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안죠 요지 ([ruby(安生, ruby=あんじょう)] [ruby(洋二, ruby=ようじ)]) |
출생 | 1967년 3월 28일 ([age(1967-03-28)]세) |
도쿄도 스기나미구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거주지 | 도쿄도 세타가야구 |
종합격투기 전적 | 6전 5패 1무 |
승 | 없음 |
패 | 1KO, 3SUB, 1판정 |
체격 | 180cm / 90kg |
링네임 | Mr.200% |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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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 프로레슬링, 종합격투기, 입식 선수.2. 전적
- 주요 승: 없음
- 무승부: 기아 치라기쉬빌리
※ 입식
- 주요 승: 토니 글렌빌
- 주요 패: 사타케 마사아키, 나카이 잇세이
- 무승부: 맨슨 깁슨, 던컨 제임스
3. 커리어
도쿄도 스기나미구에서 태어났고 유치원시절부터 초등학교 4학년까지 뉴질랜드에서 거주했다. 이후 귀국해 사이타마현 와코시에서 성장했다. 중학교시절 타이거 마스크를 보고 감명을 받았으며 고등학교시절 프로레슬링 선수로 진로를 잡았고 졸업후 UWF에 입문했다.1985년 데뷔했으며 1991년 UWF가 해산되고 UWF 인터내셔널로 옮겼다. 선수로서도 활동했지만 단체 경영, 외국인 선수들과의 소통에서도 맹활약했다.
그러다가 1994년 12월 7일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힉슨 그레이시 체육관에 도장깨기를 했다 이 대결은 도장의 문을 잠근 채 행해졌는데, 힉슨이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안죠를 두들겨 패다가 백초크로 실신패하며 망신을 당했다. 이 사건은 그레이시 일족과 U-계열 프로레슬링 사이의 갈등의 시발점이 되었다.[1]
1996년 본격적으로 종합격투기에 뛰어들었으나 5패 1무만 기록했고 킥복싱에서도 1승 2패 3무를 기록했다.
2000년 이후로 신일본 레슬링에 입단해 사실상 프로레슬링 선수로만 활동했으며[2] 2015년 은퇴를 선언하고 고라쿠엔 홀에서 은퇴식을 가졌다. 은퇴 후 세타가야구에서 꼬치구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4. 파이팅 스타일
5. 여담
힉슨과의 대결로 인해 본의아니게 일본 종합격투기의 시발점을 열었던 인물이다.뉴질랜드에서 거주했던 귀국 자녀로 영어에 상당히 능통하다. 형인 안죠 코타로는 국제 자격증 대행업체의 창업자 출신이다.
소속사 주식회사 아네트의 사장을 한 경험이 있다.
마에다 아키라와는 링스-UWF 교류전이 있었던 1994년부터 갈등을 일으켰고 법정공방, 쌍방폭행으로 갈정도로 험악한 관계였다. 반면 타카다 노부히코와는 상당히 친한 관계이다.
6. 둘러보기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기능상 | ||||
코바시 켄타 (19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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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죠 요지 (19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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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와 요시나리 (199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