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전지적 독자 시점
1. 개요2. 본편
2.1. 프롤로그2.2. #1 - 가치 증명2.3. #2 - 조우, #3 - 그린 존2.4. #4 - 깃발 쟁탈전2.5. #5 - 범람의 재앙2.6. #6 - 버려진 세계2.7. #8 - 최강의 희생양2.8. #9 - 악마의 증명2.9. #10 - 73번째 마왕2.10. #20 - 마계 혁명2.11. #25 - 마왕 선발전2.12. #45 - 금의환향, #46 - 별의 증명2.13. #60 - 기간토마키아2.14. #80 - 환생자들의 섬2.15. #80 - 성마대전, #84 - 성마결전2.16. #89 - 묵시록의 최후룡2.17. #94 - 서유기 리메이크, #95 - 서유기의 주인2.18. #98 - 후보 결정전2.19. #99 - 탈주2.20. 최종장2.21. 에필로그
3. 외전4. 연재본 vs 단행본[clearfix]
1. 개요
「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
지 방법이 있다.」
「이제 몇 개는 잊어버렸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것은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살아남을 거란 사실이다.」
『 전지적 독자 시점』의 첫 문장.
「이제 몇 개는 잊어버렸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것은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살아남을 거란 사실이다.」
『 전지적 독자 시점』의 첫 문장.
그 이야기는, 지하철에서 시작되었다.
그곳에, 정의롭고 싶었던 군인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고독한 사내가 있었고,
타인을 위해 자신을 숨겨왔던 여인도, 그곳에 있었다.
인연을 잃고 상처받은 검귀를 만났고.
과거와 미래의 틈새에서 태어난 아이가 울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소인을 스승으로 두었고.
세상에서 가장 강한 거인의 세계를 구했다.
그리고, 이 모든 세계의 결말을 아는 한 사내가 있었다.
이것은 독자(讀者)의 설화.
동시에, 독자(獨子)의 설화.
오랜 웅크림에서 깨어나, 멸악의 칼을 쥔 여인이 웃었다.
어미를 잃고 곤충을 손에 쥔 소년이 울었고
돌아오지 않을 가족을 위해 성을 구축한 사내가 포효했다.
거짓으로 진실을 쌓아올린 여인이, 기꺼이 그의 그림자가 되었다.
Episode 51. <거대 설화> 中
전지적 독자 시점의 줄거리를 정리한 문서.그곳에, 정의롭고 싶었던 군인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고독한 사내가 있었고,
타인을 위해 자신을 숨겨왔던 여인도, 그곳에 있었다.
인연을 잃고 상처받은 검귀를 만났고.
과거와 미래의 틈새에서 태어난 아이가 울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소인을 스승으로 두었고.
세상에서 가장 강한 거인의 세계를 구했다.
그리고, 이 모든 세계의 결말을 아는 한 사내가 있었다.
이것은 독자(讀者)의 설화.
동시에, 독자(獨子)의 설화.
오랜 웅크림에서 깨어나, 멸악의 칼을 쥔 여인이 웃었다.
어미를 잃고 곤충을 손에 쥔 소년이 울었고
돌아오지 않을 가족을 위해 성을 구축한 사내가 포효했다.
거짓으로 진실을 쌓아올린 여인이, 기꺼이 그의 그림자가 되었다.
Episode 51. <거대 설화> 中
2. 본편
2.1. 프롤로그
Prologue.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 |
여느 때처럼 퇴근길 전철에서 스마트폰을 켠 그는 10년 동안 연재된 초장편 소설인 《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 약칭 '멸살법'이 마침내 완결되었음을 알게 된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회사원이 된 지금까지 꾸준히 멸살법을 읽어온 그는 한 세계의 끝을 보았다는 충만함과 동시에 허탈함을 느끼며 작가에게 그동안 감사했다는 댓글을 남기지만, 차마 최고의 소설이었다는 말은 꺼내지 못한다.
평균 조회수 1.9회, 평균 댓글수 1.08개.
그것이 멸살법이 지난 10년 동안 얻은 성적이었기 때문이다.
거의 자신 혼자만 읽는 소설을 3000편 넘게 연재해준 작가에게 고마움을 느낀 독자는 사람들에게 완결 기념 추천글을 쓰지만 비난만 듣게 된다. 씁쓸해 하던 독자에게 멸살법 작가인 ' tls123'이 쪽지를 보내온다.
쪽지의 내용은 독자 덕분에 완결까지 연재할 수 있었고 어떤 '특별한' 공모전에 입상하기까지 했다는 것. 멸살법의 에필로그에 대해 묻는 독자에게 작가는 유료화로 공개될 것임을 알리며, 감사의 표시로 특별한 선물을 보내주겠다는 말을 끝으로 연락을 끊는다.
그렇게, 독자와 10여 년을 함께한 '멸살법'의 이야기가 막을 내리는 듯했다.
곧, 세상이 너무나도 익숙한 소설의 스토리대로 흘러가기 전까지는.
2.2. #1 - 가치 증명
Episode 1. 유료 서비스 시작 ~ Episode 5. 어둠 파수꾼 |
[Ep 1. 유료 서비스 시작]
김독자. 아버지가 혼자서도 강한 남자가 되라는 뜻으로 지어주신 이름. 취미는 퇴근길 지하철에서 웹소설 읽기.
그런 평범하다면 평범한 남자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항상 보던 퇴근길의 지하철.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웹소설 《멸망 이후의 세계》를 읽고있던 한 남자의 옆에서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름은 유상아.
서로 대화하면서 김독자는 회의감을 느낀다. 항상 틈만나면 웹소설을 읽으며 계약직을 전전하는 김독자와는 달리, 유상아는 공부를 하며 정직원으로 전환 되었다는 것에 말이다.
이후로 이야기를 이어가던 김독자의 폰에 알람이 울린다. 멸살법의 작가 tls123에게서 온 메일.
ㅡ독자님, 오늘 오후 7시부터 유료 들어갑니다. 이게 도움이 될겁니다. 건승을 빕니다.
[첨부 파일 1건]
이후 조금은 신이 난 독자는 응원의 댓글을 달기 위해 멸살법을 검색창에 쳤으나, 이상하게도 작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글자가 띄워질 뿐.
의아함을 느낄새도 없이, 열차가 갑자기 급정거를 한다. 이후 메인 시나리오가 시작한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후 공중에서 털복숭이같이 생긴 도깨비라는 생물이 나타난다. 상황 파악을 못한 채 도깨비에게 항의하는 사람들은 도깨비에 의해 머리가 터져나가며 죽었고, 김독자, 유상아와 같은 회사를 다니는 문제의 부장 한명오가 돈으로 매수를 시도했으나 실패로 돌아간다. 이후 《메인 시나리오 #1 - 가치 증명》이 시작된다.
가치 증명은 10분 내에 한 생명체를 죽이면 되는 시나리오. 만약 5분 내로 열차 칸 내에서 살인이 일어나지 않을 시 칸 내의 모든 생명체는 죽게된다.
같은 지하철 칸에 있는 멸살법의 등장인물 이현성을 발견하는 김독자는 이제 소설이 현실이 됐다는걸 자각하기 시작한다.
뉴스로 국무총리가 머리가 터져나가는 걸 본 사람들은 더욱 혼란스러워 하며 아수라장이 된다.
하지만 김독자는 왜 '그 녀석'이 아직도 나타나지 않은것인지 의문을 품은 채 멸살법을 다시 읽으려 폰을 켰다. 사실 tls123이 보낸 첨부 파일은 멸살법 전체 텍본.
왠지 모르게 특성창은 열리지 않으나, 의문을 가질 틈도 없이 멸살법의 초반 부분을 읽기 시작한다.
손가락이 멈춘 곳은 작품 초반부, 주인공이 자신이 탄 열차를 깽판치기 전에 나오는 장면이였다. 주인공이 탄 지하철 칸의 번호는 3707.
급하게 칸의 번호를 확인하는 김독자, 김독자가 타고 있는 칸은 3807, 주인공이 탑승한 칸의 바로 뒤 칸이였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본래 이 칸은 이현성과 김독자가 찾던 인물, 김남운만 살아남을 예정인 칸이였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행동을 시작하는 김남운. 어차피 누군가가 안죽으면, 오분 뒤에 모두가 죽는다는 두려움을 이용해 모두가 노약자석으로 이동하게 만든다.
김독자는 유상아를 달래며 가만히 있었다. 김남운이 치켜든 주먹이 슬로모션처럼 보였다. 그저 가만히 있던 이유는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콰아앙! 소리와 함께 앞칸에서 발생한 폭발, 그 폭발로 열차가 덜커덩, 크게 흔들렸다. 주인공이 움직인 것이다.
김독자도 동시에 움직여 김남운을 향해 몸을 부딪혔다.
김독자는 이후 근처에서 곤충 채집통을 가지고 있던 아이를 찾은 후 채집통을 집었다. 그 안에 있던 메뚜기 한마리는 아이의 손에 쥐어주고는.
이후 김독자는 사람들에게 말하기 시작한다. 그 노인은 시발점에 불과하다. 이건 생명체를 죽이는 시나리오다.
그러자 사람들은 김독자의 손에 있던 채집통에 집중했다.
김독자는 손에 쥐고있던 메뚜기를 박살낸 후, 김남운과 사람들이 있던 곳의 반대 통로로 곤충 채집통을 집어던졌다.
사람들이 곤충에 한눈 팔려 반대쪽 통로로 미친듯이 달려갈 때, 김남운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김독자를 쳐다보았다.
[전용 스킬, '등장인물 일람'이 발동합니다.]
김독자는 전용스킬, 등장인물 일람으로 김남운의 정보를 살폈다.
전용 특성 중2병(일반)을 가지고 있는 김남운.
훗날 그는 망상악귀 김남운 이라 불리게 될 청년이였다. 멸살법 내에서도 손꼽히게 강한 녀석.
이후 김남운과 김독자는 싸우기 시작했다.
본래 1번째 시나리오에서는 스킬을 해방하는 경우도 드물었지만, 김남운은 그것을 넘어 스킬 [흑화 Lv.1]을 발현까지 하고 있었다.
한방 한방이 강력한 김남운의 주먹.
힘든 싸움을 버티던 그때,
[전용 스킬, '전지적 독자 시점' 1단계의 사용 조건에 도달했습니다!]
전용 스킬, 전지적 독자 시점이 발동했다.
[전용 스킬, '전지적 독자 시점' 1단계가 발동합니다!]
1단계로는 상대의 심리를 읽어 공격 방향을 알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반격까지는 무리여도 공격 대부분을 피할 수 있었다.
이제 2분 남은 시간, 조급해진 김남운은 숨기고 있던 휴대용 맥가이버 칼을 꺼내 김독자에게 큰 상처를 입힌다.
하지만 김독자는 기지를 발휘해 아까 죽였던 메뚜기의 알집을 꺼내고는 그 알집을 터트렸다.
산란기의 메뚜기는 한번의 백 개 이상의 알을 낳는다. 놀랍게도 그 알들 모두 생명체 취급이기에 수없이 많은 생명체를 죽인 김독자는 대량의 코인을 획득했고, 김독자는 그 코인들 전부를 체력에 투자한다.
육체의 내구도가 크게 상승한 김독자, 김남운의 맥가이버 칼은 김독자의 몸에 자잘한 상처만 남길 수밖에 없었고, 결국 살려달라고 처절하게 비는 김남운은 시나리오의 제한시간이 끝남과 동시에 생명체를 죽이지 못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머리가 터져 죽게 된다.
124개체의 생물을 죽인 김독자. 기우뚱, 하는 느낌과 함께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열차.
금방 터널을 벗어난 열차 밖의 풍경의 모습은, 이미 그들이 알던 서울의 모습이 아니었다.
무너진 한강의 대교들, 시체들로 붉게 물든 한강, 쓰러진 빌딩들 사이로 다니는 거대한 괴수들.
하나의 세계가 멸망하고 새로운 세계가 태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김독자는, 이 세계의 결말을 아는 유일한 독자였다.
[Ep. 2 주인공]
지하철은 동호대교를 반쯤 지났을 무렵 정차했다.
본래 멸살법의 진행대로였다면 김남운은 이 칸 대부분을 쓸어먹고 다음 시나리오로 갔어야 했지만, 김독자가 김남운을 죽임으로써 미래가 달라졌다.
성좌.
멸살법의 세계에서 포식자에 위치한 존재이자 저 먼 우주의 성운의 꼭대기에 앉아 모든 이야기를 관람하는 배후.
성좌중에서 가장 약한 성좌도 가장 강한 인간을 압살할 수 있는 강력한 존재.
성좌들의 간접메시지가 뜨는 걸 보고는 김독자도 본격적으로 실감하기 시작했다.
등장인물, 김남운의 죽음으로 두 명의 성좌가 희미한 적대감을 표했지만, 소수의 성좌는 김독자의 시나리오에 감탄하며 500코인을 후원했다.
곧이어 나타난 도깨비 머리 위에 21개의 별이 보였다. 저 별은 도깨비가 운영하는 채널의 현재 접속중인 성좌의 수이다.
현재 김독자가 타고있는 불광행 3434호 열차 3807칸 생존자 5명.
김독자, 이현성, 유상아, 한명오, 이길영.
그 후로 잠시 뒤, 배후성 선택이 시작되었다.
지금 현재 인간들은 나약하기에, 성좌들의 후원과 지원을 통해 강해지라는 목적이였다.
보통은 한 개의 선택지만 떠도 감지덕지였다. 하지만 유상아는 2개, 김독자는 무려 4개나 떴다. 물론 주인공은 5개지만 말이다.
김독자의 배후성을 자처하는 성좌는 총 넷.
1. 심연의 흑염룡
2.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
3. 은밀한 모략가
4. 긴고아의 죄수
심연의 흑염룡은 초반에는 신체 강화를 해주기에 좋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어둠에 오염되어 광기에 젖어버린다고 한다. 찜찜하니 제외.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는 언뜻 보면 악마처럼 들리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성좌는 천사다.
대천사 우리엘.
하지만 천사들이 으레 그렇듯 강력하지만 그에 따른 말도 안되는 규율과 제약이 따르기에 일단 보류.
은밀한 모략가는 멸살법 내에서도 나오지 않은 존재였다.
게다가 성좌라기엔 뭔가 빈약한 이름. 일단 보류다.
긴고아의 죄수는 언뜻 보기에는 죄수라는 말이 들어있어 나쁜 성좌처럼 보일수도 있으나, 그 앞의 긴고아에 주목해야 한다. 서유기를 본 사람이라면 알 수밖에 없다.
긴고아의 속박을 받는 존재.
제천대성 손오공.
그 인지도 만큼이나 성좌중에서도 단연 탑급으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원작에서도 여의봉을 한번 휘두르는것으로 수백의 사람들을 찢어 죽이고 수천의 마물들을 짓이겼다.
하지만 김독자는 생각했다. 제천대성을 고른다고 해서 저 주인공을 이길수 있을까.
시간은 1분.
이 4개중에서 정해야 했다.
김독자는 배후성을 선택하지 않았다.
몇몇 성좌가 큰 충격에 빠졌다.
심연의 흑염룡은 진노했고, 악마같은 불의 심판자는 실망했으며, 의외로 은밀한 모략가와 제천대성은 흥미로워 했다.
사실 배후성과의 계약은 그만큼의 가능성을 제약받는다는 것이기도 했다. 결코 우리가 아는 공평한 거래가 아니었다.
모든 이의 배후성 선택이 끝난 후, 잠시 뒤에 보자는 말과 함께 도깨비는 사라졌다.
김독자는 사람을 모았다. 우선 이 열차 밖으로 나가는 게 우선이였다. 마침 뭔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3707칸으로 향하는 문이 찌그러지고 있었다.
주인공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독자는 사람들을 규합한 뒤 문들을 하나하나 열기 시작했다, 3개의 문은 개폐장치도 먹통이였고, 남은 하나의 문은 살짝의 틈이라도 있었다.
김독자의 남은 코인은 4700. 초반에는 매우 큰 돈이기에 이걸 전부 근력에 투자에 문을 열 수는 있었지만, 초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아껴두어야 했다.
김독자는 이현성에게 스킬을 사용하라고 했다.
[태산 밀기 Lv.1]
사실 배후성의 스킬인 성흔이였지만, 아직 그 말을 하기엔 일렀다.
이현성의 태산 밀기로 문이 열려 열차 밖으로 탈출한 김독자 무리. 바로 《서브 시나리오 - 탈출》이 시작된다.
끊어진 다리를 건너 옥수역으로 진입하시오.
하지만 다리는 아직 멀쩡했다. 그 말인 즉 곧 무너진다는 것이였다.
이길영을 업은 이현성, 김독자, 유상아, 한명오가 다리를 한참 뛰어서 건너는 중에, 다리 밑 한강에서 거대한 뭔가가 솟아올랐다. 어룡이였다.
씨-커맨더쯤 되어 보이는 녀석은 7급 괴수다. 최하급 괴수인 9종 땅강아쥐만 해도 인간이 상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고려하면 7급 정도나 되는 녀석은 이빨만 스쳐도 보통의 인간은 몸이 찢겨 죽을 것이다.
녀석이 한강 다리를 통째로 씹어먹기 위해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충분히 뛰면 건널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도깨비가 시나리오의 난이도를 향상시켜 시체들을 마인들로 만들었다.
마인, 최하급인 9급이지만 인간의 신체 능력을 월등히 넘으며, 그 숙주에 따라 엄청난 파괴력을 낼 수 있다.
뒤쪽에서 좀비를 닮은 검은 시체들이 엄청난 인파를 이루며 몰려오고 있었다.
뒤에서만 달려온다면 문제는 없을 것이다. 진짜 문제는, 도로 위의 시체들까지 마인들로 변했다는 것이다.
이길영을 등에 업은 이현성이 길을 뚫어주었지만 바로 마인들로 길이 막혀버린다.
결국 다리 끝까지 달려가는 시간이 지체되어 결국 다리가 끊겨버렸다.
다행인지 이길영과 이현성은 다리 끝쪽에 무사히 건너가 있었다. 하지만 더이상 방법이 없어보이던 그때, 유상아가 성좌의 가호를 받아[1]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발동되었다.
부서진 다리 위에 빛의 형태로 다리가 다시 생겨있었다.
짝수의 인원만이 지나갈 수 있고, 홀수의 인원이 지나가려 할 시 다리는 즉시 소멸된다.
김독자가 마인으로 변해버린 김남운을 상대하는 동안 한명오는 유상아를 들고 성흔, [외발 준족][2]으로 먼저 다리를 건너버렸고,[3] 어쩔 수 없이 김독자는 마인들과 사투를 벌이게 된다.
고전하고 있던 때, 전용 스킬, 책갈피가 발동된다.
각 인물의 핵심 스킬을 책갈피에 저장해 제때 사용할 수 있는 스킬.
김독자는 김남운의 [흑화 Lv.1]을 발동시켜 마인이 된 김남운을 다리 바깥으로 던져버린다.
하지만 아직 마인은 많이 남은 상태.
김독자는 이제 올 때쯤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때, 마인 무리의 뒤쪽에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와 동시에 공중으로 떠오르는 마인들의 시체.
마인들을 모두 두 주먹만으로 피떡으로 만든 인물이, 김독자의 목을 움켜쥐었다.
주인공, 회귀자 유중혁이 도착했다.
이야기 초반부의 유중혁은 굉장히 위험한 인물이였다. 이미 3번의 시간 회귀를 겪고 닳아버린 인격. 여기서 심기를 잘못 건드렸다간 그대로 다리 밑으로 떨어져 물고기밥 신세다.
그와 동시에 발동되는 [전지적 독자 시점 2단계]
이미 멸살법의 주인공인 유중혁에 대한 이해도는 대단히 높았기에, 그의 마음속마저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시나리오의 남은 시간은 5분.
유중혁의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라는 말에 간단히 상황 설명을 시작한 김독자.
곤충을 죽여 클리어 했다는 말에 대단히 놀란다.
유중혁이 3번의 생을 겪으며 느낀 삶의 미래가 바뀌었다.
본래 이현성과 김남운이 살아남아야 하는데, 김남운을 제외한 김독자와 다른 사람 몇몇이 살아난 것이다.
유중혁은 변한 세계에 비정상적으로 잘 적응하고 있는 김독자를 위험한 대상으로 인식한다.
[현자의 눈]으로 김독자의 마음속을 읽어내려는 유중혁.
그러자, 김독자의 또 다른 전용 스킬, [제 4의 벽]이 발동하며 현자의 눈을 무력화시킨다.
현자의 눈, 멸살법 세계관 내에서 상대방의 대부분의 것들을 읽어낼수 있는 최상위급 스킬.
그 현자의 눈을 방어할 수 있는 스킬 또한 현자의 눈이다.
그리고, 그 현자의 눈을 가지고 있는 인물은 예언자들뿐이다.
위험함을 감지하고 지금 당장 죽이려 드는 유중혁, 김독자는 이렇게 된 김에 현자의 눈을 가지고 있는 예언자 연기를 시작한다. 46번 시나리오는 혼자 클리어하지 못할 것이다. 난 네가 모르는 미래를 알고 있다. 날 동료로 삼아라.
김독자는 유중혁을 설득해 결국 같이 다리를 건너기 시작한다, 물론 멱살을 잡은 손은 놓지 않은 채로 말이다.
하지만 안전지대를 코 앞에 두고 멈춰 선 유중혁.
갑자기 김독자를 다리의 난간, 완전한 허공 위에 둔 뒤 질문을 한다, 지금 내가 여기서 이 손을 놓을까 말까.
유중혁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던 김독자는 손 놓고 꺼지라는 말을 남기고 유중혁의 놓아진 손으로 인해, 한강의 씨 커맨더의 입속으로 들어가 시나리오 클리어에 실패하게 된다.
[Ep. 3 계약]
김독자는 10레벨에 달하는 체력 덕분에 간신히 죽음을 모면했다.
방수 기능 덕분에 무사한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플래시로 주변을 비춰보았다. 짐작했던 것보다 더 역겨운 어룡의 위장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망설임 없이 손을 놓던 유중혁의 모습을 떠올리며 김독자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회귀자인 유중혁은 성장세가 너무 빨라 자연히 외로워졌고 동료란 의미는 유중혁에겐 무거웠다.
그러니 이 상황은 시험이다.
동료가 되고싶다면 혼자 해결해야하는 시험.
물론 유중혁 입장에서만.
김독자에겐 사이코패스의 미친 행동일 뿐이었다.
생각을 마친 김독자는 개헤엄으로 떠 있는 스티로폼 패널 위로 간신히 올라갔다. 눈을 감은 채 떨어지면서 들린 메시지 로그를 재생해본다. 꽤 많은 메시지가 와있었다. 자신에게 수식언을 노출한 성좌들의 후원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선택에 후회는 하지 않았다. 배후성을 선택했더라도 유중혁을 이기는 건 무리였으니까.
씨-커맨더가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멸살법에 따르면 어룡은 먹이를 섭취하고 세 시간 전후로 위산을 분비한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그때 허공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김독자가 기다리던 도깨비였다.
김독자는 도깨비 앞에서 태연히 말을 이었다.
어차피 도깨비는 자신을 죽일 수 없었다.
김독자가 있어 성좌들 반응이 좋기 때문이다.
김독자의 도발하는 말에 점점 화가 치밀어오르던 도깨비는 김독자에 말에 금세 당황한다. 김독자가 하급 도깨비인 비형 자신과 스타 스트림 시스템에 관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독자는 잠시 채널을 닫으라고 하고는,
[#BI-7623 채널이 닫혔습니다]
자신과 계약하면 도깨비 왕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스타 스트림 시스템.
쉽게 말하자면 전 우주를 상대로 한 중계 활동이다.
구독자는 은하 꼭대기에 있는 성좌. 배우는 인간. 그리고 그 둘을 잇는 이야기꾼이 바로 도깨비다.
잠시동안 멍하던 비형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김독자가 맺자는 계약은 스트림 계약.
스트림 계약은 본래 도깨비와 성좌가 맺는 계약이다.
성좌들은 자신의 화신을 채널에 출연시키고 도깨비는 해당 성좌가 벌어들이는 코인의 일부를 수수료로 받는다.
스타 스트림의 구독좌는 크게 두 집단으로 구분할 수 있다.
따분함을 해소하려는 유희 찾기 집단과 자신과 계약할 화신을 찬은 화신 찾기 집단.
만약 배후성이 없는 최강의 화신이 있다면 둘 다를 만족시킬 수도 있다. 물론 일반적이라면 존재할 수도 없지만.
김독자는 그런 존재가 될 생각이었다.
김독자는 비형에게 자신이 증명해 보이겠다며 몸을 풀었다.
곧 시작될거란 김독자의 말에 당황하던 비형 앞에 나타난 메시지.
[히든 시나리오가 도착했습니다.]
[4]어룡 씨-커맨더를 죽이는 시나리오.
멸살법엔 총 세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메인 스토리를 진행하는 메인 시나리오.
자잘한 이벤트를 진행하는 서브 시나리오.
특별한 조건을 달성해야 개방되는 히든 시나리오.
김독자가 이 시나리오를 클리어 한다면 계약을 맺기로 합의한다.
그리고 특성창이 안열리는 오류를 고쳐달라는 부탁을 하는 김독자. 하지만 전용 스킬 '제4의 벽'으로 인해 시스템 간섭[5] 이 실패한다.
벌써 어룡에게 먹힌지 한 시간이 흘렀다.
김독자는 비형에게 도깨비 보따리[6]를 열라고 한다.
도깨비 보따리는 채널이 개방된 상황에서만 사용이 가능했기 때문에 채널이 다시 열렸다.
망치 해마의 점액과 스톤 호그의 뾰족한 가시 각각 4개를 고른 김독자는 800코인으로 사들였다. 결제를 마치자 비형은 떠나갔다.
한 시간 정도 가시를 휘둘러 보며 연습하던 김독자는 드디어 어룡의 위장 벽을 찔러보았다. 하지만 그대로 튕겨져나올 뿐이었다.
그때 위장 상단에 위치한 조그만 구멍들이 일제히 벌어졌다.
어룡의 소화 작용이 시작된 것이다.
김독자는 위장 벽의 돌기를 잡고 벽을 타 소화액을 쏟는 사출구에 망치 해마의 점액을 바른 가시를 찔러넣었다. 잠시후 가시가 사출구를 단단히 틀어막았다.
차근차근 세 개의 사출구를 틀어막은 김독자는 남은 점액을 피부와 옷 곳곳에 뿌리고 남은 것은 전부 삼켰다.[7]
오 분 정도가 흐르고, 고통스러워 하는 어룡의 비명이 들렸다.
멸살법에 따르면 스톤 호그의 가시는 해수종의 체액에 반응하여 성장한다. 점액으로 인해 소화액에 면역이 된 가시들은 어룡이 죽을 때까지 계속 성장할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김독자는 계속 버텼다. 배가 고플땐 가시 끝에 맺힌 어룡의 생명력이 담긴 농축액을 먹으며 버텨갔다.
그리고 얼마뒤, 어룡은 죽었다.
망치 해마의 점액은 소화액에 대한 면역이 있다는 정보는 사실 비형도 몰랐다. 그렇기에 김독자는 비형을 대신해 성좌들이 듣도록 설명했다.[8]
시나리오 클리어로 받은 보상.
히든 시나리오 보상은 9000코인.
최초 7급 해수종 사냥 업적 달성으론 1000코인.
잠시 광고를 튼 비형은 김독자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대충 무시한 김독자는 도깨비 보따리나 열어달라고 말한 뒤,
충분히 깨부술 수 있게 된 위장벽을 부숴 어룡의 핵[9]을 꺼냈다.
도깨비 경매에 '부러진 신념'과 교환하는 조건으로 어룡의 핵을 업로드한다. 그리고 드디어, 비형이 인정하고 계약서를 보여준다.
1. 김독자(갑)는 시나리오 종료나 본인 사망 시까지 비형(을)과 전속계약을 맺는다.
2. 갑은 모든 시나리오가 종료되거나 본인 사망 때까지 배후성을 선택해선 안된다.
3. 갑은 오직 을의 채널에서만 활동한다.
4.갑과 을은 계약을 통해 얻는 수익[10]을 나눠 가지며, 그 비율은 상호 합의를 통해 정한다.
(...)
10. 갑과 을은 이 계약을 어길 시 소멸한다.
김독자는 다 읽어본 후 비율에 대해 말을 꺼낸다. 십 대 영.[11]
물론 비형은 반대했지만 금세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김독자는 비형에게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에.
김독자는 마지막으로 계약금 5000코인 까지 받아내고 계약한다.
[Ep.4 위선도 선이다]
유중혁이 김독자를 잠시 생각하더니 역시 살아남진 못한것 같다며 결론을 내리곤 이동한다.
비형에게 500코인을 치르고 구입한 '엘라인 숲의 정기[12]'를 사용하고 잠들었다 깨어난 김독자는 꿈속에서 본 유중혁의 모습이 꿈이었는지 잠시 생각했다.
그러다 성좌들의 재촉에 어룡 배 속에서 나와 한강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삼십 분쯤 헤엄을 치다 뭍으로 나왔다.
현재 두 번째 메인 시나리오가 진행 중이었다.
이 시나리오 중에는 괴수들이 자신의 터전을 위해 서로 싸우며 맹독 안개를 내뿜기 때문에 지상에 있으면 안된다.
김독자는 최대한 숨을 참은 채 이동했다.
미리 비형에게서 구해둔 엘라인 원숭이의 허파[13]를 사용해서[14]
김독자는 생필품을 확보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어룡의 용해액에 녹은 겉옷 대신으로 사용할 옷가지와 지하에서 요긴한 거래 품목이 될 식품을 편의점에서 최대한 쓸어 담았다.
원숭이의 허파의 색이 어두워지던 그때 살려달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독자가 고개를 돌리자 다친채 쓰러져 있는 젊은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곧장 여자를 업고 가까운 지하역인 금호역을 향했다. 뜻밖에도 업힌 여자 덕분에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만난 사내들.
김독자를 방해하는 훼방꾼들의 등장에 성좌들의 요청으로 현상금 시나리오가 발생했다. 5분 안에 훼방꾼을 무력화해야 했다.
김독자는 배후성의 후원을 받은 방철수만 죽이고 다른 사내들은 무력화만 시킨채로 시나리오를 완료한다.
사내들을 따라 금호역에 도착한 김독자는 익숙한 얼굴들을 다시 만난다. 유중혁은 이미 떠났지만.
김독자에게 말을 걸어오는 누군가.
배후성을 가진, 이 무리의 진짜 리더 천인호였다.
약 반나절 동안 김독자는 김호역 상황을 파악해갔다.
주로 정보를 준건 이현성이었다.
현재 금호역은 주류 그룹과 아닌 사람들로 나뉘어져 있다.
주류 그룹은 식량 배분과 식량 탐사를 나간다고 한다.
식량이 거의 떨어져가고 있다고.
김독자가 구한 희원이라는 여자도 식량 탐사를 나갔었던 것이다.
어느 새 저녁 시간이 되자 김독자는 편의점에서 가져온 음식들을 일행에게 나누어 주었다. 다음부턴 코인을 받을거란 김독자의 말에 일행들은 김독자가 목숨 걸고 구해온 식량이니 코인을 주고[15] 식량을 받았다.
