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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평왕(선덕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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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D89E6E> 진평왕
眞平王
파일:/listimglink/6/2009051310414642115_1.jpg
본명 김백정 (金白淨)
가족 조부 진흥왕
아버지 동륜태자
어머니 만호태후
아내 마야부인
천명공주, 덕만공주/선덕여왕
아들 3명[1]
사위 김용수
외손자 김춘추
여동생 만명부인
조카 김유신
배우 조민기 | 강산(아역) | 백종민(청년)
신라 제 26대 임금, 덕만공주와 천명공주의 아버지.

진흥왕의 죽음 이후 미실에 대한 크나큰 공포 속에서 15세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다. 미실이 장악한 세력들에 의해 15년간 꼭두각시와도 같은 왕위를 이어간다. 후사를 이을 왕자들을 미실측에 의해 모두 잃게 된다. 그러나 죽은 줄 알았던 덕만이 다시 살아오고, 또한 그녀가 왕재로서의 자질이 뛰어남을 안 순간, 덕만을 위해 여러 정치작업들을 진행해주며 미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1. 개요2. 작중 행적3. 여담

[clearfix]

1. 개요

드라마 선덕여왕의 등장인물.

2. 작중 행적

말 그대로 실제 진평왕에게 모욕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너무나 처참하게 망가지고 찌질거리고 허약한 왕이다. 굳이 따지면 화랑세기에 나오는 진평왕이 저런 묘사인데, 화랑세기가 위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걸 감안하면 엄청난 역사왜곡이 아닐수가 없다. 한국 사극 중에서 나오는 왕 중에 무력하기로써는 1위를 다투는 캐릭터이다. 이는 주인공인 덕만과 미실의 대결구도를 부각시키기 위해 진평왕을 뼛속까지 허수아비로 만든 탓이 크다.

실제로 정사인 삼국사기를 봐도 진평왕은 매우 오랜기간 재위[2]하면서 훗날 신라가 삼국의 승자가 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상당한 명군으로 평가받는 왕인지라, 진평왕이 저승에서 명예훼손 소송 준비해도 시원찮을 지경이다.

할아버지 진흥왕의 초라한 최후를 목격한 동시에, 미실이 진흥왕을 독살하려 한 것도 숨어서 봐야 했다. 이후, 진지왕이 미실에 의해 탄핵됨에 따라 그다지 원하지 않는 왕이 되었다. 이것이 그의 불행한 미래의 시작을 알렸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의 마누라인 마야까지 종적을 감추게 되고, 미실과 강제 결혼까지 할 처지에 놓이자 아예 자포자기하였으나 화백회의 도중 마야가 문노와 함께 배까지 불러 등장하는 바람에 다시 화색이 돋는다.

이렇게 차츰차츰 힘을 키워 나갔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마야가 '혁거세 저주 예언'처럼 쌍둥이를 낳고 다시 코너에 몰리고, 그 때 시녀 소화를 시켜 한 쪽 아이를 빼 돌려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아들이나 자기 딸 사위도 죽어 나가고 여전히 미실파에게 쥐여 사는 등 참으로 고단한 킹 라이프를 살았다. 더 안타까운 것은 두뇌회전이나 처세 능력이 너무 떨어져서 미실이 뭔가 저지른다 싶으면 안절부절하기만 하지, 해결하려는 의지는 커녕 아예 손을 놔 버려서 계속 이런 신세를 더욱 악화시켰다. 결국, 덕만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 천명공주처럼 적극적으로 살리겠다는 의지도 없이 갈팡질팡하다 을제를 필두로 한 왕실파와 미실파가 딸을 못 잡아 먹어서 난리일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하다 결국 장녀 천명공주를 잃게 된다. 이 천명공주 사망 사건은 미실을 뿌리뽑을수 있었던 최고의 카드[3]기도 했으나 그냥 사고로 발표하고 묻어버린다. 고작 미실 일행이 떼거지로[4] 찾아가서 "니들[5]은 거기[6] 왜 감? 다 그 쌍둥이 공주 때문 아님? 게다가 우리는 생포하려고 했는데 니들은 죽이려고 했잖슴? 천명의 죽음의 진상을 밝히면 쌍생도 밝혀질거임."이라고 협박을 했는데, 상식적으로 천명의 죽음으로 미실을 뿌리뽑아도 미실파는 그것을 쌍생 공개로 반격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 최소한의 증거라도 대려면 덕만을 생포해 오는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며 만약 덕만을 생포한다고 해도 7세기에 유전자 감식 같은게 있을리가 없기에 쌍둥이가 아니라고 오리발을 내밀면 미실 파는 방도가 없는 상황이었다.[7] 즉,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천명의 죽음을 파헤친다 한들 미실 쪽에서 아무리 쌍둥이 카드를 써도 왕실파가 오리발만 내밀면 미실 쪽은 아무것도 할수 없는, 왕실파가 매우 유리한 상황이었는데 이것을 오리발 내밀지도 않고 서로의 약점을 모른 체 하기로 합의한 이후 그냥 묻어버린다. 이 정도면 정치 투쟁을 할 능력은 고사하고 의지조차도 있는 건지 의심된다.[8] 물론 미실은 이 사건이 지나가자 중단하던 공작들을 간접적으로 재개(실제 재개는 하종이 독단으로 했으니)하고 마며, 이 카드를 날린 업보로 딸의 피살을 묻으면서까지 맺었던 합의조차 결국 허포로 돌아가게 되면서 다시 왕실파가 일방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 것이니 그냥 딸만 잃고 아무런 처벌도 못 주게 된 셈이다. 여기서 진평왕이 한 것은 어찌 됐건 덕만을 없애서 왕실 권위를 유지시키려다 세트로 된서리 맞게 된 을제 대등을 해고시킨 것 밖에 없다.[9] 이것도 아무리 을제가 잘못했다고는[10] 하나 적들에게 복수를 못 하니 자기 부하에게 화풀이한 것으로 밖에는 안보인다. 덕만이 돌아오자마자 진평왕한테 "당신이 미안해야 할것은 날 버린게 아니라 날 버렸음에도 그 오랫동안 힘을 얻지 못하고 언니 천명을 죽게 만든 것"이라고 한 말은 팩트폭력이었던것.

