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arfix]
1. 개요
FIFA 월드컵 우승 팀에게 수여되는 트로피.초대 대회인 1930년부터 1970년 9회 대회까지는 쥘리메컵이 사용되었고, 10회 대회부터 현재까지 FIFA 월드컵 트로피가 사용되고 있다. 쥘리메컵을 처음 만들 때 3번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팀이 있다면 그 팀에게 쥘리메컵을 영구히 소유하도록 하는 규칙을 제정했다. 쥘 리메는 이 컵을 만들면서 한 팀이 3번 우승하려면 최소한 100년은 걸릴거라 생각했으나, 이탈리아[1], 브라질[2]이 너무 빠른 시기에 2연패를 하고, 우루과이가 20년 만에 2회 우승을 이루었기 때문에 슬슬 은퇴가 보였다. 1970년 월드컵 4강 대진이 우루과이, 브라질, 이탈리아, 서독이라서 서독만 결승에 못 가면 3번째 우승으로 쥘리메컵의 마지막 주인공이 나오게 되었고, 이탈리아가 서독을 꺾으면서 쥘리메컵의 은퇴가 확정되었다. 그리고 브라질이 이탈리아를 이기면서 40년 만에 은퇴식을 치렀다.
새로운 트로피로 수여하기 시작하고 50년이 다 된 시점에서 3번 이상 현재의 트로피를 가져간 나라는 독일(서독)[3], 아르헨티나[4]가 있으며 브라질[5], 이탈리아[6], 프랑스[7]가 2번씩, 그리고 스페인[8]이 1번 가져갔다.
전 세계 모든 축구 선수들에게 그야말로 꿈의 트로피이며, 축구계에서 차지하는 권위와 가치는 빅 이어, 앙리 들로네 트로피, 코파 아메리카 트로피들을 모두 능가하는 최고의 트로피라고 할 수 있다.
2. 쥘리메컵
|
|
1930년에 제1회 월드컵을 개최하기로 결정하면서 FIFA는 월드컵의 상징이 될 수 있는 기념물을 정하기로 결정했으며 그 결과 황금 우승 트로피를 제작하게 되었다. 디자인은 프랑스의 조각가 아벨 라플뢰르(Abel LaFleur)가 맡았으며 트로피는 높이 38cm로 8각형 청금석 받침대 위에 승리의 여신 니케가 8각형의 순금 성찬배를 받들고 있는 모양이었다. 받침대 8면에는 순금판이 부착되어 있었으며 여기에 트로피의 이름과 역대 우승국을 새기게 되어 있었다. 제작에 사용된 1.8kg의 순금과 2kg의 청금석 및 기타 제작비는 당시 피파 회장(3대)인 쥘 리메가 개인적으로 부담했다.
완성된 트로피는 쥘 리메가 직접 들고 우루과이로 건너가 초대 대회 우승국인 우루과이에게 줬으며, 이후로 브라질, 잉글랜드, 이탈리아, 서독을 거쳐 9회 대회에서 3회 우승을 달성한 브라질에게 영구 수여되었다. 쥘리메 컵이란 명칭은 1946년 룩셈부르크 피파 총회에서 쥘리메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명명한 것으로 그전에는 빅토리 또는 피파컵으로 불렸다.
쥘리메컵은 우여곡절을 많이 겪은 것으로도 유명한데 38년 프랑스 대회에서 우승했다가 제2차 세계 대전 여파로 1942년 대회가 취소되면서 우승 컵을 장기 보관하게 된 이탈리아가 나치의 약탈로부터 우승컵을 지키기 위해[9] 구두 상자 속에 트로피를 넣어 축협 회장의 침대 밑에 숨겼었고, 1966년 런던 대회를 앞두고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전시 중에 도난당하기도 했다.
다행히 도난당한지 7일째 되던 날에 런던 교외의 정원 울타리 밑에 신문지에 싸인 채로 버려져 있는 것을[10] 주인과 산책 나갔던 피클(Pickles)이라는 강아지가 발견함으로써 무사히 되찾게 되었다. 개 주인은 당시 돈으로 2만 파운드(2014년 기준 약 3461만원)의 현상금을 받았으며, 피파는 트로피에 30만 파운드(2014년 기준 약 5억)의 보험을 들었다.
그리고 브라질에 영구 수여된 우승컵은 1983년 12월 19일 리우데자네이루의 브라질 축구 협회 사무실에서 또 다시 도난당했다.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복면을 쓴 도둑들이 나무로 된 보관함 뒷부분을 쇠지렛대로 열고 훔쳐 갔다고 하며, 유력해 보이는 3인조 일당이 체포되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서 결국 진짜 쥘리메 컵의 행방은 물론 현재도 범인이 밝혀지지가 않은 미제사건이 되었다. 브라질 경찰이 필사적으로 찾으려고 했는데도 끝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범인들이 도난 직후 녹여서 금으로 팔아버린 것으로 추정되며, 결국 진짜 우승컵을 찾지 못한 브라질 축구 협회는 이듬해인 1984년에 자체 제작한 복제품을 대신 보관하고 있다.
