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2-17 02:05:43

찰리 조던

<colbgcolor=#555><colcolor=#fff> 찰리 조던
Charley Jordan
파일:A-666103-1566481652-5921.jpeg.jpg
본명 찰스 조던 주니어
Charles Jordan Jr.
출생 1890년 7월 11일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
사망 1954년 11월 15일 (향년 64세)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직업 싱어송라이터, 음악가, 스카우트
장르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악기 보컬, 기타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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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음악가, 스카우트.

2. 생애

1890년 7월 11일,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찰스 조던과 루라 휠러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찰스 조던 주니어다.[A] 제1차 세계 대전 미 육군에서 복무했고, 이후 호보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1925년엔 세인트루이스에 거주 중이었고 기타리스트로 일하고 있었다. 그가 녹음한 곡을 근거로 멤피스 혹은 미시시피 델타에 방문해본 적이 있었음이 거의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2] 그는 20대에 미국 남부에서 활동하며 생계를 꾸렸다.[B]

그는 1920년대에 주류 밀매자로도 활동하다 1928년에 척추에 총을 맞아 목발을 짚고 걷게 됐다. 이로 인해 그의 수입원은 음악이 되었고 1933년에 금주법이 폐지되자 더욱 음악에 의존하게 됐다.[B][C] 그는 1930년 6월 중순에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솔로로 곡들을 녹음했다. 이후 1937년 11월 2일까지 피티 휘트스트로 등과 곡들을 녹음했다.[6] 그의 곡들은 큰 성공을 거뒀다. 또한 그는 피티 휘트스트로의 절친한 음악적 동료였다.[7]

그는 1930년대를 보컬리온 · 데카 레코드의 스카우트 활동을 하는 것으로도 보냈다. 그는 피티 외에도 케이시 빌 웰던 등과 연주했다. 1940년대 그는 빅 조 윌리엄스 (Big Joe Williams) 와 세인트루이스에서 활동했으나, 1940년대 말엔 거의 은퇴한 상태로 있었다.[B][C] 이후 1954년 11월 15일, 세인트루이스의 호머 G. 필립스 병원에서 숨졌다. 사후 미주리주 오크데일 묘지에 안장됐다.[A] 사인은 폭력 혹은 폐렴이다.[B]


[A] Bob L. Eagle · Eric S. LeBlanc, "Blues: A Regional Experience" (ABC-CLIO · 2013.5.1.), 238쪽 [2] " Charley Jordan Vol 1 1930-1931", thedocumentrecordsstore.com, 2022년 12월 17일 확인 [B] Bruce Eder, " Charley Jordan: Biography", 올뮤직, 2022년 12월 17일 확인 [B] [C] Jeff, " Big Road Blues Show 1/12/14: Don’t Put That Thing On Me – Forgotten St. Louis Greats", sundayblues.org, 2014.1.12., 2022년 12월 17일 확인 [6] " Charley Jordan discography", wirz.de, 2022년 12월 17일 확인 [7] Edward Komara · Peter Lee, "The Blues Encyclopedia" (Routledge · 2004.7.1.), 548쪽 [B] [C] [A]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