이후에도, 미실의 예언으로 인한 세종 지도자 만들기 발동 시도에 쩔쩔매지만 결국 덕만의 일식쇼로 어부지리를 얻게 된다. 사실, 이 덕만의 최대 떡밥을 위해 왕실에서 도와 준 사람은 어찌하면 좋냐고 징징대던 진평왕이 아니라 딸 잃은 마당에 어떤 결과가 와도 남은 딸을 도와주겠다고 발 벗고 나선 마야부인이었다.

결국 덕만이 하나 하나 미실을 관광 보내 주고, 단지 자신은 승인만 하면 되는 입장이라 나름 인생 역전 할 줄 알았지만, 40회 이후 골병 모드가 발동해서 끝까지 안타까운 캐릭터가 될 전망이다. 죽기 전에 남은 딸 시집보내서 후계자 문제 해결하려고 했지만, 덕만이 왕 되겠다고 선언한 것을 필두로 외손자 김춘추가 왕이 되겠다 선언했다 덕만과 함께 한 후 본격적으로 미실과의 왕권 대결이 돼 버려서 죽기 전까지 험한 꼴은 다 보는 왕이 될 듯 싶다.

결국, 미실이 군사정변까지 하는 꼴까지 보게 됐는데, 미실이 계엄령 한다고 도장 뺏어서 문서 내밀 때 어처구니 없다는 듯 쓴 웃음을 지으며 "왜 이제 와서 왕 한다고 함? 진작에 했음 서로 험한 꼴 안 보잖아"로 마인드 어택을 들이댔다.

아무튼 그렇게 골골대면서 방안에만 틀어박혀있다가 덕만의 공개청원을 부탁하는 화랑들의 소리를 듣고 기운을 내서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다. 칠숙까지도 기합으로 물러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뭐 해보기도 전에 설원이 급하게 목을 잡아서 기절크리 걸리고 또 방으로 들어가버렸으며, 미실이 죽자마자 자신도 명줄이 다해서 덕만과 마야부인이 보는 앞에서 요단강을 건너버린다. 죽기 전에 한 말은 "불가능한 꿈을 꿔라. 넌 할 수 있어 삼한의 주인이 돼라"였는데, 이건 가능할 지는 몰라도 그 전에 한 "미실과의 남은 담판은 지옥에서 치를 것이다."는 발언은 이 사람의 행동패턴을 감안할 때 지옥에서도 이뤄지기는 커녕 천명공주랑 세트로 지옥에서 당하기만 할 듯 싶다.

따지고 보면, 이 사람도 원하지 않게 왕이 됐고, 왕이라고 해봤자 기 한 번 못 펴 보고 눈치만 보고 산 불쌍한 캐릭터이다.

3. 여담

  • 해당 배역의 배우 조민기는 여기서 얻은 이미지 덕에 신라저축은행 광고에 신라왕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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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명과 덕만 이후에 태어난 아들들. '어출쌍생 성골남진'이라는 예언 때문에 모두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 [2] 무려 52년이다. 이정도면 전세계적으로도 최상위권 재위기간. [3] 대놓고 미실이 "그동안 겪지 못했던 최대 위기"라고 했을 정도이고 실제로 그동안 하던 공작을 전면 중단하기까지 했다. [4] 미실, 세종, 설원, 하종 등 미실파 핵심 인물 중 대등급 이상의 인물은 미실에게 천명을 살해한 책임을 문초당해 연금되었던 미생을 제외하고 다 참석했다. [5] 천명공주, 알천, 임종 등등. [6] 덕만이 피신했었고 천명이 피살당한 이서군(현재의 청도군)의 산. [7] 대신 덕만이 잡혀왔으면 남장해서 낭도로 들어간 것 때문에 살기는 힘들었을 거다. [8] 사실 힘이 전혀 없냐면 아닌 것이 진평왕에게 국왕으로써의 권한이나 명분, 신하들의 충성은 명백히 존재하며, 그 존재만으로 미실이 정변을 일으켰을 때 진평왕을 연금시키고 명령을 조작했을만큼 진평왕은 큰 변수였던 것이다. 권력이 상대적으로 약했을 뿐 무력할 정도는 아니었던 셈. 막말로 화랑들 앞에서 미실은 자기를 연금시킨 역적이고 자기의 이름으로 재가된 덕만공주 체포령은 조작이라고만 공표했으면 매우 유리한 국면으로 전환할수 있었다. 진평왕 스스로도 시류를 읽는 통찰력은 분명히 있으며 특히 하종의 성품을 제대로 통찰해낸것만 해도 왕으로써 경륜이 어디 가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권력, 능력 모두 비교적 약할 뿐 분명히 있는데도 매번 무력하게 당한다는 것이다. 이거는 진평왕 캐릭터성의 문제를 넘어 작품의 개연성을 성찰해야할 문제이다. [9] 다만 이 부분은 애매한게, 을제는 1화에서 소개에서 나오듯이 초기 계획 상에는 엄연히 선덕여왕 재위기까지 등장할 예정이였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 잠시 하차했다가 재등장하려던 계획이였는지 아니면 계속 등장할 계획이였지만 모종의 이유로 계획이 바뀐 건지는 모른다. [10] 사실 잘못했기는 하나 그 잘못이 천명공주의 죽음에 기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