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09 10:15:13

존 네이선 터너

<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존 네이선 터너
John Nathan-Turner
파일:Jnt86b.jpg
본명 존 터너
John Turner
출생 1947년 8월 12일
영국 잉글랜드 웨스트미들랜즈 버밍엄
사망 2002년 5월 1일 (향년 54세)
영국 잉글랜드 이스트서식스 브라이튼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신체 NNNcm, NNkg, 혈액형
가족 게리 다우니 (파트너)
학력 초등학교 (졸업 · 중퇴)
중학교 (졸업 · 중퇴)
고등학교 (졸업 · 중퇴)
대학교 단과대학 (학과1 · 학과2[복수전공] / 재학 · 학사 · 중퇴)
종교 종교
직업 프로듀서
소속 소속
서명
파일:빈 가로 이미지.svg

1. 개요2. 생애3. 활동
3.1. 닥터후의 총괄 제작자
4. 여담

[clearfix]

1. 개요

영국의 드라마 프로듀서. 1980년대 닥터후의 총괄 제작자였다. 본명은 존 터너이나, 동명의 배우가 있던 관계로 혼란을 막기 위해 네이선-터너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2. 생애

1947년 버밍엄에서 태어났다. 에드워드 6세 문법학교에 재학하면서 연기와 연극 공부에 관심을 보였으나, 이후 학교를 중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버밍엄의 극장에서 배우 겸 무대 보조 매니저로 활동을 시작한다.

3. 활동

1960년대 BBC의 연출보조(Floor Assistant)로 일을 시작한 네이선 터너는 여러 프로그램에서 제작을 담당하며 경력을 쌓았다. 이후 1969년 닥터후 시리즈에 합류하여 활동 경력을 더욱 쌓아가기 시작한다.[2] 이후 3대, 4대 닥터 시절에도 여러 직책을 맡으면서 제작에 참여를 하게 되었다.

이후 1970년대 말 프로듀서였던 그레이엄 윌리엄스가 자리에서 내려오기로 결심하고, BBC에서는 닥터후 참여 경력이 있던 프로듀서 조지 갈라치오에게 제안을 하지만 갈라치오가 거절을 함에 따라 네이선 터너에게 제안이 돌아간다. 네이선 터너는 제안을 수락하고 닥터후의 총괄 제작자가 된다.

3.1. 닥터후의 총괄 제작자

네이선 터너가 당시 닥터후 시리즈에 가졌던 불만은, 진지함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정통 SF가 아닌 코미디성 SF 패러디 즈음으로 보였다는 듯. 이외에도 여러 이유를 바탕으로 네이선 터너는 각본 편집자 크리스토퍼 비드메드와 함께 시리즈의 분위기를 쇄신하고자 했다.[3]

5대 닥터 초중반부까진 과거의 빌런들을 복귀시키고 유명 배우들도 단역으로 간간히 등장시키면서 시즌을 잘 이끌어 나갔지만 호주 시청자에게 어필하기 위해[4] 테간 조반카를 컴페니언으로 들이고 미국 시청자를 위해 페리 브라운을 컴페니언으로 들여오는 결정을 했는데 하필이면 페리 브라운의 평가가 영 안좋았던데다가 정통 SF에 지루함을 느낀 시청자들이 떠나며 시청률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5대 닥터가 하차한 직후 BBC 상부에선 닥터후가 너무 잔인하다며 방영을 18개월 동안 중단시켰고 6대 닥터로 콜린 베이커를 데려와놓곤 상부가 존이 나가거나 콜린이 나가거나를 고르라고 하자 바로 콜린을 짤라버리겠다고 답하는 등 막 대해서 6대 닥터 시즌에 들어서 닥터후에 망조가 드는데 상당부분 일조했다. 6대 닥터인 콜린 베이커의 연기는 탁월했지만 각본이 너무 만신창이라 최악의 에피소드가 줄줄이 나올 정도로 평가가 급격하게 떨어졌고 결국 제작진과 갈등 끝에 시즌 2개만을 출연하고 하차했다. 이후 7대 닥터로 실베스터 메코이를 캐스팅 했지만 몇몇 명 에피소드의 존재에도 시청률을 뒤집는데는 실패, 결국 닥터후는 1989년에 종영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후 러셀 T. 데이비스 사단이 2005년 3월 26일 리부트를 하기 전까지 닥터후라는 프랜차이즈는 16년의 암흑기를 보내야 했다.

4. 여담

  • 5대, 6대의 의상도 비판이 많았는데 이 사람이 결국은 최종 결정을 했다보니 까이기도 했다. 7대 닥터도 본인의 의상에 별로 만족하지 않았다는 후문.

[복수전공] [2] 처음으로 제작에 참여한 에피소드는 2대 닥터 시절 에피소드 <The Space Pirates> [3] 아이러니 하게도 그가 총괄 제작자일 때 신적인 존재들이 이전보다 많이 등장했다. [4] 닥터후와 호주의 접점은 첫 에피소드의 각본을 쓴 안소니 코번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