김독자와 일행들이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려던 찰나, 천인호와 주류 그룹이 김독자에게 말을 걸어온다.
천인호는 그룹에 들어오라고 제의하지만 김독자는 거절한다.
그러자, 주류 그룹이 물러나고 소외 그룹 사람들이 다가와 김독자에게 식량을 달라고 언성을 높인다. 천인호는 그 모습을 보며 당연히 김독자가 그쪽을 택할 것이라 믿는듯 사람들앞에 나선다.
김독자가 사람들 앞에서 코인을 받고 식량을 팔겠다고 선언하자 사람들은 물러갔다. 개당 50코인이 비싼 탓이었다. 그러나 밤이 되자 사람들이 찾아와 식량을 사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엔 김독자가 가진 식량이 전부 팔렸다.
김독자가 본인 식량도 안남겼다는 말에 일행이 당황하지만 김독자는 오히려 어제 구입한 식량중 남은 것은 전부 먹으라고 조언한다.
주류 그룹은 사람들 앞에서 식량을 팔기로 했다며 개당 200코인을 가져오라고 말한다. 아니면 무엇이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것과 거래를 하겠다고 선언하며 '선동' 스킬로 처음 식량을 코인으로 판 김독자에게 적의를 돌린다.
정희원이 다가와 어제의 감사인사를 하며 자신을 겁탈하려 했다는 사내를 노려보았다. 김독자는 정희원을 바라보다 스킬을 발동햤다.
[전용 스킬, '등장인물 일람'을 발동합니다!]
정희원은 [귀살]과 [웅크린 자]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웅크린 자]는 어떤 계기를 맞이하는가에 따라 '희귀'나 '전설'급 특성까지 도달할 수도 있는 특성이다.
김독자는 정희원을 동료로 받아들이는 것을 고려해 보며 플랫폼 아래로 내려가 유중혁이 지나갔을, 약수역으로 향하는 터널 길목을 살펴보았다. 그 후 다시 플랫폼 위로 올라왔다. 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식량을 거래하려는 줄이 이어져 있었다.
얼마안가 익숙한 형체가 나타났다. 도깨비.
그런데.. 비형이 아니었다.
그 도깨비는 먹을걸 달라는 사람들의 말에 시나리오를 깰 생각을 먹을 것 생각보다 먼저 하라며 사람들이 모아둔 식량들을 전부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뒤이어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
[시나리오 페널티가 추가됐습니다.]
['생존비' 항목이 추가됐습니다.]
[이제부터 매일 자정' 100코인씩 '생존비'를 자동 수납합니다. '생존비'를 납부하지 못할 시 당신은 사망합니다.]
['생존비' 페널티는 두 번째 메인 시나리오가 클리어 될 때까지 유지됩니다.]
[Ep.5 어둠 파수꾼]
사람들이 식량을 돌려달라며 울부짖고 있었다.
김독자와 눈이 마주친 천인호가 입술을 깨물었다.
김독자는 만약 속내를 읽을 수 있다면 김독자가 전부 알고 있었는지에 관해 생각을 하고 있을것이라 짐작하던 그때,
[등장인물 '천인호'의 속마음을 정확하게 읽어냈습니다.]
[등장인물 '천인호'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합니다.]
김독자가 이런 걸로 이해도가 오른다는 것에 시험 삼아 다른 사람들의 속내도 짐작해보았지만 종전 같은 메시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사이 천인호는 사람들에게 정찰대를 더 많이 차출할 것이며, 중찰대에 참가하지 않는 사람에겐 식량을 나누어 주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김독자와 일행들도 식량을 구하러 나서야 했다.
그러나 지상은 너무도 위험했다.
상비용 방독면으로는 맹독 안개를 막을 수 있을리는 없었다.
김독자는 괴물을 사냥할 것이라 일행들에게 말한다.
천인호에게 철길로 들어가겠다는 김독자의 말에 천인호는 안심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될 거라 판단한 모양이었다.
[등장인물 '천인호'이 대한 이해도가 상승했습니다.]
[등장인물 '천인호'에 대한 이해도가 일정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아무래도 등장인물에 대한 이해도는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를 충족하면 상승하는 것 같았다.
김독자가 등장인물에게서 호감이나 신뢰를 얻었을 때나
김독자가 등장인물의 속내를 정확히 짐작했을 때.
그래도 역시 천인호는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자신의 그룹원 한 명을 끼워서 가달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다름아닌 한명오 부장이었다.
터널 안으로 발을 딛자마자 서브 시나리오가 날아왔다.
괴수를 직접 사냥한 후 조리하는 시나리오였다.
금세 터널의 어둠이 완연해지자 이현성은 여자와 아이인 이길영이 약하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김독자는 바뀐 세계에선 여자와 아이가 약하단 것은 편견이라며 이길영에게 특성을 보어달라고 말한다.
이길영이 바닥에 주저앉아 손을 냐밀자 바퀴벌레들이 다가왔다.
이길영의 특성은 [곤충 수집가].
[다종 교감] 스킬로 곤충과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희귀 능력의 보유자였다.
손전등을 비추며 안으로 나아가자 사람들과 9급 지하종인 땅강아쥐의 시체가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유중혁이 땅강아지가 가득한 이 길을 혼자 뚫고 다음 역으로 향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죽은 땅강아지들로는 시나리오를 클리어 할 수 없었다. 직접 사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쓸데는 있었다.
김독자는 땅강아쥐 시체에서 척추뼈를 발라내는 데 성공했다.
스톤 호그 가시보다는 못하지만, 땅강아쥐의 척추뼈는 충분히 요긴한 무기가 될 수 있었다. 일행은 다같이 쪼그려 앉아 무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실 김독자도 이런 건 처음 해보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멸살법에 꽤나 관련 내용이 상세하게 적혀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16]
가장 큰 뼈로 만든 건 이현성에게, 평균 크기의 뼈로 만든건 유상아와 한명오에게, 마지막으로 이길영에게는 새끼 땅강아쥐 머리뼈를 꽂은 둔기룰 만들어주었다. 흥미를 가진 성좌들이 100코인을 후원했다.[17]
코인을 생존비 정도만 남기고 근력, 체력, 민첩에 전부 투자하라는 김독자의 조언대로 준비를 마친 일행은 다시 전진을 시작했다.
바닥에서 기어나오는 땅강아쥐들.
장확히 열세 마리. 김독자의 예상보단 많았다.
그리고, 싸움이 시작되었다.
일행들은 김독자가 놀랄 정도로 잘 싸웠다.
김독자가 꽃은 가시에 마지막 땅강아쥐가 쓰러졌다.
훌륭한 첫 승리였다.
잡은 땅강아쥐를 조리할 방법을 고민하던 일행들 앞에서
태연하게 방법이 있을 거라 대답한 김독자 때문에 일순 정적이 감돌았다. 이현성은 이 상황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지 김독자에게 조심스레 물어본다.
다양한 대답을 할 수 있지만 독자의 관점에서 가장 좋은 대답은,
말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계속 만드는 것이었다.
아직 땅강아쥐가 한 마리 남아있었고, 그 땅강아쥐는 한명오와 유상아를 잡고 땅굴로 들어가 사라졌다.
김독자는 슬며시 뒤로 돌아 스마트폰을 켰다. 남은 배터리는 5퍼센트 남짓. 얼마 안가 원하던 대목을 찾아 읽었다.
땅강아쥐는 어둠 자락에서 서식한다.
어둠 자락은 어둠 뿌리에서 방출되는 일종의 아공간으로 산소 대신 검은 에테르로 호흡하는 이 땅강아쥐는 어둠 자락 근처가 아니면 자생할 수가 없다.
김독자는 이길영만 데리고 어둠 자락으로 들어간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기에 곤충과 교감하며 길을 나아가는 이길영만 의지해 들어갔다.
이길영은 가면서 김독자를 불렀다.
그리고 물었다. 일부러 땅강아쥐가 한명오와 유상아를 잡아갈 때 일부러 놔주었냐고. 김독자는 눈치가 빠른 이길영에게 속이지 않고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땅강아쥐는 먹이와 진귀해 보이는 것들을 모아두기 때문에 그걸 찾으려고 한것이라고.
이길영은 몇가지 질문으로 김독자와 대화하며 나아갔고 얼마 후 도착했다.
도착하자 들려오는 목소리. 한명오가 유상아에게 자신의 차를 타고 함께 퇴근했더라면 이런 일은 자신에게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화를 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성좌들까지 분노하자 김독자는 가시를 있는 힘껏 던졌고, 가시는 한명오의 입가를 스쳤다.
그리고, 가시가 꽂힌 부근에서 어둠이 갈라지고 있었다.
['어둠 파수꾼'이 나타났습니다!]
[서브 시나리오가 갱신됐습니다!]
[서브 시나리오- '파수꾼 퇴치'가 시작됩니다!]
사신을 연상시키는 모습에 등허리엔 촉수 같은 것이 일렁이는 괴물. 이길영은 참지 못하고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김독자는 이길영을 기대앉히고 유상아와 한명오 쪽을 향해 다가갔다. 칼을 들어 두 사람을 묶은 줄기를 잘라주었다.칼이 급격하게 부식되더니 날이 삭아 없어지긴 했지만. 김독자는 한명오가 떨어뜨린 땅강아쥐 창을 집어 들며 둘 다 물러서라고 말한다.
7급 악마종, 어둠 파수꾼.
멸망이 시작되고 이후 등장한 괴수종 중에서도 이 악마종은 유독 특별했다. 사실 땅강아쥐가 모아놓는 보물은 전부 악마종에게 바치는 제물이라고 볼 수 있었다. 악마종은 다른 괴수종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이다. 악마종은 자신만의 언어가 있고, 제각기 다른 마왕을 숭배하며, 어둠 뿌리를 통해 그 마왕의 권능을 일부 계승한다.
그렇기 때문에 악마종 하나를 살해한다는 것은 곧 마왕 하나와 척을 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유상아가 물러나지 않고 어둠 파수꾼이 '엄마가 되어라'라고 말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18]
어둠 파수꾼의 등허리에서 촉수가 날아들어 한명오의 입속에 박혔다. 그러더니 목젖을 통해 뭔가가 넘어갔다.[19]
김독자는 땅강아쥐 창으로 한명오에게 연결된 촉수를 잘랐다.
악마종의 촉수에 창의 모영이 조금씩 망가져갔다.
어룡 위장에 상처를 냈던 스톤 호그 가시조차 악마종에 박힌 순간부터 삭아 없어질 정도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고작 몇 방의 연타에 땅강아쥐 창은 거의 못 쓸 정도로 망가졌다.
승산이 전혀 없었다. 원래 계획은 어둠 파수꾼이 사라지면 보물 상자를 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독자는 미리 대비해 두었었다.
김독자는 도깨비를 불러 자신에게 온 우편물을 배달해 달라고 요구한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며 거절당하지만. 그러나 도깨비 비류를 성좌들이 닦달하자 결국 거래소에서 온 아이템 '부러진 신념'을 건네준다.
하지만 '부러진 신념'은 고작해야 D등급에, 반으로 부러진 칼이다.
제 성능을 내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렇지만, 김독자는 어룡 사냥이 끝나고 비형에게서 1만 코인 이나 지불하고 산 스킬 [백청강기]가 있었다.
[백청강기]를 사용하자 부러진 칼날의 겉면에 청백의 에테르가 서서히 감돌았다.
['부러진 신념'이 당신의 마력에 반응합니다!]
['신념의 칼날'이 활성화됩니다.]
곧이어 칼자루가 광채를 뿜어내더니 부러진 끄트머리에서 새하얀 가상의 칼날이 솟아났다. 수십 개로 늘어난 촉수가 김독자의 시야를 뒤덮었다. 그러나 '신념의 칼날'은 악마종에 한해서 최고의 상성을 자랑하는 무기. 칼날에 닿은 촉수들이 모조리 산화하며 잘려나갔다.
김독자에겐 [전투 감각]도, [검술 언마]도 없었기에 칼을 어설프게 휘둘렀다. 하지만,
[특성 효과로 이미 읽은 페이지에 대한 기억력이 향상됩니다.]
수없이 읽은 멸살법의 장면, 어둠 파수꾼의 패턴을 정직하게 활용했다. 독자의 방식으로.
책갈피 2번을 사용해 무기 연마가 활성화 되었고, 찰나에 전력을 쏟아 베었다. 이제 그 강력하다는 악마종이, 김독자의 앞에 촉수가 늘어진채 쓰러져 있었다.
한창 도깨비는 김독자가 보여준 검, 에테르 블레이드[20]에 대해 성좌들에게 떠들어대는 중이었다.
설명을 마치자 마침 '부러진 신념'의 내구도가 다했다.
시나리오 보상으로 500코인을 획득했다.
'어둠 파수꾼'을 죽이지 않았기에 보상이 소소했다.
'어둠 파수꾼'을 죽이면 많은 코인을 준다며 죽이라고 설득하는 비류를 밀쳐내고 보상 상자를 열려고 가던 그때,
[7급 악마종, '어둠 파수꾼'이 사망했습니다.]
한명오가 어둠 파수꾼을 죽였다.
자신도 강해질 수 있다며 행복해하는 한명오가 보였다.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도 모른채.
[7급 악마종 '어둠 파수꾼'을 살해하여 마왕 '격노와 정욕의 마신'이 살해자의 존재를 눈치챘습니다.]
[마왕 '격노와 정욕의 마신'은 권속 살해에 최종 타격을 가한 화신체를 죽을 때까지 쫓아다닐 것입니다.]
[최종 타격자: 한명오]
메세지를 보고 한명오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허공을 보고 있었다.
마왕 '격노와 정욕의 마신'의 저주는 살해자가 가장 두려워 하는 일 중 하나를 실현시킨다. 한명오도 끔찍한 일을 당할것이 분명했다.
돌아보니 유상아와 이길영도 멍한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김독자는 싱긋 웃으며 보상이나 열어보자고 말한다.
이미 유중혁이 아이템을 가져간 모양인지 작은 팔찌와 낡은 방패 같은 D급 아이템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건 창고 한가운데 있는 검은 상자. 그 속엔 너무 작은 화로가 있었다.
바로 [마력 화로].
김독자는 마력 화로를 켜고 죽은 땅강아쥐의 다리 한 짝을 올렸다.
오 초도 지나지 않아 땅강아쥐 다리의 색깔이 노릇노릇하게 변하고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김독자는 먼저 다리를 잡고 뜯었다.[21][22] 김독자가 먹어도 될것 같다고 말하자 유상아와 이길영도 고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명오도 어느새 슬쩍 다가와 고기를 뜯기 시작했다.
모두가 식사에 열중하는 동안 김독자는 슬쩍 일행의 뒤쪽으로 향했다. 목적은 마력 화로가 들어있던 검은 상자.
유상아와 눈이 마주친 것은 그때였다.
유상아는 상자를 유심히 보더니 상자에 써있는 알 수 없는 문자를 읽었다. 랜덤 아이템 박스. 다행히 일행들이 김독자에게 써보라고 권유한 덕에 그냥 빨리 쓰기로 결정한다.
아까 죽은 어둠 파수꾼의 시체에서 도려낸'7급 악마종의 핵'과 내구도가 다해 망가진 '부서진 신념'을 상자에 넣고 상자를 닫았다.
이 두 아이템을 섞으면 어떻게 될진 김독자도 모른다.
그러나 멸살법에서 언급된 적이 있었다. 하위 아이템을 넣고 상자를 닫으면 무조건 상위 아이템이 나오는, 한정판 코인 아이템.
분명 엄청난 것이 나올 것이다.
2.3. #2 - 조우, #3 - 그린 존
Episode 6. 심판의 시간 ~ Episode 9. 전지적 개복치 |
[Ep.6 심판의 시간]
한정판 랜덤 아이템 박스.
멸살법에 따르면 이 아이템은 한참 전에 출시되었다가 스타 스트림 관리국에서 강제로 회수한 아이템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위 아이템을 넣으면 반드시 상급 아이템을 뱉어낸다는 설정은 시나리오의 밸런스를 위협할 만큼 엄청난 파급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아이템 박스를 보고 당황해 헛소리를 늘어놓던 비류는 일시적으로 채널을 종료하고 모습을 감춘다.
김독자는 스스로 진동하는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본격적인 랜덤 뽑기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하게도 제물로 바친 아이템이 특정 성좌와 관련되어 있다는 메시지가 떠오르더니 놀랄 만큼 좋은 아이템이 출현했다. 성유물 등급의 [부러지지 않는 신념].
성유물은 살아 있을 적 성좌의 힘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매우 특별했다. 게다가 체력과 근력을 2레벨씩 올려주는 부가 옵션만 해도 최소 S급 이었다.
일행의 만장일치로 김독자가 아이템을 챙기고 돌아가려 한다.
하지만 이길영은 주병에 곤충이 없어서 [다종 교감]을 쓸 수 없다고 말한다. 정말 한 마리도 없냐는 김독자의 말에, 이길영은 뭔갈 중얼거리더니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길영의 눈이 조금씩 뒤집어지고 코피가 흘러내렸다.
황급히 이길영을 막으며 김독자는 깜짝 놀란다.
지상에서 돌아다니는 괴수들 중엔 충왕종도 있다.
이름처럼, 충왕종도 벌레의 일종이다. 이길영이 충왕종을 정말 불러냈다면, 지하에 매장될 뻔 했던 것이다.
김독자가 어둠 자락을 곤충이 나타날 때까진 나가지 말자고 결정하자 유상아는 자신에게 비슷한 스킬이 있다며 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실타래로 길을 찾는 스킬.
김독자가 특성을 궁금해 했지만 유상아는 알려줄 수 없다며 울상을 지었다. 김독자가 괜찮다고 대답하자 유상아는 스킬을 써서 길을 찾는다.
곧이어 채널이 다시 열리더니 성좌들이 입장하는 메시지가 들려왔다.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형이었다.
비형은 도깨비 통신[23]을 사용해 김독자와 대화한다. 대화를 하다 보니 그 랜덤 박스는 아무래도 비형이 기획한 듯 했다.
비형의 투덜거리던 말은 정희원의 탄성에 의해 끊어졌다.
십 분 전, 유상아를 따라 나온 김독자와 이길영은 무사히 다른 일행과 조우했다. 일행에게 고기를 구워주고, 이현성에겐 '낡은 철제 방패'를 주었다.
익힌 땅강아쥐 한 마리 씩을 짊어진채 주고 받는 동안 터널이 끝났다. 주변이 급격히 밝아지더니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유료 정산까지 남은 시간은 20분. 다들 분주한 모습이었다.
코인이 없는 사람들이 구걸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웃는 사람들이 있었다.
천인호와 철두파였다.
몇몇 여자들이 그쪽으로 몰려가 따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한 번에 100코인, 두 번에 100코인 같은 말이 들리는걸 보니 상황이 이떻게 돌아가는진 알 것 같았다.
정희원이 어느새 칼을 뽑아들고 그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등장인물 '정희원'의 특성이 개화를 준비합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른 것은 그때였다.
[잠시 후 생존비 정산이 시작됩니다.]
김독자 일행을 발견한 천인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인호는 '선동' 스킬을 사용해 코인이 부족한 사람들이 코인이 많다는 김독자에게 모여들도록 만든다.
김독자는 코인을 주기 싫다고 거절하자 사람들은 김독자에게 분노했다. 이십 명에 달하는 군중들이 모여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결국 철두파 사내 한 명이 나섰다. 죽이고 코인을 뺏으면 된다며.
김독자가 한 방에 사내를 제압하자 모두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김독자는 사람들 앞에서 말을 시작한다.
천인호와 철두파가 강한 이유가 뭔지, 코인이 많은 이유가 뭔지, 어째서 정찰을 나간 사람들 중 철두파만 살아 돌아왔는지, 어떻게
'사람을 죽이면 코인이 나온다'는 것을 알았는지.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며 생각을 유도한다.
사람들은 진실을 깨닫고 천인호와 철두파에 분노했다.
김독자의 빼앗긴 것은 스스로 되찾으라는 말에 사람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 누군가를 죽였던 사람들. 못할것도 없었다.
철두파의 전투력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김독자가 있었기에 불가능한 싸움은 아니었다.
김독자가 철두파 사내의 팔과 다리를 베어내자 뒤에서 정희원이 달려와 마무리를 지었다. 그리고 정희원의 모든 진화 조건이 충족되었고, 특성이 개화했다.
[등장인물 '정희원'의 특성이 '멸악의 심판자(영웅)'로 개화합니다.]
멸악의 심판자. 3대 심판자 특성 중에서도 최강의 심판자.
김독자는 특성 개화에 크게 기여했기에, 앞으로 등장인물 정희원은 김독자의 칼이 되길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등장인물 '정희원'이 전용 스킬, '심판의 시간'을 발동합니다.]
[절대선 계통의 성좌들이 해당 스킬 사용에 동의합니다.]
['심판의 시간'이 활성화됐습니다.]
일행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싸우는 정희원은 김독자가 적을 전투불능으로 만들면 달려와 적을 죽이며 뒤처리를 모두 대신했다.
정희원의 검이 천인호의 얼굴을 반으로 갈라버리고, 천인호를 마지막으로 모든 철두파 사람들이 쓰러지며 싸움이 끝났다. 생존비가 정산되었고 누군가는 죽었으며, 누군가는 살아남았다.
이제 다음으로 가야할 곳은 충무로역이었다.
다음 날 아침, 금호역엔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한명오가 사라졌고 살아남은 이들 대부분이 역을 떠났다.
김독자 일행은 군인인 이현성 덕분에 준비는 거의 마친 상태였다.
김독자는 비형에게 성좌들이 나중에 전해달라고 부탁했다는 코인들과 수많은 메시지들을 본다.
코인이 이제 다시 제법 모였기 때문에 김독자는 능력치를 올린다.
체력과 근력은 15레벨, 민첩은 11레벨, 마력은 10레벨로.
김독자는 배후성의 지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더 많은 코인을 모아야 했다. 그리고 비형과 계약한 효과를 충분히 보기 위해선 채널도 좀 더 규모를 키워야 했다.
어느새 준비를 마치고 모인 일행들은 충무로 역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철로를 건너던중 나타난 두 번째 메인 시나리오 '조우' .
터널을 주파해 거점 지역의 생존자와 만나야 했다.
다음 주요 거점 지역은 세 정거장 거리의 충무로 역.
가는 길에 일행들은 땅강아쥐 무리를 마주치지만 쉽게 클리어한다. 모두 그만큼 강해진 것이다.
충무로역까지 한 정거장 정도 남았을 때 일행은 쉬기로 한다.
일행들이 화장실로 가는 사이 김독자는 숨을 참고 지상으로 나갔다. 동국대학교로 이어진 에스컬레이터를 뛰어 올라가자 이윽고 동상이 하나 나타났다.
김독자는 이름을 확인하곤 앞에 서서 합장을 했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동상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비형은 성좌 '대머리 의병장' 우상을 파괴하면 어떡하냐며 노발대발했다. 그러나 김독자는 대충 무시했다.
모든 우상인 성좌의 힘이 봉인되어 있다.
만약 우상의 봉인을 해제하면 화신은 그 성좌가 사용했던 힘[24]을 일정 확률로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봉인 해제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우상을 파괴하는 확실한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사명대사의 스킬을 획득하기 위해.
사명대사의 우상은 아이템까지 토해냈고, 김독자는 일행에게 나누어주며 임진왜란 때 적군과 싸워 한반도를 지켰다는 사명대사가 한국을 위해 보내준 물건 같다며 뻔뻔하게 언변을 늘어놓는다.[25]
충무로역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나타난 환영 감옥 시나리오.
사람의 트라우마를 건드려 광기로 이끄는 공간 [환영 감옥]이 나타났다.
김독자는 '제4의 벽' 덕분에 무사했지만 나머지 일행들은 아닌 것 같았다. 유상아만 빼고. 김독자가 유상아에게 주었던 '사명대사의 염주' 아이템 덕분이었다.
김독자는 사명대사의 동상을 부수고 얻은 스킬 '파마'를 사용한다. 그러자 금세 안개가 물러 가고 환영 감옥이 사라졌다.
갑자기 뒤에서 날아드는 눈먼 칼날. 정희원이 미친 사람처럼 검을 치켜들고 있었고 눈이 서서히 붉어져 갔다. 귀살의 징조.
김독자는 바로 뒷목을 강하게 쳐 기절시켰다.
환영 감옥 시나리오를 클리어 했다는 메시지가 떠오르자마자 등장한 괴물들 환영 감옥을 만드는 스펙터들 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스펙터는 어렵지 않다. 곧 소름 돋는 괴성과 함께 스펙터 무리가 모두 소멸하고 [스펙터의 영석]만 남았다.
김독자는 떨어진 영석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유상아 덕택인지 일행들이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충무로역에 도착한건지 멀리서 어슴푸레한 빛이 보였다.
이대로 진입해도 괜찮은지 고민하던 김독자 앞에 누군가가 나타난다. 멸살법 속 주요 조연인 태풍여고의 유일한 생존자 이지혜.
김독자는 곧바로 등장인물 일람 스킬을 발동했다.
예정대로 이지혜가 배후성으로 해상전신을 가져갔다.
나중에 있을 해상 전쟁에서 이지혜는 반드시 필요해진다.
그리고, 이지혜를 보며 김독자는 새삼 깨달았다.
[메인 시나리오 #2 - '조우'가 종료됐습니다!]
마침내 충무로역에 도착했다고.
[Ep.7 건물주]
일행들과 이지혜를 따라 충무로역에 들어간 김독자는 유중혁을 찾는다. 자신이 유중혁의 동료라면서.
유중혁을 사부로 모시는 이지혜는 미심쩍어 하다가 구석에서 자던 소년을 깨워 감시를 맡기고 유중혁에게로 향한다.
소년은 유중혁의 동료란 말에 김독자와 일행들에게 다양한 말을 해준다. 유중혁을 숭배하는 말과 건물주 연합에 대한 이야기를.
건물주 연합은 멸살법에도 등장하는 이름이다. 김독자의 예상대로라면 충무로역을 휘어잡고 있을 것은 '십악' 중 하나.
이길영이 김독자에게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26] 그러자 대화를 엿듣던 소년이 들어가기 쉽기 않을 거라며 직접 안내한다.
김독자는 자신이 아는 3회차와 전개가 달랐기 때문에 몇 가지 확인하기 위해 일행들과 지하 3층으로 올라갔다.
가면서 소년이 '방'에 대해 설명해준다. 시나리오상 명칭은 그린 존. 지하 3층부터 지하 1층까진 거의 건물주 연합이 장악하고 있다고 한다. 바닥에 있는 초록색 타일 위에 적힌 '그린 존'이란 이름 뒤에 붙은 숫자는 수용 가능 인원을 뜻하는 것인 것 같았다.
화장실로 가는 마지막 통로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다시 받아달라는 사람들과 맞은편에 건물주 연합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병장기를 들고 도열해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때 누군가가 이길영을 밀쳐 이길영이 넘어지며 바닥을 짚었다.
사유지를 침범했다는 메세지와 함께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늘해지며 몰려 있던 인파들이 뒤로 물러 났다.
[등장인물 '공필두'의 성흔 '무장지대 Lv3'가 발동합니다!]
500코인을 지불하지 않으면 주변에 모든 포탑이 사격을 실시할거란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한 남자가 다가와 말했다. 돈을 내라고.
당황한 이길영이 주춤거리며 물러나 김독자의 옆에 붙었다.
십악. 멸살법에서 주된 악역을 맡은 열 명.
충무로역의 무장성주 공필두는 그 십악 중 하나였다.
가진 방도 70개. 이 일대 전체가 공필두의 그린 존 이라고 할 수 있었다.
김독자는 돈을 내라는 남자를 지나쳐 진짜 공필두를 찾는다.
사유지를 침범했고 포탑들이 곧장 김독자를 겨눴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공필두가 움직였다. 각종 생필품이 줄비하게 놓인 벤치에 앉아 잡지를 읽는 중년 남성. 소설 속 묘사 그대로였다.
김독자는 유중혁에 대한 정보를 줄테니 자신과 일행을 공필두의 그린 존에 머물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공필두는 스킬 '손익계산'으로 판단을 마치곤 거절한다.
공필두는 망설임없이 돌아서는 김독자를 불러세우고는 1000코인을 내라고 한다. 물론 김독자는 거절했다. 그러자 포탑에서 공격이 시작되었다. 김독자는 일행을 향해 달려갔다. 어느새 철제 방패를 든 이현성이 든든하게 뒤를 막아서고 있었다.
이현성도 긴장하던 그때 유중혁이 나타났다. 전지적 독자 시점 2단계를 발동하자 당황한 유중혁의 생각이 들려왔다. 김독자는 해맑게 인사하며 사람들에게 자신이 동료라고 말해달라고 한다.
유중혁은 자기가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었다. 비록 동료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공필두를 향해 검을 겨누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덕분에 모두 무사히 화장실을 쓸 수 있었다.
유중혁은 현자의 눈으로 일행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다 정희원를 보는 것 같더니 잠시 놀라곤 이지혜와 가버린다.
김독자는 곧장 일행 앞에서 공필두 이야기를 꺼냈다.
정희원은 쓰러져 있었기 때문에 공필두를 보지 못했고, 곧바로 분노했다. 그리곤 자신만만하게 해치워버리자고 제안했다.
정희원에게 [심판의 시간]이라는 비장의 스킬이 있기 때문에 자신만만한듯 보였다. 그리고 상대가 악인이라면 [심판의 시간]은 최고의 상성을 자랑한다.
[등장인물 '정희원'이 심판의 시간'을 발동합니다!]
[절대선 계층의 성좌들이 정희원의 요청에 침묵합니다.]
[스킬 발동이 취소됐습니다.]
정희원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몇 번이나 다시 시도했지만 스킬은 발동되지 않았다. 정의를 결정하는 것은 성좌들. 인간에게 더는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할 권리가 없다. 인간은 그저 배후성의 꼭두각시일 뿐이었으니.
곧 세 번째 시나리오가 눈앞에 떠올랐다.
다른 사람들의 그린 존을 빼앗아서 몰려드는 괴물들에게서 살아남아야 했다. 메인 시나리오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김독자는 일행들에게 남은 방이 있는지 찾아보라고 말했다.
충무로역에 남은 방이 없다는 것을 알고있었지만. 모두 흩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김독자는 멸살법을 켜놓고 읽기 시작했다.
그때 비형의 도깨비 통신과 의아해하는 성좌들의 메시지가 들려왔다. 비형은 빈 메모장만 켜놓고 뭐하는 거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김독자는 일순 소름이 돋았다. 시스템의 최고 관리권을 가진 도깨비가 읽을 수 없다면 성좌들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그럼 작가는 대체 어떤 존재일까.
방을 구하지 못한채 돌아온 일행에게 김독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해준다. 사람들을 죽이고 방을 빼앗는 방법, 아니면 매우 어렵고 누군가가 죽을 수도 있는 방법.
일행은 두 번째 방법으로 결정한다. 살인을 해봤다고 해서 살인이 좋은건 아니었으니까. 두 번째 방법은 김독자의 말을 무조건 따라야한다. 다행히도 모두 김독자를 믿기로 했다.
