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16 10:05:18

배엽론

중배엽에서 넘어옴
1. 개요2. 역사3. 문제점과 비판

1. 개요

Somatotype

사람의 체질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내배엽, 외배엽, 중배엽으로 나누는 유사과학 이론. 서구권에서는 1970~1980년대에 이미 폐기된 이론이다.

2. 역사

사람의 체형으로 기질을 구분하는 시도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있어 왔다. 독일의 정신의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에른스트 크레치머(Ernst Kretschmer. 1888~1964)가 주장한 '삼체론'은 범죄자의 골격을 분석해서 무력형/세장형(여위고, 작고, 약한), 운동형(근육질, 통뼈), 비만형(다부진, 뚱뚱한)의 세 가지 신체유형으로 구분하고, 비만인 사람들은 상냥하지만 의존적이라 조울증의 증후를 보일 수 있다고 주장했고, 마른 사람들은 내향적이고 겁이 많아서 조현병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참고로 당시 크레치머는 나치 독일 우생학을 지지하던 입장이었고 삼체론은 근육질의 아리아인을 이상향적인 인간상으로 취급하던 나치 독일의 입맛에 상당히 들어맞았고, 그 시기에 크레치머는 유럽 정신의학계에서 상당한 입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삼체론은 독일을 중심으로 빠르게 수용되었다. 이런 크레치머의 삼체론은 21세기 현대의학계에서는 헛소리 취급 받으며 버림받은 상황이다.

그런 흐름 속에서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쉘던(William H. Sheldon. 1898~1977)은 1940년대에 삼체론과 매우 유사하게 사람을 세 체질로 구분짓는 배엽론을 주장했다. 쉘던은 내배엽(Endomorph)은 뚱뚱한 신체를 가진 느릿하고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중배엽(Mesomorph)은 근육질의 건장한 신체를 가진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외배엽(Ectomorph)은 홀쭉하고 가는 신체를 가진 있고 자존감이 낮고 내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당연히 현대에 들어서 이런 주장은 혈액형 성격설과 다를 바 없는 헛소리이지만, 쉘던이 활동하던 시기는 서구 열강의 식민 지배를 합리화하는 성향과 백인 우월주의가 팽배했었고, 비록 나치 독일 수준은 아니었지만, 당시 미국 역시 우생학적인 사고가 상당부분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퍼지게 되었다. 여러 모로 혈액형 성격설과 비슷한 맥락에서 탄생했다는 점은 특기할 만 하다.

쉘던의 연구는 당시에도 문제가 많았는데, 3~4000명의 대학생들의 누드 사진을 토대로 분석하고 단 33명의 학생을 면담하여 체형에 따라 체질과 성격이 다르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 이론은 너무 포괄적이고 모호하여 당시에도 많은 비판과 질타를 받았고, 결과적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우생학에 바탕을 둔 다른 이론들처럼 자연스럽게 폐기되었지만 몸을 가꾸는 피트니스 업계에서는 21세기까지도 배엽론이 끈질기게 살아남아서 심지어 국내 스포츠지도사 필기에서도 쉘던의 배엽론을 언급하는 상황이다. 그 영향인지 일부 피트니스 트레이너들이 배엽론을 사실인 양 주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배엽론은 오래 전에 폐기된 이론이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3. 문제점과 비판

"체형별로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생각해보세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 세 가지 체형에만 해당될까요?"
- 리 프리스트[1]

과학적인 엄밀성을 넘어서 일상적으로는 사람의 체형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주장도 있는데, 실제로 일선 헬스트레이너 등이 회원들을 코칭할 때에도 '회원의 체질이 무슨 배엽이므로 어떤 운동을 해야 한다'는 식의 설명을 하는 것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배엽론이 일상 언어의 영역에서 사람의 체형별 특징에 대한 설명을 쉽게 할 수 있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옹호의 의견도 존재한다.

그러나 배엽론은 정확히 혈액형 성격설과 같은 오류와 문제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단순하게 설명의 용이성만으로 옹호하는 것은 어렵다. 일단 현대 의학계에서는 배엽론이나 혈액형 성격설, 사상의학처럼 몇 가지로 분류하는 체질론을 인정하지 않고 유사과학으로 보고, 나아가 신체 유형에 따라 성격을 분류하는 것은 혈액형으로 타고난 성격을 판단하는 것 만큼이나 현대에 들어서 상당히 잘못되고 위험한 관점으로 취급되고 있다. 물론, 타고난 신체에 따른 개인별 차이는 있겠지만 그 분류가 몇 가지로 딱 떨어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애초에 사람의 체형은 유전적인 요인에 더해 후천적인 활동 빈도와 식생활 등 각종 생활 습관의 영향이 함께 좌우되기 때문에 선천적으로 어떤 체형을 타고났다고 정의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 더 큰 문제는 사상의학 같은 비주류 의학(거칠게 말하면 유사의학)과 맞물려 국내에서 더 단단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것이다.[2]

쉘던의 배엽론이 주장하는 체형별 성격으로 이어지면 'A형은 소심하다' 수준의 헛소리를 벗어나지 못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뚱뚱한 사람이 무조건 낙천적이고 근육질인 사람은 무조건 공격적이고 마른 사람이 무조건 소심하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코미디가 따로 없다. 이처럼 사람의 체질과 체형이 정확하게 세 분류로 나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주 간단한 반박으로도 배엽론을 부술 수 있다.