2.1. 쥘리메컵을 받았던 우승팀[11]
- 브라질 3회(1958, 1962, 1970)
- 우루과이 2회(1930, 1950)
- 이탈리아 2회(1934, 1938)
- 서독 1회(1954)
- 잉글랜드 1회(1966)
3. FIFA 월드컵
|
FIFA 월드컵 트로피 |
트로피의 선정은 FIFA의 공모를 통하여 이루어졌으며, 세계 각국의 53개 출품작 가운데 이탈리아의 실비오 가자니의 작품이 채택되었다. 지름 15cm의 받침대 위에 2명의 선수가 지구를 떠받치고 있는 형상으로, 높이 36cm이고 무게 4.97kg의 18K의 금으로 제작되었다. 밀라노의 보석 전문회사 베르토니(Bertoni)가 1973년 제작을 맡았고, 당시의 제작비는 2만 달러였다.
베르토니는 이 피파컵의 형상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바닥에서부터 나선형으로 올라오는 선들은 세계를 제패하려는 힘을 나타내고, 조각 전체에 넘쳐흐르는 생동감은 대회의 활기를, 2명의 선수가 등을 맞댄채로 두 손으로 세계를 떠받들고 서 있는 모습은 승리의 결정적인 순간을 각각 상징한다.
받침대에는 2줄의 녹색 공작석 띠가 상감되어 있고 그 사이로 'FIFA 월드컵'이란 글자가 영어로 돋을새김이 되어 있으며 쥘리메 컵과 달리 우승국의 이름을 받침대 밑에 새겼다. 받침대 면적 상 17개의 국가만 이름을 새길 수 있어서 2038년 대회까지만 사용될 전망이었으나 받침대를 고쳐서 2014년 대회 이후로는 일렬이 아니라 원형으로 새기고 있다. #
쥘리메컵 도난 사건 이후로 우승 횟수에 상관없이 피파 월드컵은 영구적으로 FIFA에서 소유한다.[13] 일시적으로라도 우승국에서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시상식이 끝나면 FIFA에서 곧장 회수한다. FIFA가 진품 트로피를 얼마나 보물처럼 소중히 여기는지 생각해보면, 신뢰할 수 없는 우승국가 축구협회에게 4년씩이나 트로피를 맡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즉, 월드컵 우승국은 진품 트로피에 조국의 이름이 새겨지는 것과 시상식이 진행되는 짧은 시간 동안만 진품 트로피를 만질 수 있는 것에 만족해야 하며, 원본 트로피는 우승팀이 결승전이 열린 경기장의 드레스룸을 떠날 때 피파 측에 바로 반납하여야 한다.[14] 2038년 대회 이후로는 은퇴한 뒤 FIFA가 영구 보관하게 되면서 아마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자체 박물관에 전시될 가능성이 높았지만[15], 받침대를 고치면서 당분간 은퇴하지는 않을 예정이다.
실물 트로피를 FIFA에서 영구소유하는 대신 우승팀에게는 이탈리아 밀란의 공방 GDE Bertoni사에서 1970년부터 독점제작하고 있는 복제품이 제공된다. 이 복제품은 황동 주물에 도금하고 똑같이 공작석 받침을 조립한 것으로, 기단 후면에 FIFA World Cup XXXX(개최국) 0000(개최연도)라는 문구가 음각되어 해당 대회를 기념하게 된다. 레플리카 제작 영상 우승팀이 귀국해 퍼레이드나 세레머니를 할 때 드는 트로피는 모두 이렇게 지급된 레플리카다. FIFA 규정에 의한 이 레플리카의 정식 명칭은 승자의 트로피(Winner's Trophy).
세번씩이나 우승컵이 도난당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피파 컵은 무장 경호원에 의해 특수 금고가 설치된 차량이나 비행기를 통해 수송되며, 기껏해야 월드컵 전후의 짧은 기간 동안에만 일반에 공개될 뿐이고 그 이외에는 금고 속에서 잠을 자게 된다. 피파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25만 스위스 프랑(약 23만 달러)의 보험에도 가입했다.
또한 FIFA에서는 이 두 번째 트로피에 새로운 규정을 적용했다. FIFA 월드컵 우승을 경험한 국가대표팀원[16], 나라를 대표하는 정상 외에는 그 어느 누구도 트로피에 손댈 수 없다는 규정[17]으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결승전 경기 직전 '지미 점프'라는 남자가 경기장에 난입하고 트로피를 향해 질주하여 트로피에 손을 대려는 순간 경기 운영 요원들에게 제압당해 끌려나간 사건이 있었다. 영상 2022년 8월 24일 더 현대 서울에서 개최한 코카콜라 FIFA 월드컵 트로피 투어 행사에는 트로피 운반을 위해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우승했던 히바우두를 초청했다.
|
|
|
자료가 확인 되는 명단은 아래와 같다.
