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31 21:56:46

천보락

성명 천보락(千普洛)
선경(善慶)
본관 영양 천씨
생몰 1852년 9월 15일 ~ 1942년 12월 9일
출생지 경상도 문경현 신북면 관음리
(현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 #
사망지 중국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천보락은 1852년 9월 15일 경상도 문경현 신북면(현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에서 영양 천씨 시조 천만리의 11세손인 아버지 천석귀(千錫貴)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895년 단발령에 반발해 이강년이 일으킨 의병에 가담하고 친일 관료를 공격했다. 또한 이강년이 문경에서 의병 활동이 여의치 않자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킨 유인석에게 가담할 때 함께 하여 수안보와 조령 등지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고종의 의병 해산 명령이 내려지자 서간도로 이동하려는 유인석을 따라가지 않고 자택으로 돌아갔다.

1907년 여름 고종이 강제 퇴위하고 대한제국군이 해산되자, 그는 다시 이강년의 의병대에 가담해 좌익장의 직책을 맡아 조령의 관음원을 지켰고, 갈평 전투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으며, 의병 모집에도 기여했다. 또한 후군장인 신태원의 부대가 적성에서 패하였을 때 전사한 동료들을 장사 지내는 일을 맡았고, 흩어진 군사들을 모아서 복귀하도록 했다.

이후 그는 1908년경 강릉, 양양 등지에서 분전하다가 끝내 전사했다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1970년 1월 국가보훈처가 중국 길림성, 요령성, 흑룡강성 등 간도 지역에 흩어진 독립유공자 묘역을 조사한 결과 지린성 화룡현에서 천보락의 묘소가 발견되었다. # 묘비에 따르면, 그는 1942년 12월 9일에 사망했다고 한다. 이후 그의 유해는 1995년 오영선, 양기하, 차도선, 윤현진, 정한경과 함께 국내로 봉환되어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천보락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손자가 대한민국 도예명장 천한봉(千漢鳳)[1] 씨 라고 한다. #


[1] 2021년 10월 31일 89세의 나이로 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