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대구대교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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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안세화 플로리아노 주교 (1911~1938) |
2대 문제만 제르마노 주교 (1938~1942) |
3대 하야사카 큐베에 이레네오 주교 (1942~1946) |
4대 주재용 바오로 몬시뇰 (1946~1948) |
5대 노기남 바오로 주교 (1948) |
6대 최덕홍 요한 주교 (1948~1954) |
7대 서정길 요한 대주교 (1954~1986) |
8대 이문희 바울로 대주교 (1986~2007) |
9대 최영수 요한 대주교 (2007~2009) |
10대 조환길 타대오 대주교 (2010~) |
<colcolor=#000000> 6대
천주교 대구대교구장 최덕홍 사도 요한 崔德弘 | John Choi Deok-h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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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02년 6월 2일 | |
경상북도
대구군 서중면 내비동 (現 대구광역시 서구 비산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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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53년 12월 14일 (향년 51세) | |
경상북도
대구시
남부출장소
남산동 (現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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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대한민국 | |
주교 임명일 | 1948년 12월 대목구장 임명 | |
재임기간 | 대구대목구장 | 1949년 1월 30일 ~ 1954년 12월 14일 |
CARITAS ET OMNIA (사랑은 만능이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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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 가톨릭의 제6대 대구교구장. 세례명은 ' 사도 요한'이다.2. 생애
1902년 6월 2일 경북 대구에서 출생. 1914년 10월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에 입학하여 사제 수업을 받은 후, 1926년 5월 29일 졸업과 함께 사제품을 받았다.수품 후 제주 서홍리(西洪里)[2]본당 주임신부, 1929년 6월부터 1936년 7월까지 제주본당 주임신부, 1936년 7월부터 1940년까지 성 유스티노 신학교 교수, 1940년부터 1942년까지 서울 용산예수성심신학교 교수,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전주교구 경리부장, 1944년부터 1948년 12월까지 목포(木浦) 본당 주임신부 등을 역임했다.
1948년 12월 대구교구장으로 임명되어 이듬해 1월 30일 주교로 성성(成聖)된 뒤 해성병원, 효성여자대학[3] 등을 설립, 대구교구의 교육 · 사회복지사업을 주도하는 한편 현재의 왜관대리구에 속해 있는 왜관 · 낙산(洛山) · 성주(星州) 지역의 관할권을 성 베네딕토회에 위임하고 부산광역시를 중심으로 하는 경남대리구( 천주교 부산교구의 모체)를 설정하였다.
제6대 교구장으로 임명된 최덕홍 주교의 착좌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서울교구장인 노기남 바오로 주교가 대구교구장을 겸임한 점을 고려하면, 최 주교가 실질적으로 대구교구장을 맡은 한국인 최초의 주교가 되는 것이다. 또 서울에서 교육을 받은 이전 교구장들과 달리, 최 주교는 성 유스티노 신학교 1회 입학자로 대구에서 교육받은 교구장으로 지역 실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추진 방향도 잘 잡을 수 있었다.
6.25 전쟁 때 대구교구는 당시 6개 교구 가운데 유일하게 북한군에 점령당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최 주교는 한국 천주교의 중심을 잡았다는 평을 받는다. 신부들이 군종 신부로 활동하도록 뒷받침해줬고, 함경남도 덕원에서 피신 온 성 베네딕토회 수도원을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에 자리 잡게 했다. 당시 최 주교의 비서 신부는 훗날 천주교 서울대교구장과 추기경이 되는 김수환 스테파노 신부였다.[4]
1953년 주교회의 군종 신부단 지도주교를 역임하고 이듬해 11월 암(癌)으로 해성병원에 입원 중, 12월 14일 사망, 대구교구 성직자묘지에 안장되었다.
김수환 추기경이 신부활동 초기 시절 최덕홍 주교의 비서신부로 일한 경력이 있다.
[1]
방패형 중앙의 횃불은 사랑의 상징이고, 횃불의 손잡이를 감고 있는 세 매듭은 신·망·애 삼덕을 표시하며, 그 아래의 월계수(月桂樹)와 종려수(琮櫚樹) 2가지는
하느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유물사관에 대한
가톨릭의 승리를 상징한다. 사랑의 횃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있는 2개의 백합모상은
한국 가톨릭교회의 주보이며, 대구교구의 주보
성모 마리아의 표시이다. 그리고 문장의 바탕을 푸른색으로 칠한 것은 온 세계를 의미한다.
[2]
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홍동
[3]
現
대구가톨릭대학교.
[4]
두 사람은 김수환이 어린 시절부터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그러나 최 주교가 암으로 불과 50대의 나이로 사망하면서, 김수환의 비서 신부 생활은 불과 1년만에 끝났다. 김 추기경은 최 주교를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회고하며 존경심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