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gressive Conservative Party of Canada[1] Parti progressiste-conservateur du Canada[2] (P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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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번역 명칭 | 캐나다 진보보수당 |
창당일 | 1942년 12월 10일 |
해산일 | 2003년 12월 7일 |
전신 |
캐나다 보수당 캐나다 진보당 |
후신 | 캐나다 보수당 |
당사 주소 | 캐나다 온타리오 주 오타와 806-141 Laurier Avenue West |
의원 |
12석 / 301석(해산 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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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색 |
파랑-보라색 (#9999FF, Maximum Blue-Pur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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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조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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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트럼 | 중도 ~ 중도우파 |
이념 |
진보적 보수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자유보수주의 |
공식 사이트 | pcparty.ca[접속불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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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캐나다에 존재했던 정당. 자유당과 경쟁하며 캐나다 정계에서 양당 체제를 형성했던 중도우파 보수정당이었으나, 잇단 선거 패배로 세력이 위축되며 소멸하였다. 현재 캐나다 제도권 정치의 거의 유일한 우파 정당인 캐나다 보수당의 역사적 전신이다.2003년 캐나다 동맹과 통합하여 캐나다 보수당으로 재탄생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연방 차원에서만 소멸한 것이다. 캐나다 연방 소속 여러 주의회에서는 여전히 '진보보수당'을 당명으로 쓰는 중도우파 지역정당으로 그 이름이 남아 이어져오고 있다. 다만 캐나다에서 연방 정당과 주 정당은 공식적·비공식적으로 선거 제휴 관계를 맺고 있지만 엄연한 별개의 정당이므로, 당 자체의 명맥이 유지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당명만 역사적 유산으로 남아 현존하는 셈.
2. 역사
각종 선거에서 자유당에게 연이어 패배하던 구(舊) 캐나다 보수당[4]이 당 쇄신을 위해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던 캐나다 진보당과 합당하자는 결론을 내렸고, 1942년 12월 10일에 전격 합당하면서 탄생하였다. 사회민주주의 세력과 보수우파가 거대 중도좌파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단순히 연대하는 것을 넘어 아예 세력을 합쳐버린, 전 세계 정치사를 훑어봐도 흔치 않은 특이 케이스. 합당하면서 새 당명으로 '진보'당과 '보수'당의 이름을 그냥 합쳐버려 누가 들어도 어감이 뭔가 이상한 이름이 되었지만, 내부적으로 구 보수당 인사들의 세력이 훨씬 컸기에 중도보수 우파로 분류되었다.창당 이래 캐나다 자유당과 함께 양대 정당으로 손꼽히며 대등한 위치에서 경쟁하기 시작했고, 1957~1963년, 1979~1980년, 1984~1993년 세 차례에 걸쳐 총선에서 승리하여 집권당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브라이언 멀로니 총리 집권 후반기의 경기 침체로 실업률과 재정적자 문제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이 문제 해결을 위해 "감세와 함께 재정적자를 해소하겠다"는 공약을 뒤엎어 부가가치세를 도입하면서 서부 일대의 우파 유권자들에게 깊은 배신감을 안겨주고 말았다. 결정적으로 퀘벡주 자치권 확대 법안을 추진하다 실패하면서 동부 최대 지역 중 하나인 퀘벡 유권자들의 지지도 잃어버렸다. 연이은 실책으로 지지율이 급락하는 와중에 서부를 지역 기반으로 하는 우익 포퓰리즘 성향의 개혁당이 등장하고, "거대 양당 모두를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 속에 퀘벡주에서는 퀘벡당과 퀘벡 블록 등 분리주의를 외치는 지역 정당들이 약진하는 등 거대한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결국 1993년 연방 총선에서 장 크레티앵이 이끄는 자유당의 압승과 처음으로 연방 총선에 도전한 퀘벡 블록의 약진 속에 단 2석만 얻는 충격과 공포의 역사적 궤멸을 당하며 말 그대로 붕괴되었다. 직전 총선에서 169석을 얻고 해당 총선 직전 156석을 보유하고 있던 집권여당이 무려 154석을 상실하며 원큐에 나락으로 떨어진 것. 브라이언 멀로니의 뒤를 이어 당시 내각을 이끌고 있던 킴 캠벨 총리도 이때의 정권 교체 열망에 휩쓸려 낙선했다.