- 2010 FIFA 월드컵: 파비오 칸나바로(2006 FIFA 월드컵 우승팀(이탈리아) 주장), 데보라 무카즈
- 2014 FIFA 월드컵: 카를레스 푸욜(2010 FIFA 월드컵 우승팀(스페인) 부주장), 지젤 번천
- 2018 FIFA 월드컵: 필립 람(2014 FIFA 월드컵 우승팀(독일) 주장), 나탈리아 보디아노바
- 2022 FIFA 월드컵: 이케르 카시야스(2010 FIFA 월드컵 우승팀(스페인) 주장), 디피카 파두콘
3.1. FIFA 월드컵을 받은 우승팀[23]
- 독일 3회(1974[서독], 1990[서독], 2014)
- 아르헨티나 3회(1978, 1986, 2022)
- 이탈리아 2회(1982, 2006)
- 브라질 2회(1994, 2002)
- 프랑스 2회(1998, 2018)
- 스페인 1회(2010)
[1]
1934, 1938
[2]
1958, 1962
[3]
1974, 1990, 2014
[4]
1978, 1986, 2022
[5]
1994, 2002
[6]
1982, 2006
[7]
1998, 2018
[8]
2010
[9]
1943년
베니토 무솔리니를 몰아낸 바돌리오 내각이 10월 13일 나치 독일에 선전포고한 이후의 일.
[10]
수사망이 좁혀져 오자 겁을 먹은 범인이 몰래 버린 것으로 여겨진다.
[11]
이 중 우루과이와 잉글랜드만 이후 FIFA 트로피를 받지 못했다.
[12]
쥘 리메 트로피를 처음으로 받은 우루과이처럼 처음으로 컵을 받은 우승국이 곧 개최국이라는 공통점이 생겼다. 그리고 쥘 리메컵의 초대 시상 시점부터 한 국가가 세 번째 시상을 한 시점과 현행 월드컵의 초대 시상 시점부터 한 국가가 세 번째 시상을 한 시점도 40년으로 동일하다(다만 세세하게 따진다면 쥘 리메컵은 39년 3주, 현행 월드컵은 40년 6일로 후자가 전자보다 보름 가량 더 길다.). 다만 쥘 리메 컵을 전 세계 최초로 받은 팀은 우루과이지만 제일 먼저 3회 수여를 받은 팀은 브라질인지라 초대 수여팀과 최초의 3회 수여팀이 다른 반면, 현행 월드컵을 1974년 대회에서 처음 받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당시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은 1990년과 2014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함에 따라 초대 수여팀과 제일 먼저 3회 수여를 달성한 팀이 같게 되었다.
[13]
다른 국제 대회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단, 대륙 내 대회는 다음 대회까지 보관 권한이 주어지고, 기간이 끝나면 반납한 뒤 복제품으로 대체된다. 한 때
빅 이어도 영구 수여가 있었으나 폐지됐다.
[14]
다만 후술했듯이 한번 우승하면 트로피를 만질수 있는 권한이 생기기 때문에 트로피 운반 행사에서 트로피를 만질수도 있다.
[15]
2016년에 개관한 곳이다. 이 박물관에는 평시에도 피파컵 트로피가 일반에 공개 전시되고 있다.
[16]
꼭 선수가 아니라도 우승 당시 해당 팀을 지도한 감독, 코치 등도 정식 구성원으로서 자격을 가진다. 일례로 이 덕분에 카타르 월드컵에서
세르히오 아구에로가 월드컵 트로피를 만질 수 있었던 것.
[17]
원칙상 불가능하나 해당 선수들의 가족까지는 시상식 직후에 한해서 엄격하게 막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18]
주로 배우나 모델, 인기 연예인 아니면 특정 분야에 업적이 뛰어난 사람이 선정된다.
[19]
즉 그냥 2010년의 칸나바로는 일정이 맞았지만 2014년의 카시야스는 아니었을 수도 있다.
[20]
게다가 요리스는 해당 월드컵 결승전에서도 주전 골키퍼로 선발 출전했기에 경기 직전에 있던 운반 행사에 나오기에는 뭐한 상황이었다. 경기 준비해야 하는데 여유가 있을 리가 없다.
[21]
이 때문에 위고 요리스는 2026 월드컵에서 트로피를 운반할 것이다. 본인도 카시야스처럼 카타르 결승 때는 경기를 뛰어야 해서 운반에 참여를 못했고 카타르 월드컵 끝나고 국가대표에서 은퇴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2022 월드컵 우승국 주장이었던 메시가 2026년 월드컵에서도 뛰기 때문이다.
[22]
튀르키예는 월드컵 우승은 커녕 결승전에 올라간 적이 단 한번도 없으며, 카타르 월드컵에는 예선에서 탈락하면서 참가하지도 못 했다. 역대 최고 순위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3위이다.
[23]
이 중 아르헨티나, 프랑스, 스페인은 쥘리메컵을 받은 적이 없다.
[서독]
[서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