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츠라다 사토시 [ruby(桂田智司, ruby=かつらだ さと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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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 | 1961년 |
주소 | 효고현 히메지시 |
직업 | 무직 (수감 중) |
가족 | 카츠라다 미야비 (장녀) |
학력 | 토요대학 졸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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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극우 및 혐한 성향의 시민운동가이다.해이트 스피치 및 극단주의를 선전하는 시위를 자주 벌였으며, 이들의 시위는 재특회 뺨치는 폭력 테러 범죄로 악명이 높다.
2. 상세
일본 내 최대 규모의 극우 단체인 전일본애국자단체회의(약칭 전애회의)의 부의장을 역임한 대표적인 일본의 극우 활동가다.효고현 히메지 출생으로, 토요대학 2학년 재학 중 민족주의 계열 극우 단체인 일본학생동맹에 참가하였다. 활동 초기부터 상당히 급진적인 활동으로 유명해서 형무소를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이후 전애회의에 가입, 극우 활동을 이어갔으며, 교무국장 등의 활동을 통해 수많은 극우파를 양성하는 역할을 담당함에 따라 교관이라는 별칭을 가지기도 했다. 고베 박물관 폭파 협박이나 90년대 초 미야자와 내각 당시 각료 암살 미수 사건 등[1]을 일으켜 극우 활동가들 중에서도 특히나 폭력적인 활동으로 유명해졌다.
지속적인 폭력적 극우 활동으로 사법당국에 찍혀버려서 활동이 어려워지자, 2010년대 들어선 재특회 등을 시작으로 확산된 신흥 넷 우익 단체를 규합, 그룹 팀 관서라는 넷 우익 단체들의 모임 성립에 적극 참여했다. 이후 주로 전애회의 때의 경력을 살려 넷 우익 단체들의 데모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2010년대만 하더라도 가족이 단체로 활동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는데, 실제 가두연설 등에 자식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딸 두 명, 아들 하나인데 세뇌를 어찌나 잘 시켜놨는지 이 중 장녀가 2010년대 청소년 학생이면서도 독자적인 혐한 성향 극우 단체를 만들 정도로 적극적인 활동을 보인 카츠라다 미야비였다.[2] 다만 카츠라다 미야비는 성인이 된 후 한류에 빠지면서(...) 오히려 본인의 트위터에다 '한국에 가보고 싶다', '한국에서 살아보고 싶다' 등 친한 성향의 트윗을 하다가 갑자기 1년 후 다시 극우로 재전향하여 활동을 재개 후 대안 우파로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현재는 남편의 성을 따른 '하라다 미야비'라는 이름을 쓰고있다.
2.1. 구속
2018년 2월 23일 새벽 3시 50분 경, 도쿄 조총련 본부 출입문에 권총 5발을 쏜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로부터 8주 뒤, 법원에서 징역 7년을 선고 받았다. # 도중에 가석방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 적어도 2025년까지 이 사람의 행패를 볼 일은 없을 듯 하다.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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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카츠라다 미야비 역시
극우
혐한 운동을 벌이고 있는 극단주의 활동가로, 중학생이던 시절 한인타운이 밀집해 있는
오사카
쓰루하시 거리에서 "쓰루하시 대학살을 일으키겠다"는 혐오 선동 연설을 서슴지 않고 내뱉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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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관련 문서
[1]
당시는
천황의 방중이 논의되던 시기였는데, 극우로써 이를 용납 못한(?) 카츠라다는 탱크로리로 각료회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관저에 돌진한다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공권력의 개입으로 탱크로리를 구하는데 실패하고, 결국 따로 준비해둔 트럭에 가솔린을 싣고 관저 앞에서 가솔린에 불을 붙여 돌진하려 했지만
실수로 짐받이가 아니라 조수석에 불이 붙는 바람에 운전도 못하고 뛰쳐나왔다가 그 자리에서 잡혀버렸다.(...)
[2]
츠루하시 역에서 대낮에 혐한, 태러 시위를 벌인 그 중학생이다. 현재는 성인이 되었지만 아빠따라 극우적 행패를 저지르는 건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