성격 결정론을 배제하고 체형에 대한 이야기만 따져봐도 배엽론은 오류투성이인데, 배엽론에 따르면 외배엽으로 불릴 만한 마른 체형을 타고난 사람이 비만하게 되어 내배엽처럼 보이는 몸으로 바뀌거나, 운동 등의 노력으로 중배엽처럼 보이는 몸으로 바뀌는 케이스를 전혀 설명하지 못 한다. 가령 배우 이민호는 본래 마른 몸에 좁은 어깨를 지니고 있었지만, 지속적인 운동으로 우람한 몸과 넓은 어깨를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는 외배엽에서 중배엽으로 몸이 바뀐 것일까? 비슷하게, 근육질이면서 뚱뚱한 경우가 많은 파워리프터들은 배엽론에 따르면 내배엽인지 중배엽인지 구분할 수 없다. 또한, 골격이 작고 배가 나온 마른비만형인 사람은 외배엽과 내배엽 중 어느 쪽에 분류할 수 있을지도 애매하다.

선천적 체형을 주장하는 배엽론의 다른 큰 문제는 타고난 체형을 노력을 통해 바꿀 수 없다는 전제를 깔고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체형 개선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어버린다는 점에서 다분히 악질적이다. 마른 사람은 평생 마른 몸으로, 뚱뚱한 사람은 평생 뚱뚱한 몸으로 지내야 한다는 소리와 다를 바가 없어진다는 것. 애초에 배엽론을 주장한 쉘던은 운동학자도, 생물학자도 아닌 심리학자였다는 것부터 배엽론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상술했듯 현대에 들어서 운동 관련 내용으로 약간 변질된 배엽론이 등장해서 누구는 내배엽이라 살이 잘 찌고, 누구는 중배엽이라 근육이 빨리 자라고, 외배엽이라 잘 안 자란다는 식으로 배엽론에 기반하여 체질을 나누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심지어는 2010년대 후반에 올라오는 뉴스기사나 피트니스 잡지에서도 당당하게 배엽론을 사실인 양 서술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리 프리스트가 말했듯 어디까지나 체질적인 사항들은 단지 개인별로 습관과 타고난 유전 등에 의해 보유하는 특성이 전부 다 다르지 배엽론처럼 세 가지로 칼같이 나뉘는 것이 절대 아니며, 운동하고 식이조절 하는데 살이 안 빠지면 그건 그 방법이 잘못된 것이고, 운동으로 근육이 잘 자라면 그는 타고난 유전자를 지닌 것이고, 운동해도 근육이 자라지 않는다면 그것은 운동 방법이 잘못됐거나 단지 그 사람의 보디빌딩 유전자가 좋지 않은 것 뿐이다.

문단 위쪽 영상의 리 프리스트가 배엽 소리를 듣자 마자 역정을 내며 그런 쓰레기 이론은 잊어버리라고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당연히 현대 스포츠의학계에서도 배엽론은 철저하게 헛소리로 분류된다. 미국의 피지크 코치인 Matty Fusaro는 영상을 통해 영상을 통해 배엽론은 신화(Myth)의 영역이며, 개인을 특정한 분류로 유형화시켜서 그 범주 속에 인간을 낙인찍어서는 안 된다고 설명한다. 캐나다의 내추럴 보디빌더인 Jeff Nippard역시 영상을 통해서 배엽론은 우생학에서 비롯된 유사과학이므로 신뢰하면 안 된다고 비판하며, 근육량을 늘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점진적 과부하에 기반한 웨이트 트레이닝과 충분한 영양 섭취라고 이야기한다.


[1] 전직 IFBB 프로 보디빌더. [2] 물론, 폐기된 배엽론과 달리 한의학계에서는 사상의학을 한의학 학문으로 취급하고 교육하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이런 한의학계 내에서도 사람의 체질을 4~64가지만으로 분류하는 것에 의문을 가지는 시선이 적지 않다. 그리고 배엽론과 마찬가지로 체질론의 연장선상에서 사상의학은 현대 양의학계에서 과학과 의학으로 인정하는 학문이 아니다. 이제마 프로젝트를 통한 과학적 검증도 실패했고, 거꾸로 배엽론과 사상의학을 같은 맥락으로 판단하는 것은 사상의학을 유사과학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