다음 시나리오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5분. 3호선 철길 쪽으로 이동하자 '레드 존'이 보였다. 김독자는 일행을 나누어야 한다며 자신은 이길영과 움직이기로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괴물이 나타난 후에 곧장 괴물들 쪽으로 뛰며 왼쪽벽을 살피라고 방법을 설명한다. 그 순간,
[세 번째 메인 시나리오가 활성화됩니다!]
레드 존에서 괴물들의 파도가 몰려왔다.
괴물과 격돌하려는 순간, 김독자가 소리쳐 신호를 주었다.
유상아가 벽에서 무언갈 발견했다.
벽면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초록색 타일. 그린 존이었다.
[누군가가 '충무로역'의 숨겨진 기능을 활성화했습니다.]
[히든 스페이스, '용맹한 자들의 안식처'가 발동합니다!]
세 사람이 그린존에 도달했다. 김독자는 이길영을 업고 뛰기 시작했다. 1번 책갈피를 발동하여 망상악귀 김남운의 [흑화]로 전신을 감싸고 괴물들을 전신으로 밀어내며 돌진해갔다. 마침내 하나 남은 히든 스페이스가 보였다. 초록색으로 빛나는 2인용 그린 존.
그런데 이미 선객이 있었다. 유중혁이 있었던 것이다.
원작 3회차에선 쓰지 않았기에 안심하고 있었건만.
유중혁은 비켜주진 않았지만 다행히도 이길영은 받아준다기에 김독자는 이길영을 내려놓고 다가오는 땅강아쥐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밀려드는 괴물의 파도. 이제 남은 그린 존은 없었다.
사실 정말 쓰고 싶지 않았지만 남은 방법이 없었다. '제4의 벽'만 믿는 수밖에. 김독자는 주머니에서 스펙터의 영석을 꺼내들었다.[27]
수십의 땅강아지들이 전신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육체의 내구도가 빠르게 줄어가는 순간, 김독자는 그대로 영석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입 속에서 수증기 같은 것이 피어오르더니 이내 자욱한 안개가 되어 주변을 모두 덮었다.
[환영 감옥이 활성화됩니다.]
괴물들이 공격을 멈추더니 주변의 모든 것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김독자는 '유령종'이 되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독자는 바로 알아차렸다. 꿈이라는 것을. 말려들지 않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지나친 몰입으로 인해 '제4의 벽'의 영향력이 일시적으로 약해집니다.]
피가 낭자한 거실. 차갑게 식은 남자의 시신. 시신을 내려다보는 여자의 뒷모습. 떠올리지 않기 위해 십여 분을 발악한 뒤에야, 장면이 눈앞에서 흩어졌다.
스펙터의 영석은 사용자를 일시적으로 '유령종'으로 만들어 괴물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해주지만, 사용자의 트라우마를 최대치로 폭주시키는 부작용이 있다. 그나마 [제4의 벽] 덕분에 이정도로 끝난것이 다행이었다.
또다시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 또 트라우마가 시작된 건가 싶었으나 모르는 목소리였다. 뒤를 돌아보니 낯선 이가 있었다. 이미 알고 있는 인물. 머릿속에서 빠르게 페이지가 넘어갔다.
공간적 제약을 무시하고 멋대로 남의 의식 속에 들어올 수 있는 이. 미래를 보고, 그 미래를 통해 세상을 설계하려 하는 이. 그 사람은 멸살법에 단 한사람 뿐이었다. 안나 크로프트.
[제4의 벽]의 영향력이 일시적으로 약해진 까닭인지, 자신도 예언자라는 김독자의 말이 거짓임이 들켰다. 김독자가 누군지 묻는 안나 크로프트에게 실망한 김독자는 '어룡의 핵'을 보낸 사람이 자신이라 말한다. 천천히 벌어지는 안나의 입에서 당황한채 누군지 묻는 말이 흘러나온다.
[전용 스킬, '제4의 벽'의 영향력이 천천히 돌아옵니다.]
의식에 간섭할 수 있는 안나의 [대악마의 시선]의 영향력이 약해지며 안나의 모습이 점차 희미해졌다. 김독자는 배웅하듯 손을 흔들어주었다.
[전용 스킬, '제4의 벽'이 완전히 복구됐습니다.]
[스킬의 효과로 '환영 감옥'에 대한 면역이 발생합니다.]
조금씩 의식이 맑게 개는 기분이 들었다.
[전용 스킬, '파마 Lv.1'를 발동합니다!]
돌아갈 시간이었다.
시야가 맑아지더니 일행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시나리오를 해냈다고 흥분해 있었다.
그러나 아직 기뻐하기는 일렀다.
전지적 독자 시점 2단계로 '공략을 해야한다'는유중혁의 생각도 듣는다. 생각을 해야했지만 너무 피곤했던 김독자는 그대로 잠에 빠져들고 만다.
두 시간 뒤 비형의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고개를 들어 몸을 일으키자 귓가에 쏟아지는 메시지.
김독자의 과거를 엿본 성좌들의 반응과 후원. 그리고 보상.[28] 이제 보유 코인은 22,650 코인. 목표 금액은 달성했다.
하지만 오늘도 똑같이 버틸수는 없었다. 다음 날의 그린존 위치를 모르기 때문. 김독자는 일행들에게 세 번째 시나리오를 오늘 끝낼거라며 땅부자를 끌어내리자고 한다.
이제 충무로역의 주인을 바꿀 때가 되었다.
[Ep.8 긴급 방어전]
본래 3회차 전개라면 이현성은 금호역에서 철두파에게서 사람들을 지키며 특성 진화 이벤트를 맞이해야 했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정희원이 가져갔다.
이현성의 특성 진화를 위해[29]김독자와 일행은 이현성에게 여러 격려의 말을 해주었다.[30]
그런 식으로 몇 번인가를 반복하자 시스템 메시지가 바뀌기 시작했다.
[등장인물 '이현성'이 특성 진화의 계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김독자는 이길영에게 부탁해 얻은 정희원의 위치를 찾아간다.
홀로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올라가는데 갑자기 나타난 칼날이 어느새 김독자의 목에 닿아 있었다. 초반에 이 정도의 은밀기동을 자랑할 수 있는 스킬은 하나뿐. [귀신 걸음걸이].
이지혜는 김독자의 얘기하러 왔다는 말에 순순히 물러갔다.
그러더니 어느새 지하 1층 개찰구로 넘어가는 길목을 막고 있었다. 유중혁이 지키고 있으랬다고.
아무래도 유중혁은 충무로역의 '히든 던전'을 공략 중 인것 같았다. 문제는 그 던전은 3회차의 유중혁이 끝까지 깰 수 없는 곳이라는 점이다. 일을 서둘러야 할 것 같았다.
김독자는 이지혜에게 공필두 일행을 박살내는 것을 도와달라고 말한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김독자는 계획을 설명했고 이지혜는 고뇌했다. 하지만 반드시 움직일 것이라 예상할 수 있었다. 괜히 충무공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 아니니까.
약속한 시간이 되었고, 김독자와 일행들은 제각기 자신의 병장기를 확인했다. 그 동안 쓰던 무기가 많이 낡아서 이현성에게 부탁해 새 무기를 제작했다. 재료는 전날 사투를 벌이던 중 잡은 8급 지하종 그롤. 그롤의 뿔을 깎아 만든 칼과 창을 만들었다. 오래 쓰긴 무리겠지만 임시방편으론 적당했다.
이제부턴 시간싸움이다. 김독자는 이현성과 함께 계단을 올랐고, 나머지는 각자 맡은 임무를 위해 해당 층으로 이동했다.
이현성과 김독자가 서로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는 대화를 나눌 무렵, 건물주 연합이 다가왔다. 협상하러 왔냐고 묻는 남자의 손에는 한 여자의 멱살이 잡혀있었다. 여자는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살려달라고 외쳐댔다.
이현성이 여자를 놓아달라고 나서며 김독자와 시선을 마주쳤다.
[등장인물 '이현성'이 자신의 의지로 정의를 실천하길 원합니다.]
[등장인물 '이현성'의 특성 진화가 임박했습니다.]
연합원들이 병장기를 꺼내 들었다.
김독자는 체력과 근력을 18레벨로 올렸다. 남은 코인은 쓸 데가 있었기 때문에 남겨두어야 했다.
지하철역 곳곳에서 들려오는 작은 폭파음. 일행들의 신호였다.
이현성과 김독자가 달려나갔다. 지하 2층 복도. 공필두의 '사유지'였다. 김독자와 이현성이 포위당했지만 엄청난 근력으로 이현성이 '태산 밀기'를 사용해 연합원들을 넘어뜨리며 질주했다.
곧이어 사유지 곳곳에서 포탑이 일어서더니 김독자를 향해 발포했다. 김독자는 이현성을 제치는 동시에 철제 방패를 넘겨받아 버텼다. 그리고 공필두가 나타났다.
이어서 시작된 사유지 디버프. 불법 침입자들의 능력치가 일부 감소한다. 공필두의 능력이 무사운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사유지] 디버프에 [무장지대]의 특수 수성 효과. 콤보가 깨지지 않는 한 초반에 공필두를 상대할 수 있는 화신은 거의 없다.
멀리서 비명 소리가 들려오더니 상처입은 건물주 연합원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날카로운 장도에 다친 흔적들. 이지혜가 움직인 것이었다.
김독자는 이현성에게 지금이라며 신호를 주었다.
[등장인물 '이현성'의 특성이 진화합니다!]
눈부신 빛살과 함께 이현성의 몸에 은빛 아우라가 감돌기 시작했다. 강철검제 이현성이 최강의 조연일 수 있었던 이유.
[등장인물 '이현성'이 '태산 부수기 Lv.1'를 사용합니다!]
적어도 '한 방'으론, 멸살법 최강으로 손꼽히기 때문이다.
이현성의 주먹에 모여든 마력이 응집되더니 이내 이현성의 팔이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거대해진 이현성의 주먹이 그대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거대한 진동과 함께 지하 2층 지반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그린 존'이 파괴됐습니다.]
[등장인물 '공필두'의 '사유지'가 파괴됐습니다.]
이현성의 진화를 서두른 것도, 사유지를 파괴하고 공필두를 사유지에서 나오게 만들기 위해서었다. 작전은 성공했다. 그린 존은 사라졌고 건물주들은 '방'을 잃었다.
무슨 짓이냐며 소리치는 비형의 목소리가 먼저 귓가로 날아들었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성좌들의 메시지와 비형의 말을 대충 무시하고 '등장인물 일람'으로 이현성을 확인했다.
이현성의 진화는 무사히 성공했다. 겨우 첫 발일 뿐이지만.
이현성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태산 부수기]급 성흔은 체력과마력을 엄청나게 소모하는 궁극기니 당연한 일이었다.
지하 곳곳에 흩어져 있던 일행들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맡은소규모 그린 존을 전부 부쉈다고 했다.
계속해서 유난을 떠는 비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채널도 있는 충무로역에서 이런 짓을 하는 것에 많이 당황한 것 같았다.
당연히 공필두를 데리고 있는 채널에선 성좌들이 난리가 났을 것이 뻔했다.
공필두는 '유희 찾기' 집단이 주력인 비류 채널에 있었다.
그렇다면 김독자의 행동은 반응이 훨씬 뜨거울 것이다. 그동안 '고구마'를 먹고 있었을 테니까.
4호선 환승 계단으로 내려가자 이지혜가 보였다.
이지혜도 맡은 그린 존을 전부 부쉈다고.
이걸로 충무로역에 더이상 남은 방은 없었다.
갑자기 발생한 현상금 시나리오. 김독자를 해치우는 시나리오였다. 점점 사람들이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독자는 걱정하지 않았다.
멸살법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반복된 회귀로 미쳐버린 유중혁이 그린 존을 전부 부숴버렸을 때, 메인 시나리오 시스템이 폭주했다.
그린 존 시나리오가 폭주하면, 남은 시간 동안 생성될 예정이던 괴물을 한 번에 뱉어내게 된다. 쉽게 말하자면, 디펜스 게임이 시작되는 것이다.
김독자를 향해 다가오던 사람들이 당황하며 소리쳤다.
잠시 후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는 괴물들의 그림자가 보였다.
일행과 김독자는 환승길로 달려갔다. 그러곤,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직접 맞서 싸우라며 신념의 칼날을 올라가는 계단에 박아 넣었다. 아무도 올라오지 못하도록.
김독자는 책갈피 3번을 사용해 천인호의 '선동' 스킬을 활성화시킨다. 스킬로 공필두와 사람들이 함께 싸우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사람들을 선동한다.
공필두의 [무장 지대]는 한 번 설치할 때마다 시간이 걸린다.
공필두가 [무장 지대]를 설치하는 동안 사람들은 싸우며 시간을 끌었다. 전투 불능이 된 사람들은 유상아가 [실 묶기]를 사용해 하나하나 구출했다.
그동안 현상금 시나리오의 시간이 만료되어 김독자에게 걸려있던 현상금이 사라졌다.
마침내 공필두의 '사유지'와 '무장지대'가 발동되었다.
포탑들은 삽시간에 제각기 발포를 시작했고, 괴물들의 기세가 주춤해졌다. 공필두의 배후성인 '디펜스 마스터'의 후원이 계속되는한, 공필두는 죽지 않을 것이다.
전투가 시작된지 한 시간이 지나도록 공필두는 계속 싸웠다[31]. 공필두가 괜히 십악 중 '최강의 방어'로 손꼽히는 것이 아니었다. [무장 지대]를 종일 사용하는 만큼 스킬 레벨업 속도도 빨랐다. 공필두의 배후성도 후원을 퍼붓고 있었다.
시나리오에 따르면 공필두는 앞으로 일곱 시간을 더 버텨야 했다.
김독자는 넌지시 이지혜에게 유중혁이 던전에 들어간 시간을 묻는다. 오전 9시 정도. 던전에 들어간지 벌써 열한 시간이 지났다.
비류의 채널에서 비형의 채널로 이동하는 성좌들이 들어 구독좌가 늘어난다며 히죽거리던 비형에게[32] 김독자는 도깨비 보따리를 열라고 말한다.
비형은 투덜거리며 광고를 내보낸 후 도깨비 보따리를 열어주었다. 김독자는 5000코인을 소모해 골드 멤버로 승격하고는 배후 계약서와 중급 마력 회복의 물약 10개를 구입했다.[33]
김독자는 꼼꼼히 계약서를 작성하곤 반응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공필두의 배후성이 한계에 달하자 다른 채널로 메시지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모든 성좌가 돈이 많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김독자는 '디펜스 마스터'에게 계약을 제안한다.
일부 계약 항목을 수정하고 계약을 성립시켰다.
계약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1.화신 김독자(갑)은 성좌 디펜스 마스터(을)의 재산권을 인정하며, 공필두의 생존권을 보장해야 한다.
2. 갑은 공필두의 지속적 성장을 위한 보조 및 지원을 꾸준히 행해야 한다.
3.갑은 현 시간부로 공필두에 대한 명령 권한을 가진다(일일 최대 10회).
김독자는 유상아를 통해 공필두에게 회복 물약을 건네주었다.
유상아에게 40분 정도마다 하나씩 주라고 말해두었다.
그때 비류의 채널이 구독좌 감소로 강제 종료되었다.
김독자는 급하게 정희원과 이길영, 이지혜를 데리고 유중혁을 구하러 향한다. 김독자의 예상대로라면, 유중혁은 '개복치 루트'를 타는 중일 터였다.
[Ep.9 전지적 개복치]
곧장 지하 1층에 있는 히든 던전 입구로 향했다
이지혜와 성좌들이 유중혁을 구하려는 김독자의 의중을 궁금해했다. 쓸모 있는 놈이라서 라고 대충 대답하고는 상념에 잠긴다.
사실 유중혁이 죽으면 이 세계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회귀자와 함께 리셋이 되는지, 아니면 또 다른 평행우주의 분기로 갈라질지. 김독자가 불안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이길영이 상념에 잠겨있던 김독자를 깨웠다. 목적지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김독자와 일행들은 히든 던전에 들어간다.
그리고 나타난 히든 시나리오 극장 던전.
극장 던전의 주인을 처치해야한다.
곧장 극장 내부로 진입하자 걱정과는 달리 황량했다.
지하 1층부터 8층 까지, 총 아홉 층으로 이루어진 멀티플렉스.
극장 던전의 핵심은 벽에 붙은 '포스터'에 있다.
포스터가 전부 찢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포스터마다 깃든 관문을 유중혁이 모조리 격파하며 위층으로 올라간 것 같았다.
지상 1층으로 발을 옮기려는 순간 이길영이 김독자를 붙잡았다.
이길영의 머리 위에서 바퀴벌레가 걱렬하게 더듬이를 움직이고 있었다.
숨을 죽이자 작은 인기척이 들려왔다. 바로 위층. 하지만 유중혁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들려오는 이야기 소릴 따라가니 네 명의 사내가 1층 로비에 모여 있었다.
네 명의 사내는 <선지자들>에 대해 이야길 하고 있었다.
김독자는 멸살법에도 나오지 않던 사람들이 있다는 말에 당황하고 만다. 들어가자고 말하는 사내들의 위에서 청색 스포트라이트가 켜지더니 이윽고 사내들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정희원이 무슨 상황인지 물었지만, 김독자는 대답 대신 벽면을 살폈다. 찢기지 않은 포스터는 하나 뿐이었다.
그 순간, 청색 스포트라이트가 일행을 겨누더니 서서히 주변 풍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영화 속에 있었다.
갑자기 이길영의 앞으로 거대한 사마귀를 닮은 곤충[34]이 튀어나왔다. 이길영은 거대 사마귀와 대화를 나누었고, 곧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길영이 김독자를 돌아보기 무섭게 지축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대한 파충류, 티렉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 앞에 몇몇 사내가 피투성이가 된 채 이쪽으로 달려오는 중이었다.
김독자는 칼을 뽑으며 모두에게 준비하라고 말한다.
이곳은 영화속. 탈출하려면 엔딩을 만들어야 한다.
[7급 지룡종, '티라노사우루스 렉스'가 당신을 인식했습니다.]
['티라노사우루스 렉스'가 스킬 '포식 공포'를 발동했습니다!]
[전용 스킬, '제4의 벽'이 '포식 공포'의 효과를 차단합니다.]
굳어있던 정희원과 이지혜가 김독자의 고함에 정신을 차렸다.
김독자는 이길영을 안고 뒤쪽으로 달렸다.
큼지막한 꼬리가 전방의 수림을 모조리 부수며 날아들자, 달려오던 사내들이 등을 맞고 피를 토하며 나가떨어졌다.
[인물 '이길영'이 스킬 '공룡 도감'을 발동합니다!]
이길영이 티라노사우루스는 시야가 좁아 사각의 공격에 취약하다는 점을 알려주었다. 정희원과 이지혜가 후방에서 공격하며 타격을 주고 있었고, 이길영도 거대 사마귀를 조종해 티렉스의 시야를 교란했다. 김독자는 부러지지 않는 신념에 남은 마력을 집중시켜불꽃 에테르를 두른채 꼬리를 밟고 올라가 티렉스의 표피에 마구 칼날을 박아댔다.
그리고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를 사냥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
[극장 주인이 바뀐 엔딩에 만족합니다.]
극장 던전의 공략법은 극장 주인이 원하는 엔딩을 만드는 것.
참고로 이 극장 주인은 극도로 '사이다' 전개를 고집한다.
김독자는 먼저 들어온 사내를 발견했다. 그러나 이미 회생은 불가능해 보였다. 할 수 없이 급한 질문부터 꺼냈다. <선지자들>이 누구인지. 계시를 받은 자들이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멸살법 속 그와 비슷한 능력은 안나 크로프트만 가진 '미래시'뿐.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이었다.
김독자와 일행은 잠시 휴식을 취했다.
김독자가 살펴본 티렉스의 사체에 괴수종의 핵은 없었다. 마력 불꽃으로 익힌 티렉스의 살점에서 모락모락 김이 올라왔다. 일행들은 큼지막한 살점들을 하나씩 집고 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상급 괴수종의 고기라 그런지 포만감과 함께 체력이 회복되었다.
적당히 휴식을 취하고 섬 중앙 연구소로 향했다.
실험실 곳곳에 플라스크와 앰플이 즐비했다.
김독자는 일행들이 정신이 팔린 틈을 타 능력치를 레벨업 할 수 있는 앰플들을 챙기기 시작했다.족히 스무 병에 달하는 엄청난 양. 이거라면 폭발적으로 능력치 레벨업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금방 이지혜에게 들킨 김독자는 공평하게 하자며 가위바위보를 제안한다. 김독자는 싱긋 웃으며 전지적 독자 시점을 발동했다.
속내를 읽을 수 없는 이길영에게 앰플 두 병을 주고, 체력 강화 앰플 두 개를 정희원에게 주었다. 이지혜는 앰플을 하나도 먹지 못했다.[35]
헬리콥터를 타고 다음 층으로 가기 위해 올라가던 이길영은 거대 사마귀를 데려가고 싶어했다. 아쉽게도 극장 던전에서 만들어진 괴수는 다음 층으로 이동할 수 없었지만. 이길영은 벌써 티타노란 이름까지 붙여준 사마귀와 작별인사를 한다.
괴수는 다음 층으로 이동할 수 없지만, 아이템은 가능했다.
김독자는 [폭군 티렉스의 DNA 앰플]을 들고 있었다.
섭취 시 삼십 분간 모든 능력치를 10레벨씩 높여주는 아이템.[36]
어느새 어두운 하늘의 정경이 무너지고 있었다. 엔딩에 도달한 것이다. 출연료로는 500코인이 지급되었다. 나와 보니 일행이 탈출한 영화 포스터가 찢어진 채 붙어 있었다.
일행은 곧장 2층으로 향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2층의 포스터는 모두 찢겨져 있는 상태였다. 이쯤되니 일행들도 포스터가 멀쩡한 영화들만 상영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3층도 모든 포스터가 찢겨져 있었고 4층에 진입했다.
사실 김독자는 조금씩 불안해하고 있었다. 멸살법에도 나오지 않은 포스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포스터를 찾을 시간도 없이 상영이 시작되었다.
배경이 바뀌었고 탁 트인 수평선이 눈앞에 펼쳐졌다.
유람선 안쪽에서 들려오는 바이올린 서리와 사람들의 사담 소리.
굉장히 로맨틱한 분위기가 풍겨왔다.
뒤를 돌아보니 이지혜가 토를 하고 있었다. 뱃멀미 때문에.
이 영화는 아마도 그 영화인것 같았다. 배가 침몰하는.
생각해보니 이 영화엔 악역이 있었다.
때마침 악역이 나타났고, 납치 감금을 했지만 극장 주인은 반응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악역을 죽이고 엔딩을 맞이했다.
물론 출연료도 받았다.
5층은 보상의 방. 원래는 영화 소품을 전시해놓던 공간이지만 이젠 소품이 아니었다. 1인당 2개만 아이템을 가져갈 수 있었기에 정희원은 [미카즈키 무네치카] 도검과 유상아가 쓸 만한 아이템을, 이길영은 [묠니르] 둔기를, 김독자는 이현성에게 줄 [헤라클레스의 방패 ] 방패와 [외장 강화 수트] 방어구[37]를 챙겼다.[38]
6층에선 이미 김독자가 본 적있는 스릴러 영화가 나와 빠르게 범인을 죽이고 끝냈다. 영화의 특징 때문인지 보상으로 나온 아이템도 특이했다.
[스킬북 : '냉정한 관찰력[39]'을 얻었습니다.]
[전용 스킬, '냉정한 관찰력'을 획득합니다.]
일행은 곧바로 7층으로 올라갔다. 이번에야말로 유중혁을 볼 수 있을거라 생각했건만 7층의 포스터도 대부분 찢겨 있었다. 그렇다면 유중혁은 보스 방에 있다는 뜻.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포스터가 아직 살아있었다. 상영이 시작되었고, 바다가 나타났다. 매캐한 포연과 판옥선의 까칠한 감촉이 느껴졌다.
조선 수군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주변에서 황급히 포를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바다를 뒤덮은 적선. 김독자는 황급히 전력을 확인했다. 분명히 열두 척이 잠아 있어야 할 판옥선이 한 척밖에 없었다. 이순신 장군도 없는 채로. 극장 주인이 이야기를 바꾸어 버린 것이다.
김독자는 황급히 이지혜를 찾았다. 성좌 '해상전신'의 독려에도 못 한다며 헛구역질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지혜가 충무공의 선택을 받은 이유. 충무공의 전우, 전라우수사 이억기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충무공과 당항포•한산도 대첩을 승리로 이끌고 충무공이 억울하게 조정에 잡혀갔을때 이순신을 변호해준 몇 안 되는 전우. 그러나 충분한 설화가 남지 않아 위인급 성좌가 되지 못한 인물.
[현상금 시나리오가 도착했습니다.]
이지혜를 독려하여 명량 해전을 승리로 이끌어라.
성좌가 단독으로 현상금 시나리오를 요구한 것이다.
그래선지 보상이 남달랐다. 충무공의 성흔 중 하나.
김독자는 이지혜를 흔들었다. 김독자는 알고 있었다. 이 영화가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 이지혜가 죽인 친구가 좋아하던 영화라는것을. 그렇기에 김독자는 말한다. 살아남았으면 책임을 지라고.
[등장인물 '이지혜'에 대한 당신의 이해도가 상당합니다.]
성좌는 제멋대로다. 그러나, 어떤 성좌도 자기 '설화'의 무대가 되는 장소에서만큼은 화신을 외면하지 않는다.
[성좌, '해상전신'이 화신 '이지혜'의 의지에 반응합니다.]
이지혜는 '유령 함대' 성흔을 획득했다. 훗날 그녀를 해상제독으로 만들 최강의 성흔을.
해역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물줄기와 함께 바다에서모습을 드러낸 열두 척의 유령 함선. 적선들에게서 날아온 포탄에도 어떠한 피해도 입지 않은채 진격했다. 발포를 개시하자, 앞길을 막고 있던 적선이 무너졌다. 적군이 궤멸될 때까지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엔딩에 도달했다. 김독자는 현상금 시나리오의 보상으로 성흔, '칼의 노래'를 습득했다. 김독자는 탈진한 이지혜에게 쉬고 오라며 두고, 코인과 모든 앰플로 능력치를 강화했다. 그리고 마지막 계단을 올랐다.
8층은 옥상이었다. 유중혁의 뒤통수가 보였다. 생각보다 멀쩡한채로. 김독자는 그대로 달려가 뒤통수를 내갈겼다. 그러나 유중혁이 돌아보질 않았다.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선 김독자는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알게 되었다. 8층 안쪽 의자에 앉아있는 노인, 극장 주인 시뮬라시옹.
유중혁은 조종당하고 있는 상태였다.
유중혁의 전신에서 살기가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김독자는 유중혁의 공격에 수많은 앰플을 마셨음에도 한 방에 날아가 옥상의 측면에 처박혔다. 유중혁은 예상보다도 훨씬 강했다. 정희원도 달려들었지만 유중혁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등장인물 일람으로 확인해 보니 역시 새로운 성흔이 활성화 중이었다. 성흔 [전승]. 과거 회차의 유중혁이 가졌던 스킬을 차츰 깨어나게 만드는 성흔이다.
아래층에서 이지혜가 올라온 것은 그때였다. 정희원과 이지혜는 눈빛을 주고받더니 동시에 유중혁을 향해 움직였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김독자는 이길영에게 뭔갈 부탁하곤 '폭군 티렉스의 DNA 앰플'을 사용했다. 김독자의 능력치가 유중혁을 압도할 정도로 높았으나 유중혁은 밀리지 않았다. 도리어 김독자가 밀릴 판이었다.
김독자는 전지적 독자 시점 2단계를 발동했다.
괴로워하는 유중혁의 생각들이 머릿속으로 밀려들었다.
김독자는 화가 치밀어 올라 유중혁에게 소리치며 공격했다.
개복치는 사실 무척 튼튼한 생물이다. 그런데도 잘 죽는 이유는 스트레스의 취약하기 때문이다. 마치 유중혁처럼.
김독자는 자신이 혼자라고 생각하는 유중혁에게 분노해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멸살법을 읽으며 살아온 자신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김독자는 부러지지 않는 신념에 불꽃 에테르를 두르고 성흔 '칼의 노래[40]'를 발동했다. 깃든 것은 《난중일기》의 한 구절. 불꽃의 에테르가 화살의 형상을 이루더니 유중혁에게 폭격을 쏟아부었다.
전신을 태우는 불길 속에서 유중혁의 움직임이 멈췄다.
[불꽃 내성]이 있으니 심각한 타격을 받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행동 불능에 빠지긴 충분한 공격이였다.
김독자는 극장 주인을 향해 곧장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벌써 유중혁이 뒤쫓아오고 있었다.
김독자가 이길영을 소리쳐 부르자 하늘 정원 천장에 거대한 균열이 생겼다. 일반적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
깨진 돔 틈새로 거대한 곤충의 앞발이 파고들었다. 돔이 깨져나가며 옥상의 표면이 갈라졌다. 극장 주인이 경악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무려 히든 시나리오의 차폐 구역을 파괴할 수 있는 괴물.
[6급 충왕종, '티타노 프테라'가 출현했습니다!]
사마귀가 극장 주인을 향해 날아들자 유중혁이 막아섰다.
엄청난 폭음과 유중혁의 몸이 옥상 아래쪽으로 파고 들었다.
그럼에도 버티고 있었다. 유중혁은 괴물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강했다.
극장 주인이 유중혁을 보며 여유를 되찾자 김독자는 극장 주인을 향해 달렸다. 극장 주인이 김독자에게 '정신 침식'을 시도해 머릿속에 침투하자 김독자도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자아의 심연속에서 멸살법 페이지들이 요동쳤다. 그러더니 극장 주인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전용 스킬, '제4의 벽'이 발동합니다!]
그렇게 극장 주인은 소멸했다. 어째선지 경외에 젖은 표정을 지은채로.
시나리오 클리어와 극장 주인 처치로 도합 13000코인을 받고 아직 죽지 않은 유중혁을 살펴보곤 이길영을 끌어안았다.
천장을 뒤덮던 결계가 소멸하더니 메시지가 떠올랐다.
[세 번째 메인 시나리오의 종료 시간이 임박했습니다.]
옥상에서 주변을 돌아보자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희미한 새벽빛 아래로 폐허가 된 서울이 보였다. 이제 맹독 안개는 없었다. 건축물 아래에 깔려죽은 맹독 안개를 내뿜던 코뿔소와 서로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먼저 시나리오를 끝낸 사람들.
현재 서울은 투명한 돔 안에 고립된 상태였다.
멀리서 유성우가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유성우의 개수가 전보다 늘어났다. 곧 '홀'이 열린다는 징조.
이길영과 이지혜, 정희원은 손을 모은채 잠시 무언가를 빌었다.
이길영이 무엇을 빌었냐고 물어보자 김독자는 '어떤 소설의 에필로그를 보게 해달라고 빌었다'고 말했다.[41]
2.4. #4 - 깃발 쟁탈전
Episode 10. 미래 전쟁 ~ Episode 19. 특이점 |
2.5. #5 - 범람의 재앙
Episode 20. 범람의 재앙 ~ Episode 22. 세 가지 약속 |
2.6. #6 - 버려진 세계
Episode 23. 버려진 세계 ~ Episode 26. 시나리오 파괴자 |
[Ep.23 버려진 세계]
김독자는 심판관의 안내에 따라 명계의 출구로 향했다.
