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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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정국진 鄭國振 | Chung Kook-ch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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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17년 1월 2일 | |
사망 | 1976년 2월 10일 (향년 59세) | |
신체 | 키 162cm | 체중 60kg | |
직업 |
축구선수 (
공격수(아웃사이드 레프트 포워드) / 은퇴) 축구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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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해군 축구단 (?~?) | |
국가대표 | 12경기 6골 ( 대한민국 / 1948~19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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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2. 생애
2.1. 선수 경력
정규진은 연희전문학교 출신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출범 원년부터 활약했던 원로 중 한 명이다.2.1.1. 국가대표
2.1.1.1. 1948 런던 올림픽
정국진은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출전하여 1라운드 16강전 멕시코전에서 63분, 66분 멀티골을 기록해 대한민국은 8강에 진출했다. 이는 대한민국 대표팀 사상 첫 공인 A매치 멀티골 기록이다.대한민국은 멕시코를 5:3으로 꺾고 A매치 메이저대회 첫 승리와 첫 2라운드(8강)진출에 성공했다. 당시 올림픽 축구에 출전하던 선수들은 준프로 선수로 대우받던 선수들이었으며 이후에 상당한 고평가를 받는 선수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선수가 금메달을 차지한 스웨덴의 군나르 노르달이었다. 이후 한동안 제2차 세계 대전으로 개최가 미뤄졌다가 1950년부터 월드컵이 다시 시작되면서 FIFA 월드컵과 올림픽의 격차가 커지면서 올림픽 축구는 유럽과 남미팀들에게 메이저 대회로 평가 받지 못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8강에서 스웨덴에게 0:12로 대패하고 8위의 성적으로 대회를 마감했다.
2.1.1.2. 1954 마닐라 아시안 게임
1950년 이후로 한동안 정국진은 대한민국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지만 대한민국 대표팀은 1954년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정국진은 월드컵 개막 한 달여를 앞두고 개최된 아시안 게임 대표팀에 다시 소집되어 참가했다.정국진은 당시 12강 조별리그 D조 1차전 홍콩과의 경기에서 골을 기록해서 3:3 무승부를 만들었으나 이후 경기에서는 득점에 성공하지 못했다. 대한민국은 대회 은메달을 거뒀다.
2.1.1.3.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정국진은 스위스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 2차전이었던 튀르키예전에 아웃사이드 레프트 포워드로 출전했다. 그러나 지쳐있던 대한민국 대표팀은 골을 넣지 못했고 팀은 0:7이라는 스코어로 패배하고 말았다.2.2. 감독
정국진은 선수 은퇴 후 3차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역임했다. 1960년 올림픽, 1964년 올림픽, 1968년 아시안컵의 감독을 맡았고 1964년 올림픽에서는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비록 본선에선 3전 전패로 탈락(14등)[1]했으나 이 올림픽 출전은 1948년 런던 대회 이후 16년 만의 본선 진출 기록이었다.2.3. 은퇴 이후
감독직에서 물러난 후 정국진은 잠시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직을 맡았다가 미국에 이민을 갔고 그곳에서 살았다.정국진은 1976년 2월 10일, 미국에서 별세하였다. 그의 가족들은 현재 뉴욕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