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2 04:19:22

탱크 애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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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데이비드 리 어봇
(David Lee Abbott)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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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헌팅턴 비치, 캘리포니아
생년월일 1965년 4월 26일 ([age(1965-04-26)]세)
종합격투기 전적 25전 10승 15패
6KO, 3SUB, 1판정
7KO, 6SUB, 2판정
체격 182cm / 113kg
링네임 Tank
기타 UFC 6 토너먼트 준우승
Ultimate Ultimate 1996 토너먼트 준우승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전적3. 커리어4. 파이팅 스타일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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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전 종합격투기 선수.

2. 전적

3. 커리어

레슬링 NJCAA 올 아메리칸 출신이다. 9세 부터 아마추어 레슬링을 했으며 전문대학을 다니다 최종적으로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롱비치 캠퍼스에서 역사학 학사를 받았다. 이 기간 동안 복싱을 배우기도 했다.

캘리포니아 주 헌팅턴 비치 출신의 유명한 싸움꾼으로 헌팅턴 비치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폭력 전과로 교도소를 몇차례 들락거리기도 했는데 키모 레오폴도가 UFC에 출전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출전할 것을 결심하게 된다.

1995년 7월 UFC 6 토너먼트에 참가한 탱크는 1차전에서 180kg의 거구인 존 마투아를 20초만에 펀치로 KO시키면서 충격적인 데뷔전을 승리로 이끈다. 2차전에서도 거구의 레슬러인 폴 베얼랜스와 대결, 펀치러쉬에 이은 그라운드 니킥[1]으로 승리한다. 충격적인 연승을 기록한 탱크는 결승에서 러시아의 삼비스트인 올렉 탁타로프와 대결하지만 체력과 게임운영에서 미숙함을 보이며 석패하고 만다.

1995년 12월에는 왕중왕 결정전인 Ultimate Ultimate에 참가한다. 비록 우승은 좌절되었으나 그 실력을 인정받았던 것. 1차전에서 토너먼트 3 우승자인 스티브 제넘을 때려눕히고 2차전에 진출하지만 준결승에서 댄 세번을 만나 20분 동안 바닥을 청소한 끝에 패배하고 말았다.

1996년 6월 UFC 11 토너먼트에서도 준결승에 진출하지만 스캇 페로조와의 혈전 끝에 판정으로 패하고 만다. 탱크에게 승리한 스캇 역시 탈진으로 기권했기 때문에 마크 콜먼이 불로소득격으로 타이틀을 가져가게 되었다.

1996년 12월에는 다시 한번 Ultimate Ultimate에 도전한다. 칼 워셤과 스티브 넬마크를 기분좋게 박살내며 결승에 진출했으나, 결승전에서 프레데터 돈 프라이를 만나 리얼 네이키드 초크로 패배하며 또 다시 우승이 좌절되었다.

1997년 5월 UFC 13에서 비토 벨포트에게 52초 KO승을 헌납했다. 1997년 10월에는 타이틀 도전권을 얻어 UFC 2대 헤비급 챔피언인 모리스 스미스에게 도전했으나 패배, 또 다시 타이틀을 눈앞에 두고 물러서야 했다. 1997년 12월 일본에서 열린 UFC 15.5 Japan에서 안조 요지에게 승리했고 해가 바뀐 1998년 5월 UFC 17에서도 승리를 이어갔다. 하지만 1998년 UFC 17.5 브라질에서 페드로 히조에게 패하면서 MMA 무대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2003년 2월 5년간의 공백을 깨고 UFC 41에 출전하지만 프랭크 미어의 토홀드에 걸려 초살 서브미션패를 당한다. 이후 키모 레오폴도, 웨슬리 코레이라에게 연패했고, Pride에서 열린 요시다 히데히코와의 시합에서도 초크에 걸려 패배했다. Strikeforce에서는 폴 부엔텔로에게 KO로 패했고, Elite XC에서는 킴보 슬라이스의 흥행몰이 시합에 떡밥으로 등장해서 승리를 헌납해 주기도 했다.

2009년 2월 Wargod이라는 단체에서 마이크 버크라는 선수에게 승리했다. 공식적으로 근 4년만에 거둔 첫승인데 아직 떡밥을 받아먹을 기력 정도는 남아있는 듯.

2013년 4월 근 4년만에 49세의 나이로 KOTC에서 루벤 빌라릴과 복귀전을 가졌지만 2라운드 TKO패를 당했다.

4. 파이팅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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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라는 이명이 말해주듯 몹시 저돌적인 경기 양상과 보는 사람에 따라 공포스럽기까지 한 살벌한 위력의 강펀치가 주무기이다. 사실상 셰인 카윈, 데릭 루이스, 프란시스 은가누 등 UFC 핵펀처들의 선조격인 선수며 복슬러 스타일이다.

사실 레슬링 베이스의 선수로 9세부터 레슬링을 연마했다고 한다. 뛰어난 소질을 보였으나 하지만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치며 커리어를 접어야 했다. 이후 복싱을 배우면서 여기서 자신이 무시무시한 하드펀처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실제로도 대단한 '하드 펀처'로, 그와 싸워본 선수들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그 위력을 짐작할 수 있는데, 애봇의 펀치를 맞으면 마치 철근 콘크리트가 그대로 머리에 내려쳐진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고 한다. 그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펀치를 맞는 상대의 목이 픽 꺾여 실신 할 정도로 무지막지한 펀치력을 보여준다.