특수한 안대를 쓰고 있어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었지만.
한참을 걸어가고나서야 심판관이 안대를 벗겨주었다.
눈을 뜨자 좁고 오두운 샛길이 보였다. 뱃사공 카론을 통하지 않고 명계에서 나가는 출구인 모양이었다. 심판관은 앞을 찾는게 좋을거라며 조언을 남겼지만, 김독자는 이해할 수 없었다.
김독자가 뒤를 돌아보자 이미 심판관은 없었다. 할 수 없이 샛길을 따라 걸어갔다. 처음에는 벽을 짚으며 방향을 특정할 수 있었지만 나중엔 벽마저 없어졌다. 김독자는 문득 오르페우스의 신화가 떠올라 뒤를 보면 어떻게 될지 두려워졌다.
그때, 어둠 속에서 페르세포네가 보낸 메시지가 떠올랐다.
'앞'을 찾기 위해선 '뒤'가 어딘지 알아야 한다고.
그리고는 동기 부여가 필요해 보인다며 김독자의 앞에 빛이 떠오르게 만들었다. 그것은 41회차의 신유승.
목소리만으로도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다렸는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이미 세계선을 넘어가기 시작했다면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다를 것이었다.
김독자는 마음이 미어질 것 같았다. 오랫동안 기다렸을 텐데도 아직 더 기다려야했기 때문에. 41회차의 신유승은 기다리겠다며 자신을 구해달라는 말을 남기곤 사라졌다.
김독자는 페르세포네의 말이 이해되는 것 같았다.
이것이 자신의 '뒤'였고, 동시에 자신이 향해야 할 '앞'이었다.
김독자가 방향을 확신하자 페르세포네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김독자가 신유승을 되찾았을때, 얼마만큼의 '이야기'가 남아있을진 아무도 모른다고.
그 말을 끝으로 김독자는 돌아왔다. 날이 밝아 있었다.
[히든 시나리오 - '명계의 여왕'이 종료됐습니다!]
[히든 시나리오 보상으로 15000코인을 받았습니다.]
곧이어 김독자에게 새로운 히든 시나리오가 나타났다. 페르세포네의 과업. 목표물이 근처에 등장하면 자동으로 시나리오 알람이 발동된다고 한다.
김독자가 유상아를 찾아보니 근처 맨바닥에서 잠든채로 있었다.
김독자를 살펴보다가 방금 잠들었다고 신유승이 알려주었다.[42]
정희원과 이현성이 김독자에게 밤새 여섯 번째 메인 시나리오 공지가 떴다고 알려주었다. 생존자는 용산역으로 모이라는 메시지에 일행과 김독자는 용산역으로 이동했다. 인근이 이미 인파로 가득차 있었다.
김독자의 기억대로라면 여섯 번째 시나리오는 다른 돔과 함께하는 이벤트성. 허공에 뜬 거대 스크린을 보자 울창한 삼림을 뛰어다니는 괴수들과 화신들이 보였다. 일본인인 듯 했다. 도쿄 돔은 진도가 한국보다 빨랐으니 투입도 더 먼저 되었을 것이었다.
새로운 메인 시나리오가 도착했다. 물음표로 도배된 시나리오창.
일부 인원만 수행할 수 있는 시나리오라며 들려오는 목소리. 중립의 왕 전일도였다.[43]
전일도는 이전 시나리오는 지원자를 뽑아서 진행한다고 알려주었다.[44] 곳곳에서 사람들의 안도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독자는 전일도를 따라 왕들의 집결지로 향했다. 용산역 중심부에 있는 거대한 천막으로 가려진 회의실. 일행은 같이 들어갈 수 없기에 김독자 혼자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참석한 왕은 김독자를 제외하고 총 다섯 명이었다.
미희왕 민지원, 미륵왕 차상경, 중립의 왕 전일도, 방랑자들의 왕 이수경. 그리고 처음보는 여의도의 대통령이라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까지[45]
모두가 회의실에 모인 이유는 하나. 서울 돔의 초기 할당 인원이 총 10명 뿐이기 때문이다. 초기 할당 인원에 자기 세력을 다수 투입하며 시나리오 주도권을 가져올 생각인 것이다.
왕들이 다투던 중 나타난 유중혁. 시나리오에 참가할 인원을 발표하겠다고 나선다. 엄청난 살기를 뿜어대는 탓에 불만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중혁, 이지혜, 이설화, 이현성, 정희원, 이길영.
그러고는 나머지는 알아서 결정하라며 나가버린다.
덕분에 자신을 불러줄 줄 알았던 김독자가 크게 당황했다.
어차피 이제 남은 사람은 네 명. 왕들은 대장전으로 승패를 정해 이긴 왕이 할당을 전부 가지기로 한다. 결과는 김독자의 압승.
어떻게 이렇게 강한거냐며 묻는 민지원의 말에 김독자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곧 두 번째 할당이 시작될테니 그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과 신유승도 참여하겠다고 결정한다.
왕들이 하나둘 자리를 비우고 김독자의 먼저 가있으라는 말에 일행들까지 천막을 나가자 방랑자들의 왕과 김독자만 남게 되었다.
김독자는 가볍게 숨을 몰아쉬고는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에요, 어머니.
김독자는 어머니와 대화하다가 뻔뻔한 말투는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가만히 노려보았다. 북쪽의 재앙을 처치해주어 분명 도움은 되었지만 고맙다는 말조차도 하지 않았다. 김독자는 어머니를 증오하고 있기 때문에.
예전에 김독자는 교도소로 면회를 가서 멸살법 얘기만 했었다고 한다. 그 덕에 어머니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김독자는 어머니에게 죄수번호 406번을 단 할머니를 데려가게해달라고 말한다. 어머니는 그 대신 친구들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하고. 김독자는 이내 벙찌고 만다.[46]
허구를 현실로 생각하지 말라는 말에 분노해 천막밖으로 나온 김독자는 유상아와 마주친다. 어쩌다가 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할 수 없이 김독자는 자신의 사정을 말해준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였다고. 김독자의 아버지는 나쁜[47] 사람이었다. 가정 폭력, 도박, 보증. 하지만 어머니를 진짜로 싫어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지하 살인자의 수기》. 한 때 베스트셀러였던 책 . 그 책의 작가가 바로 이수경이었다. 그래서 기자들과 친구들, 사촌들까지 진짜냐고, 살인 한 걸로 돈버는 거냐고 김독자에게 물어왔다. 자신의 삶이 누군가에 의해 돈으로 팔려나가는 건,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48]
이야기를 들은 유상아는 가만히 손을 잡아 주었다.
두 사람은 손을 잡은 채로 걸었다.
역 입구에서 일행들이 달려왔다.
뒤 쪽에서 지팡이를 짚은 노파가 걸어 나왔다.
할머니는 김독자의 어머니의 그룹에 소속된 다른 방랑자와 마찬가지로 하늘색 수감복을 입고 있었다. 죄수번호는 406번.
인사를 나누곤 일행과 함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로 향했다.
이미 유중혁 일행과 왕들이 와 있었다.
그레이트 홀을 통해 새하얀 수정이 하늘에서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워프 그리스털]. 다음 시나리오로 이동시켜줄 아이템이었다.
김독자가 말을 쏟아내는데 갑자기 도깨비가 나타나 훼방을 놓았다. 다섯 번째 시나리오 진행 중에 차원이 뒤틀려 여섯 번째 시나리오로 간 두 사람 때문에 참가 가능 인원은 여덟 명이라고 긴급 공지를 한다. 유상아와 정희원이 빠지기로 했고 할머니는 이현성이 데리고 가기로 결정했다.
김독자는 떠나기 전에 유상아에게 방랑자들의 왕에게 전일도를 조심하라고 일러달라고 부탁한다. 이후 참가자들이 워프 크리스털에 다가갔다. 그리고 재앙을 잡고 획득한 호부를 홈에 끼웠다.
이내 워프 크리스탈에서 빛이 산란하며 푸른빛 차원문이 만들어졌고, 두 명식 차례로 입장했다.
김독자가 다시 눈을 떴을때 김독자와 신유승은 숲속에 있었다.
[메인 시나리오 #6 - '버려진 세계'가 시작됩니다!]
시나리오 메시지와 동시에 인군 수풀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최악의 상황은 먼저 도착한 타국 화신들. 다행히도 나타난건 7급 괴수종, 스틸울프였다.
보통의 집채만한 괴수들에 비해 지금 나타난 스틸울프들은 보통 늑대 크기였다. 숫자는 대충 열댓 마리. 신유승의 [상급 다종 교감]과 김독자의 신념의 칼날으로 해치웠다. 그러고 보니 숲의 상태도 이상했다. 큰 숲을 이룰 정도의 나무임에도 김독자의 키보다 조금 큰 정도에 불과했으니까.
시나리오도 아직 거의 물음표로 채워져 있었다. 김독자는 살짝 점프해서 주변을 살피고는 숲이 아닌 곳을 발견했다. 그러고는 김독자와 신유승이 샛길을 따라 달려갔다[49]. 얼마 지나지 않아 평원 지대가 나타났다.
그곳엔 한 무리의 병력이 있었다. 적어도 수백은 될듯한 병력이 평원 일부를 메우고 있었다. 분명 외계어 일텐데도 대화소리가 한국어처럼 자연스럽게 들렸다.
무수한 인파가 무기를 김독자와 신유승에게 무기를 겨누었다.
평소라면 압도되고도 남을 법한 광경. 그들이 소인이 아니었더라면. 그들은 전부 주먹만 한 키의 소인이었다. 신유승이 불쌍하다며 조금씩 물러났다.
그때 떨어진 곳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김독자와 신유승에게 달려들던 소인들이 전부 달아나기 시작했다. 멀리서 누군가가 소인들을 밟아 죽이는 중이었다. 그쪽에는 세 사람이 있었다. 머리에 염색을 한 사내, 도끼를 쥔 대머리 사내, 일본도를 쥔 사내.
그들은 이즈미란 사람에 대한 이야길하고 있었다.
일본도를 쥔 사내가 말렸지만 다른 두 사내는 무참히 소인들을 죽였다. 대머리 사내가 바닥에 도끼를 내리꽃자 소인들이 벌레처럼 질려나가며 절규했다.
김독자의 곁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신유승이 질린 목소리를 냈다. 대체 뭐냐고.
그리고 활성화된 메인 시나리오.
여섯 번째 시나리오에서 그들은 '재앙을 막는' 역할이 아니다.
[당신은 행성 '피스 랜드'의 '재앙'이 됐습니다.]
그들은 세계를 파괴하는 재앙이었다.
[Ep.24 바꿀 수 있는 것]
현재 시나리오에 참가 중인 국가는 일본과 한국. 일본 측 화신의 학살로 평원에는 피바람이 불고 있었다. 재앙의 임무를 수행하라며 경고하듯 날아든 메시지에 김독자와 신유승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중급 도깨비 바울이 공중에 있었다.
벌써 일본은 3차 투입. 예상대로 '도쿄 돔' 화신들은 시나리오를 빠르게 수행하는 것 같았다. 멀리서 일본 측 화신들 목소리가 들려왔다. 총수 쪽에 서겠다는 대화.
총수. 멸살법에서도 나오는 강자의 별명.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총수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현재 일본 최강은 이즈미 히로키여야 하니까.
흥미로운 대화가 나오려던 찰나, 현상금 시나리오를 받은 일본인이 소인을 죽이기 위해 양손에 파란 불꽃을 피웠다. 그리고 그 앞을 가로막는 사내. 등장인물 일람에 따르면 이름은 미치오 쇼지. 현재 배후성이 없으며 어떻게 여기까지 살아남았는지도 의문일 정도의 상태였다.
그러나 이즈미도 렌도 없다는 말에 미치오 쇼지는 절망하고 일본인 두 명은 소인 학살을 시작했다. 소인들도 반격에 나서지만 가눌이 재앙의 패널티를 일부 해제하며 한 방에 백 명이 넘는 소인들이 한꺼번에 피 분수를 내뿜으며 갈라졌다.
이 작은 행성의 성좌가 하지 말라달라고 호소해도 소용이 없었다. 너무 작은 성좌라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신유승이 나섰다. 김독자와 신유승은 저들과 싸우면 시나리오가 어려워질 것임을 알고도 소인들을 구하기 위해 나선다.
어느새 재앙의 개연성 제약이 돌아오자 그것을 신호로 김독자와 신유승이 동시에 움직였다.
[<스타 스트림>이 당신에게서 이상 징후를 감지했습니다.]
[경고합니다. 같은 재앙을 적대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적대 행위가 누적될 시 심각한 페널티를 받게 됩니다.]
김독자는 지금 저들을 살해하면 페널티로 인해 앞으로의 계획을 그르칠 수도 있어 잠시 고민한다. 그러자 신유승이 유상아에게 받은 단도를 꺼내 혼자 나선다. 신유승이 달려나감과 동시에 김독자는 은둔자의 망토로 모습을 감췄다.
등장인물 일람으로 확인해 보니 현재 두 사내의 능력치는 그럭저럭 이었다. 걸리는 것이 있다면 두 사람의 배후성. 보통은 '검객'이나 '사무라이'여야 했는데, 두 사내의 배후성은 모두 요괴였다.
신유승은 유상아에게서 배운 이라크네의 거미줄을 이용한 고속 이동과 스킬 '상급 다종 교감'으로 두 사내을 모두 죽였다.
이변이 일어난 것은 그 순간이었다. 이 시나리오에서 재앙의 자격을 포기하면 소인이 되어버린다. 신유승은 어느새 작아져 잿더미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아져버렸다. 김독자는 조심스레 신유승을 감싸들었다.
김독자는 미치오 쇼지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떠오른 메시지. 1시간 안에 피스 랜드의 지배종을 살해하지 않거나 재앙을 적대하면 김독자도 소인이 될 터였다.
한 시간 안에 김독자는 '재앙의 왕'을 사냥해야 한다.
김독자는 전지적 독자 시점 2단계를 사용하며[50] 미치오 쇼지와 대화를 나누었다.[51] 도쿄 돔의 절대왕좌에 올랐던 이즈미가 없어졌다고.
그래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이곳에 와있었다고 했다.
어느새 귓가에서 벌레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김독자는 신유승의 도움으로 길영이가 2조랑 만났다는 것을 전해듣고 김독자도 말을 전한다.
숲 중심지에 다다르자 작은 공터가 나타났다. 일본 측 초기 투입자들이 만든 본진인 모양. 근데 뭔가 이상했다.
[당신은 '귀진'에 진입했습니다.]
['귀진'의 효과로 당신의 종합 능력치가 감소합니다.]
만약 이게 이즈미의 [백귀진]이라면 서있는 것조차 힘들어야 했다. 즉, 이 기술은 백요의 왕이 펼친 것이 아니라는 것.
김독자가 찾던 뱀의 화신이 근처에 있는 듯 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16분. 인외종들이 김독자를 유중혁으로 착각하더니 주위를 포위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을 공격할 수 없었다. 페널티가 있으니까. 그런데 인외종들은 김독자가 자신들을 공격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일행이 소인이 된 채로 붙잡혀 있었다. 이미 재앙을 해치운 모양이었다.[52]
김독자는 인와종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며 왜 적대하는지 물었다.
인외종은 한국인 남녀 한 쌍이 먼저 적대해왔다는 대답을 해주었다.
충분히 가까워졌을 무렵, 김독자는 바람의 길로 인외종들을 밀어냈다. 인외종들이 일제히 나동그라지자 김독자는 그 틈을 타 일행들을 구출했다.
그리고 총수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아마도 총수는 뱀일 기능성이 높았다. 머지않아 나무 밑동에 걸터앉아 있는 노신사를 발견했다. 바로 총수. 총수는 옆구리에 새장을 끼고 있었는데, 새장 안에는 그가 잡아먹은 소인들의 뼈로 가득했고, 여자 소인 한 명이 있었다. 아무래도 아스카 렌인 모양.
김독자는 [등장인물 일람]을 사용하고선 당황하고 만다.
총수가 뱀의 화신이 아니었기 때문. 총수 야마모토 하지메의 배후성은 '만년백각오공'. '만 년 묵은 지네'라는 뜻이었다.
곧이어 연계된 메인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소인종의 편에서 '명망 높은 재앙'을 처치하라. 명망 높은 재앙은 두 명. 그 중 한명이 야마모토 하지메였다.
남은 시간은 십 분. 어쩔 수 없이 해치워야 한다. 야마모토 하지메는 페널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김독자에게 철저히 불리한 싸움이었다.
김독자는 '간평의'를 꺼내 '모순의 음양사'를 불렀다.[53]
[성흔, '음양오행 Lv.1'이 '귀진'의 기운을 배제합니다.]
[성흔, '시키가미 Lv.1'가 술자와 요괴의 움직임을 봉쇄합니다.]
[시카기미]는 요괴에게 치명적인 성흔. 이 성흔을 사용하는 한 인근 인외종은 움직일 수 없다. 단점이라면 술자 본인도 움직일 수 없다는 것. 모순의 음양사. 아베노 세이메이. 일본 최강의 요괴 봉인사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마력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오래 버틸 수 없었다. 김독자는 죄수번호 406번 할머니에게 신호를 주었고, 할머니가 움직였다. 할머니의 몸이 급격히 커지기 시작했다. 사실 할머니는 소인화에 걸린 적이 없었다. 전우치가 걸어준 도술 덕분에 작아진 채 들아왔었던 것이다.
[등장인물 '이복순'이 성흔 '내림굿 Lv.2'을 준비합니다!]
할머니의 배후성은 '무당왕'. 신라의 제2대 국왕이자 무당인 '남해 차차웅'이었다. [내림굿]은 신내림우로 다른 성좌의 힘을 빌려 쓸 수 있는 사기급 성흔.
그녀에게 <지네장터> 설화의 주인공인 '오공원 두꺼비'가 강신했다. 「무대화.」서로 관계된 성좌의 화신이 만나면 빚어지는 현상. 찰나였지만 주변의 풍경이 동굴로 바뀌었다. 만년백각오공이 사망한 장소. 겁에 질린 야마모토가 비명을 질러 댔다. 그러나 할머니는 빙긋 웃었다.
본래 격이 같은 성좌끼리의 대결은 단시간에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역사적 상성이 정해져 있다면 다르다. 특히나 무대화가 발생한다면 성좌들의 상성은 절대적이었다.
['무대화' 영향으로 '두꺼비의 파란 불'이 본래 힘을 되찾습니다.]
[성흔, '시키가미'의 효과로 '두꺼비의 파란 불'의 공격력이 300퍼센트 상승합니다!]
두꺼비처럼 부풀어 오른 할머니의 목울대에서 새파란 불이 쏟아졌고 야마모토는 새까맣게 타버리고 말았다.[54] 그가 쥐고 있던 새장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고. 새장을 받아든 할머니가 새장에 붙은 불을 껐다.
할머니의 몸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김독자는 할머니를 주머니에 넣고 소인종을 구해주고 받은 옷을 할머니가 입도록 했다.
책갈피의 남은 시간은 십 분. 그러나 '소인화' 페널티를 받을 때까지 남은 시은 고작 5분이었다. 김독자는 새장 속에서 아스카 렌을 구하고는 '바람의 길'로 달려갔다.
어느새 피스 랜드에 밤이 찾아오며 모습이 변하고 있었다.
멸살법에 따르면 피스 랜드의 숲 지대는 밤이 오면 일종의 미로화가 발생한다고. 김독자는 아스카 렌의 지시에 따라 숲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당신은 제한 시간 내에 '소인종'을 사냥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에게 3차 시나리오 페널티가 내려집니다.]
[소인화가 시작됩니다.]
금세 김독자는 작아지고 말았다. 다행히 코트는 김독자의 몸에 맞게 줄어들었고 코트의 아공간 속에 아이템을 넣어두었기 때문에 잃어버린 아이템도 없었다.
김독자는 '베로니카 왕성'까지 일행을 데려다 달라고 아스카 렌에게 부탁한다[55]. 이길영 덕분에 일행들은 곤충을 타고 멀어져갔다. 김독자는 '시키가미'로 추격자들이 일행을 쫓지 못하게 만든다.
머릿속에서 '모순의 음양사'의 희미한 진언이 들려왔다.
'모순의 음양사'는 김독자에게 뱀을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본래 김독자의 '뱀 사냥' 계획은 이즈미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즈미는 행방불명에 이복순 할머니는 힘을 다 써버렸으며, 간평의 횟수조차 소진되어버렸다.
이즈미의 배후성은 김독자가 알기론 '뱀을 베는 자'. 그러나 '모순의 음양사'는 이즈미의 배후성이 그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정보는 개연성을 거스르기 때문에 들을 수가 없었다.
['간평의'의 사용 시간이 30초 남았습니다.]
달아나기 위해 머리를 굴리던 김독자 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성좌, '디펜스 마스터'가 당신의 한심함에 개탄합니다.]
그러더니 발동되는 공필두의 [무장요새].[56] 인외종들이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곧이어 재앙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김독자는 공필두와 한수영을 만났다. 그런데 다시 만난 한수영은 피스 랜드의 여신이 되어 있었다. 한수영의 본모습을 처음 봐서 누군지 묻는 일행들에게 김독자는 할 수 없이 거짓말로 자신의 친구라고 소개했다.
공필두와 한수영은 다섯 번째 시나리오 진행중 각각 한강에 빠지고 버스에 치여 여섯 번째 시나리오로 왔다고 한다. 베로니카 왕성이 습격당하던 도중에 한복판에 떨어진 공필두와 한수영은 재앙들을 죽여버렸고 신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어느새 일행은 왕성에 도착했다. 재해 때문에 수척해진 군중이 마중나왔다. 이 곳의 사람들은 소드마스터도 대마법사도 없는데다 '시스템' 조차도 사용이 제한된, 아무리 노력해도 이계인들에게 침탈당할 수밖에 없는 '정통 판타지'의 사람들.
김독자는 아스카 렌에게 한국 그룹에 합류해달라고 부탁한다.
[Ep.25 신과 마주 보는 자들]
왕성 베로니카에 도착하고 일행은 하루를 내리 쉬었다.
다음 날 아침 김독자는 왕성 입구에서 일행들에게 계획을 통보했다. 김독자와 한수영과 아스카 렌은 함께 이동할 것이고 나머지 일행은 남아서 성을 지키기로.
김독자와 한수영, 아스카 렌은 동쪽 기암괴석 지대로 향했다.
명망 높은 재앙 '재앙의 왕'을 찾을 생각이었다.
김독자는 왜 이즈미 히로키가 '재앙의 왕'이 된건지 묻는다.[57]
아스카 렌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스카 렌은 소인들과 싸우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총수와 대부분이 반대하면서 동료와 싸웠고, 아스카 렌은 소인을 지키기 위해 동료를 죽이고 소인이 되었다.
그래서 이즈미 히로키는 아스카 렌과 동료를 구하고 재앙이 된 동료를 통제하기 위해 스스로 재앙의 왕이 되기를 선택했다고 한다.
아스카 렌이 말하던 도중 떨기 시작하자 김독자는 '전지적 독자 시점' 2단계를 발동했다. 아스카 렌이 본 이즈미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김독자는 아스카 렌의 배후성이 누구인지 알게된다.
여덟 머리의 군주, 야마타노오로치. 약칭은 '뱀'.
본래 이즈미 히로키의 배후성은 '뱀을 베는 자'였다. 그런데 '뱀'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여덟 머리의 군주'는 화신과 영혼 계약을 맺고 초반부터 강력한 힘을 주지만, 화신체의 통제권을 조금씩 앗아간다.
당장 해치우러 가자는 한수영의 말에 김독자는 준비가 필요하다며 기암괴석 지대로 가는 것은 만날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 알려주었다. 피스 랜드 출신의 강자를 만나러 간다는 말에 한수영이 헛웃음을 흘렸다. 지금까지 본 피스 랜드 사람들은 전부 약했기 때문이다.
어째서 도깨비들이 이런 세계관으로 시나리오를 짰는지 모르겠다며 흥분하던 한수영은 고개를 숙인 아스카 렌을 보곤 말을 멈추었다. 아스카 렌은 한참을 머뭇거리다 말을 꺼냈다. '피스 랜드'는 자신이 그린 만화라고.
그때 은신해 있던 사람들이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한수영이 시간을 끌어주기로 하고 김독자는 아스카 렌을 잡고 뛰었다. 키리오스를 찾기 위해.
아스카 렌은 그런 등장인물은 없다며 부인했다.
그러나 김독자는 자신이 만든 이야기에 책임을 지라며 그녀를 설득했다. 아스카 렌은 김독자의 진심에 감응했다.
[등장인물 '아스카 렌'의 특성 '피스 랜드의 창조주'가 활성화됐습니다!]
아스카 렌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길이 생겨났다. 김독자는 길을 따라 달렸다. 그러나 어느새 재앙에게 따라잡히고 말았다.
그때 주변 공기가 뒤바뀌었다. 누군지 묻는 고고한 목소리가 들련왔다. 그 강력한 재앙들도, 뇌전 단 두 발에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존재는 분명 소인이기 때문이다.
혼절하는 아스카 렌을 보고 김독자는 자신이 누굴 대면했는지 실감했다. '피스 랜드' 출신 귀환자 키리오스 로드그라임.
귀환자. 특별한 재능을 타고나 스타 스트림의 축복 속에서 인간을 초월한 자. 그중에서도 키리오스 로드그라임은 더 특별했다. 멸살법 전체를 통틀어도 이렇게나 강한 귀환자는 채 얼 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독자는 자신을 제자로 받아달라고 부탁한다.
곧바로 거절당했지만. 그래서 김독자는 [백청강기]를 보여주었다.
키리오스의 눈빛이 서서히 경악으로 물들었다. 두 번째 시나리오가 끝나자마자 구매했던 히든 스킬 [백청강기]는 바로 키리오스 로드그라임의 성명절기. 장장 두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키리오스는 제자로 받아주기로 걸정한다. 그리고 수련이 시작되었다.
키리오스 로드그라임은 '무림계 귀환자'로, 시스템의 도움 없이 무공을 터득허고 <제1 무림>에 진출해 절대 고수가 된 사람이었다.
김독자의 목표는 두 주 안에 키리오스의 '비전절기'를 익히고 왕성 베로니카로 돌아가는 것. 물론 일이 쉽게 풀릴 리는 없었다.
수련 첫날, 키리오스는 '피스 랜드'산 한철로 만들어진 팔찌와 발찌를 주었다.
['수련용 한철 팔찌'가 당신의 육체를 구속합니다.]
키리오스는 그 상태로 찌르기를 100만 번 반복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김독자에겐 재능이 없었고, 날이 갈수록 키리오스의 구박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점점, 키리오스에 대한 김독자의 이해도도 상승했다.
마침내 이 주째 저녁, 김독자는 키리오스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인근에서 기다리던 아스카 렌과 한수영을 찾았다.
다만 능력은 '배운' 것이 아니라 [책갈피]로 '훔친' 것이었기 때문에 서둘러 도망가야했다.[58]
세 사람은 밤의 돌산을 계속해서 달렸다. 아스카 렌의 안색이 창백해진 것은 그때였다. '여덟 머리의 군주'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베로니카의 성벽. 그곳에서 일행은 왕성을 지키고 있었다.
김독자가 자리를 비운 두 주 동안 다들 왕성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특히 미치오 쇼지는 가진 스킬을 계속해서 갈고닦았다.
소인들의 힘으로 재앙을 물리치며 성을 지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모두의 앞에 '재앙의 왕'이 등장했다. 거의 요새의 크기에 육박하는 무언가. 막을 수 없을 것 같이 보였다.
김독자와 한수영, 아스카 렌은 어느새 베로니카의 성벽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상공을 뒤덮은 거대한 괴물의 그림자를 보았다.
붉은 색의 머리와 꼬리, 여덟 개의 머리를 가진 재앙의 왕.
뱀이 주둥이를 벌릴 때마다 소인 너덧 명이 삼켜졌다.
그리고 잠시 뒤, 폭음이 들리더니 뱀 머리 하나가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지르며 땅에 처박혔다. 유중혁이었다. 김독자는 신유승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번엔 자신이 잡아야 한다며 유중혁 앞으로 나섰다.[59]
김독자는 유중혁이 쥔 검을 보았다. 토츠카노츠루기. 일본의 고대신 '스사노오'가 야마타노오로치를 벨 때 사용한 검.
유중혁은 새로 배운 '거신화'스킬을 사용했다.
[거신화]는 일시적으로 체내 잠재력을 폭발시켜 거신의 힘을 흉내내는 기술. 문제는 저 스킬이 오 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
유중혁은 혼자 머리 네 개를 베어냈다.[60] 그러나 [거신화]가 해제되었고, 날아드는 꼬리에 맞고 유중혁은 성곽을 뚫고 내성에 틀어박혔다.
김독자는 '수련용 한철 팔찌'를 해제한 후, 바닥에 떨어진 토츠카노츠루기를 주워들어 야마타노오로치를 향해 달렸다. 5번 책갈피, 키리오스 로드그라임의 '전인화'로 김독자는 순식간에 머리 세 개를 베어냈다.
분노한 야마타노오로치는 그레이트 홀을 열어 절대왕좌에 허락된 개연성까지 빌려왔다. 게연성이 허락되자 하나 남은 뱀 머리의 그림자가 계속해서 커졌다. 김독자는 절대 이길 수 없을 적. 그럼에도 김독자는 웃었다.
스타 스트림의 섭리는 균형. 누군가가 개연을 파괴하면 누군가는 개연을 얻는다.
멀리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이 행성에서 태어난 절대자.
역설의 백청, 키리오스 로드그라임.
키리오스의 검극에서 뻗어나온 뇌전이 그레이트 홀 입구를 닫아버렸다. 개연을 잃은 야마타노오로치의 힘이 급감했다.
그때, 어둠 속에서 희미한 스파크가 튀어올랐다. 이즈미 히로키가 야마타노오로치에 저항하고 있었다. 그림자 속에서 떠오른 이즈미 히로키가 끝내달라고 부탁했다. 김독자는 고개를 끄덕이곤 검을 움직였다. 그리고 뭔가가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김독자는 '불살의 왕' 칭호를 박탈당했다. 그리고 최초로 '재앙의 왕'을 사냥했다. 드디어 여섯 번째 시나리오의 끝.
[축하합니다! <스타 스트림>이 당신의 격을 인정했습니다.]
[당신은 총 4개의 설화를 이룩했습니다.]
[이제 당신운 성좌가 되기 위한 마지막 설화를 쌓아야 합니다.]
김독자는 드디어 자신이 원하는 결말을 향한 출발점에 도착했다.
[Ep.26 시나리오 파괴자]
이즈미가 사망한 이후 남은 재앙들은 곧바로 항복해왔다.
그리고 이번에 '뱀을 베는 자'는 미치오 쇼지를 선택할 모양이었다.
소인들이 연회가 있을 거라며 김독자 일행을 초대하겠다고 제안했다. 김독자는 연회에 참석해 한가득 술을 담은 들통에 야마타노오로치를 격퇴하고 나온 파편과 토츠카노츠루기를 집어넣었다.
[설화, '아마노무라쿠모노츠루기'가 발현합니다!]
