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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 최승조 |
자 | 성조(聖祚) |
본관 | 해주 최씨[2] |
출생 | 1885년 4월 25일[3] |
황해도
해주목 삼곡방 하1리 (現 황해남도 벽성군 쌍암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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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21년 1월 1일[4] (향년 35세) |
묘소 |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 콴뎬만주족자치현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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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2. 생애
1885년 4월 25일 황해도 해주목 삼곡방 하1리(現 황해남도 벽성군 쌍암리)에서 아버지 최문식(崔文植, 1860. 7. 25 ~ 1926. 8. 16)과 어머니 전주 이씨(1864. 12. 25 ~ 1944. 4. 22)[5] 사이에서 3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1919년 중화민국 길림성으로 건너가 그해 10월 박장호(朴長浩)· 전덕원(全德元)· 조맹선 등이 조직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입단했고, 대한독립단이 연호 사용의 문제로 기원(紀元)독립단과 민국(民國)독립단으로 분리되자 조병준· 신우현(申禹鉉) 등과 함께 민국기년의 사용을 주장하면서 민국독립단으로 적을 옮겨 그곳에서 국내특파원으로 활약했다.
1920년 5월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직할 광복군사령부의 제2영(營) 제1대대장에 임명되었고, 그해 7월 제2영장에 승진, 발령돼 독립군의 훈련을 주도하고 관동군에 대한 공작활동에 종사했다. 이어 1920년 10월에는 지방 제5영장에 임명되어 제1영장 변창근(邊昌根), 제2영장 오동진(吳東振), 제3영장 홍식(洪植), 제4영장 최시흥(崔時興), 제6영장 김창곤(金昌坤) 등과 함께 연해주 니콜라옙스크 작전에서 직접 독립군 사병들을 진두 지휘해 관동군을 대거 토벌하는 등 전공을 세웠다.
그러나 1921년 1월 1일 일본 밀정 김성택(金性澤)에게 피살되어 그 자리에서 순국했다.
197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고,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