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1 19:50:30

참깨를 털면서



1. 개요2. 전문3. 해설

1. 개요

<참깨를 털면서>는 1977년 창작과비평사에서 발간된 『참깨를 털면서』에 수록되어 있는 김준태의 시이다.[1] 『참깨를 털면서』는 김준태의 첫 시집으로, <참깨를 털면서>는 들깨를 털던 개인적인 추억을 인생사의 문제로 확대하는 시인의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2. 전문

참깨를 털면서
김준태

산그늘 내린 밭 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 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 내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 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 본 나로선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 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 낸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 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3. 해설

화자는 어린 시절 할머니와 참깨를 털던 기억을 회상한다. 노동의 의미를 모르던 나는 그저 일을 빨리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일을 서두른다.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할 뿐이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나는 한 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참깨를 털면서 나는 세상사에서 흔히 맛보기 어려운 쾌감을 느낀다. 한 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쏟아지는 무수한 참깨 알맹이를 보며 십년 이상 살아온 도시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을 연이어 털어내던 나는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 기분 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신없이 털던 나에게 할머니는 참깨의 모가지까지 털어져서는 안 된다면서 꾸중을 한다.

이 시에서 마지막에 나오는 할머니의 꾸중은 성급하게 일을 처리하면 오히려 그 일을 망칠 수 있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준다. 또한 참깨를 털듯이 순리에 따라 노력해야만 제대로 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 한마디 말을 통해 할머니는 연륜을 갖춘 어른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일상적인 경험과 삶의 방식이 다른 두 인물의 행위를 대조시켜서 교훈을 이끌어낸다. 천천히 노련하게 터는 할머니의 방식과 조급하게 일시적인 쾌감을 위해 지나치게 힘을 빼고 있는 나의 방식이 비교된다. 또한 이 시는 할머니의 충고에 해석을 덧붙이지 않은 상태로 시가 마무리되어 여운을 남기고 있다.
[1] 김준태는 1969년 《시인》에 <시작(詩作)을 그렇게 하면 되나>, <어메리카>, <신김수영(新金洙瑛)> 등을 발표함으로써 등단한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