1986년부터 1994년까지 이 당 소속의 정치인 존 앨런 프레이저가 캐나다 하원의장을 맡았다.
사실 양당제의 상대 당 견제 심리와 사표 방지 심리 덕에 그 많은 정책 실패에도 불구하고 1993년 총선 당시 선거 유세 직전까지는 지지율 면에서 자유당과 접전을 벌였지만, 선거 유세를 시작한 뒤로도 "정신 못 차렸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무수한 논란을 일으켰다. 대표적인 실책이 선거에서 자유당을 이끌던 장 크레티앵 대표의 안면 장애를 조롱하는(...) 인격모독성 네거티브 광고를 촬영해 TV로 송출한 것. 그러자 장 크레티앵은 "제가 입이 비뚤어졌어도 토리(Tory, = 진보보수당)처럼 한 입으로 두 말은 안 합니다(It's true, that I speak one side of my mouth. I'm not a Tory, I don't speak on both side of my mouth.)."라는 한 마디로 응수했다. 당시 인터뷰 영상 이 대응으로 크레티앵과 자유당에 대한 호감과 옹호 여론이 급증한 것과는 반대로, 장애인 비하 논란과 함께 어마어마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해당 광고 하나로 순식간에 역풍을 맞게 된 것.
이후 장 크레티앵 총리 집권 10년 간 이어진 여러 선거에서 자유당에 연전연패를 당하며 사실상 수권정당으로서의 능력과 가능성을 상실하였고, 당을 전면 쇄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결국 서부 기반의 개혁당으로 시작해 연방 차원의 정당으로 성장한 캐나다 동맹 (Canadian Alliance)'과 연합한 뒤 당대당 통합 및 재창당 방식을 거쳐 2003년에 캐나다 보수당으로 새출발하면서 해체되었다.
3. 역대 총리
- 존 디펜베이커(1957~1963)
- 조 클라크(1979~1980)
- 브라이언 멀로니(1984~1993)
- 킴 캠벨(1993) - 집권 기간은 약 4개월로 짧았고 재임 기간 중에 1993년 연방 선거의 역대급 참패를 맞이하긴 했지만(...), 캐나다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기록을 세웠다.
4. 역대 선거 결과
- 굵은 색은 총리 역임자
연도 | 대표 | 의석수 | 순위 | 득표율 | 득표율 증감 | 집권 여부 |
1945 | 존 브라켄 | 64/245 | 2위 | 27.62 | - | 비집권 |
1949 | 조지 A. 드류 | 41/262 | 2위 | 29.62 | +2.0 | |
1953 | 50/265 | 2위 | 31.01 | +1.39 | ||
1957 | 존 디펜베이커 | 112/265 | 1위 | 38.81 | +7.80 | 디펜베이커 내각 소수 여당 |
1958 | 208/265 | 1위 | 53.56 | +14.75 | 디펜베이커 내각 다수 여당 | |
1962 | 114/265 | 1위 | 37.22 | -16.34 | 디펜베이커 내각 소수 여당 | |
1963 | 93/265 | 2위 | 32.80 | -4.42 | 비집권 | |
1965 | 95/265 | 2위 | 32.41 | -0.39 | ||
1968 | 로버트 스탠필드 | 72/264 | 2위 | 31.43 | -0.98 | |
1972 | 107/264 | 2위 | 35.02 | +3.59 | ||
1974 | 95/264 | 2위 | 35.46 | +0.44 | ||
1979 | [[조 클라크|{{{#000 조 클라크}}}]] | 136/282 | 1위 | 35.89 | +0.43 | 클라크 내각 소수 여당 |
1980 | 103/282 | 2위 | 32.49 | -3.40 | 비집권 | |
1984 | 브라이언 멀로니 | 211/282 | 1위 | 50.03 | +17.54 | 멀로니 내각 다수 여당 |
1988 | 169/295 | 1위 | 43.02 | -7.01 | ||
1993 | 킴 캠벨 | 2/295 | 5위 | 16.04 | -26.98 | 비집권 |
1997 | 장 샤레스트 | 20/301 | 5위 | 18.84 | +2.80 | |
2000 | 조 클라크 | 12/301 | 5위 | 12.19 | -6.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