전승에 따르면 아마노무라쿠모노츠루기는 술에 취한 야마타노오로치의 꼬리를 베어 나온 칼이었다.
잠시 후 술 위로 검 한자루가 솟아올랐다. 성유물 '천총운검'.
유중혁이 먼저 손을 뻗어 가져갔다.
그리고 이어서 나타난 성유물 '초체검[61]'. 그건 김독자가 가져갔다.
그리고 사람들은 술을 퍼마시기 시작했다.
성좌의 부속물을 마력으로 발효시킨 술이라 사람들이 연신 들이켜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유중혁은 요리를 만들고 있었다. 남이 만든 건 맛이 없다고 안 먹는다면서. 야채랑 고기를 듬성듬성 썰어 구운 산적. 김독자는 한 입 베어먹고는 깜짝 놀란다. 너무 맛있어서.
키리오스 로드그라임은 한쪽에서 비올라를 켜고 있었다.
김독자는 아스카 렌에게 한수영을 봤는지 물었다.
아무래도 히든 피스를 찾아 떠난 것 같았다.
그리고 김독자는 아스카 렌의 소설이 어떻게 시나리오 배경이 된건지 물었다. 누군가 메일로 설정을 빌리고 싶다고 하자 허락했고, 이렇게 되었다고.
김독자는 메일을 보낸 사람이 'tls123'인지 반사적으로 물었고, 잠시 생각하던 아스카 렌의 몸에서 희미한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 ■■"
김독자는 깜짝 놀라 무슨 말을 했는지 물었으나 보인 것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아스카 렌의 얼굴. 불길한 기운을 느낀 김독자는 [등장인물 일람]을 가동했다.
그리고 갑자기 김독자의 눈앞에서 '피스 랜드의 창조주' 특성이 사라졌다. 그 이후, 아스카 렌은 자신의 피스 랜드의 작가임을 떠올리지 못했다.
김독자는 멸살법의 작가가 자신만큼 기존 결말이 아닌 다른 결말을 원하는 것이 아닐까,하고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김독자는 품속에서 [고대 밤의 성혈]을 술잔에 넣고 마셨다. 그러자 새로운 특성 '여덟 개의 목숨'이 개화를 준비했다.
김독자는 남은 술을 전부 입에 털어 넣고는 하데스를 불렀다.[62]
그 순간, 김독자는 명계에 도착했다. 하지만 하데스와 페르세포네가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궁전에 들어갈 순 없었다. 김독자는 심판관에게 예비로 빚어둔 야마타노오로치의 뱀술을 주고 노란색 구슬을 받았다. 김독자는 그것이 신유승의 영혼임을 깨달았다.
김독자는 구슬을 쓰다듬으며 아직 영혼에게 해줄 일이 있다며 자신의 생각을 알려주었다. 신유승은 이 세계의 '결말'을 자신도 보고싶다며 꼭 하고 싶다고 말해주었다.
신유승의 영혼은 명계에서 데리고 나간다고 해서 부활할 수도 없고 너무 많은 죄악을 저질러서 환생도 불가능했다.
김독자는 곧장 비형을 불렀다. 그리고 비형이 응답할 때까지 기다렸다. 김독자는 비형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신유승의 영혼을 본 비형은 김독자가 원하는 도움이 무엇인지 깨닫곤 한참을 망설이다가 허공에서 황금빛 알 하나를 내려보냈다.
가장 위대한 '이야기의 별'에서 내려오는 알.
김독자는 신유승의 영혼을 알속에 집어넣었다.
후에 알은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41회차에서 온 신유승은 이번 회차에서 김독자를 위한 '이야기꾼'이 될 것이었다.
김독자는 심판관에게 술 한 병을 다 주고 타르타로스에 가서 김남운에게 약간의 정보를 귀띔해주었다. 용건을 끝내고 돌아오자 심판관은 페르세포네가 남긴 말을 읊어주었다. 많은 성운이 김독자를 주시하고 있으니 대비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어느새 김독자는 다시 현세로 돌아와 있었다. 주변 인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다가가보니 포털에서 정민섭[63]이 온몸에 화상을 입은 채로 나온 듯 보였다. 정민섭은 돌아오면 안된다는 말을 남기곤 이설화가 살릴 새도 없이 죽었다.
일행들은 혼란스러웠지만, 직접 가보지 않고선 아무것도 알 수기 없었다. 우선 시나리오 추가 보상이 먼저였다. 김독자는 A급 스킬, 소형화를 얻었다.[64] 보상 수령이 끝나자 도깨비들은 거대한 포털을 만들었다. 차례로 사람들이 포털을 통해 떠났다.
소인들은 배웅의 노래를 불러주었다.[65]
김독자는 소인들에 의해 자신의 전설이 만들어졌다는 메시지를 보고 서울로 돌아갔다.
유중혁과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기습이 시작되었다. 언뜻 봐도 상당한 수준의 장비와 배후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어째선지 김독자가 불살의 왕이라는 정보까지 퍼져있었다. 유중혁과 김독자는 빠르게 사람들을 베어넘겼다.
그러다 한 사람이 도망쳤고, 김독자와 유중혁은 그 사람의 흔적을 쫓았다. 가는 거리마다 시체가 보였다. 전부 사람에게 당한 상처들. 얼마 가지 않아 도망친 남자를 발견했다.
하지만 김독자와 유중혁이 나서기 전에 남자는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에 목이 꿰뚫렸다. 그리고 나타난 패거리. 모습이 익숙했다.
김독자가 그들을 향해 달려가자, 여자가 돌아보았다. 미희왕 민지원이었다.
그녀에게서 예상치 못한 소식을 연달아 전해 들었다.
미륵왕과 방랑자들의 세력이 당하며 왕 파벌이 해체되었고 구원교라는 신진 세력에게 당했다고. 방랑자들의 왕은 현재 행방불명 상태라고 한다.
구원교는 여섯 번째 시나리오가 시작된 이후 갑자기 나타났다고 한다. '인류를 시나리오에서 해방시키겠다'면서. 자신들의 뜻을 거스르는 세력은 망설임 없이 제거 중이라고도 했다.
김독자도 아는 이름이었다. 원작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 단체였으므로. 하지만 본래 구원교는 최소 열 번째 시나리오에서 등장해야 했다.
그들은 서울 안이 있던 자들이 아니라고 민지원이 알려주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인근의 하늘이서 빛이 쏟아지더니 사람들이 소환되었다. 소환된 인파는 백여 명 이상. 막 첫 번째 시나리오를 겪고 온 듯 했다.
메인 시나리오는 세계 각국의 수도에서만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시나리오를 진행하다 보면 지나치게 많은 화신이 죽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관리국은 해당 국가 전역에서 일정 인간을 추가로 소환한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에 도깨비가 나타나 자신을 보호해줄 '그룹'을 찾으라고 조언해주었다. 그러나 도깨비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화신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울 돔 바깥에도 <선지자들>은 있고, [인터넷] 스킬을 가진 화신들에 의해 돔 안의 정보도 제법 풀렸을 터라 자신감 넘치는 모습들이었다.
누구의 곁에 붙어야 하는지 토론하는 화신들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그들은 거대한 코끼리를 닮은 괴수종을 타고 있었다. 구원교도였다.
구원교 무리의 중심을 보던 유중혁이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구원교 중 한 명은 유중혁이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구원교는 김독자도 알고 있었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를 중요시 하라는 교리는 얼핏 들으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원작에 따르면 구원교는 구원이라는 종교적 상투성을 완전히 벗어던진 집단이었다. 게다가 한참 뒤에야 나올 구원교가 벌써 나타났다는 것은 아주 강력한 누군가가 미래에 개입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선두에 위치한 코끼리 위 가마속에서 구원교로 오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원교에 들어가면 강해질 수 있는지 누군가가 물었고, 이후 가마에서 마력이 뻗어나오더니 거대한 손바닥을 이루었다.
마력 실체화. 웬만큼 수련한 귀환자나 쓸 수 있는 기술.
거대한 손바닥이 하늘을 덮으며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손바닥은 화신을 덮는 순간 가공할 바람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가마 휘장이 겉히더니 목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들어냈다. 전신에서 빛을 내뿜는 존재.
그제서야 김독자도 자신이 아는 '구원교주'가 시나리오에 들어왔음을 깨달았다.
구원교주는 가마에서 내려오며 선언했다. 시나리오에 잡아먹히지 말라고. 투쟁해서 새로운 이야기로 자신을 남기라고. 듣기로는 아름다운 사상이었다.
유중혁도 칼을 뽑는 중이었다. 그의 얼굴에 사나운 적의가 번져갔다. 자살 특공대를 양성하는 방식은 그대로란 말에 구원교주가 김독자와 유중혁 쪽을 돌아보았다. 그러곤 어느새 구원교주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왜인지 구원교주의 얼굴에 새하얀 미소가 번졌다.
김독자눈 곧바로 [등장인물 일람]을 발동했다.
그러나 인물 정보가 너무 많아 요약으로도 볼 수 없었다.
김독자는 첫 번째 특성만 일람하게 설정을 번경했고 드디어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환생자, 니르바나 뫼비우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번째 방법 그 자체인 존재.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자.
니르바나는 환하게 웃으며 유중혁에게 외쳤다. 자신과 하나가 되라고.
니르바나는 계속해서 죽고,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길 반복했다.
그러다 한 남자의 눈에 띄었고 그 남자는 니르바나를 해치지 않고 오히려 구해 주었다. 니르바나는 오래도록 그 남자의 손길을 기억했고, 다음 삶에서 인간으로 태어났다.
그는 '배후성'이라 불리는 존재가 자신의 삶을 관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끝없이 죽고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며 깨달았다.
혼자 기억을 가지고 환생한다는 사실은 그를 외롭게 만들었다.
그리고 유중혁을 만났다. 비록 방식은 달라도 자신처럼 영원의 수레바퀴에 구속된 존재.
니르바나는 자신과 유중혁만이 진정한 동료가 될 수 있다며 외쳐댔지만 김독자를 흘끗 바라보곤 동료가 있다는 유중헉의 말에 망연자실하고 만다.
김독자가 거짓말을 해가며 대적하지 않기 위해 애쓰지만 유중혁이 도와주지 않아 결국 니르바나는 공격을 시작했다. 김독자는 [책갈피]를 발동하려 하지만 책갈피가 업데이트 중이라며 사용할 수 없었다.
니르바나가 주문을 외우자 유중혁이 굳어버렸다.
[등장인물 '니르바나 뫼비우스'가 성흔 '영겁의 악몽 Lv.8'을 사용했습니다.]
김독자도 이 기술을 알고 있었다. 유중혁에게 가장 치명적인 기술.
자신이 만든 가장 끔찍한 트라우마의 감옥에 갇혀있게 만든다. 오직 하나의 악몽만 반복해서 재생하는 기억의 감옥.
아무리 환생자라도 이 시점에 이만한 전투력은 김독자가 생각하기에 불가능했다. 아무래도 정신계 스킬과 가속계 스킬에 모든 걸 투자한 듯 했다. 그렇다면 정신력이 약한 유중혁에긴 완벽한 카운터 캐릭터. 하지만 딱 맞춰서 스킬을 올리려면 누군가의 정보가 반드시 필요할 터였다.
화랑들이 김독자를 도망칠 시간을 벌기 위해 니르바나의 앞을 가로막았다. 니르바나는 가볍게 손을 움직어 달려드는 화랑들 머리에 가져다대었고, 화랑들은 닿는 족족 그 자리에 쓰러젔다.
김독자가 달려드는 구원교도들을 향해 살수를 전개하는 사이 니르바나는 어느새 미희왕의 이마를 짚고 있었다.
[등장인물 '니르바나 뫼비우스'가 '사상 감염 Lv.9'를 발동합니다!]
폭력적으로 욕망을 납득시켜 사람의 시간을 오직 '현재'에만 고착시키는 스킬.
욕망을 받아들이란 말에 미희왕의 눈빛이 점차 탁해졌다.
드디어 [책갈피]의 업데이트가 완료되자 김독자는 [바람의 길]로 다가가 '신념의 칼날'을 전개했다. 니르바나는 아슬아슬하게 칼날을 피했지만 앞섶이 크게 베인 차 나가떨어졌다.
김독자는 민지원에게 죄책감 가질 필요 없다고 말하며 부축해주었다. 물러났던 니르바나가 김독자를 향해 날아왔다. 손아귀에 만다라의 형형한 빛살이 차오르는 것이 보였다.
니르바나의 수장과 '신념의 칼날'이 격돌했다. 니르바나의 만다라가 기이한 형상을 그리더니 백색의 아우라를 연달아 발출했다.
[사상 감염]을 발동한 것이다. 그러나 김독자의 [제4의 벽]이 [사상 감염]의 효과를 완전히 무효화시켰다. 김독자는 경악한 니르바나를 향해 돌진했다.
2.7. #8 - 최강의 희생양
Episode 27. 읽을 수 없는 것 ~ Episode 29. 별자리의 연회 |
[Ep.27 읽을 수 없는 것]
김독자는 [소형화]를 사용했다. 굳이 김독자가 소형화를 얻었던 이유. 이는 오직 김독자가 아는 가장 강력한 존재로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키리오스 로드그라임.
김독자는 '전인화'를 사용해 니르바나를 없애기 위해 주먹을 내뻗었다. 그러나 니르바나는 [설화 지불][66]과 [무소유][67]로 김독자에게서 도망쳐버린다.
김독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을 지나 유중혁을 찾았다. 니르바나를 열 번째 시나리오가 끝나기 전에 잡아야하기 때문에 유중혁의 표정은 심각했다.
그때, 우리엘이 메시지로 도움을 요청했다.
정희원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았다.
김독자는 유중혁에게 자신을 지키라고 말하곤 잠에 들었다.
얕은 잠에 빠져든 느낌과 동시에 김독자는 [전지적 독자 시점]을 사용했다. 그러나 김독자를 찾는 목소리가 없었다.
김독자가 불안해하던 찰나, 누군가 김독자를 불렀다.
시야가 일그러지며 발동된 [3인칭 관찰자 시점].
김독자를 부른 것은 이현성이었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것은 정희원. 그러나 정희원의 이마에는 연꽃 문양이 빛나고 있었다.
벌써 니르바나에게 당한 것이었다.
위치는 당장 김독자가 도울 수 없는 지역.
이대로라면 이현성은 [사상 감염]에 당한 정희원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이었다.
갑자기 어둠이 개더니 김독자가 잠에서 깨어났다.
유중혁이 때려서 깨웠는지 명치가 엄청나게 아팠다.
김독자는 무엇인가를 깨닫곤 유중혁에게 당장 자신을 죽이라고 말한다.
이현성은 매뉴얼에 따라 살던 천성 군인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에서 매뉴얼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이현성의 목소리는 정희원에겐 닿질 않았다.
이현성은 김독자를 떠올리며 기도했다.
그러자 갑자기 머릿속에서 김독자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리고 김독자가 제시한 방법 두 가지.
하나는 정희원을 죽이는 것, 하나는 도망치는 것.
이현성은 김독자의 해결책이 언제나 그렇듯 세 번째를 선택하기로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세 번째 방법은 없었다.
이현성은 그렇게 포기할 수 없다며 정희원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이현성의 [태산 밀기]도 [지옥염화]에 저항할 순 없었다.
그럼에도 이현성은 어떻게든 정희원에게 닿고자 했다.
이것이 '세 번째 방법'이었다.
김독자는 이현성의 배후성, '강철의 주인'을 불렀다.
이현성에게 기회를 달라고. 그러나 아직 이현성은 각성의 때를 맞이하기엔 일렀다. 이현성이 혼자라면 강철의 설화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었다. 혼자였다면.
김독자는 자신이 함께 감당하겠다며 나섰다.
잠시 후 '강철의 주인'은 이현성에게 설화의 시련, '강철의 증명'을 내려주었다.
멸살법에서 이현성은 검을 사용하지 않는데도 강철검제라 블렸다. 그 이유는 바로 이현성이 하나의 검이기 때문.
[지옥 염화]에 녹아버린 이현성의 팔과 다리에서 새하얀 강철이 자라나 몸 전체를 덮었다. 한 자루의 강철검처럼.
겨우 1단계의 '갑주'가 활성화되었을 뿐이지만 완전히 습득하묜 공필두의 '무장요새'보다도 단단하고 유중혁의 '진천패도'에도 베이지 않게 된다. 문제는 아직 완전히 활성화 되지 않았다는 것.
김독자가 이것이 이현성이 익혀야할 '성흔'이라 일러주자 금세 상황을 깨달은 이현성이 재빨리 자세를 잡으며 물러섰다.
모든 배후성은 자신의 화신에게 성흔을 제공한다. 증여의 형태로 전해지기도 하고 까다로운 조건을 거쳐야 사용할 수 있는 성흔도 있다. '강철의 주인'이 가진 [강철화] 또한 까다로운 성흔 중 하나였다.
['강철의 첫 번째 증명'이 시작됩니다.]
1. "진정한 강철은 수만 번의 담금질 속에서 태어나리니"
담금질의 기본은 고열 처리 후 냉각. 이현성은 정희원의 [지옥염화]속에서 힘들게 버텨갔다. 그리고 서서히 이현성의 강철이 붉게 달아오르더니 담금질이 시작되었다.
강철의 기본은 담금질. 완전한 강철의 육체를 이룰 때까지 기준치 이상의 고열을 버티는 것이 이 설화의 핵심이었다.
이현성이 악을 쓰는 동안 김독자는 정희원의 정보를 살폈다. 정희원의 트라우마가 완전히 노출되어 있었다.
니르바나의 [사상 감염]은 그 사람의 시간을 '현재'에 안착시키기 위해 인물이 가진 정신의 어두운 부분을 표명으로 끌어낸다.
낭떠러지 같은 현실을 마주한 인간은 대개 희망을 잃는다. 누군가는 절망해 무너지고, 누군가는 무분별한 욕망을 풀어 짐승처럼 변하며, 어떤 이는 이성을 잃고 분노에 사로잡혀 스스로 구원교도가 된다.
정희원은 인간은 전부 죽어아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데 김독자가 1인칭 상태로 몰입했기 때문인지 이현성도 [전지적 독자 시점]의 메시지를 들었다. 김독자는 자신이 가진 스킬이라며 솔직히 고백했다.
그러나 대화를 더 나눌 시간은 없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현재 가능한 것은 원인이 아닌 증상을 해결하는 것 뿐.
정희원을 제압하기로 한다.
이현성은 악을 쓰며 한 걸음씩 정희원을 향해 다가갔다.
이현성은 다가가 정희원을 끌어안았다.
이현성의 품을 중심으로 강철의 벽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불꽃을 끄려면 발화점에 산소를 차단해야 한다.
그것을 아는 이현성은 자신을 희생해 정희원을 위한 벽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정희원의 불길이 사그라졌다.
[설화, '강철의 첫 번째 증명'이 완료됐습니다.]
이현성의 의식을 깨운 것은 정희원의 목소리였다.
이현성의 팔에서 자라난 강철이 정희원의 몸을 덮은 채 주변을 봉쇄하고 있었다. 이현성이 풀으려 했지만 강철의 벽은 쉽사리 부서지지 않았다.
정희원은 이현성에게 고맙단 말을 전하곤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을 김독자를 향해 하늘을 보고 크게 외쳤다. 유상아가 위험하다고.
김독자는 [전지적 독자 시점]에서 깨어났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부활메시지가 뜨지 않았던 것이다. 김독자는 눈을 뜨고 나서야 깨달았다. 유중혁에게 명치를 세게 얻어맏았을 뿐이란걸.
자동으로 발동한 [전지적 독자 시점]으로 유중혁의 상념이 쏟아졌다. 벌써부터 회귀를 해야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하고 있었다.
김독자는 유중혁이 행여나 다른 마음을 품을까 아파서 죽겠다고 소리쳤다. 유중혁은 김독자를 바라보았지만 표정이 밝지 않았다. 김독자는 이현성과 연락해 정희원을 구한 이야길 해주었다.
마침 옆에 있던 민지원이 끼어들었다. 꽤 친해진 것 같다고.
김독자는 민지원에게 도움을 부탁했다.
화랑들을 이용해 흩어진 일행을 모으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길영과 신유승은 가까운 곳에 있었고, 건물 한 채를 점령한 공필두도 어렵지 않게 찾았다. 이지혜도.
비교적 멀리에 있는 정희원과 이현성, 데려올 수 없는 유상아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전력이 모인 셈이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괴수의 울음소리. 일곱 번째 시나리오인가 했지만 일곱 번째 시나리오는 이미 끝나고 구원교주가 최고 보상을 받았다고 민지원이 알려주었다.
갑자기 앞쪽 건물이 무너지더니 괴수들이 등장했다. 6급 괴수종 헤비 하운드. 일행이 강해져서인지 김독자가 할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괴수들은 끝없이 몰려왔고 김독자는 신규 화신들을 대피시키며 헤비 하운드를 쓰러뜨렸다. 물론 틈틈이 괴수종의 핵을 회수하는 것도 잊지않았더.
하지만 이런 전개는 유중혁의 본래 3회차에선 나오지 않는다.
김독자가 이게 무슨 상황인지 떠올릴 무렵, 처음 듣는 목소리의 도깨비가 메시지를 띄웠다.
도착한 여덟 번째 메인 시나리오, 최강의 희생양.
4시간 간격으로 등급이 상승하며 등장하는 괴수들에게서 살아남아야 했다. 제한 시간은 없음. 이 시나리오에서 클리어 방법은 두 가지 였다.
하나는 돔의 화신 절반이 사망할 것. 다른 하나는 서울 돔에서 가장 강한 화신 1명이 사망하는것. 그게 누군지는 4시간에 한 번씩 힌트가 제공된다.
현재 서울 돔에서 열 번째로 강한 화신은 이지혜.
일행들은 모두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유중혁을.
김독자는 이제 회귀해야겠다는 유중혁의 생각을 들었다.
이렇게 무력하게 죽고싶진 않았다.
김독자는 스스로 나설 순간이 되었다고 느꼈다.
[Ep.28 최강의 희생양]
삼십 분뒤, 6급 괴수 무리는 모두 정리되었다. 겨우 첫 번째 웨이브가 지나갔지만 십분의 일의 사람들이 죽었다.
김독자는 유중혁을 불러내 주변 고층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김독자는 [등장인물 일람]을 사용해보았다. 여전히 유중혁의 배후성은 보이지 않았다. 멸살법에서도 끝까지 밝혀지지 않았었다.
김독자와 유중혁은 대화를 시작했다. 유중혁이 가진 회귀 우울증의 전조증상. 정보가 많아지면 다음 회차엔 더 잘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믿음, 뭔가 조금만 잘못되어도 하나의 회차룰 쉽게 포기하고 싶은 충동.
김독자는 유중혁에게 말했다. '이 회차'를 살라고, 이 회차가 '인간'으로서 세계의 끝을 볼 수 있는 '단 하나의 회차일지도 모른다고.[68]
유중혁은 고민을 하다 무언가 결심을 마쳤는지 얼굴에 미미한 빛이 스쳤다. 갑자기 소리가 나더니 옥상 문이 열리며 일행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김독자는 누가 가장 강한 화신인지 확정된 것이 없으니 니르바나가 가장 강하다고 가정하고 니르바나를 불러내 해치우기로 계획을 세운다.
김독자는 도깨비 영기를 통해 신규 시나리오 특집 랜덤 박스 10개를 구매하고 일행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러곤 소모품은 자신에게 주고 메인 아이템은 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나 극악의 확률을 가진 랜덤 박스에서 좋은 것이 나올리 없었다. 일행들도 전부 소모품에 E급 아이템만 나왔다. 신유승만 빼고.
신유승은 SSS급 아이템 [고대 야수의 열매][69]를 뽑았다.
비록 소모성 아이템이지만 값어치는 사용하기에 따라 SSS급 이상일 수 있었다. 길들일 수 없는 괴수에게 먹이면 쉽게 길들일 수 있었다. 그야말로 신유승에겐 최고의 아이템.
김독자는 보조로 나온 소모품 확성기를 모았다.
확성기. 옵션에 따라 특정 채널이나 전체 구역에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소모품. 김독자는 니르바나의 주목을 끌 만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시각, 니르바나는 임시 교단 내 거처에 있었다. 자신의 '설화'를 공헌하고 개연성을 나눠 받으며 [계승] 성흔으로 스킬을 계승했다.
니르바나는 희미하게 불을 밝힌 방으로 들어갔다. 테이블 앞에 앉아있는 사람은 이수경과 유상아. 유상아는 [사상 감염]에 몇 주째 저항하고 있었다.
니르바나는 이수경의 기억을 통해 김독자에 관해 알아보았다. '인연생기'스킬로. 이수경은 절대 김독자를 이길 수 없을거라며 분노했다.
그때 메시지가 들려왔다. 김독자의 확성기.
유중혁과 광화문에서 대결을 하러 온다면 유중혁과 하나가 될 기회를 주겠다고. 니르바나는 곧바로 응답했다.
유중혁은 김독자가 자신의 이름을 꺼내자마자 광화문으로 향했다. 하지만 김독자는 두 사람의 싸움에 관심이 없었다.
진짜 문제는 김독자의 머릿속에서 울리는 메시지.
[당신은 현재 서울시 최강의 화신입니다.]
이 세계에서 강함을 결정하는 것은 설화의 '격'.
김독자의 설화가 죄다 불가능한 수준이라 최강의 화신이 된 것이다.
어느새 두 번째 웨이브가 시작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고, 광화문 앞에 모든 화신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구원교주를 물리치자며. 이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 5급 괴수종이 와도 괜찮을 듯 했다.
갑자기 허공에서 메시지가 떠올랐다. 현재 서울 돔에서 아홉 번째로 강한 화신은 이길영이었다. 김독자는 일행들과 광화문 중심으로 향했다.
광화문 중심에 있는 돔 위에서 중립의 왕 전일도가 연설을 하고 있었다. '가장 강한 화신'만 희생하면 살 수 있다고. 그러면서 돔 겉면이 투명해지더니 유중혁과 니르바나가 싸우고 있는 모습이 드러났다.
김독자는 돔으로 다가가 벽면을 내리쳤으나 광해군의 성흔을 발동했기 때문에 당사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물리적으로 전투에 개입할 수 없었다.
도깨비가 끼어들었는지 돔 위쪽에 스크린이 떠올랐다.
돔이 없었다면 일대가 진즉에 파괴되었을 무력 충돌이 이어졌고.
김독자는 근처 한산한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한수영을 불렀다. 뒤쪽 공간이 갈라지며 한수영이 등장했다.
한편 도깨비들이 재미없게 되었다며 전광판에 랭킹을 우르르 띄웠다. 여덟 번째로 강한 화신은 유상아. 일곱 번째는 공필두. 여섯 번째는 정희원. 다섯 번째는 이현성. 네 번째는 한수영.
유중혁은 마력을 방출하며 니르바나의 전신을 으깨나갔다.
최후의 한 방을 준비하던 순간, 경고음이 울렸다.
니르바나의 [사상 감염]과 [영겁의 감옥]에 대한 카운터 스킬인 [사상 백신]이 침식당한 것이다.
그제서야 유중혁의 머릿속에 최악의 가정이 머릿속을 스쳤다.
니르바나가 근접 계열 스킬을 계승하지 않았다면?
아차, 하는 순간 유중혁은 정신을 파고드는 번뇌의 파편을 느꼈다.
유중혁은 지금 회귀하지 않으면 다음 회귀를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진천패도'의 칼날을 자기 목으로 가져다댔다.
그 순간, 김독자의 말이 떠올랐다. 참담한 심경 속에서 유중혁은 처음으로 김독자의 이름을 떠올렸다.
김독자의 목소리가 들렸고, 유중혁은 안심하고 눈을 감았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을 발동합니다!]
김독자는 유중혁에 빙의해 재빠르게 니르바나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니르바나의 [백팔번뇌]도 김독자의 [제4의 벽]에 가로막혔다.
그 순간 전광판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현재 서울 돔에서 세 번째로 강한 화신은 유중혁. 두 번째로 강한 화신은 니르바나.
김독자는 싸우면서 조금씩 니르바나에 대해 더 이해해갔다.
니르바나는 죽고 싶어했다. 그래서 화신들이 한 번뿐인 삶을 사는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껴온 것이다. 그렇기에 유중혁과 하나가 되어 [환생]이라는 최상위 성좌의 성흔을 지우고자 하는 것이었다.
니르바나는 이수경을 만났다며 김독자를 도발했다. 김독자가 흔들리는 틈을 타 니르바나는 유중혁의 내면으로 들어갔다.
그러더니 몸집이 순식간에 거대해졌다. 등에선 수백 개의 팔이 자라났으며 다리는 새와 뱀의 비늘로 덮여 있었다. 주둥이는 늑대처럼 되었고 머리 위론 정체를 알 수 없는 뿔이 돋았다.
이것이 니르바나의 본신이었다.
김독자는 현재 유중혁에게 빙의했다. 현재 유중혁의 내면은 곧 김독자의 내면이었다. 달려들던 천수관음의 폭포가 코앞에서 전류를 튀기며 녹아 없어졌다.
김독자는 자신의 주위를 감싸는 무수한 페이지를 보았다.
[전용 스킬, '제4의 벽'이 발동합니다.]
책장 넘기는 소리와 함께 주변에서 페이지가 흩날렸다.
김독자가 읽은 무수한 텍스트가 거대한 벽이 되어 주변을 덮었다.
벽에 부딪친 니르바나의 몸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김독자는 궁금해하고 있었다. 성좌조차 튕겨낼 수 있는 [제4의 벽]이라면 환생자를 영멸할 수도 있지 않을까.
환한 빛이 벽 위의 문자에서 뿜어져나왔다. 바로 니르바나의 이야기들. 벽에 문자가 떠오를 때마다 니르바나의 몸이 해체되며 벽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이윽고 니르바나의 영혼이 완전히 사라졌다.
['제4의 벽'이 등장인물 '니르바나 뫼비우스'를 포식했습니다.]
['제4의 벽'이 만족한 듯 웃습니다.]
처음듣는 메시지에 김독자는 두려워졌다.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벽이 김독자를 향해 입맛을 다셨다.
그 순간, 벽면 위에 뭔가 떠올랐다.
「그 순간, 김독자는 생각했다. '언젠가 나 역시 이 [벽]에 먹히는 것은 아닐까.'」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눈 앞에서 니르바나가 가루로 흩어지고 있었다. 김독자는 유중혁의 다리를 움직여 앞으로 걸어갔다. 피로감 때문인지 힘에 부쳤다.
도깨비가 말했다. 최강의 화신을 발표하겠다고. 마지막 말을 채 듣기도 전에 감각이 꺼졌다.
[정신력이 과도하게 소모되어 '전지적 독자 시점' 3단계를 해제합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이 해제됐습니다.]
[당신은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 김독자의 장례식이 시작되었다.
[Ep.29 별자리의 연회]
일행들은 김독자가 살아날거라 믿으며 기다렸다.
그러나 이틀 밤이 찾아와도, 김독자는 깨어나지 않았다.
보다 못한 민지원이 관을 만들어 시신을 관에 뉘였다.
김독자는 자신의 장례식을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일행들은 모두 슬퍼하고 있었고, 관은 흙에 덮이고 있었다.
