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 말의 인물에 대한 내용은 진규(삼국지) 문서 참고하십시오.
陳珪
생몰년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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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대 중국 삼국시대의 조위의 인물.2. 정사 삼국지
공손연이 연왕을 자칭하자 위나라에서 동연을 치기 위해 출정하면서 진규는 사마로 종군했다. 공손연의 군사가 3번 패하자 물러나서 양평[1]에 의지하자 위나라의 군사는 양평을 포위했는데, 공손연의 군사들은 여러 날 비로 인해 홍수가 나자 물을 믿고 태연히 나무를 베었다.여러 장수들이 나무를 취하고자 했지만 사마의는 들어주지 않았는데, 이 때 진규가 사마의에게 사마의가 228년에 맹달을 진입한 일을 거론해 상용으로 갈 때는 밤낮으로 쉬지 않고 가서 5, 6일 만에 함락해 맹달을 참수했으면서 지금은 멀리 오면서 편안하고 느슨하게 하니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그러자 사마의가 맹달의 군사는 적기에 그 식량을 1년을 지탱할 수 있었지만, 위나라의 군사는 맹달의 군사보다 4배에 달해 한 달을 버틸 수 없어서 한 달로 1년을 도모하는 셈이라 어찌 서두르지 않을 수 있겠냐면서 맹달을 빠르게 친 이유에 대해 말했다.
지금 공손연을 치는 것에 대해서는 적의 군사가 우리보다 많아서 적이 굶주리고 우리는 배부르면서 큰 비가 내리는 것이 이와 같아 큰 공격을 펼칠 수 없으니, 서두른다고 해도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했다. 또 적을 공격하는 것은 우려하지 않았지만, 적이 달아나는 것을 걱정했으며, 적의 군량이 거의 소진되고 포위망이 아직 완성되지도 않았는데, 그들을 약탈하면 일부러 그들을 내몰아 달아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