MMA 무대에서도 이 화끈한 강펀치를 유감없이 휘두르며 숱한 KO를 양산해 냈다. 그래플러들이 득세하던 초기 NHB 시절[2] 화끈한 KO를 양산하며 UFC의 인기몰이를 담당했다.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피트 파이팅'이라 칭하며 MMA에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3]

주짓수를 게이들이나 하는 거라며 경멸하며 때로 원색적인 비난을 하기도 했는데 다만 힉슨 그레이시는 존경한다고 했다. 그렇기에 당연히 그라운드 이해도가 낮을 수 밖에. 완력은 좋지만 체력이 저질이어서 다 이길뻔한 게임을 체력 때문에 놓친 적도 있다. 결국은 이러한 약점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날로 발전해 가는 MMA의 흐름에 휩쓸리고 말았다.

5. 기타

미국에서는 엄청 인기인이다.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컨셉과 과격하고 잔인한 파이팅, 게다가 탱크도 꽤나 쇼맨쉽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대중에 어필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2000년대 이후의 행보는 별 볼 일 없지만, 그 와중에도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1998년 이후로 2승 8패를 기록하면서도 은퇴전까지 꾸준히 오퍼는 왔던 모양이다.

시트콤 프렌즈에 등장한 적이 있기 때문에 미국 드라마 팬들에게도 친숙한 얼굴이다. 3기에서 모니카 엘리자베스 겔러의 연인인 닷컴 갑부 피트 베커[4]의 UFC 데뷔전 상대로 등장한다. 백만장자라도 링에서는 평등하다는것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원조 양아치 파이터로 온갖 기행을 일삼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UFC에서도 양아치 시절의 동료들과 몰려다녔는데, UFC 6 우승이 좌절되자 평소 대립하던 패트릭 스미스를 사적인 자리에서 습격하여 린치를 가하기도 했다. MMA 첫승 상대였던 존 마투아와도 원래 사이가 나빴다고 전해진다. UFC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예정이었으나 이렇듯 질나쁜 행동이 문제가 되었고 폭력전과가 드러나면서 취소되었다.

북미 프로레슬링 단체인 WCW에서 프로레슬러로 활동하기도 했다. 여기서도 PPV에서 갑자기 상대의 목에 칼을 겨누는 기행을 벌이는 바람에 해고당했다. WWE에서 WCW의 몰락에 대한 글을 올릴 때마다 WCW가 탱크 애봇에게 빅푸쉬를 줄려고 했다는 언급을 하는데, 선수와 단체가 워낙 막장이라 프로레슬링에선 오래 버티지 못했다.

의외로 평범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대졸 학력의 소유자로 캘리포니아 롱비치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고 한때는 교사가 되려고 한 적도 있었다. 물론 폭력전과 때문에 아웃.

키모 레오폴도와 면식이 있고, 티토 오티즈를 추천하기도 했다.

이빨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데, 싸우다가 이렇게 된 것은 아니고 교통사고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이 부분은 나름대로 스토리가 있는데 애봇과 같은 동네에 살았던 재미교포의 말에 의하먼 고교 재학시절과 대학때까지만 해도 레슬링 특급 유망주로써 그냥 주에서 잘하는 수준이 아닌 국가대표 후보까지 거론됐을 정도의 엄청난 유망주에다 공부도 잘했고 성격도 착했다고 한다. 애봇을 직접 대해봤다는 그 재미교포는 심각한 교통사고로 신체에 돌이킬수 없는 부상을 겪으면서 레슬링을 그만두게 되고 이때 이후로 성격이 변해버렸다고 밝히며 수줍음 잘타면서 친절하고 순하기 그지없던 애봇이 그런 모습으로 변한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

2018년도 유튜브 한니발TV에 근황을 전하는 인터뷰를 했는데 체중이 많이 빠지고 나이가 들어 백발이 되어서 현역때 모습만 기억했던 팬들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모습이 변했다. 치아가 없어서인지 과거부터 발음이 영 안좋았는데 이 인터뷰에서도 보면 목소리가 많이 새는편이다.

론다 로우지와의 대결을 희망하면서 만약 자신이 이기면, 기념으로 샌드위치나 만들어 달라(집에 가서 애나 봐라)고 조롱한 적이 있다.

한때 셔독에서 어봇 짤방놀이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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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니킥이라고 보긴 좀 그렇고 무릎으로 찍어눌렀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할 듯. [2] 그렇다고 단순히 그래플러가 스트라이커보다 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입식 스트라이커들은 이미 그들만을 위한 프로무대가 크게 활성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굳이 MMA에 진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고, 1류급 선수들의 참가율도 극히 저조했다. 참여한다고 해도 상당히 대충 싸우다 항복하고 파이트 머니만 가져갔을 정도(...) 다른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서 싸우는 것과 정말 차이가 난다. [3] 다만 이것은 아트 데이브에 의한 이미지 메이킹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는 힘빨과 타격센스에 의존하는 막싸움. [4] 담당 배우는 아이언맨 실사영화 시리즈에서 1~2편의 감독이자 해피 호건의 배우로 알려진 존 패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