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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朝 鮮 臨 戰 保 國 團단체 강령 |
① 황도정신 선양과 사상의 통일 ② 전시체제의 국민생활 쇄신 ③ 국민 모두의 노동보국 ④ 국가우선의 원칙하에 저축, 생산, 공출 등에 협력 ⑤ 국방사상의 보급 |
일제강점기인 1941년 10월 일본 제국의 침략 전쟁 지원을 목적으로 여러 친일 단체들이 통합되어 조직된 대규모 친일 단체.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과 함께 당시 가장 유명했던 친일 단체로 손꼽힌다.
2. 성립
중일전쟁 발발 이후, 이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1941년 8월 김동환이 중심이 되어 '임전대책협의회'이 조직되었고, 윤치호가 중심이 되어 '흥아보국단'이 조직되었다. 설립 취지와 목적이 같았던 두 단체는 국민총력조선연맹의 권고와 주선에 따라 창립 직후부터 통합 논의를 진행했다. 같은 해 9월 11일 경성호텔에서 흥아보국단의 윤치호, 임전대책협의회의 최린 등이 만나, 양측의 통합을 위한 연합위원회를 개최했다.마침내 두 단체의 이름이 합쳐진 '조선임전보국단'으로 단체명이 결정되었고, 조선임전보국단준비위원회가 출범하면서 결성식을 앞두고 유세 활동이 이어졌다. 그렇게 10월 22일 부민관 대강당에서 발회식이 열리면서 조선임전보국단이 정식 출범하게 되었다. 당시 출범식은 일본인 요인과 윤치호, 최린 등 준비위원, 각도 발기인 대표 등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베풀어졌다. 단체의 설립 목표는 황도 정신의 선양, 황민화 사상 통일, 전시 하의 국책 협력 등을 강령으로 내세우며 밝혔다. 그리고 2천 4백만 반도민 모두 일치결속하여 성전완수를 통해 황국의 흥융을 기할 것을 맹세하는 선서문이 낭독되기도 했다.
초대 구성원으로 단장은 최린, 부단장은 고원훈, 고문은 박중양· 윤치호· 이진호· 한상룡, 전임이사는 이성환 등이 맡게 되었다.
1942년 1월 5일부터는 산하에 여성계 친일 인사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를 두기도 했다.
3. 활동과 해체
조선 청년들을 대상으로 지원병을 독려한 것은 물론, 처녀들을 대상으로 정신대 참여를 독려했고, 신사참배 활동에 적극적으로 임하거나 반영운동을 전개하기도 했으며, 각종 강연이나 대회를 개최해서 조선인들에게 황국신민화 의식을 고취시키려는 활동 역시 마다하지 않았다. 그 밖에도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봉사 활동을 벌이거나 기고문을 여러 차례 써서 발표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해온 것으로 알려진다.1941년 12월 14일 미영타도대강연회를, 같은 달 27일 결전부인대회를 개최하는 등 전국적으로 황민의식을 고취하는 군수 자재 헌납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으며, 1942년 2월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를 주최로 근로보국운동을 통해 군복수리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1942년 11월 국민총력조선연맹이 조직을 전면적으로 개편 강화할 때 흡수되면서 발족 1년 만에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