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3-06 12:05:50

태사경

1. 개요2. 행적3. 무공

1. 개요

"너는 도운연과 싸우게 될 것이다. 피하고 싶은 일이냐?"
태사경을 살짝 움찔하게 만드는 소리였다. 하지만 곧 태사경은 어깨를 으슥하면서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하였다.
"한 가지 알고 싶은 일이 있군요. 알려 주시지 않겠습니까?"
태장로는 어딘가 비어 버린 듯한 태사경의 말에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왜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요?"
" 하후염의 일곱 번째 제자가 자네를 골랐으니까."
"왜 저를 골랐을까요? 그 이유를 알고 싶군요."
"닮아서 골랐겠지. 자네가, 그 녀석 하고."
- 『검신무』에서 태대노인과 태사경의 대화 중 발췌.
풍종호의 무협소설 『 검신무(劍神舞)』에서 칼에 토끼 피를 묻혀 위협 수단으로 사용하는 녹림(綠林)의 초보 산적패 두목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중요인물이다. 멋대로 자란 수염을 전혀 정리하지 않은 허름한 차림에 박도(朴刀)를 비롯한 대여섯 개의 칼을 허리에 차고 있다. 그래서 손에 칼을 뽑아 들어도 남은 칼자루가 삐죽하니 뒤춤에 삐져나온다.

떠돌이 도적에 불과한 그에게 도마(刀魔)란 별호가 붙은 것은 자신의 칼을 분질러 폭쇄하는 위력을 뿜어내는 도법 때문이다. 칼을 휘두르는 자가 휘둘리게 만드는 괴이한 칼놀림, 어디서도 유래를 찾을 수 없는 그 이상야릇한 칼질은 흡사 그를 사로잡고 있는 마물(魔物)에서 나오는 듯하여 광기(狂氣)와 마성(魔性)에 빠진 마귀처럼 검을 다룬다는 검객을 칭하는 '검마'와 닮은 칭호를 얻게 된 것이다. 그런 난폭한 도법을 사용하는 것에 비해 성정은 호전적인 면이 있기는 해도 나름 글줄을 알아 예의를 차릴 때는 정중하다.

2. 행적

사고무친(四顧無親)의 고아라 어릴 때부터 이 마을 저 마을로 떠돌아다닌다. 그러다 머물던 마을이 마적 떼에 휩쓸려 불타는 일이 있었고, 숨어 있는 와중에 마적 중 한 명과 눈이 마주친다. 이 일로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인지 그 마적은 돌아와 폐허가 된 마을에서 먹을 것을 뒤지고 있던 아이를 거둔다. 그렇게 시작된 부자의 관계, 양부는 태사자라는 무인과 태사공이라는 문인이 아주 유명하고 훌륭하다며 '태사'라는 복성에 그들도 놀라게 할 사람이 되라는 뜻에 '경'이라는 외자를 붙여 이름을 지어준다.

양부는 태사경을 이끌고 성공한 어떤 녹림도가 세웠다는 한 가문에 사정사정(事情事情)하여 식객으로 들어간다. 보잘것없는 실력에 따른 끊임없는 비웃음에도 양부는 악착같이 2~3년 머물며 태사경에게 육살도법(六殺刀法)을 가르친다. 그러나 한 비급이 사라지면서 그들은 쫓겨나고 만다. 문맹이라 읽지도 못할 비급을 훔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크게 의심받지는 않았어도 양부의 전직이 도적이었던 만큼 어디로 빼돌렸을 가능성이 있어 쫓겨난다.

이후 양부는 주변을 항상 경계하였으며, 되도록 나쁜 짓 하지 않고 살면 언젠가 그 집안에서 다시 불러 줄 것이라 입버릇 삼아 큰 소리로 주절거리곤 하였다. 누군가가 듣기라도 한다는 듯이··· 몇 년이 지나 더는 조심할 필요가 없어졌는지 배운 것이 도둑질에 밖에 없던 부자는 어느새 강도가 된다. 부족할 수밖에 없는 생활 속에서 뜬금없이 양부는 문맹이라 쫓겨났으니 벗어나면 살길이 열린다는 엉뚱한 주장을 내세워 태사경과 같이 글을 배운다. 그 이유를 17~18년이 지나 달빛이 휘황한 어느 날, 피 흘리며 죽어가는 양부에게서 태사경은 듣게 된다. 사실은 그 집에서 도둑질을 했었고, 달랑 책자 하나만 훔쳐 낸 탓에 거기에 수록되지 못한 구결에 대해서는 10여 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고······.[1]

사부를 자처하던 양부가 직접 몸으로 시험해 생명을 내주며 전한 심법, 건곤일월기(乾坤日月氣)를 배운 태사경은 '고수가 돼라. 높이 올라가!'라는 유언까지 운명으로 삼는다. 오로지 강해지겠다는 일념(一念)에 싸움을 피하지 않으며 고수들을 찾아다닌 그는 우연히 주변 도적들을 두들겨 패거나 쳐 죽이는 일이 일상사라는 화산파(華山派)의 태허자(太虛子)에 대한 소문을 듣는다. 자신의 수준을 확인할 생각으로 먼 길을 찾아가 화산 앞마당에서 3개월간 도적질을 하며 기다린 끝에 고대하던 태허자를 만나는데, 황당하게도 그를 보자마자 이름뿐인 도사는 '만나서 반갑소. 이만 실례.'하고 순식간에 떠나버린다.

