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前 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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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본명 |
주베나우 Juven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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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주베나우 아마주 아마리주 Juvenal Amaso Amarij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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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23년 11월 27일 | |
브라질 합중 공화국 산타 비토리아 두파우마르 | ||
사망 | 2009년 10월 30일 (향년 85세) | |
브라질 사우바도르 | ||
국적 |
[[브라질|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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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 수비수 | |
신체조건 | 175cm | 70kg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선수 |
EC 크루제이루 (1943~1948) CR 플라멩구 (1949~1951) SE 파우메이라스 (1951~1954) EC 바이아 (1954~1958) 이피랑가 BA (1958~1959) |
국가대표 | 22경기 1골 ( 브라질 / 1944~1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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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질의 전 축구 선수.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주베나우는 1943년, EC 크루제이루에서 데뷔했고 1949년에는 CR 플라멩구에서 뛰게 되었다. 플라멩구에서 주베나우가 뛴 기간은 2년으로 다소 짧았지만 이 시기에 그는 플라멩구의 주전 수비수로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1951년에 주베나우는 SE 파우메이라스로 이적했고 여기에서도 든든한 수비수로 활약했다. 1954년, 주베나우는 EC 바이아로 팀을 옮겼고 1959년에 이피랑가 BA에서 은퇴했다.
2.1.2. 국가대표
전성기때의 그는 브라질 대표팀의 주전 수비수로도 활약했다.주베나우와 브라질 대표팀 선수들의 목표는 당연히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에서의 우승이었다. 그리고 공격진들이 화력쇼를 펼칠 때 수비진들 역시 열심히 뛰며 브라질의 우승을 위해 힘을 보탰다. 그러나 그들의 열망은 이뤄지지 못했다.
대관식의 방점을 찍었어야 할 경기에서 후반 21분, 주베나우는 우루과이의 스키아피노의 논스톱 슈팅을 제어하지 못했고 동점골을 허용했다. 이것은 스키아피노가 뛰어났을 뿐 주베나우의 잘못을 물을 순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브라질은 기지아에게 역전골을 허용, 비기기만 해도 가능했던 우승을 놓쳤고 주베나우의 대표팀 경력도 그렇게 끝났다.
2.2. 이후
은퇴 후 말년의 주베나우는 불우한 생을 살았다. 혼자 생활하던 그는 엉덩이와 무릎의 관절염으로 인해 걸을 수조차 없었고 몇몇 친척과 이웃들의 도움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갔다. 지붕에 구멍이 뚫린 판잣집에는 화장실과 부엌도 없었고 그의 유일한 친구는 라디오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그러나 이 사연이 알려지면서 주베나우를 향한 도움의 손길이 브라질 전국에서 닿게 되었다. 그는 텔레비전과 새 침대를 받았고 사우바도르의 병원에서 수술도 받을 수 있었다. 주베나우는 수술 후 4개월간 회복에 전념한 끝에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퇴원해서 이전에 살던 카마사리(Camaçari) 시청과 EC 바이아 구단을 포함한 도움의 손길에 감사를 표했다. 회복과 새 거처를 얻은 것에 매우 만족했던 주베나우는 2014년 월드컵까지 관람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쁨을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소원은 이루지 못하고 그는 2009년, 호흡부전으로 사망했다.
3. 뒷이야기
4. 수상
4.1. 클럽
- 캄페오나투 바이아누 우승 2회: 1954, 1956( EC 바이아)
4.2. 국가대표
- FIFA 월드컵 준우승 1회: 1950
-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우승 1회: 1949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