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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돌핀스 역대 시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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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1987 | 1988 | 1989 | 1990 | 1991 |
청보 |
7위 전기 6위 후기 7위
|
3위 |
5위 | 5위 | |
1992 | 1993 | 1994 | 1995 | 1996~2007 | |
6위 | 8위 |
2위 |
7위 | 현대 |
태평양 돌핀스 시즌별 성적 | ||||
1992 시즌 | ← | 1993 시즌 | → | 1994 시즌 |
태평양 돌핀스 1993년 페넌트레이스 월별 일정 |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태평양 돌핀스 1993 시즌 성적 | |||||
순위 | 승 | 무 | 패 | 승률 | 1위와의 승차 |
8 / 8 | 34 | 10 | 82 | 0.310 | 43.5 |
[clearfix]
1. 개요
태평양 돌핀스의 1993 시즌을 정리한 문서.2. 4월
자세한 내용은 태평양 돌핀스/1993년/4월 문서 참고하십시오.3. 5월
자세한 내용은 태평양 돌핀스/1993년/5월 문서 참고하십시오.4. 6월
자세한 내용은 태평양 돌핀스/1993년/6월 문서 참고하십시오.5. 7월
자세한 내용은 태평양 돌핀스/1993년/7월 문서 참고하십시오.6. 8월
자세한 내용은 태평양 돌핀스/1993년/8월 문서 참고하십시오.7. 9월
자세한 내용은 태평양 돌핀스/1993년/9월 문서 참고하십시오.8. 총평
부상 선수가 많이 발생하여 온전치 못한 전력으로 힘겹게 치렀던 1993시즌이었다. 1982년의 삼미 슈퍼스타즈에 이은 두 번째로 낮은 승률을 기록하였다.[1] 또 해태에게는 1승 17패를 기록하여 해태의 페넌트레이스 우승의 제물이 되고 말았다.8.1. 투수
안병원, 김홍집, 가내영, 최창호가 돌핀스의 마운드를 책임졌다.. 투수들의 역투에도 불구하고 타자들이 중요한 순간에 점수를 내지 못하며 이길 수 있었던 경기가 무승부나 패배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2]8.2. 타자
1993년이 역대급 투고타저의 해임을 고려하더라도 이 해 돌핀스 타선은 역대급 고구마 타선이었다. 윤덕규[3]와 김경기[4]가 고군분투했지만 이 둘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부진을 면치 못했다.[5] 1993년의 태평양이 작성한 불명예는 다음과 같다.- 역대 시즌 최저 타율 2위[6]
- 역대 시즌 최저 출루율
- 역대 시즌 최저 장타율[7]
- 역대 시즌 최저 OPS[8]
- 역대 시즌 최저 wRC+ 2위[9]
- 역대 시즌 최저 홈런 3위[10]
- 역대 유일하게 두 자릿수 득점 경기 없음[11]
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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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니콘스 관련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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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현대그룹| 삼청태현(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 현대 유니콘스 2군 | |||
역사 정보 |
구단 역사|
역대 시즌|
실업 현대|
연고 이전 1994년 한국시리즈| 1996년 한국시리즈| 1998년 한국시리즈★| 2000년 한국시리즈★| 2003년 한국시리즈★| 2004년 한국시리즈★ 역대 감독| 역대 주장| 역대 1차 지명 선수| 사건 사고 | 암흑기 |
||||
세부 정보 | 선수단| 등번호| 유니폼| 재계 라이벌 시리즈 | ||||
경기장 | 숭의야구장(1996~1999)| 수원 야구장(2000~2007)| 원당 야구장(제2 홈구장) |
[1]
무승부를 승률 계산에서 제외하였을 때 기준.
[2]
클로쟈
박은진은 방어율이 2.63밖에 되지 않았지만, 1승 8패 10세이브을 기록하였다.
[3]
1992~1994년 3년 연속으로 타율 3할을 기록하면서 영원한 3할 타자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4]
태평양 초기 시절
김동기와 함께 돌핀스 타선을 이끌었던 특급 신인이었다.
[5]
꾸준히 2할 중후반의 준수한 타율을 기록하던
김동기도 1993년에는 2할4푼4리의 타율을 기록하며 부진했다.
[6]
0.224, 1위는 1986년의
청보 핀토스가 기록한 0.219
[7]
0.299로 유일한 2할대를 기록하였다. 2위는 같은 해의
쌍방울 레이더스가 기록한 0.300이다.
[8]
0.589로 유일한 5할대를 기록하였다. 2위는 같은 해의
쌍방울 레이더스가 기록한 0.601이다.
[9]
72.9, 1위는 1999년의
쌍방울 레이더스가 기록한 72.5
[10]
35개, 1위는 같은 해
롯데 자이언츠가 기록한 29개, 2위는 1987년의
OB 베어스가 기록한 30개
[11]
8점이 최대 득점으로, 4번 기록하였다. 그 중 한 경기는 8:0으로 앞서다가 9실점하여 8:9로 역전패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