'왜?' 의문이 남았어도 주변 녹림도와의 분쟁을 당해낼 수 없었던 태사경은 장강(長江)을 따라 내려오다가 자신을 찾아온 지장문(地藏門)의 석승(石僧)을 만난다. 좋은 기회라 여긴 그는 신주십삼파(神州十三派)의 아성에 도전할 요량으로 석승에게 싸움을 건다. 그렇지만 찾아온 돌중도 날름 도망친다. 그나마 화산파와 지장문의 문도는 절대 태사경과 싸우지 않을 거라며, 정히 싸우고 싶다면 멀리 아미(峨嵋)나 청성(靑城) 쪽을 알아보라는 말은 해준다.[2] 그리하여 태사경은 아미와 청성 인근의 사천(四川) 땅으로 움직이고 백제성(白帝城)에 이른다.

태허자처럼 아미와 청성의 제자와 마주치기를 막연히 기다리는 동안 태사경은 잠깐의 여흥으로 갓 녹림에 받을 디딘 초보들을 데리고 두목 노릇을 하면서 시비가 붙은 녹림육무상(綠林六武相)의 노두 이소릉을 베기도 한다. 결국, 수십 년 만에 육검협(六劍俠)의 뒤를 이어 세상에 나온 도운연과 원후파(元侯派)의 배원세를 만난다. 이제야 소망을 풀 수 있을 줄 알았던 태사경, 그 앞에 이소릉이 또 나타나 시비를 걸며 찬물을 끼얹는다. 그는 이번에도 녹림일무상에게 칼침을 제대로 먹인 다음, 아예 초보 산적패 두목 자리까지 떠넘기고 도운연과 배원세를 쫓아간다. 그 결과 백제성의 성곽으로 유람 나온 두 사람을 따라가 도운연과 대결할 수 있었다. 이때 태사경에게 자리한 건곤일월기가 아직 완벽히 발아(發芽)하지 않았음을 꿰뚫어 본 도운연은 그에게 어떠한 숙명[3]을 느끼고 여러 조언을 한다.

비무에서 칼을 부러뜨려 새 칼을 구해준다는 말을 따라 사호표국에 들른 태사경은 당시 도운연을 찾아와 기다리고 있던 개방(丐幇) 장로 완롱자(玩弄子)의 도움을 얻게 된다. 기인(奇人)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늙은 거지의 길 안내와 막무가내 비무 주선을 받아 태사경은 육살도법과 성립 취지부터 완전히 다른 오호문(五虎門)에서 유만상과, 비슷한 맥락인데도 강유(剛柔)를 겸전 한 분광검문(分光劍門)에서는 형무기와 불꽃 튀는 비무를 벌여 크게 성장한다. 그리고 개방의 태장로가 찾아와 건곤일월기를 깨울 수 있는 망아(忘我)에 관해 듣게 됨으로써 진정한 건곤일기공(乾坤一炁功)을 깨우치게 된다. 태장로를 따라 먼저 운리관에 도착하여 기다리던 그는 드디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도운연과 다시 한번 격돌한다.

건곤일월기를 물들이지 않은 채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준 도운연을 위해 태사경은 100여 년 만에 재현되는 녹림왕(綠林王)의 절기를 전개하며 막상막하(莫上莫下)의 접전을 한다. 치열함 속에서 달라진 오감(五感)으로 태사경은 이질적인 붉은색의 섭혼검기(攝魂劍氣)가 도운연을 억제하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었고, 도기(刀氣)로 갈라버린다. 이를 기회로 도운연은 섭혼검기를 완전히 방출해내 마경(魔境)의 굴레에서도 벗어나 완연한 검신경(劍神境)에 도달한다. 두 사람은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대결이라는 듯 검강(劍罡)과 도강(刀罡)을 발휘, 빠르게 공방을 주고받으며 가히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유시필유종(有始必有終)[4]이라 검신격(劍神擊)을 막지 못하여 패배한 태사경은 제대로 받아낼 수 있을 때까지 한동안 청성파의 도운연 곁에서 머무르기로 한다.

3. 무공

  • 육살도법(六殺刀法): 건곤일기공을 깨우치기 전에는 내공이 부족한 상태로 싸구려 칼을 사용하다 보니 부러뜨리기가 일쑤였다. 그렇기에 태사경은 여러 자루의 칼을 패용하고 다닌다.
  • 건곤일기공(乾坤一炁功): 100여 년 전 녹림대제(綠林大帝)의 무공으로, 태사경이 건곤일월기에서 건곤일기공을 깨우친다.


[1] 책에 무공 비결을 기록하는 경우는 드물다. 후인을 두지 못한 무인이 마지막 선택으로 할 경우에만 기초가 되는 도인구결(導引口訣)이 실리지, 보통은 기초를 이해한 후인이 이어지는 수련을 독학해야 할 때 스승이 직접 써준다. 당연히 도인구결을 모른다면 뒷부분의 비결을 얻는다고 해도 그 뜻을 알 수 없다. [2] 건곤일월기는 다른 무공에 쉽게 물들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화산파와 지장문의 제자는 싸움을 피한다. [3] 동질감이다. 고수가 되려는 태사경의 모습에서 검신이 되려고 하는 자신의 모습이 비쳤기 때문이다. [4]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