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07 12:50:23

타테카와 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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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명 七代目 立川 談志7대 타테카와 단시
본명 松岡 克由마츠오카 카츠요시
생년월일 1936년 1월 2일
사망 2011년 11월 21일(향년 75세)
출생
[[일본|]][[틀:국기|]][[틀:국기|]] 도쿄도 도쿄시 코이시카와구[1]
직업 라쿠고가(落語家)
데뷔년도 1953년
혼인여부 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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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쿠고 타테카와류의 문장

1. 설명2. 이력3. 다른 예능인에 대한 그의 평가4. 관련 영상5. 소속 정당6. 관련 항목7. 출처

1. 설명

일본에서는 아주 유명한 라쿠고가로 흔히들 천재 라쿠고가라고 불린다. 라쿠고 타테카와류의 설립자이자 이에모토(家元)[2]였으며 1971년부터 1977년까지 일본 참의원 의원을 지낸 정치인이기도 했다. 현재까지 방송되는 일본의 유명한 방송 쇼텐의 초대 사회자를 맡은 인물이 바로 이 사람.[3]

라쿠고에서는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으며 라쿠고 외적으로도 재능이 많은 예술가였기에 대중들의 평가는 좋지만, 동시에 자신이 세운 타테카와류에서 사실상 제왕적 존재로 군림하며 온갖 병폐의 원인이 되기도 했으며, 라쿠고협회 분열소동에서는 다른 라쿠고가들의 뒤통수를 거하게 치기도 하는 등, 인격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듣지 못한 인물이기도 하다.

2. 이력

1952년 16세로 5대 야나기야 코산(柳家小さん)의 제자[4]로 라쿠고에 입문했고, 초기에는 야나기야 코요시(柳家小よし)라는 이름을 쓰다가 후타츠메 승진 후 야나기야 코엔(柳家 小ゑん)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그러다 1963년 4월 7대 타테가와 단시로 개명하며 신우치로 승격했다. 이후 1966년 쇼텐을 기획하여 사회자를 맡기도 하였지만 후일 시청율 저조, 출연진과의 마찰 등을 이유로 쇼텐에서 하차했다.

1971년에는 제9회 참의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어 의원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이후 1975년 오키나와개발청 정무차관에 임명되었다.

1978년 라쿠고협회 분열소동에 관련된 주요인물 중 한 명이었다. 분열소동 당시엔 잔류했으나 1983년에는 라쿠고협회의 신우치 승단 시험제도의 운영에 있어 당시 라쿠고협회 회장과의 대립으로 라쿠고협회를 탈퇴하고 라쿠고 타테카와류를 창설하였다.

1997년 식도암수술을 한 이후에는 투병생활을 계속 하다가 2011년 11월에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5] 병세 때문인지 걸걸한 목소리가 생전의 특징이었다.

3. 다른 예능인에 대한 그의 평가

'코미디(お笑い)에는 절대적인 재능이 필요하다.'는 것이 단시의 지론이었다. 본래 오사카(칸사이) 개그풍과는 본인이 맞지 않는 면이 많아 요시모토 흥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제2회 M-1그랑프리의 심사위원을 맡기도 하였으며, 그의 평가 방법은 80점, 70점, 50점의 3단계로 명확하게 평가 하였다. 최고점인 80점을 준 콤비들은 마스다오카다 오기야하기.
  • 카츠라 우타마루(桂歌丸)[6] - 쇼텐 초기 멤버중 유일하게 제대로된 리액션을 보여준 라쿠고가.
  • 다운타운 - 바로 이것이 만자이의 마(間)다.(これはまさしく漫才の間だ)[9]

4. 관련 영상

항목 참조

5.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무소속(정치)|
무소속
]]
1969 - 1971 정계 입문


1971 - 1976 입당


[[무소속(정치)|
무소속
]]
1976 - 2011 탈당

6. 관련 항목

7. 출처

일본 위키피디아.
[1] 분쿄구. [2] 일본 전통예술 유파의 장문인. 본디 라쿠고에는 없는 제도였으나 단시가 타테카와류를 세우며 본인이 스스로 이에모토 자리에 올랐다. 여러모로 라쿠고와는 맞지 않는 제도였으며 단시의 폭정을 가능하게 한 자리이기 때문에 단시 사후 이에모토 제도는 바로 폐지되었다. [3] 쇼텐을 기획, 실현시킨 이가 바로 타테카와 단시이다. [4] 후에 타테카와류를 설립하고 스스로 이에모토의 자리에 오르며 스승에게 파문당했다. [5] 타테카와 단시가 별세 후 딸의 인터뷰에서 후두를 적출한다면 생존확률이 높았지만 라쿠고가로서 목소리를 잃을 수는 없다고 수술을 거부했다고 한다. [6] 2006~2016년까지 쇼텐의 사회를 보다 물러난 인물로 쇼텐의 초기 멤버였다. [7] 카미오카 류타로의 말에 따르면 아직 신인이었을 시절 타테카와 단시(당시는 야나기다 코엔)가 카미오카 류타로(당시의 만화 트리오)에게 친해지자고 먼저 다가왔다고 한다. [8] 투비트(비트 타케시의 콤비명)를 가장 먼저 인정한 것을 계기로 교류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9] 처음에는 젊은 만담가들중 한 팀이라고 생각했으나 후일 다운타운의 가키노츠카이야아라헨데를 보고 느낀 것이라고 한다. [10] 폭소문제의 오오타 히카루의 재능을 높이 사면서 해준 말이라고 한다. [11] 일본 버라이어티 방송 스마스마에서 빍힌 바로는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