수 차례의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사람은 수술 이전 남성으로 살기 시작하고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에서 의학을 공부하여 의사가 되었는데, 이후 영국에서 여성기 재건 수술을 받는 최초의 여성으로 기록되는 로버타 카월(Robert Cowell)[8]의 고환 절제 수술을 집도[9]하고 깊은 교류를 나눴지만 말년에 자신의 출신가문(귀족 가문이었다)의 상속 문제를 보도한 언론 보도에서 예기치 않은 아우팅을 당하고 영국을 떠나 인도로 옮겨 불교에 귀의하다 47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2.2. 메토이디오플라스티(Metoidioplasty)

싱글 스테이지 메토이디오플라스티의 예.[주의] 집도의는 세르비아인 비뇨기과 전문의인 미로슬라브 조르제비치(Мирослав Ђорђевић / Miroslav Đorđević, Miroslav Djordjevic).

한편, 조직을 이식하여 만든 성기를 접합하는 피판술 방식의 음경형성술과 달리 이미 있는 음핵을 키우고 요도를 연장하는 방법도 있다. 이는 메토이디오플라스티라 하며, 흔히들 메토라는 줄임말로 부른다. 이 수술은 비록 다른 부위에서 큰 조직을 떼어와서 만드는 피판술만큼의 크기는 못 되므로 삽입성교가 힘들다는 문제가 있지만, 비용이 훨씬 저렴하고 회복 기간도 짧다. 아이디어가 원래 요도하열 수술법에서 비롯된 그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보통은 성생활보다는 '서서 소변 보기'에 주안점을 둔 수술로 인식되는 편이나, 스스로의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은 정작 성기의 감각이 희미한 편인 피판술보다 나은 점이다. 수술 원리에서 알 수 있듯이 사전에 장기간의 테스토스테론 투여로 음핵 크기를 충분히 키워야 수술이 가능하다. 또한 피부 반전 수술 이후 협착이 발생하여 결장을 끌어오는 질 재수술과 마찬가지로 메토를 먼저 했다가 피판 재수술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특히 2013년 서울 서부지법에서 음경 재건술을 받지 아니한 트랜스남성의 단체 성별 정정 신청을 허가하기 전까지는 메토를 하고 등록부 정정을 마친 뒤 나중에 본인의 의지에 따라 피판 재수술을 결정하는 것이 흔한 현상이었다고.

포경수술을 받았다면 그 결과물을 좋든 싫든 봤을텐데, 소변 누수, 감염 같은 큰 문제 없이 순탄하게 수술을 마치고 회복한 인공 음경은 선천적 음경에다 포경수술을 진행한 결과물과 비슷한 모습이다. 물론 의사의 능력이 충분하다면 환자가 원하는 바에 따라 포경수술 없이 자연포경이 된 모습으로 수술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 수술이 포경수술만큼 쉬울(?)거라 생각하지는 말자. 절대. 비용이나 포경수술처럼 저렴하면 좋겠다

태국 얀희병원에서는 수킷 박사가 피판술을 시행하고 있고, 국내에서는 세인트비뇨기과, 동아대병원, 예쁜미인성형외과 등에서 피판/메토를 시행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병원마다 의사마다 술기에 따라 피판 공여 부위를 환자가(또는 의사가) 선택하는 범위가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 과거에는 팔뚝을 고르는 경우가 많았지만 반팔 상의를 입기 곤란하므로 잘 드러나지 않는 허벅지에서 떼어오는 경우도 많다. 한국 트랜스여성들이 대부분 태국으로 수술을 받으러 가는 것처럼 트랜스남성들 역시 보통은 태국으로 가곤 하지만, 트랜스남성들은 태국 외에도 일본 등 다른 나라로 가는 경우도 좀 있는 편. 심지어 트랜스젠더인권단체 김태호 조각보의 홈페이지에는 활동가가 지인의 세르비아 원정 메토 수술을 동행한 후기가 PDF 파일로 올라오기도 했다. 해당 집도의는 미로슬라브 조르제비치로 동유럽에서 음경 수술의 권위자로 꼽힌다. 보통은 팔로보다 저렴한 메토를 태국 외 다른 나라나 국내에서 받는 경우가 더 많은 모양.


[1] 다만 이전부터 팔로플라스티 1차 수술만 진행하고 2차 수술까지의 회복 기간 사이에 정정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긴 했다. [2] 이 과정에서 함께/따로 가슴성형(유방 절제/축소술)도 시행한다. [3] 주로 전완부(쉽게 말해 팔뚝)와 대퇴부 조직을 이용한다. 이 중에도 조직을 어떻게 접합하느냐로 방법이 나뉘는데, 성기 재건의 특성상 성감을 유지하기 위해 신경을 축으로 연결하는 방법과 신경보다 조직의 혈액순환을 중시하여 동맥을 축으로 연결하는 두 가지가 있다. 전자가 더 많이 쓰인다. [4] 지금은 고인이 된 트랜스남성 인권운동가 한무지 씨( 3xFTM 문서 참조)가 생전에 일부 수술사진을 블로그에 올린 바 있으니 참고. 허벅지의 경우 그냥저냥 잘 숨긴다 쳐도 여름에도 팔뚝을 숨기기는 힘들다보니 흉터 부위를 문신으로 덮어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5] 그 버튼이 고환이 되기도 한다. 고환을 펌프마냥 꽉 쥐락펴락하면 발기되는 식. [6] 다른 사고 등의 이유로 음경 재건술을 받아야 했던 사례는 1936년까지 거슬러올라가나 1930년대 이오시프 스탈린 시대 소련이었던데다 이런걸 대놓고 드러낼 남성이 당연히 없는 관계로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수술은 이러한 시스남성들의 음경 재건 수술을 응용한 결과다. [7] 해럴드 길리스라는 이름은 성형외과학의 역사에서 자주 보이는 이름이다. 이 사람은 제1차 세계대전 시절부터 재건성형 수술을 연구하며 오늘날 성형외과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이 시절에는 팔, 허벅지 대신 복부의 조직을 써먹었다고. [8] 레이싱 드라이버 겸 비행기 조종사로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조종사로 전투에 참전한적이 있었고 전쟁전부터 이미 자녀를 둔 아버지였지만 전쟁이 끝난 이후로 성정체성에 고심하다가 아내와 이혼하고 해럴드 길리스에게 수술을 받고 에스트로겐 대체 요법과 성전환 수술을 받고나서 여자로 살았는데 수술을 받은것이 알려졌을때는 당대에는 성전환 수술이라고 하면 남성동성애자들이 여자가 되고싶어서 받는 수술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 여자와 결혼한적이 있었기 이러한 고정관념 아닌 고정관념을 확 깨서 나름대로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중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이후로도 비행기 조종사 및 레이싱 드라이버로 일하다가 2011년에 별세했다. 93세로 나름대로 장수한 인물인 셈이고 언론을 통해서 나름대로 알려진 인물이지만 별세사실이 알려지게 된것은 2013년이 되어서부터라고 하던데 자신의 뜻의 의해서 자신의 장례식을 언론에 알리지 않은채 조용히 치러서 그렇다. [9] 고환 절제까지만 하고 마무리인 질 재건 수술은 길리스 박사가 맡았다. 이 때부터 피부 반전 기법이 본격적으로 널리 쓰였다. [주의] 수술영상이므로 사람에 따라 혐오스럽게 느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