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04 21:04:30

주바이르

파일:주바이르 이라크.jpg
구도심의 고즈넉한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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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 알리 모스크

1. 개요2. 역사
2.1. '옛 바스라'2.2. 중세 이후

1. 개요

아랍어 الزبير
영어 Az Zubayr

이라크 남부의 도시. 바스라에서 서남쪽으로 12km, 움카스르에서 서북쪽으로 30km 떨어진 샤트 알 바스라 서쪽에 위치한다. 사실상 바스라의 위성도시로, 시가지는 거의 이어져 있지만 운하를 사이에 두고 조금 떨어져 있다. 인구는 14만명이고, 이라크 남부의 대표적인 역사 도시이다. 시가지 동북부는 7-10세기 중세 초기 바스라가 있던 곳으로, 지금도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모스크와 성벽 등의 유적이 남아있다. 서쪽 12km 떨어진 곳에는 역시 중세 도시인 우불라의 유적이 있다. 남쪽 움카스르 방면에는 17km 지점에는 움카스르의 서브 역할을 하는 코르 앗 주바이르 항구가 있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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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바스라 (البصرة القديمة) 유적

지명은 사하바 무함마드가 천국을 약속한 8인 중 하나인 주바이르 이븐 알 아왐이 매장된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는 1차 피트나 당시 칼리파 알리에 맞서 낙타 전투에 나섰다가 바스라 남쪽에서 전사하였는데, 현 주바이르 도시의 위치이다.

2.1. '옛 바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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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모스크 유적

역사적으로 볼 때에 주바이르는 '옛 바스라' (البصرة القديمة)라 할 수 있다. 암사르 중 초창기 모델로써 번영하던 바스라는 1차 피트나 2차 피트나, 카와리지와 조트 반란 등 굵직한 사건들을 거쳤다. 염분을 머금은 바스라 일대 토양은 노예 노동과 관개 수로 덕에 경작지로 유지되었다. 하지만 9세기 말의 잔즈 반란과 10세기 초엽 카르마트의 습격으로 일대가 초토화되어 가뜩이나 지나친 평지라 수로를 유지하기에 까다로운 조건에 대규모 노예제를 유지할 경제력마저 사라지자 기존 바스라는 버려졌고, 동북쪽 샤트 알 아랍 좌안의 현 위치에 같은 이름의 새로운 도시가 세워진 것이다. 그리고 남겨진 옛 바스라 성밖의 주바이르의 무덤에 1571년 오스만 술탄 셀림 2세가 모스크를 세우도록 하며 형성된 도시가 현재의 주바이르다.

2.2. 중세 이후

오스만 제국 시기 주바이르에는 네지드 출신의 알 주하이르, 알 메쉬리, 알 라셰드, 알 이브라힘 가문 등의 셰이크가 다스리는 토후국들이 할거했다. 이러한 주바이르 토후국은 오스만 당국에 세금을 납부하는 대가로 보호를 받았다. 19세기에는 더 많은 네지드 이주민들이 유입되어고, 20세기 후반 무렵 주민 대부분이 네지드 출신이었다. 따라서 시아파가 대다수인 이라크 남부의 다른 도시들과 달리 주바이르에서는 수니파가 주류였다. 다만 1980년대 이후 인근 사우디와 쿠웨이트가 오일머니로 급격히 발전하자 네지드계 순니 주민들은 대부분 해당 국가들로 재이주하였다. 동시에 이라크 역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바스라의 시가지가 확장되자 주바이르는 그 광역권에 포함되었고, 쉬아 주민들이 유입되었다. 2005년만 해도 35%에 달하던 순니 주민들은 이라크 전쟁 후 2006년 탈하 빈 우바이둘라 사원이 파괴되는 등 쉬아 측의 횡포가 심해지자 이라크 북부나 걸프 국가들로 이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