김독자는 일어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부활 자체는 걱정할 것이 없었다. 피스 랜드에서 얻었던 특성 '여덟 개의 목숨'이 있으니. 이 특성은 말 그대로 사용자에게 '여덟 개의 목숨을 제공한다'
[뱀의 첫 번째 머리를 희생합니다.]
[해당 머리의 능력은 '인망'입니다.]
야마타노오로치의 머리에는 각각 다른 능력이 있고, 부활 시엔 그 능력과 관계된 축복을 얻는다. 문제는 부활 때까지 대기 시간이 있다는 것. 아직 72시간이나 남아있었다.
김독자가 이수경이 죽었을지 고민하던 중, 간접 메시지가 들려왔다. 수많은 성운이 김독자를 원하고 있었다. 김독자의 설화에 자신들의 신화를 덧씌우려고.
모든 설화는 회자를 통해 강화된다.
만약 김독자가 부활해서 신화와 같은 상황을 재연한다면 분명 설화의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 결과로 해당 설화와 관계된 성운은 막대한 개연성을 얻고 시나리오에 간섭할 힘을 가지게 된다.
뜻밖에도 페르세포네가 김독자에게 도움을 주었다. 김독자를 '연회'에 초대하는 방법으로.
<별자리의 연회>. <배후 선택>과 함께 '스타 스트림'의 성좌를 위해 마련된 이벤트. 오직 성좌만이 초대받는 자리에, 김독자가 초대받은 것이다.
김독자는 부활까지 남은 시간을 살폈다. 스물세 시간. 시간은 충분한 듯 보였다. 도깨비 영기가 김독자를 구름길[70]로 데려다주었다.
[히든 시나리오 - '별자리의 연회'가 시작됩니다!]
연회에 참가해 성공적으로 데뷔를 마쳐야하는 시나리오[71].
먼 하늘에서 '태양 마차'가 날아왔다.
그러곤 안에 있는 누군가가 타라며 진언을 사용했다.
심독자는 진언에 깜짝 놀랐지만 이곳은 상징계. 진언 제약이 비교적 약한 곳이었다.
김독자는 태양 마차로 들어갔고, 디오니소스를 만났다.
개연성 코스트를 아끼기 위해 포도주가 담긴 와인잔의 모습이었지만. 디오니소스는 이동하며 <올림포스>에 가입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때, 폭음이 터지더니 엄청난 존재감을 풍기는 것들이 사방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디오니소스는 구름길을 따라 가면 된다며 김독자를 내려보냈다.
김독자는 전력을 다해 달려가 성채 입구에 도착했다. 하지만 문지기가 가로막았고, 그때 한 성좌가 나타났다. 제천대성.
아쉽게도 분신이었는지 성문을 열어주고는 사라졌다.
비형은 김독자를 발견하곤 김독자를 화신 대기실로 데려다주었다. 문을 열자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유중혁.
이번 <별자리의 연회>는 여러 나라에서 공동으로 진행하는 행사였다. 서울 돔, 워싱턴 돔, 모스크바 돔, 뉴델리 돔까지.
성과가 좋은 돔을 모아 성과 발표회를 진행하는 듯 싶었다.
서울 돔 화신은 유중혁과 김독자뿐. 김독자는 내일쯤 살아날수 있을거라고 얘기해 주었다. 김독자가 유중혁과 나란히 의자에 앉아 앞쪽 대형 모니터를 보니 비형이 하급 도깨비 대표로 중급 도깨비 진급식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말을 하던 도중 비형이 품속에서 꺼낸 알. 신유승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알이었다. 유중혁은 [현자의 눈]으로 살펴보았는지 경악했다.
그토록 이야기에 고통받아온 존재가 그 비극을 생산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었으니까.
김독자는 '관리국'은 스타 스트림이 멸망하기 전까진 가장 안전한 곳이라며 둘러댔다.
그러다 끼어든 목소리. 미국 대표 샐레나 킴이었다.
배후성은 전쟁의 종결자, 특성은 동물애호가와 왕의 수호자[72].
그리고 러시아 대표 이리스 블라지미로브나 레베제바가 있었다.
때마침 하급 도깨비가 나타나 '설화 계승식'이 있을 것이라 알려주었다.
설화 계승식. 배후성이 아니더라도 다른 성좌의 설화를 계승하고 이야기에 대한 예를 표함으로써 화신은 힘을 키울 수 있다. 물론 자신의 설화를 널리 알림으로써 성좌또한 세력을 넓힐 수 있다.
가장 먼저 연호된 이름은 셀레나 킴. 성좌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다음은 이리스. 이리스도 성좌들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김독자의 차례. 성좌들이 체통마저 잊어버리고 날뛰었다.
김독자가 어쩔 수 없이 손을 들어주자 환호성이 폭발했다.
김독자는 연회 홀 2층을 올려다보았다. 시끌시끌한 1층의 위인급 성좌들과는 달리 불길한 침묵으로 내려보고 있는 설화급 성좌들.
그들이 바로, 김독자가 싸우려는 진짜 적들이었다.
다음 차례인 유중혁도 만만치 않은 인기를 누렸다. 김독자는 잠시 1층 연회석에서 사태룰 지켜보았다. 이곳에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니까.
김독자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1층 성좌들이 대거 반응해왔다.
모두 '심볼' 형태를 띄고 있었다. 위인급은 홀로 큰 개연성을 감내하기 힘들어 간소화된 상징체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독자를 향해 한반도의 성좌들이 다가왔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김독자는 1층과 2층 계단참에 앉아 술을 들이키고 있는 사내를 발견했다. 사명대사는 그가 '고려제일검'이라 알려주었다.
이때 명계 심판관들이 다가왔다. 페르세포네에게 데려가기 위해서. 함께 2층으로 올라가려는데 고려제일검이 살기를 뿜어대며 시비를 걸어왔다. 페르세포네가 저지해 주었지만.
김독자는 잠시 주변 성좌들을 둘러보았다. 2층에 있는 성좌들은 모두 인간형이라 누군지 알아보기 더 힘들었다. 그러나 조금 시간이 지나자 대충 구성을 알 것 같았다.
중앙의 페르세포네를 중심으로 동쪽은 <올림포스>, 서쪽은 <베다>, 북쪽이 비성운이나 소성운 성좌들. 마지막으로 남쪽은 <에덴>.
페르세포네는 김독자에게 설화 계승식에서 설화를 결정하는 것은 꼭 누구를 적으로 돌려야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조언해주었다.
그러나 고민할 시간도 없이 시작되는 설화 계승식.
설화 계승식은 간단했다. 비밀의 방[73]을 통해 성좌와 접촉하고 조건을 들은 뒤에 연단에 올라 계승할 설화를 발표하면 된다.
<배다>의 마누[74]와 <올림포스>의 오이디푸스 왕[75], <에덴>의 우리엘[76][77] 등의 많은 성운에서 김독자를 찾아왔다. 특히 한반도의 성좌들은 격려를 남기고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협상 시간이 종료되고 화신들이 하나둘 연단으로 올라갔다. 자신이 계승할 설화를 결정할 때가 된 것이다.
셀레나 킴이 선택한 것은 '불굴의 이시스'. <올림포스>의 설화였다. 식순이 진행될 수록 김독자의 머릿속은 복잡해질 뿐이었다.
누군가를 선택하면 적이 생기고, 아무도 선택하지 않으면 더 많은 적이 생긴다.
마침내 유중혁이 연단으로 나갔다[78]. 불현듯 어떤 생각이 떠오른 김독자는 유중혁이 입을 열자마자 연단에 뛰어올라가 유중혁의 손목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그러곤 객석을 향해 말했다. 우리는 설화를 계승하지 않기로 했다고. 객석에 어마어마한 정적이 몰려왔고 아득한 시선들이 쏟아지며 압력을 행사했다. 유중혁은 부들부들 떨며 김독자를 노려보았다.
김독자는 유중혁에게 씩 웃어보이곤 성좌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설화를 사겠다고. 그러니 설화를 팔고 싶다면 자신들의 성운과 거래하라고.
2.8. #9 - 악마의 증명
Episode 30. 암흑성 ~ Episode 32. 김독자의 사랑 |
[Ep.30 암흑성]
김독자의 걱정과는 달리 유중혁은 침착했다. '한낮의 밀회'로 말을 걸어오기까지 했다. 김독자는 유중혁에게 나쁜 조건이 아니라며 설득했다.
유중혁에겐 제약이 있다. 회귀자의 제약. 사망을 통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대신, 다른 성좌의 설화를 계승할 수 없다.
성좌들은 경고와 함께 질문 세례를 쏟아냈다. 아직 성좌에도 오르지 못한 사람이 성운을 개설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도깨비는 김독자가 '격'을 인정 받았다며 천장 스크린에 김독자의 설화가 투사되었다.
「왕이 없는 세계의 왕」
사인참사검으로 절대 왕좌를 부수고 얻은 설화.
「이적에 맞서는 자」
재앙으로 강림한 귀환자 명일상을 쓰러뜨리고 얻은 설화.
「이야기꾼을 능멸한 자」
도깨비 바울을 폭행하고 얻은 설화.
「재앙의 왕을 사냥한 자」
피스 랜드에서 성좌 야마타노오로치의 그림자를 사냥하고 얻은 설화.
설화들을 보며 성좌들은 크게 놀란다. 이번 계기로 다섯 번째 설화를 얻으면 성좌가 될테니까.
하지만 성운은 충분한 지불 능력이 있어야 했고, 최소 다섯 성좌에게서 지지를 받아야 했다. 아직 성운의 이름도 없었고
놀랍게도 페르세포네, 제천대성, 우리엘에 이어 고려제일검과 위인급 성좌들이 우르르 일어서서 성운을 지지해주었다.
[성좌, '은밀한 모략가'가 당신의 성운을 지지합니다.]
모습이 보이지 않던 은밀한 모략가도.
[당신은 '성운'의 임시 개설권을 획득했습니다!]
갑자기 연회 홀 전체가 굉음에 휩싸이며 공간이 크게 뒤틀렸다. 성좌들까지도 당황하고 있었다. 곧이어 그레이트 홀이 연회장 상공에 나타났다. 이계의 신격.
페르세포네와 우리엘이 빠르게 다가와 성좌의 힘으로 유중혁과 김독자를 공간 전이시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계의 신격이 더 빨랐다.
[이계의 신격들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새카만 암흑이 시야를 덮쳤다.[79]
캄캄한 밤중에 도굴꾼들이 '영웅'의 무덤을 파헤치고 있었다.
관 뚜껑을 열자 하얀 코트를 입은 사내가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죽어 있던 사내가 깨어나 도굴꾼의 어깨를 붙잡았다. 서울의 모든 존재가 메시지를 들었다.
[누군가가 5개의 설화를 획득했습니다.]
[서울의 밤하늘이 새로운 성좌가 탄생했습니다!]
이지혜는 다친 이길영을 업은 채 신유승과 암흑성의 복도를 달리고 있었다. 뒤에서는 5급 악마종 '어둠 추격자'가 쫓아오고 있었다.
김독자가 죽은 뒤 일행의 사기는 사라졌고 저마다 개별 행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결정이 실수였음을, 얼마 안가 깨달았다.
이지혜의 힘이 통하지 않았다. 7레벨을 돌파한 [검도]의 궤적은 먹히지 않았고 [귀살]의 힘은 오히려 악마들을 자극했다. 검은 이미 부러진지 오래였다.
이지혜는 죽은 화신이 떨어뜨린 병장기를 아무거나 주워 스킬을 남발했다. 겨우 어둠 추적자 하나의 목이 달아났다.
그러나 어둠 추적자도 아직 아홉이나 남았고 '악마 자작 노소로크'까지 쫓아오고 있었다.
암흑성에서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공간, 고대 마력 결계가 생성되었고[80] 이지혜와 아이들은 전력으로 방으로 달려갔다. 2평도 채 안되는 작은 공간이지만 간신히 몸을 피할 순 있었다. 버틸 수 있는 시간도 겨우 30분.
이지혜가 생각에 잠겨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을때 고대 마력 결계의 남은 시간은 1분. 이지혜는 자신이 아이들 대신 희생하기 위해 앞으로 돌진했다.
앞쪽에서 빛이 쏟아진 것은 그때였다. 어둠 추적자들이 두 쪽으로 쪼개지고 있었다. 이지혜는 홀린 듯 그 정경을 바라보았다. 당황한 악마 자작도 폭발했다. 그 빛의 길 위에 한 사내가 있었다.
[아직 수식언이 없는 한 성좌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메시지를 들은 이지혜가 피식 웃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악마종을 단숨에 제압하는 김독자를 보며 이지혜는 헛웃음을 흘렸다. 김독자는 아직 살아있는 노소로크를 마무리 지었고[81]
본래 악마종을 죽이면 악마종이 따르는 마왕과 척을 지게 되지만, 이번 시나리오에서 등장하는 악마종은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죽여도 딱히 분노하는 마왕은 없었다.
김독자는 현재 설화 '메시아의 길'을 <에덴>에서 빌린 상태였다. 우리엘 덕분에 서비스로.
김독자는 한수영과 계약을 맺고 아이템을 전부 맡겼기 때문에 아이템이 없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엘라인 숲의 정기'가 필요할 듯 싶었기 때문에 도깨비 보따리를 펼쳤다.
곧바로 구입해 이지혜에게 먹이곤 신유승과 재회했다. 무려 일주일이나 늦게 부활하고 말았기 때문에 신유승은 곧 눈물을 흘릴 것처럼 보였다. 김독자는 가볍게 토닥여주고는 물건부터 찾으러 가야한다고 말했다.
한수영은 암흑성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방금 유중혁과 대결했기[82] 때문에 삭신이 쑤셨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한수영은 시나리오창을 열어보았다.
<메인 시나리오 #9 - 악마의 증명>
악마종을 사냥하고 악마의 증명 9개를 모아 2층으로 가는 제단에 바치시오.
그러나 유중혁이 한수영의 '증명'을 다 가지고 가는 바람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할 판이었다.
그때 반대쪽 복도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더니 이현성이 나타났다. 여자들과 함께. 사실 그 여자들은 전부 남자였다. 한수영은 이 그룹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핑키즈. 사십대 아저씨들의 [위장 복색]과 [금단의 매혹] 스킬을 이용해 강한 랭커를 등쳐먹거나 약자를 살해하는 4인조 그룹.
아마 이대로라면 이현성은 핑키즈에게 뒤통수를 맞을 것이다.
순식간에 한수영의 분신들이 주변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이현성은 황급히 나서서 핑키즈를 보호했다.
이미 전부 해치우기로 결정한 한수영은 짖궂은 미소를 지으며 이현성을 바라보았다. 다음 순간, 한수영의 분신들이 옷을 벗었다.
얼굴이 새빨개진 이현성이 눈을 가리곤 주저앉았다.
한수영은 핑키즈를 하나하나 죽여나갔다. 마지막 한 사람이 남았을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이지 말라는 담담한 목소리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한수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김독자였으니까.
김독자는 성좌가 된 이야길 한수영에게 해주었다.
그래도 시나리오는 계속 참가해야했다.
차이점이라면 설화를 빌린다거나, 다른 성좌 및 성운과 거래가 가능해졌다든가, 성좌들의 태도가 바뀌었다든가, 간접 메시지를 띄울 수 있는 정도 뿐이었다.
한수영은 김독자가 <배후 계약>을 안 하고 있던 이유가 성좌가 되려 했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한수영은 '심연의 흑염룡'이 배후성이기 때문에 이미 늦었다는 것도.
김독자는 아직 수식언이 없었다. 하지만 현재 다섯 번째 설화 '고독한 메시아'가 진행중이었으므로 이 설화가 마무리될 때쯤엔 수식언이 생길 터였다.
김독자는 한수영에게 맡겼던 코인과 아이템을 전부 돌려받았다.
그리고 여전히 주저앉아 있는 이현성에게 다가갔다.
「강철검제는 여자에게 약하다」
멸살법엔 위와 같은 문장이 있었다. 그러나 제대로 구현되어 있지도 않은 한수영의 분신을 보고 공포에 떠는 것은 심한 듯 했다.
김독자는 이현성에게 다가가 등을 두드려주었다.
눈빛이 흐리멍덩한 게 제대로 트라우마가 생긴 모양이었다.
이건 시간이 지나 회복되도록 내버려둘 수 밖에 없었다.
그때 옆에서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핑키즈의 마지막 멤버 김영팔. 기본적으로는 순수한 사람이다. 실제로 이 시점까지 아무도 죽이지 않고 살아남았다. 심지어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도.
김독자가 '곤충 압살'이란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은 김영팔이 실수로 지나가던 개미를 밟아 생존한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해야할것은 시나리오 클리어. 다른 일행도 찾아야 했고.
성채 창밖으로 서울의 정경이 보였다. 힘겹게 지켜낸 보람도 없이 서울시의 절반은 악마종의 수족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도깨비는 여전히 더 큰 절망을 갈구하고 성좌는 여전히 더 자극적인 이야기를 원한다. 멸살법은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다.
김독자와 한수영은 '시나리오'는 무엇을 위해 존재할지 고민한다.
김독자는 그제야 조금은 이 세계를 이해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김독자는 입을 열었다.
현재 암흑성 2층 악마 백작 텐타치오는 마계의 강 포이닉스의 지류가 흐르는 '무저갱 평원'에 있었다. 그는 194년째 이 평원의 정점에 오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도깨비의 마왕이 될 수 있단 말레 혹해 시나리오 '암흑성'에 투입되었고 암흑성 입구에서 올라오는 종족들을 학살했다. 악마 백작 텐타치오는 2층에서 손꼽히게 강한 악마중 하나가 되었지만 여전히 마왕의 정수가 있는 암흑성 3층엔 도달할 수 없었다.
갑자기 들판에 일련의 남녀 무리가 나타났다.
텐타치오는 미소를 지으며 공격을 시작했다.
악마 귀족의 작위는 오등작.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
백작급부터는 설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차원이 다르게 강했다.
텐타치오는 인근화신들을 벌레를 죽이듯 죽여나갔다.
그러다 한 화신의 목을 잡고 들어 올렸다.
미희왕 민지원이었다.
텐타치오는 가장 강한 화신이 누군지 민지원에게 물었다.
김독자는 성좌가 되었지만 고유 성흔도 없는 반쪽짜리 였다.
하지만 '성좌의 격'을 발출하며 진행이 쉬워졌다.
비형은 김독자에게 말을 걸어오더니 알에서 태어날 존재에게 먹일 '설화'가 필요하다고 말해주었다. 김독자는 구해주겠다고 하고.
뒤를 돌아보니 일행들이 악마 시체에서 증명을 수거하고 있었다.
김독자와 일행은 증명을 챙기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2층으로 가는 제단에 도달했다. 남은 일은 제단에 증명을 바치는 것뿐.
김독자는 김영팔을 앞세워 들어갔다.
2층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은 소환되는 악마를 사냥하는 것이었는데, 이 악마의 수준은 해당 파티에서 가장 약한 자을 기준으로 삼는다. 별일만 없다면.
김독자는 제단에 증명을 던져넣었다.
그런데, 김독자를 원하는 악마가 있다는 메시지가 뜨더니 악마 백작 텐타치오가 강림했다.
텐타치오는 물었다. 네가 유중혁이냐고.
매금지존이 김독자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민지원은 서울 최강의 화신이 유중혁이라 말했으나,
유중혁은 너무 멀리 있어 김독자에게 보낼 수 밖에 없었다고.
김독자는 보상을 요구했고, 현상금 시나리오가 등장했다.
악마 백작 텐타치오를 처치하면 역사급 설화 1개를 보상으로 받을 수 있었다.
텐타치오는 먼저나선 이현성의 [강철화]까지 부술 정도로 강했다.
지금의 일행들에겐 암흑성 2층의 백작급은 무리한 상대.
김독자는 뒤쪽으로 튕겨나온 이현성을 붙잡고는 지체 없이 달려갔다. [백청강기]를 사용한 '신념의 칼날'이 텐타치오의 뿔들을 베었다.
김독자는 체력, 근력, 민첩, 마력을 전부 90레벨로 강화하고는 거침없이 검격을 퍼부으며 전진했다. 그래도 명색이 백작급이라 쉽게 쓰러지진 않았다.
김독자는 '소형화'를 발동하고 [책갈피]의 5번 책갈피를 선택했다.
[당신의 육체 구성이 해당 등장인물과 흡사함을 확인했습니다.]
[해당 등장인물의 격이 당신보다 높습니다.]
[활성화되는 스킬의 레벨이 강제로 조정됩니다.]
그런데 예전 보다 메시지가 한 줄 더 늘어 있었다.
[당신의 격이 크게 상승하여 해당 인물과의 동조율이 상승합니다.]
[Ep.31 시나리오의 무덤]
격의 상승 때문인지 [전인화] 스킬의 레벨이 11레벨이 되어있었다. 본래 모든 스킬은 10레벨이 한계이고, 그 이후는 더 좋은 스킬을 배우거나 귀환자처럼 '초월'을 하는 수 밖에 없는데도.
텐타치오는 [전인화]의 마력이 더해진 '신념에 칼날'에 두 쪽으로 찢어졌다. 그러더니 죽기 직전에 죽음의 비명을 사용했다.
['악마 백작 텐타치오'가 암흑성에 '유중혁'이란 이름을 전파했습니다[83].]
[암흑성 랭커들이 '유중혁'이란 이름을 기억했습니다.]
[암흑성 랭커들이 화신 '유중혁'을 향해 살의를 품었습니다.]
텐타치오가 죽자 텐타치오의 시체 위로 투명한 문자열이 떠올랐다. '암흑성' 시나리오부터는 설화를 가진 참가자를 죽여 설화를 빼앗을 수 있다. 김독자는 손을 뻗어 문자열을 잡아챘다.
[역사급 설화 '벌레 학살'을 획득했습니다.]
그리고 현상금 시나리오도 성공해 신라 출신 성좌의 비호와 설화를 받았다.
[역사급 설화, '나당 연합군'을 받았습니다.]
메인 시나리오가 갱신되며 암흑성 랭킹이 책정되었다. 김독자는 11위. 이지혜는 98,761위, 이길영은 87,541위, 이현성은 636위였다.
신유승은 김독자가 다가오자 재빨리 창을 감췄다. 김독자는 신유승을 격려해주었다. 실제로 성흔만 전승할 수 있다면 신유승은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화신이었으니까.
곧이어 메시지가 왔다. 마왕들의 메시지가.
마왕. 성좌들이 '격'으로 비견될 수 있는 극소수 악마들.
이 시나리오의 마지막에서는 마왕과 싸우게 될 터였다.
유중혁은 이미 2층에 올라 랭킹 작업에 착수해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앞으로의 계획이 빼곡히 정렬되어 있었다.
메시지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죽음의 비명'으로 유중혁의 이름이 알려졌다고. 유중혁은 김독자일 것이라 짐작했다.
유중혁의 동생 유미아가 옆에서 지켜보며 말했다. 김독자 얘기를 할 때 오빠가 즐거워 보인다고. 유중혁은 가만히 웃어보였다.
유중혁이 갑자기 살벌한 기운을 흘렸다.
누군가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간의 일부가 경직되는 느낌이 들더니 갈라진 공간 사이로 사람의 형상이 나타났다. 유상아였다.
유상아는 유중혁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이번 시나리오에서 김독자가 죽을 거라고. 유중혁은 김독자의 부활 능력을 알고 있어서 피식 웃고말았다. 그러나 유상아는 굴하지 않았다. 정말로 죽을거라며.
다음 순간, 유상아의 뒤쪽에 거대한 실타래가 나타났다.
무수한 이야기로 만들어진 끈. 유중혁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운명의 세 여신 '모이라이'의 심볼이었다.
유상아가 성좌들의 예언을 훔쳐본 것이었다.
모이라이의 '운명'은 단순히 미래를 점지하는 힘이 아니었다.
오히려 '빅 데이터'를 통해 내놓은 '결론'에 가까웠다. 존재하는 문자열의 조합으로 예측된 '가장 합당한 미래'. 그러나 '운명'은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올림포스>의 예언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으니까. 운명이 시작되면, <올림포스> 전체의 개연성이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쓰이기 때문이다.
유상아는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유상아의 전신을 덮친 스파크가 그녀의 입을 막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중혁은 유상아의 뒤쪽 허공에 수놓인 실타래의 문자열을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화신 김독자는 가장 사랑하는 존재에 의해 죽게 될 것이다.」
김독자와 일행은 드디어 암흑성 2층에 도착했다. 신규 시나리오가 진행되는 1층과는 달리, 2층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진행 중인 시나리오가 있었다.
도착한 곳은 무저갱 평원. 도깨비들이 '시나리오의 무덤'이라 부르는 곳이었다.
도깨비가 나타나 시나리오에 대해 안내했다. 도깨비들은 이번 시나리오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그러더니 갱신된 메인 시나리오. 모든 조건이 비공개에 제한 시간과 실패 조건도 없는 시나리오였다.
무저갱 평원에 모인 다른 화신들과 이현성도 당황했다.
김독자는 걱정이 되었다. 이번 시나리오가 일행에게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김독자가 입을 열려는 순간, 기절했던 이지혜와 이길영이 깨어났다.
일행들이 대화를 나누던 도중, 평원 건너편에서 대형 악마종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다가오는 녀석들은 4급 악마종 '데빌 베어'. 그런데 '데빌 베어' 건너편에서 빛줄기가 쏟아지더니 악마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 불꽃은 정희원의 [지옥염화]. 정희원이 그곳에 있었다.
김독자 일행을 발견한 정희원은 경악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김독자는 순간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자세히 보니 '블랙 유니콘'을 타고 있었다.
어떻게 길들인건지 알 수가 없었다.
정희원이 화신들을 이끌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인도했다. 안전한 곳으로 가자면서. 한 시간쯤 지나자 밀림 지대 사이에 숨어 있던 성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떤 악마종도 넘을 수 없을 것처럼 든든한 성벽.
성벽 위로 한 사내가 나타났다. 이곳의 주인임을 확신케 하는 외모.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절망을 품은 악마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라인하르트 폰 제르바.
라인하르트는 성벽을 열며 '낙원'에 온것을 환영했다.
김독자를 제외한 일행들은 눈앞에 펼쳐진 '낙원'의 정경에 넋이 나갔다.
중앙 대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형성된 주택가와 시장가. 시끌벅적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목소리는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낙원의 존재들은 나눔을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는 악마종과 인간과 인외종이 함께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일행이 동요했다.시나리오가 시작되고 처음으로 마주한 평화. 마음이 흔들린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정희원의 얼굴에 수심이 어려 있었다. 정희원은 김독자와 따로 얘기를 시작했다.
정희원이 이곳에 온 것은 나흘 전. 셋째 날부터 흔들리기 시작했고, 넷째 날에 김독자가 찾아왔다. 정희원이 말을 이었다.
이곳은 치안도 좋고 평화롭게, 시나리오에 쫓기듯 살지 않아도 되는 곳이라고. 더 이상 누군가를 잃지 않아도 되는 곳이라고.
김독자는 그녀에게 이곳에 남고 싶다면 남아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물론 자신은 머무를 생각이 없었다. 실제로 낙원은 시나리오 전체에서도 이만한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안전한 곳이었지만.
두 사람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잠시 뒤, 정희원은 성주가 김독자를 찾는다고 알려주었다.
김독자와 정희원은 낮은 언덕길로 향했다.
갈수록 <에덴>의 성좌들이 불편해하는 기색을 아낌없이 내보였고, 채널 단골 4명인 제천대성과 흑염룡, 우리엘과 은밀한 모략가까지 모두 모였다.
김독자는 잠시 생각했다. '은밀한 모략가'. 어떻게 이렇게 강한 강력한 성좌가 원작에 언급되지 않을 수 있었는지.
어느새 언덕에 도착했고, 언덕 위에 하얀 칠을 한 벽돌집이 보였다. 낙원성주가 있는 곳. 낙원에서는 낙원성주를 절대 이길 수 없다.
길을 따라 쭉 올라가자 벽돌집 옆에 붙어 선 그림자가 나타났다. 훤칠한 키에 조각처럼 아름다운 외형의 사내.
사내는 언덕에 핀 꽃에 물을 주는 중이었다. 영구기관 이라는 꽃이었다. 본래는 외부에서 에너지를 공급받지 않고도 영원히 일하는 가상의 기관을 이르는 총칭이지만, 이곳에서는 꽃 이름일 뿐이었다 .
낙원의 꽃, '영구기관'. 이 꽃은 새벽녘에 봉오리를 틔워 밤이 될 무렵 열매를 맺는다. 열매는 새벽이 되기 전 땅에 떨어지고, 식물은 다시 그 열매를 비료로 꽃을 피운다.
사내는 그 꽃을 무척이나 사랑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사내는 김독자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김독자도 사내가 누군지 알고 있었지만.
낙원성주, 라인하르트 폰 제르바. 멸살법의 십악 중에서도 유명한 인물. [등장인물 일람]으로 확인해보니 종합 능력치는 모두 Lv. 99로 시나리오의 제한 기준을 돌파했고, 거의 모든 스킬의 능력치가 최대치에 도달해 있었다.
라인하르트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팔백 년전에 이곳에 떨어졌으나 시나리오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고 낙원을 만들었다고.
김독자가 원작을 읽지 않았더라면 그의 신념에 감탄하고 말았을지도 몰랐다. 작중 유중혁은 라인하르트를 이렇게 불렀다.
「가장 순수한 악.」
라인하르트는 다음 시나리오는 아무도 찾지 못한채 좌절했다며 자신과 함께 낙원을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김독자는 라인하르트를 잠시 보다가 언덕 아래를 보았다. 낙원의 범죄자들이 언덕 아랫길의 지하도로 이송되고 있었다. 김독자는 그들이 어디로 끌려가는지 알고 있었다.
그들은 아마 이 낙원의 비료가 될 것이었다.
김독자가 입을 열었다. 라인하르트는 사실 다음 시나리오를 찾았고, 도전도 했다. 그러나 실패하고 혼자 살아남아 낙원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도깨비들과의 거래가 언제까지 유효할 지는 알 수 없다고, 스타 스트림은 이렇게 평화로운 곳을 오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말을 마쳤다.
잠시 말이 없던 라인하르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또 무엇을 알고 있냐고. 말투가 바뀌었고 그의 전신에서 적의가 흘러나왔다. 김독자는 라인하르트는 죽고 낙원은 멸망할거라고 말을 남겼다.
김독자가 떠난 뒤, 라인하르트는 한참동안 멍한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처음엔 믿지 못했고, 다음엔 화가 났으며, 다음엔 초조해졌다. 아지만 애써 감추었다. 칠백 년 동안 그가 혼자 이곳을지켜왔고 아직 자신은 건재했으니까.
김독자는 언덕 아래에서 정희원을 만났다. 함께 거리를 걸으며 정희원이 김독자에게 물었다. 시나리오를 왜 계속해야 하는지. 돌아가도 예전같은 서울은 없을 테니까.
열 번째 시나리오가 끝나면, 서울 돔은 부서지고 화신들은 해방된다. 하지만 그때부터는 '시나리오'가 전 세계로 확대된다.
