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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화(동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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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창작물

陳永華
(1634 ~ 1680)

1. 개요

대만 동녕국( 명정시기)의 군인, 복건성 동안 사람으로 자는 복보(復甫), 민간 전설에 따르면 가명 진근남(陳近南)으로, 반청 단체인 천지회라는 단체를 만들었다고 한다.

2. 생애

1649년에는 박사제자원의 자리에 있다가 청나라의 공격으로 동안이 함락되면서 진정이 자결하자 동안성을 탈출하였다가 1656년에 병부시랑 왕충효의 추천으로 천거되어 정성공을 섬겼는데, 정성공에게 당시의 시국을 논하는 것에서 지모가 와룡 선생 같다는 칭찬을 받아 참군에 임명되어 중용된다. 정성공이 청나라를 상대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남경을 공격하는 계책을 제안했으며, 정성공은 청군을 상대로 여러 번 승리했다가 청군의 반격으로 끝내 남경을 함락하지 못했다.

정성공 사후에는 풍석범, 주전빈, 유국헌 등과 정경을 섬겨 정경이 청나라를 공격할 때 대만을 지켰으며, 정극장의 교육을 맡거나 보호하면서 딸이 정경의 맏아들인 정극장과 결혼하면서 국구가 되었다. 정경이 대만으로 돌아온 후 국사를 위임받아 1679년에 정총과 함께 정극장을 감국으로 옹립하여 대만을 다스리면서 공자묘(孔子廟)와 명륜당(明倫堂)을 세웠다.

이후 정경의 다른 아들인 정극상의 장인인 풍석범이 유국헌과 함께 권력을 뺏기 위해 풍석범이 정경을 모시면서 정벌을 했다가 공을 세우지 못하여 사퇴한다는 뜻을 밝혔는데, 이를 듣고 무인인 풍석범이 겸손하면서 물러날 시기를 알고 있지만 자신은 권력에 연연한다고 생각하여 물러나면서 자신의 권한을 유국헌에게 넘겨줬지만 풍석범이 그 자리에 머무르자 속았다는 것을 알고 울화병으로 1680년에 사망한다.

3. 창작물

  • 김용의 소설인 녹정기에서는 민간전설로 전해지는 가명인 진근남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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