김독자는 천천히 자신이 아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희원은 칼을 잘 쓰고, 불의 앞에서 냉정하며 항상 맨 앞에서 싸워왔다. 불평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고. 누구보다 인간을 불신하지만 정이 많고, 일행이 위험에 빠지면 가장 먼저 달려오는 사람이었다.
전부 정희원이 시나리오를 계속했기에 알 수 있었던 것들.
돌아갈 곳도, 머무를 곳도 없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고 그래서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김독자는 정희원은 정희원의 방식으로 살라는 말을 하며 '거래소'를 열었다. 타이밍 좋게' 제작을 의뢰한 물건이 완성되었다. 화룡종 뼈와 악마 심장, 그리고 몇몇 괴수의 핵으로 만든 아이템이었다. 오직 정희원만 쓸 수 있는 아이템.
김독자는 제작 대금 10만 코인을 일시블로 지급하고 아이템을 넘겨받았다. 김독자는 '심판자의 검'을 정희원에게 주었다.
정희원은 얼떨결에 받아들었고.
김독자는 낙원을 두고 한수영과 떠났다. 원작대로라면 낙원은 반드시 파괴될 것이다. 화신들의 평화가 무참히 부서질 테지만, 김독자가 막을 수는 없다. 낙원이 있는 한 시나리오는 끝나지 않을 테니까.
김독자는 다른 일행이 쉬게끔 하기 위해서 도움되는 한수영만 데리고 나온 것이었다. 지금까지 김독자는 혼자서만 너무 애썼다. 이번엔 유중혁에게 맡기고 히든 피스나 찾아다니기로 결정했다.
회귀자 흉내나 내면서.
[Ep.32 김독자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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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10 - 73번째 마왕
Episode 33. 다시 읽기 ~ Episode 37. 마계의 풍경 |
[Ep. 33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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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34 먹을 수 없는것]
김독자는 척준경이 남긴 '꿈을 먹는 자'의 상처 안으로 들어갔다.
척준경이 같이 가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며 척준경의 설화가 흩어졌다.
'꿈을 먹는 자'의 내부는 새카만 암흑이었다.
잠시후 김독자는 '꿈을 먹는 자'의 희미한 목소리를 듣는다.
'꿈을 먹는 자'는 김독자의 정신에 침입을 시도하지만, [제4의 벽]에 막히고 놀란다.
독자는 협상을 시도한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신, 어머니를 돌려받겠다는. 하지만 '꿈을 먹는 자'는 독자의 협상을 거부한채 김독자와 어머니를 모두 먹으려고 한다.
그러나, 독자는 136회차의 유중혁이 그랬듯이, 수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멸살법'. 그 많은 이야기에 당황하던 '꿈을 먹는 자'는 [제4의 벽]에 잡아먹힌다. 이수경과 함께.
김독자는 어머니를 돌려달라며 [제4의 벽]을 두들겼다. 그러자 이수경의 이야기가 벽 위에 떠올랐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칼을 휘두르다 어머니와의 몸싸움 후 어린 김독자에게 죽는, 김독자가 아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가. 김독자는 절규하며 [제4의 벽]을 계속해서 두들겼다.
어느 순간,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온다. 스킬을 해제해라.
김독자는 깨달음을 얻고 스킬 [제4의 벽]을 해제한다.
그러자 김독자는 특성창을 볼수 있게 된다.
김독자가 특성창을 살펴보니 성좌들이 [제4의 벽]이 없는 틈을 타 김독자의 정신을 열려고 시도한다. 그러자 [제4의 벽]은 의지와 무관하게 재활성화 된다.
김독자는 [제4의 벽]과 대화한다.
[제4의 벽]은 다시는 해제하지 말라며 화를 낸다.
김독자는 그렇게 할테니 어머니를 돌려달라며 설득한다.
이후 김독자는 이수경을 돌려받는다.
이계의 신격을 물리치고 나오자마자 죽은 김독자.
일행들은 김독자를 관속에 넣는다.
일행은 어머니에게 죽었으니 [운명]이 실행되었다며 기뻐했지만,유중혁은 아직 [운명]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유중혁은 세 번의 회귀로도 정체를 알지 못한 자신의 배후성에게 질문을 던진다.
[Ep. 35 73번째 마왕]
[당신은 사망했습니다.]
김독자는 죽은 상태에서 '3인칭 시점'으로 인물을 하나하나 관찰했다. 이 정도면 다음 시나리오 공략은 충분할것 같았다.
[거대한 운명이 당신의 죽음을 바라고 있습니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운명 메시지'를 보며 '부활 편법'으론 이 편법을 피할 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김독자가 한참을 생각하는 동안, 돌아갈 시간이 되어 있었다.
일어나자 보이는건 새카만 어둠. 관 속이었다.
잃었던 다리도 회복되었고, 김독자는 관 밖으로 나간다.
밖으로 나가자 환대를 받았다.
[설화, '이계의 신격을 살해한 자'를 획득했습니다!]
무려 '준신화급 설화'. 김독자의 격이 재평가에 들어간다.
다음 시나리오에서 김독자의 격이 공표 예정이었다.
다음 시나리오는 암흑성 랭킹 1위와 2위만 도전 가능했다.
김독자는 랭킹 2위. 랭킹 1위는 물론 유중혁이었다.
갑자기 유중혁이 김독자의 최종 목표를 묻는다.
불안함을 느낀 김독자가 [전지적 독자 시점]을 쓰려던 그때, 유중혁이 선수를 친다. 다음 시나리오 참가자를 발표한 것이다.
-유중혁 팀에 들어갈 인원은 이현성, 공필두, 이지혜, 이설화
-김독자 팀은 정희원, 신유승, 이길영, 유상아
다음 시나리오에서는 마왕과 싸워야 했다.
마왕은 현세에 눌어붙은 '성좌'.
다행히도 위층에 있는 마왕은 정식 마왕이 아니었다.
김독자는 유중혁 팀엔 한수영을, 김독자 팀엔 조영란을 '식스맨 카드'로 데려가기로 한다.
그리고 독자는 마왕의 패턴을 분석하여 일행에게 훈련을 시킨다.
다음 시나리오로 향한 일행. 그러나 그곳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보게된다. 바로 73번째 마왕이 이미 사망한 상태 였던것.
그러자 스타 스트림은 망가진 개연성을 바로잡기 위해 메인 시나리오를 갱신한다. 시나리오 내용은 보옥을 차지해 스스로 73번째 마왕이 되거나, 새로 태어나는 마왕을 죽이는것.
유중혁이 달려나가 보옥을 차지하려고 한다. 시나리오의 실패 대가는 사망. 김독자 대신 자신이 희생하려고 한다.
김독자는 '전지적 독자 시점' 2단계를 발동한다.
유중혁은 시나리오의 실패 대가가 '시나리오 추방'임을 알고 있었다. 김독자의 [운명]이 가리키는 죽음이 이것임을 깨달은 유중혁이 스스로 희생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일행이 살아남은건 김독자 때문이었으니까.
유중혁은 자신을 막으려는 김독자를 보며 말을 이었다.
자신이 회귀해도 이 세계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그러니 살아남아 이 세계를 구하라고.
그러나 김독자는 계속해서 유중혁을 막는다.
자신이 바라는 결말엔 이런 전개는 없었으므로.
김독자는 잠깐동안 [소형화]를 해제한 채로 [전인화]의 능럭을 사용해 유중혁을 밀어내고 보옥을 차지해 '73번째 마왕'이 된다.
스타 스트림이 발표한 김독자의 격은 '설화급'.
그리고 김독자는 마왕, 타락한 성좌가 된다.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김독자의 몸.
김독자는 모두에게 자신을 쓰러뜨릴 것을 종용한다.
그들은 다시 살아날거란 약속을 받아내고 김독자에게 달려든다.
그렇게, 메인 시나리오가 종료되고 서울 돔이 해방된다.
김독자는 시나리오에서 추방된다.
그리고 스타 스트림에게 받은 수식언.
[Ep. 36 이야기의 지평선]
서울 돔이 해방되고 사람글은 쏟아지는 보상과 함께 환희에 찬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건 아니었다.
김독자의 일행, 김독자로 인해 살아나거나 김독자에게 빚이 있는 사람들은 각자 사태를 설명해줄 사람을 찾았다.
그러나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은 유중혁뿐.
유중혁은 비참하게도 그들의 희망을 꺾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어떤 누구도, 그를 구할순 없었다.
유중혁은 자신이 회귀하면 되돌릴 수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회귀했는데 김독자가 없다면?
과거로 돌아가도 이번 생의 김독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유중혁은 이 생을 포기하지 않고 살기로 결심한다.
'화신 김독자'는 죽었지만, '성좌 구원의 마왕'은 죽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혼자가 된 김독자는 [제4의 벽] 덕분에 어떻게든 살아만 있었다. 시나리오 권외 지역이 된 서울에서.
김독자는 모든 시나리오가 시작되었던, 지하철로 돌아간다.
그리고 비형에게 의뢰해 남겨둔 특성과 아이템[84]을 챙긴다.
김독자는 지평선의 악마 '혹부리'를 마주한다.
신유승을 '재앙'으로 둔갑시켜 이 차원으로 전송한 존재.
혹부리는 도깨비의 알을 가져가려고 한다.
알에서 태어날 존재는 '채널'을 만들 수 있는, 무수한 이야기를 상산할 가능성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독자는 '시나리오'로 돌아가는 것과 새 '화신체'를 얻는 대가로 자신의 설화를 내줄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혹부리는 협상 끝에 시나리오로 복귀할 수도, 화신체를 얻을 수도 있는 73번 마계에 보내주고 설화 '이야기꾼을 능멸한자'를 받아낸다.
그리고 김독자는 '시나리오의 지평선'에 도착한다. 시나리오들의 폐기물들이 모이는 장소. 김독자의 의도대로 였다.
김독자는 '라마르크의 기린'[85] 특성을 사용하여 '부서진 설화'[86]로 육체를 재구성 해나간다.
한편, 정희원은 서울 돔 바깥에 있던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서울 돔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임시 정부에 들려주며 '김독자'를 알리고 김독자가 돌아오기를 바란다.
[Ep. 37 마계의 풍경]
김독자는 유중혁의 111회차를 떠올리며 마계의 시나리오를 손에 넣기 위해 공단[87]으로 몰래 들어간다.
'멸살법'의 두 번째 주인공을 찾기위해 김독자는 여기저기를 덜아다닌다. 그러다 어느 미소년과 부딪친다.
바로 김독자가 찾아다니던 두 번째 주인공.
김독자는 두 번째 주인공이 있는 시계점에서 악마 귀족들이 시계점주 아일렌에게 "공작의 제안을 받아들이던가 아니면 밀린 세금 5만 코인을 내라"며 협박하는 모습을 보게된다.
김독자는 특별한 물건을 만들어주면 5만 코인을 주겠다며 아일렌에게 의뢰한다. 5만 코인을 쉽게 지불하는 모습을 보며 악마 귀족들은 경악하며 시계점을 빠져나간다.
김독자는 행성 '린드버그'의 마도공학자이자 설화 전문가인 아일렌 메이크필드에게 자신을 고쳐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면서 그곳에서 멸살법의 두 번째 주인공 장하영을 만난다.
사실 김독자는 악마 공작의 제안을 알고 있었다.
바로 거신병을 만드는 것. 그리고 아일렌이 거절했다는 것도 알고있었다. 김독자는 자신이 아는 정보들을 말하며 자신의 조건을 들어주면 공작을 막아주겠다며 유중혁 행세를 시작한다.
73번째 마계의 마왕이 될 존재라면서.
공민회 의원들은 충격에 빠진다.
지금까지 공작을 죽이려는 시도는 전부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김독자는 아일렌과 거래한다. 귀족을 상대할 수 있는지 증명하는 대신, 무료로 화신체를 수선해주기로. 그리고 김독자는 '혁명가 시나리오'를 양도해줄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아일렌도 '혁명가'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도와주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김독자에겐 꼭 손에 넣어야 하는 시나리오 였다.
본래의 시나리오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김독자는 휴식을 취하기 위해 어느 선술집에 들어간다.
선술집 상단에 달린 패널에서 지구의 열 번째 시나리오의 한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그때 장하영이 나타나 패널 속 구원의 마왕을 보며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김독자는 어리둥절해 하고.
그때 선술집 주인장이 "밤이 온다"고 말하자 적막이 번져갔다.
거리의 모든 가게가 갑자기 문을 닫고 불을 끄기 시작했다.
'밤'이 되면 공단엔 '혁명가'를 찾는 '처형관'이 나타난다.
어떤 존재도 밤의 공단에서는 처형관과 대적할 수 없었다.
하지만 김독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혁명가'라고 선언한다.
2.10. #20 - 마계 혁명
Episode 38. 가짜 혁명가 ~ Episode 48. 등장인물 |
[Ep. 38 가짜 혁명가]
[누군가가 '혁명가 선언'을 했습니다!]
공단의 최정점, 공작을 위현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혁명가'.
김독자의 선언으로 김독자는 '자칭 혁명가'가 되었다.
'기존 혁명가'가 사망할 시에 지위를 양도 받는.
그러자 처형관은 김독자를 향해 죽음의 표식을 남기고 낫을 휘둘렀다.
하지만, 김독자는 메인 시나리오 참가자도, 공민도 아니었다.
[당신은 해당 시나리오의 '처형' 효과를 받지 않습니다.]
['처형'의 필살 효과가 중화됩니다.]
김독자는 다른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처형관과 맞선다.
'밤'이 끝날 때까지 처형관은 죽지 않기 때문에 책갈피 [바람의 길]을 사용해 시간을 끌면서.
하지만 책갈피는 그리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스킬이 아니었다.
그러나 '밤'을 살아남는 방법은 또 있었다.
자신의 생명력을 사용해 경호하는 '경호관'의 도움을 받는것.
누군지 모르는 경호관 덕분에 표식이 해제되어 처형관이 돌아간다.
악마 백작 한이 유중혁이란 사람이 '혁명가 선언'을 했다는 소식을
처형관 중 하나에게 듣고 유중혁이 나타난 곳을 묻는다.
아일렌이 김독자에게 화를 낸다. 이 시나리오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김독자의 설득에 넘어가 포지션을 모으기로 한다. 처형관을 상대할 투사, 숨은 처형관을 찾아낼 스파이, 경호관까지.
그때, 선술집 주인장이 자신이 경호관이라며 나타난다.
김독자는 조금 놀랐지만 받아들인다.
그 후, '밤'이 찾아온다.
김독자는 경호관의 보호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없었다.
그런데, 처형관이 김독자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선술집 주인 마르크 제비어가 처형관의 주의를 끈다.
김독자믄 다가오는 처형관들을 막아서며 책갈피의 6번 슬롯에 '혁명의 기사 마르크 제비어'를 넣는다.
일시적으로 경호관의 직위를 획득해 김독자는 마르크를 보호하며 '밤'을 넘긴다.
스파이는 편이 정해지지 않은 포지션으로, 스파이를 손에 넣는 팀이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김독자의 앞에 유중혁인지 물으며 나타난 스파이.
그는 자신을 아우렐리우스라 소개했다.
그러나 '등장인물 일람'에 등록되지 않은 인물.
김독자는 당황한다.
그때 바깥이 시끄러움을 느끼고 문을 열어보니 군중들이 매일 '밤'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었다.
아우렐리우스는 공작에게 항복하면 자신이 모시는 공작보다도 강한 존재가 보호할 것이라며 항복하라고 말한다.
물론 김독자는 그 제안을 거절한다.
아우렐리우스는 후회하게 될 것이라며 군중속으로 사라졌다.
군중들은 분노하며 반발한다.
그러자 김독자는 공민 세 명을 죽인다.[88]
모두들 무슨 일인지 이해하지 못한채 패닉에 빠져있었다.
그때 들려오는 메시지
[누군가에 의해 '처형관'이 사망했습니다.]
[누군가에 의해 '처형관'이 사망했습니다.]
[누군가에 의해 '처형관'이 사망했습니다.]
[현자 남은 처형관 수: 7]
메시지를 확인한 사람들은 배신감 속에 죽은 처형관의 시체를 짓밟고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김독자는 유유히 군중 속을 걸어나가 아우렐리우스의 목덜미를 붙잡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바로 한명오 부장이었으므로.
[Ep. 39 정체불명의 벽]
아일렌과 마르크, 장하영에게 바깥 정리를 맡기고 김독자는 한명오를 구속한다. 그리고 대화를 시작한다.
한명오가 김독자를 알아차리자 김독자는 입을 틀어막고 협박한다. 자신의 정체를 말하면 당신은 여기서 죽을 것이고, 자신은 지금 유중혁이라고.
[제4의 벽]이 마왕 '격노와 정욕의 화신'이 김독자를 바라보고 있음을 알려준다. 김독자는 [제4의 벽]의 능력에 놀라며 사인참사검을 꺼내들어 한명오의 머리 위로 검을 휘둘렀다.
[마왕, '아스모데우스'와 권속 간의 연결이 일시적으로 끊어집니다]
사색이 된 한명오를 보며 김독자는 한명오를 이용하려고 한다.
한명오는 할 수 없이 혁명을 방해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 김독자의 질문에 똑바로 대답하며, 전심전력으로 김독자에게 협조한다는 내용의 존재 맹세를 한다.
김독자는 한명오에게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묻는다.
한명오는 눈물을 쏟으며 아이를 낳았다고 말했다.
아쉽게도 더 듣진 못했지만.[89]
아무리 김독자라도 모든 처형관을 잡을 순 없었기 때문에 투사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 공단엔 투사가 없었기 때문에 김독자는 다른 곳에서 투사를 찾기위하 장하영에게 [정체불명의 벽]에 대화해보라고 한다.
[정체불명의 벽]은 협조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제4의 벽]의 도움으로 하영은 [정체불명의 벽]에게 인정받는다. 장하영의 벽을 통해 김독자와 장하영은 마계의 투사로 싸운 적 있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하지만 답장은 없었다.
그래서 장하영은 [15세 여중생 문친 구해요~]란 내용으로 랜덤한 성좌들에게 발송한다. 답답해하던 김독자 앞에 답신이 도착했다.
놀랍게도 답신을 보낸 성좌는 김독자가 아는 성좌였다.
[발신자-심연의 흑염룡]
장하영과 심연의 흑염룡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한명오가 깨어난다. 한명오는 아이를 낳고 홀로 시나리오를 돌파했다고 한다.
그러다 아이를 지키지 못하게 되자 기도를 했다고.
그 기도에 응답한게 아스모데우스였다.
그리고 아스모데우스은 아이를 화신체로 삼았다.
한명오는 김독자에게 자신의 딸을 구해줄 것을 부탁한다.
하지만 김독자에겐 아스모데우스와 싸울 계획이 없었다.
한명오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73번째 마계의 왕'을 만들면 딸을 돌려받을 수 있다며 굳이 싸울 필요는 없다고 했다.
한편, 유중혁은 '악마같은 불의 심판자'가 자주 메시지를 보내는 것과 73번째 마계에서 자신의 악명이 높아지는 이유를 알지 못해 김독자가 살아서 자신에게 구조요청을 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독자는 아일렌에게 스마트폰을 만들어 줄것을 부탁하고 장하영이 잘하고 있는지 살핀다.
이일렌은 '심연의 흑염룡'이 투사 스킬을 전승해줄 수 있으나 조건이 있다고 했다며 전해준다. 조건은 바로 고민 상담.
'심연의 흑염룡'의 화신이 사이가 안좋고 지금 위험에 처해 있는데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말하며 김독자와 상담(?)을 시작한다.
그 시각, 한수영의 앞에 새로운 메인 시나리오가 시작되었다.
'심연의 흑염룡'이 나타난 괴수들의 약점을 한수영에게 알려준다.
정보 덕분에 무난히 괴수를 제압한 한수영은 무언가 퍼뜩 떠올라 '심연의 흑염룡'에게 이 정보를 어디에서 얻은건지 캐묻는다.
한편, 장하영은 투사로 각성한다.
그렇게 장하영은 처형관을 하나하나 처리해 나갔다.
그러나 장하영은 두 악마 후작에게 당하고 만다.
악마 후작들은 설화로 공민들을 겁박했다.
그러자 김독자는 화신체가 많이 흔들릴 것을 각오하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성좌'의 격을 방출합니다]
가공할 격으로 시공간을 짓눌렀다.
[Ep.40 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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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25 - 마왕 선발전
Episode 49. 가장 잘하는 것 ~ Episode 56. 독자와 작가 |
[Ep.49. 가장 잘하는 것]
'불길에 몸을 던진 개'는 김독자를 태운 채 꼬박 이틀 밤낮을 달렸다. 성좌들이 집요하게 쫓아오며 위협을 가해도 스스로 몸을 던져 김독자를 지켜냈다.
마침내 날이 밝았고, '전초전'이 종료되었다.
보상으로는 200,000코인과 '장비 초월용 모루석' 2개를 얻었다.
초반 지역에서 SSS급 아이템도 중후반 시나리오에서는 거의 폐품에 가깝다. 그래서 제때 초월용 모루석을 사용해 품질 낙후를 막아야한다. 게다가 설화 '십이지에 맞선 자'까지 획득했다.
성좌들이 모습을 감춘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 유중혁 공단의 외양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공민들이 줄이어 공단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김독자는 떠나도 된다고 말했지만, '불길에 몸을 던진 개'는 계속 따라왔다.
'불길에 몸을 던진 개'는 진명조차도 자신의 이름이 아닌 '오수의 개'다. 만취한 주인이 불에 타 죽는 것을 막기 위해 제 몸을 적셔 잔디밭의 불을 끈 개. 현재 화신체의 크기를 줄이고 김독자를 쫓아오고 있었다.
장하영이 김독자를 발견하곤 다가왔다. 장하영이 개의 이름을 묻자 김독자는 대충 오수라고 둘러댔다. 그런데 '불길에 몸을 던진 개'가 감동하더니 충성도가 크게 상승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마왕 선발전'의 시작이 임박했습니다!]
73번째 마계 전체가 흔들리는 진동이 느껴지더니 하늘에 낯선 별들이 하나둘 나타나고 있었다. 대형 이벤트를 관람하기 위해 스타 스트림 곳곳의 성좌들이 찾아온 것이다.
김독자는 20번대 시나리오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아 25번째 시나리오에서 개연성 손해를 보게되었다.
그리고 시작된 메인 시나리오 '마왕 선발전'.
'조력자'와 팀을 이루어 '신화의 전장'에서 승리하시오.
모처럼 실패 시 항목에 '사망'이 표기된 시나리오였다.
해당 시나리오는 전용 무대가 있으며 주요 참가자 4명이 있다. 주요 참가자는 상호 합의하에 '조력자'를 구할 수 있다. 그리고 김독자는 시나리오의 주요 참가자였다.
허공에서 독각과 비형이 나타났다. 이제 곧 시작된다며 안내를 시작했다. 전장은 '양산형 제작자'가 만든 광활한 숲 지대. 숲 외각에는 동서남북으로 공단의 출발 지역이 표시되어 있었다.
이번 선발전은 공단별로 팀을 나누어 '팀플레이'로 진행하게 되어있다. 'AOS 게임'과 흡사한 형태였다. 탱커 한 명, 근접 딜러 두 명, 원거리 딜러 두 명과 서포터 한 명과 올라운더 한 명까지.
뜻밖에도 상대적으로 불리한 공단이라며 유중혁과 김독자의 공단이 한 팀이 되었다. '유중혁-김독자 공단'으로.
그런데 유중혁이 보이지 않았다. [전지적 독자 시점]으로도 찾을 수가 없어 '한낮의 밀회'를 사용했다. 예상치 못한 메시지들이 수십 통 와 있었다. 비유는 자신이 구했으며 왜 사라졌냐고. 한참이나 이어지던 문자는 가겠다는 메시지가 마지막이었다.
김독자가 재빨리 메시지를 보냈지만 유중혁은 보지 않았다.
그 대신 돌아온 것은 시나리오 메시지.
[10분 안에 '조력자'를 모집해주십시오.]
[총 6명의 '조력자'를 모집할 수 있습니다.]
김독자는 조력자를 구하기 위해 나섰지만 다른 성좌들은 거절에 아스모데우스는 3차전부터 돕겠다고 하고 장하영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려 하지만 은밀한 모략가는 존재하지 않는 수식언이라고.
결국 탱커는 사명대사, 근접 딜러는 김독자와 파천신군, 원거리 딜러는 장하영과 오수, 서포터는 한명오, 올라운더는 유중혁이 되었다. 유중혁은 다른 지점에 있을 터였지만.
이 게임은 비석의 '문장'을 지켜야 했다.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천국의 사자, 지옥의 수문장』
비석은 한명오에게 맡기고 게임이 시작되었다.
1차전에서 모든 참가자는 본래 능력치의 10%만 사용이 가능하고 회차가 거듭될수록 페널티는 감소한다. 이어서 본진 '천국의 계단'에서 하급 천사들이 지원군으로 등장했다.
본진을 벗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난 적들.
하필 설화급 성좌가 섞여있는 파티였다.
사명대사는 잘 싸워주었지만 무참히 패배했다. 그러나 사명대사가 '트롤링'만 한 것은 아니었다. 사명대사의 성흔인진 몰라도 죽은 사명대사의 혼이 떠돌며 성좌들을 공격했다. 그 덕분에 달아날 기회라도 잡을 수 있었다.
곧이어 오수도 사망. 한명오는 '외발 준족'으로 도망치고 장하영과 김독자 두 사람만 남아 숨어있었다. 주변 성좌들이 풀숲을 휩쓸며 김독자와 장하영을 찾으려 했다.
그리고 갑자기 모든 폭음이 사라졌다.
김독자와 장하영은 풀숲을 박차고 달렸다.
어디선가 비명이 들리며 김독자를 쫓던 성좌가 사망했다.
유중혁이 드디어 온 것이다.
유중혁은 설정상 프로게이머. 게다가 '센티넬 골렘의 가호'에 15번째 시나리오 지역에서만 얻을 수 있는 '로빈후드의 강궁'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지금 유중혁의 포지션은 올라운더. 어떤 무기를 사용해도 패널티를 받지 않는다.
[등장인물 '유중혁'이 특성 진화의 계기를 맞이합니다!]
[등장인물 '유중혁'의 특성 '프로게이머'가 진화합니다!]
마침내 유중혁의 두 번째 특성이 개화를 맞이했다.
전설급 특성 '유희의 지배자'.
이 무대가 '게임'인 한, 유중혁은 이 세계의 어떤 성좌보다 더 신에 가까운 존재가 된다.
유중혁의 특성 개화로 1차전의 승자는 유중혁-김독자 팀이 가져가게 되었다. 얻은 승점도 무려 6점. 심지어 도중에 상대 팀에게 빼앗은 '문장'도 있었다.
『참혹한 마경에 설화의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으니』
유중혁이 다가오더니 품속에서 비유가 튀어나왔다. 비유는 한 손으로 우리엘의 멱살을 쥔 채 휘두르고 있었다. 비유는 인형을 유중혁에게 던지고는 김독자의 품에 안겼다.
유중혁은 구해야 할 아이템이 있어 멜레돈 근처까지 다녀왔다고 말했지만 무슨 아이템인지 묻는 질문엔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 2차전까지 남은 시간은 5분.
일전의 전투로 죽은 화신체는 다시 부활해 있었지만 일행들은 지쳐있는 상태였다. 사명대사와 오수, 한명오[90]는 다음 경기엔 참여할 수가 없다고.
유중혁은 자신이 추가 전력을 보급하겠다고 하며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현재 성좌들은 이 게임과 관련한 특성과 스킬을 막대한 코인으로 구입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유중혁의 '유희의 지배자'가 있더라도 혼자는 무리였다.
김독자는 잠시 고민하다 작전을 제안한다.
성좌들은 게임 시작과 동시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제 그들은 자신이 가진 성흔이나 스킬, 아이템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완벽히 숙지했다.
성좌들은 유중혁만 노리고 유중혁을 공격했다.
하지만 맹공에도 유중혁은 계속 버티고 있었다
김독자의 신호에 파천신군이 허공에서 유중혁을 노리던 '우레를 먹는 새'의 몸통을 꿰뚫었다. 장하영은 시간을 벌어달라 부탁하곤 힘을 모았다.
[장하영이 획둑한 포인트를 사용하여 특정 스킬의 봉인을 해제합니다.]
[조력자 '장하영'이 궁극기를 준비합니다!]
이 게임에서 특정 위력 이상의 성흔과 스킬은 '궁극기'로 취급된다. 그리고 궁극기는 오직 게임을 통해 얻은 포인트로만 해제할 수 있다. 장하영은 방금 어시스트로 획득한 포인트를 사용한 것이다.
[조력자 '장하영'이 '파천붕권 Lv.10'을 발동합니다!]
파천붕권. 파천검성이 심심풀이로 만들었다는 무공.
대포가 발사되는 듯한 굉음이 울려퍼지며 장하영의 주먹에서 공간을 찢는 권풍이 쏘아졌다. 권풍은 달려오던 두 명의 성좌를 그대로 날려버렸다.
'우레를 먹는 새'가 죽고, '바나라의 장군'이 치명상을 입었다.
김독자는 '문장'을 가진채 도망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메시지가 떠올랐다. 파천신군과 장하영이 사망했다고.
김독자의 앞에 성좌들이 나타났다. 지난 경기에선 보지 못했던 '베르칸' 진영의 성좌들이었다. 놀랍게도 그 사이엔 '멜레돈' 진영의 오이디푸스 왕이 보였다.
공격이 김독자에게 퍼부어졌고 강력한 빛의 폭풍이 김독자의 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지난 경기에서 획득한 승점을 포인트로 전환합니다!]
[포인트러 특정 스킬의 봉인을 해제했습니다!]
김독자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김독자는 오랜만에, 3번 책갈피를 사용했다[91].
[해당 인물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높아 스킬 능력치가 강화됩니다!]
[전용 스킬, '야수왕의 감수성 Lv.10(+1)'이 발동 중입니다!]
김독자는 새하얀 털에 휘감긴 채 성좌들을 바라보았다.
이번 게임의 올라운더는 사실 김독자.
김독자에게도 가장 잘하는 것이 있다.
김독자는 마왕 선발전을 2차전에서 끝낼 것이다.
[Ep.50. 독자의 설화]
김독자는 책갈피를 발동했다. '심연을 들여다본 자'의 효과로 2개의 책갈피를 사용할 수 있는 데다 스킬의 레벨도 2레벨이나 등가했다.
성좌 한 명울 살해했으나 다른 성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김독자는 자신의 격을 방출했다. 몇몇 성좌들이 뒷걸음질 쳤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다.
긴 황금빛 머리카락과 네 개의 팔, 그리고 세 개의 눈을 가진 성좌가 다가오고 있었다. '지고한 빛의 신', 수르야.
성운 <베다>의 여덟 명의 위다한 로카팔라 중 하나.
수르야는 김독자에게 <베다>로 오라고 제안한다. 김독자는 자신이 대적할만한 상대가 아님을 알면서도 거절한다.
수르야의 화신체에서 강력한 격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쩌면 포인트로 성흔 중 하나를 해방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김독자는 움직였다. 곧바로 성좌들이 앞을 가로막았고, 성좌들을 살해했다.
하지만 다가가는 김독자를 보고도 수르야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독자의 힘은 전부 빌린 것임을 안다며 [제3의 눈]을 개방했다.
공간이 우그러지는 느낌이 들더니 수르야의 공간에 와 있었다.
일대의 시공간을 장악하는 힘. [제3의 눈]의 권능이었다.
김독자는 무슨 설화를 사용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때, 누군가가 설화를 먹어치우는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제4의 벽]이었다.
[제3의 눈]은 인지를 조작해 시공간을 지배하는 정신계 능력. 그리고 [제4의 벽]은 정신계에 한해서는 최강의 스킬이었다.
공간이 떨리더니 우그러지던 지점들에 균열이 생겼다.
어둠은 유리가 부서지득 일제히 무너졌다.
수르야가 이마의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경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독자의 마력은 바닥. [책갈피]를 열 힘조차 없었다.
협곡 위쪽에서 새카만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3킬로미터에 달하는 길이. 둘레가 수십 미터를 넘는 몸통이 지상으로 낙하하고 있었다. 피할 새도 없이 덩치 큰 성좌들은 대괴수의 비늘 아래 깔려 죽었다.
[묵시록의 이무기]. 김독자가 기다려온 괴수의 이름.
게임 초반부에 저 괴물을 상대할 성좌는 존재하지 않는다.
순식간에 일곱 명의 참가다와 조력자가 협곡에서 사망했다.
'묵시록의 이무기'가 이젠 김독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옥의 불길을 빌려 지상의 모든 것을 녹여버린다는 홍염이 김독자의 머리위로 쏟아졌다. 김독자는 눈을 감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죽지 않았다. 눈을 뜨자 누군가가 앞을 막고 있었다. 단정한 특공복에 특수부대 마크를 어깨에 새긴 군인이, 거대한 방패를 치켜든 채 떨어지는 불길을 막고 있었다.
유중혁이 부른 조력자들이 마침내 도착한 것이다.
신유승, 이현성, 유상아. 그들은 김독자와 도망쳤다.
그들은 협곡의 꼭대기에서 인사를 나누었다.
유중혁이 보였다. 유중혁도 김독자와 일행을 발견했다.
그러나 불리한 상황이었다. 유중혁은 거의 전투 불능에, 성좌들보다 수도 적었으니까.
그리고 전면전이 시작되었다. 유중혁이 '베르칸 공작'이 문장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주었고, 이현성과 유상아, 신유승까지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유중혁이 살해당했고, 조금씩 밀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수르야에게 생긴 아주 작은 틈을 이용해 '베르칸 공작'을 살해했다. 동시에 수많은 시스템 메시지들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었다. 그러나 메시지를 다 읽기도 전에 김독자를 터뜨린 힘이 있었다.
[당신은 살해당했습니다.]
김독자의 시야가 암전되었다가 되돌아왔다. 보이는건 새카만 천장. 결과가 어떻게 된건지 알수가 없었다.
김독자가 몸을 일으키자 도서관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운 서가에서 책 한 권을 꺼내들자, 익숙한 문체의 문장이 이어졌다. 멸살법에는 나오지 않은 장면. 그러나 익숙한 장면. 김독자가 수없이 상상했던 장면이었다.
이곳은 멸살법의 모든 기록이 모인 도서관이었다. 그런데 멸살법보다도 책이 더 많은것 같았다.
도서관 전체에 메아리치듯 울리는 목소리. [제4의 벽]이었다. 이곳은 [제4의 벽]의 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나가냐는 말에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사용 가능한 스킬도 없는데다, 출구도 보이지 않았다. 장서관의 끝도. 어디를 둘러보든 멸살법 뿐인 곳. 오히려 안락감이 찾아와 책을 쌓아놓고 읽기 시작했다.
문장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한 칸의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책장을 건너뛰거나 중간부터 책을 펼치기도 했다.
어떤 책에는 김독자의 욕이 적혀있었고, 고마운 말도 적혀있었다. 읽을 수 없는 내용도 있었고. 모든 책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반대편 서가에서 인기척이 들린 것은 그때였다. 김독자는 집요하게 그림자를 뒤쫓았다. 그러다 갑자기 앞쪽 바닥이 쑥 꺼졌다.
새카만 낭떠러지. 이 도서관의 끝이자 모든 이야기의 끝이었다.
2차전의 종료와 동시에 '신화의 전장'이 갑자기 해체되었다.
그런데 김독자가 깨어나지 않아 다들 당황했다.
[현재 2차전의 승자 팀을 판별 중입니다.]
메시지가 30분 째 변하지 않은채 떠있었다.
그때, 강력한 '격'이 느껴지며 거대한 먼지구름이 일어났다.
김독자는 자신의 어깨를 잡은 손에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니르바나 뫼비우스. [제4의 벽]에 먹혀 이곳에 있는 것이다.
니르바나는 김독자를 만나고 싶어하는 자가 있다며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니르바나 같은 존재들은 이곳에서 서가를 정리한다고. 김독자가 기억을 제대로 떠올릴 수 있도록. 곧 [000~100]이라 적힌 팻말이 드러나더니 '꿈을 먹는 자'가 눈에 들어왔다.
김독자를 도와주고 싶다면서. 김독자는 이 도서관을 누가 만들었는지 물었지만 엄청난 스파크가 튀어서 알 수가 없었다. 그대신 김독자는 '은밀한 모략가'가 누군지 물었다.
꿈을 먹는 자는 '우주에서 가장 오래된 존재이며, 고독하고, 가장 오래된 꿈과 맞서 싸우는 자' 라고 '은밀한 모략가'에 대해 말해주었다.
어느새 시간이 없다며 김독자는 '꿈을 먹는 자'가 펼쳐든 책[92]의 문장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유중혁은 성좌들을 상대하기 위해 초월형 3단계로 자신을 끌어올렸다. 근력만 높인 [거신화]와 초월형 3단계로 운신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 십 분.
유중혁은 집중력은 어떠한 상태에서도 잃지 않았고, 그 순간 유중혁에게 이 세계는 게임이 되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성좌들을 보며 유중혁은 죽어가는 자신을 느꼈다. 그의 감정에 반응하듯, 설화들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설화, '패왕의 이름을 계승한 자'가 울부짖습니다.]
귀환제에게 맞선 설화
[설화, '이적에 맞서는 자'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버림받은 낙원을 지킨 설화.
[설화, '절망의 낙원'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계의 신격과 맞선 설화
[설화, '공단의 지배자'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설화, '재앙의 왕'을 사냥한 자'가 포효합니다.]
[설화, '생과 사의 동료'가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어합니다.]
유중혁은 달아난 일행들을 보며 덜덜 떨리는 검 끝으로 수르야를 가리켰다. 그러나, 가공할 세월 앞에 유중혁의 짧은 역사가 위태롭게 떨리고 있었다. 모든 것을 녹여버릴 태양 빛이 유중혁을 향해 쏟아졌다.
성좌들에 의해 파괴되는 공단의 정경과 한쪽 팔을 잃고 신체의 절반이 넝마가 되어도 싸움을 지속하는 한 사내가 패널 화면에서 가장 눈에 띄었다.
성좌들의 분노에 찬 간접 메시지가 쏟아졌고, 비형도 분노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만한 개연성을 움직일 수 있는 존재는 하나뿐. 스타 스트림 자체. 스타 스트림이 원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렇다면 도깨비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제 믿을 존재는 하나뿐.
[다수의 성좌가 한 성좌를 바라봅니다.]
이현성의 등에 업힌 한 사내가 서서히 눈을 뜨고 있었다.
김독자는 깨어나자마자 어떤 상황인지 깨달았다. 김독자는 일행들에게 서둘러 약을 먹이고는 쉬도록 두었다. 그리고 유중혁을 구하기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김독자는 결단을 내리고는 300만 코인을 능력치에 모두 투자해 200레벨을 돌파했다.[93] 조금 더 강한 육신.[94] 이정도로 성좌들을 능가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들에게 맞설 정도는 되었다.
드디어 전장의 중심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서 죽어가는 한 사내가 보였다. 김독자는 달려드는 성좌들을 밀어낸채 유중혁을 불렀다. 그러나 닿지 않았다. 유중혁이 죽어가고 있었다.
김독자는 최대한 크게 진언을 사용해 아스모데우스를 불렀다.
아스모데우스가 작은 여자아이의 모습으로 현현했고, 성좌들을 찢어댔다. 김독자는 유중혁을 어깨에 들쳐매고 대환단을 입에 흘려 넣었다. 그러나 삼킬 힘조차도, 유중혁에겐 없었다.
유중혁이 사라져가기 시작했고 김독자는 유중혁의 부스러기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바람의 길]로 감쌌다. 하지만 심장 어귀에서 빛이 떠오르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화신 '유중혁'의 배후성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유중혁의 배후성은 유중혁을 회귀시키려 했다. 그러나 유중혁이 피 칠갑을 한 눈으로 자신의 배후성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김독자가 본 어떤 회차에서도 없던 일이 벌여졌다.
[화신 '유중혁'이 회귀를 거부합니다.]
필사적으로 죽을 수 없다 말하는 유중혁의 의지가 [전지적 독자 시점]을 통해 전해졌다. 그리고 회귀의 발동이 취소되었다.
김독자의 머릿속으로 유중혁의 생각이 들려왔다. 대환단을 더 잘게 부숴달라고. 김독자는 울컥하는 마음을 누른 채 대환단을 가루를 내 유중혁의 입에 털어넣었다. 그러곤 유중혁은 말이 없었다.
[설화, '생과 사의 동료'가 이야기를 지속합니다.]
김독자는 유중혁을 움켜쥔 채 달렸다.
다른 마왕들이 강림하기 시작했고. 불행하게도 그 마왕들은 김독자의 편이 아니었다. 이제 믿을 것은 김독자의 이야기 뿐.
아스모데우스는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화신체는 평소보다도 연약했고, 그동안 숨죽이던 강자들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명오가 그를 구하고 달려갔다. 맹목적이고 커다란 마음이 아스모데우스에게 느껴졌다. 아스모데우스를 향한 감정은 아니었지만.
일행은 성좌들과 상대조차 되지 않았고, 장하영은 간절히 성좌들을 찾았다. '정체불명의 벽'이 그걸 알고는 메시지를 띄웠다.
지금까지 장하영이 보내왔던 무수한 메시지들. 더 높은 격을 가진 존재가 보내지 말라고 해서 보내지도 않았었던 메시지.
장하영은 당장 보내라며 소리쳤고, '정체불명의 벽'은 전부 전송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누군가가 응답했다.
[성좌, '성급한 늪의 포식자'가 채널에 입장했습니다.]
[성좌, '서애일필'이 채널에 입장했습니다.]
[성좌, '조선제일술사'가 채널에 입장했습니다.]
[성좌, '고려제일검'이 채널에 입장했습니다.]
[작은 행성의 작은 성좌가 채널에 입장했습니다.]
[성좌, '은밀한 모략가'가 채널에 입장했습니다.]
하늘에서 몰아치는 성좌들의 입장음에 김독자는 고개를 들었다.
모두 한 번씩 자신의 편을 들어준 성좌들.
['73번째 마계'에 당신의 설화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성급한 늪의 포식자'와 '고려제일검'이 나타나 도와주었으나 마왕들까지 합세하며 여전히 불리했다. 그때' 김독자의 품속에서 '문장'들이 떠올랐다. 이 문장들은 '거대 설화'를 이루는 재료. 마침내 이 세계의 '거대 설화'가 준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이지혜가 나타났다. 게다가 정희원도. 그러나 마왕을 상대하긴 힘들 것 같았다.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엄청난 격이 발현하며 정희원에게 강림한 성좌의 힘이 한순간 세계를 은빛으로 물들였다.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73번째 마계'에 현현했습니다.]
[Ep.51 거대 설화]
우리엘이 73번째 마계에 등장했다.
필터링된 욕을 내뱉는[95] 우리엘을 보며 김독자는 새삼스럽게 우리엘의 설정을 떠올렸다. 그 어떤 대천사보다 잔혹한 전투광이며, 가장 많은 악마를 학살한 대천사.
우리엘이 김독자를 보고는 어색하게 인사하며 배려심 가득한 간접 메시지들을 보냈다.[* 김독자는 설화 '대천사의 사랑을 받는 자'를 얻었다.
우리엘은 진심으로 분노해 공격을 퍼부어댔고, 그로 인해 마계의 마왕과 <에덴>의 대천사가 긴급 회동을 열어 전부 소집되며 대천사와 마왕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후, 수르야의 마차가 날아오고 있었다.
유상아가 말하길 수르야의 마차는 13만 미터가 넘는다고 했다. 다행히 그정도로 길지는 않았지만 마차라고 하기엔 충분히 길었다.
마차와 충돌하고 무사할 존재는 없어보였다.
이제 유중혁이 깨어났고 73번째 마계는 선택의 시간을 맞이했다.
['73번째 마계'의 '거대 설화'가 발아합니다.]
['73번째 마계'가 자신의 주인을 택했습니다.]
[당신의 '거대 설화'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김독자와 일행, 척준경이 열차로 날아올랐다.
신유승의 키메라 드래곤과 척준경이 열차의 속도를 늦췄다.
열차는 지하철같은 모양새였다. 그러나 열리지 않았다.
'거대 설화'의 첫 번째 문장이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그 이야기는, 지하철에서 시작되었다.」
흘러온 스파크가 주변을 바꾸고 있었다. 뒤쪽 문에 적힌 [3807]이라는 번호. 울 것 같은 미소를 띤 이현성이 문에 손을 얹었다.
「그곳엔, 정의롭고 싶었던 군인이 있었다.」
이현성의 괴력에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현성의 전신에 깃든 '거대 설화'가 힘을 발휘한 것이다. 그러나 겨우 문 한 짝을 열었을 뿐, 열차는 여전히 길었다. 이번엔 유중혁이 나섰다.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고독한 사내가 있었고,」
유중혁이 모든 마력을 주먹에 집중해 그때처럼, 맨주먹으로 문을 부쉈다. 다음 칸에서는 유상아가 또다시 무력 없이 문을 열 방법을 찾아냈다. 문 계폐 장치.
「타인을 위해 자신을 숨겨왔던 여인도, 그곳에 있었다.]
바깥쪽에서 열차를 두들기는 이지혜의 함포 소리가 들려왔다.
「인연을 잃고 상처받은 검귀를 만났고.」
키메라 드래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며 품속에 있던 비유기 신유승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과거와 미래의 틈새에서 태어난 아이가 울었다.」
그러나 다음 칸에는 성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를 악문 김독자가 마력을 사용하려는 순간, 열차가 엄청난 누군가의 마력으로 우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장하영과 두 존재가 나타났다.
제자를 찾으며 나타난 백청의 광휘를 휘감은 작은 사내와, 검푸른 아우라를 흘려대는 거대한 여인.
「세상에서 가장 강한 소인을 스승으로 두었고.」
「세상에서 가장 강한 거인의 세계를 구했다.」
파천검성 남궁민영과 역설의 백청 키리오스 로드그라임.
키리오스는 김독자를 노려보며 자신을 속인 대가를 치르기 전까진 죽음을 허락하지 않겠다며 성좌들을 막아섰다.
김독자와 유중혁은 달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열차 마지막 칸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 모든 세계의 결말을 아는 한 사내가 있었다.」
멸살법엔 없던 설화. 존재한 적 없었던 이야기.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결말로 갈 수 있는 설화.
김독자는 마지막 문을 열어젖혔다.
수르야는 마지막 문 너머에 있었다. 유중혁이 먼저 달려들어 수르야의 곁에 있는 오이디푸스를 상대했다. 김독자는 '거대 설화'의 힘으로 수르야에게 타격을 주었다.
존재는 곧 이야기. 오랜 세월 하루도 빠짐없이 읽은 문장의 기억.
지금까지 읽고 보아온 모든 것이 지금의 자신이 되었다.
[전용 스킬, '제4의 벽'이 강하게 활성화됩니다!]
「이것은 독자讀者의 설화.」
「동시에, 독자獨子의 설화.」
김독자는 홀로 그 세계에서 살았다. 많은 등장인물에게 이입하며.
그러므로 자신은 회귀를 해본 적 없는 회귀자였고,
[전용 스킬, '바람의 길 Lv.11(+1)'이 활성화됐습니다!]
귀환을 겪은 적 없는 귀환자였으며.
[3번 책갈피가 활성화됐습니다.]
[전용 스킬, '야수왕의 감수성 Lv.10(+1)'이 발동 중입니다!]
어쩌면, 환생자이기도 했다.
수르야는 <베다>의 '거대 설화'를 사용했다. 말하자면 '신의 설화'로 빚어진 일격. 저런 것을 정면으로 맞으면 반드시 패배한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친 모두의 역사가, 김독자에게 깃들고 있었다. 이곳엔 없지만 역사를 공유한 이들도.
「어미를 잃고 곤충을 손에 쥔 소년이 울었고」
「돌아오지 않을 가족을 위해 성을 구축한 사내가 포효했다.」
「거짓으로 진실을 쌓아 올린 여인이 기꺼이 그의 그림자가 되었다.」
[전용 특성, '시나리오의 해설자'가 발동합니다!]
어느새 눈앞에 경악한 수르야의 화신체가 있었다. 이제 김독자는 어디를 찔러야 할지 알 것 같았다.
[전용 스킬, '독해력'이 발동합니다!]
'부러지지 않는 신념'이 빛나며 수르야의 가슴을 꿰뚫었다.
수르야의 거체가 무너지고 수르야의 열차가 결국 붕괴하기 시작했다.
마력을 전부 쏟아낸 김독자가 하늘을 날았고, 유중혁이 날아와 붙잡았다. 일행들 사이에서 완연히 드러나는 기쁨.
그러나 오이디푸스 왕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거대 설화'를 넘겨주지 않으면 한반도가 위험할 거라고.
한수영은 '재앙'으로 나타난 <올림포스>의 성좌들을 보고 있었다.
김독자가 모아두라고 말했던 심연옥 세 알을 꺼냈다. 한수영은 심연옥으로 강림 의식을 했고, 심연옥이 사라지며 '심연의 흑염룡'이 한수영의 몸으로 현현했다. 그리고 학살이 시작되었다.
오이디푸스는 화면 너머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수르야가 오이디푸스를 터뜨리며 나타나 패배를 인정했다.
[메인 시나리오 #25 - '마왕 선발전'이 종료됐습니다!]
김독자는 73번째 마계의 주인이 되었고, 성운 <김독자 컴퍼니(임시>가 알려졌다[96]. 김독자는 거대 설화 '마계의 봄'을 얻었고 '끝의 자격'을 얻었다.
[히든 시나리오 - '단 하나의 설화'가 시작됩니다!]
[당신의 전설급 설화들이 서막을 구상합니다.]
[당신의 첫 번째 거대 설화가 '기'를 완성했습니다!]
[당신에게 ■■의 권한이 주어집니다.]
[■■의 필터링이 해제됩니다.]
오래도록 베일에 가려져 있던 마지막 장의 정보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Ep.52 ■■]
마왕 선발전이 끝난 후, '유중혁-김독자 공단'은 재건으로 분주해졌다, 이틀 정도 지난 뒤에야 차츰 활발한 분위기를 되찾았다.
허공에서 포털이 일렁이더니 이길영과 공필두가 나타났다. 이길영은 한수영의 쪽지를 전해주었다. 이런 거 또 시키지 말라는 말과
함께 한반도와 성운 간 정세 같은 것들이 적혀있었다.
김독자는 연회를 열기로 했다며 일행에게 준비를 지켰다. 허공에서 무수히 쏟아지는 성좌들의 참가한다는 메시지를 보며 김독자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선발전 이후 유중혁은 쉽게 깨어나지 못했다. 아무래도 이 주쯤 걸릴거라고 아일렌이 말해주었다.
아일린이 병실을 나간 후에도 김독자는 병실을 떠나지 않고 유중혁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파천검성과 키리오스 로드그라임이 그곳에 있었다.
김독자는 백청의 아우라가 감도는 키리오스의 너를 때린놈이 이 녀석이냐는 말을 듣고서야 키리오스를 무림으로 보낼 때 자신이 파천검성의 제자에게 맞았다고 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거짓말인지 추궁하는 말에 김독자는 자신이 때린적도 있고, 맞은 적도 있다고 둘러댔다.[97]
그 말에 파천검성과 키리오스가 자신의 제자가 더 강하다며 싸우기 시작했다. 김독자는 재빨리 끼어들어 질문을 던졌다. 제1 무림이 어떻게 됐는지.
파천검성의 전신에서 은근히 느껴지는 '거대 설화'의 기운. 제1 무림과 관계된 거대 설화가 분명했다.
이계의 신격은 벅찬 상대였지만 못 싸울 정도는 아니었다고한다.
그런게 문제는 다음에 온 존재였다고. '이계의 신격'에는 비교도 되지 않을 존재였다고 한다.
파천검성과 키리오스도 싸움조차 되지 않는 존재.
원작 전개대로라면 제1 무림에 그런 존재가 나타날 개연성은 없었음에도 가공할 신격이 나타났고, 영문을 알 수 없게 물러났다.
중앙 파티 홀에서 파티의 소음이 들려왔다.
몸이 회복된 일행과 초대된 성좌들의 상징체도 보였다.
페르세포네는 차이나드레스를 입은 유상아의 모습을 한 채 다가왔다.[98]
김독자가 페르세포네에게 헤르메스를 설득해 선발전에서 싸워야 할 <올림포스> 성좌를 줄여주어 고맙다고 인사한다.
페르세포네는 기분이 좋은지 홀의 중심으로 가서 유상아와 춤을 추었다.[99]
양산형 제작자가 다가와 김독자의 ■■가 무엇인지 묻는다.
■■. 도깨비 왕이 말하길, 모든 이야기의 끝이나 시작.
애초에 ■■는 정확한 의미로 소통이 가능한 고유명사가 아니다.
여기서 필터링이 풀렸다는 것은 그것을 '읽을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히든 시나리오 '단 하나의 설화'. ■■에 도달할 단 하나의 설화를 완성하라. 이 시나리오는 '끝의 자격'을 얻은 모든 존재에게 부여됐다.
김독자가 할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비유가 홀의 채널을 차단했다. 양산형 제작자가 입을 열었다. 그의 ■■는 '고갈'. 페르세포네는 '죽음'이라 먼저 말을 꺼냈다.
김독자는 여기서 들은 이야기를 발설하지 않겠다고 자신의 수식언을 걸고 맹세해달라고 요구한다. 이윽고 성좌들의 술렁임이 절정에 이르렀을 무렵, 김독자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수영은 꿈속에서 김독자가 죽는 모습을 보았다. 깨어나자마자 이수경이 보였다. 한수영은 '김독자 대흉 사건'이 끝났다고 말했지만 이수경의 [길흉화복] 점괘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한수영은 김독자에게 연락해달라고 부탁한다.
연회가 끝나고, 김독자는 홀로 집무실이 앉아 생각에 잠겨있었다.
수르야의 열차는 원작에서 언급된 것보다 훨씬 짧았다. 그리고 마지막 칸은 찢겨나간 것처럼 뒤가 뻥 뚫려 있었다. 그런 괴력을 가진 것으로 짐작되는 것은 하나.
문을 두드리며 유상아가 고개를 내밀었다. 유상아는 김독자에게 이 세계가 '소설' 같은 것인지 물었다.
—저는 '종장終章'을 향해 가는 존재입니다.
김독자가 '■■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으로 내놓은 것이었다.
유상아가 말을 이었다. 페르세포네는 유상아에게 ■■는 모든 존재에게 '다른 형태'로 주어지고 지극히 개인적인 단어를 받는다는 것과 명백한 '끝'을 암시하는 것은 드물다고 알려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김독자에게 '소설'이란 무엇인지, 이 세계가 김독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기엔 일렀다.
그럼에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무언가를 눈치채주는 사람은 유상아뿐이었다. 김독자는 [등장인물 일람]을 발동했다. 여전히 누군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김독자는 유상아에게 무언가를 부탁했다.
성운 <에덴>에서는 지금 메타트론의 조례 시간이 있었다[100]. <에덴> 연병장에 모인 수천의 하급 천사 선두에 대천사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물병자리에 핀 백합' 가브리엘, '젊은이와 여행의 수호자' 라파엘, '정의와 화목의 친구' 라구엘. 임무를 맡은 대천사를 제외하면 대부분 집합한 셈이었다.
대천사들은 우리엘에 대해 대화를 조용히 나누었다. 삼 년 동안 근신에 성류 방송도 금지당했다고.
메타트론은 '구원의 마왕'을 우리엘 대신 감시할 대천사가 필요하다며 누군가를 지목했다.
연회 다음날 부터 일행들은 호사를 누렸다. 김독자가 매일 '도깨비 보따리'에서 무언가를 잔뜩 사서 일행들에게 입히거나 사용했다.
한편, 유중혁은 아직도 깨어나지 않았다.
정희원은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벅차올랐다. 그들은 곧 지구로 돌아갈 것이고 언젠가 극장 던전에서 김독자가 했던 말 속 '에필로그'라는 것이 왔을때 김독자는 혼자가 아닐 것이었다.
연회가 끝나고 며칠 후, 공단에 머무르던 성좌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김독자는 배웅하러 나가려다 코트 가슴 주머니에 꽃힌 두 송이의 꽃을 발견했다. 붉은 코스모스와 백합이었다.
김독자는 일단 꽃을 챙겨 광장 쪽으로 나갔다. 이미 몇몇 성좌들이 포털을 넘어가는 중이었다. 떠나는 성좌 중 일부는 <김독자 컴퍼니>와 특수한 계약을 맺었는데, 김독자의 눈 앞에 서있는 양산형 제작자도 그중 하나었다.
양산형 제작자는 김독자의 ■■가 정말 '종장'인지 물었고, 김독자는 고심해 대답했다.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이 종장이라는 것은 확실하다고.
어느새 양산형 제작자와 다른 성좌들도 포털 속으로 사라졌다.
이윽고 포털이 닫히고 하늘 건너편에서 불길한 스파크가 요동쳤다. 김독자는 스파크를 보며 주머니 속 꽃잎을 매만졌다.
이제 남은 시간은 사흘 정도.
곧 이 공단의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었다.
[Ep.53 구원의 마왕]
가브리엘은 우리엘에게 '구원의 마왕' 관찰기록을 USB로 받는다.
가브리엘과 요피엘이 우리엘의 후임이라고.
한수영은 표정이 암담해졌다. 마계와 연락이 되지 않았고 도깨비를 불러도 나타나지 않았다. [길흉화복]을 점친 물그릇엔 셀 수도 없는 '흉'이 떠올라 있었다.
심연의 흑염룡이 한수영이 73번째 마계에 가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막는다. 별들의 재앙이 온다고. 73번째 마계는 멸망할거라면서.
파천검성과 키리오스는 제1 무림을 집어삼키려 했던 녀석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함께 허공의 끝을 바라보았다.
[히든 시나리오 - '마계 탈출'이 시작됩니다!]
그 시각, 모든 도깨비는 패널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마왕 선발전에 끝나고 채널을 운용하던 도깨비가 모두 73번째 마계에서 철수했다. 시나리오를 진행할 도깨비가 없냐며 비형이 난동을 부렸다.
이 시나리오의 진행은 가능한 상태가 아니었다. 개연성을 너무 많이 소진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제가 더 있었다. 스타 스트림의 우주를 건너온 아득한 존재가 73번째 마계의 하늘을 덮어가고 있었다.
일행들과 사람들은 하늘 전체를 완전히 덮어버린 새카만 '무엇'을 보았다. 막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고 말로 형용할 수도 없었다. 그저 한없이 무력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형용할 수 없는 아득함'. 별들의 재앙이라고도 불렸다.
이 신격은, 개연성의 후폭풍 그 자체였다. 어긋난 스타 스트림의 법칙을 다스리는 혼돈에서 비롯된 청소부.
척준경과 파천검성, 키리오스까지 공격을 감행했으나 척준경은 한순간에 소멸했으며 초월자들의 지독한 수련의 역사도 저 우주적 존재의 역사에 비하면 띠끌조차도 되지 않았고, 두 초월자의 몸이 죽어갔다.
어떠한 성좌도 응답할 수 없었다. 세계가 미쳐갔고 일행만이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이 세계가 멸망을 거부했기 때문에.
[거대 설화, '마계의 봄'이 화신들을 보호합니다.]
그리고 김독자가 있었다.
모두가 같은 장소를 바라보았다.
빛이 꺼진 밤하늘을 유일하게 밝히는 별.
그곳에 '구원의 마왕'이 있었다.
대지가 일그러지며 지반이 해일처럼 덮쳐왔다. 거대한 안개속에 파먹힌 지평선이 새카만 허무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김독자는 지상으로 내려오더니 일행들을 마주 보았다.
지난 며칠 동안 김독자는 일행들에게 많은 것을 내주었다.
이현성은 새로운 방패를 받았고, 정희원은 새로운 스킬을 얻었다. 이지혜는 마력을 집중적으로 강화했고, 신유승과 이길엉은 다수의 대군 통제 스킬을 익혔다.
그래서 그들은 믿었다. 그들이 함께 쌓은 이 '거대 설화'가 있다면, 그리고 김독자가 준비한 작전이 있으면 아무리 강력한 적이라도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김독자가 이상했다.
「이것은 독자獨子의 설화.」
김독자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거대 설화'가 일행들을 옭아맸다.
그때 김독자는 혼자인 것처럼 보였다.
[거대 설화, '마계의 봄'의 최고 담화자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일행에게 주어져 있던 '거대 설화'의 모든 지분이 통제되고 있었다. 바닥에 주저앉은 정희원이 김독자의 표정을 보고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항상 위험상황에서 김독자가 짓던, 사람을 안심시키는 표정이 아니었다.
이럴 거면 며칠 동안 준비한건 뭐냐며 정희원이 처절하게 소리쳤가. 김독자는 넋 나간 얼굴로 묻는 일행에게 그 모든 안배의 이유를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앞으로의 시나리오를 위한 것이라고.
그리고 혼자서, 마왕이 되어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김독자가 사라진 밤하늘에 다시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 순간, 모두 새하얀 스파크에 스며들며 공단 안에 있던 모든 것이 어딘가로 전송되었다.
희미한 소란 속에서 유중혁은 눈을 떴다. 그리고 기억해냈다. 이겼다는 것을. 그러나 창밖의 풍경은 서울의 모습이었다.
주저앉은 일행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이 공단 건물과 통째로 서울에 있었다. 그러나 김독자가 보이지 않았다. 김독자의 이름을 중얼거리자 메시지가 들려왔다.
[설화, '생과 사의 동료'가 침묵합니다.]
유중혁은 떨리는 목소리로 '한낮의 밀회'를 사용했다.
그러나 몇 번이고 보내보아도 메시지는 전부 반송될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금일 제공된 메시지 할당량을 모두 소진했습니다.]
담담한 [성좌, '구원의 마왕'은 <스타 스트림>에 존재하지 않습니다.]라는 메시지만 유중혁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김독자는 마계를 지켜낸 그날, 멸살법의 세 번째 수정본을 받았다.
김독자는 자신이 원하던 '결말'을 기대했지만 보이는 것은 유중혁의 망가진 모습.
「그날, 3회차의 모든 것이 끝났다.」
그 부분을 읽었을 때에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달았다.
김독자는 '이계의 신격'에게 삼켜지면 수식언의 맥락과 함께 통째로 소멸할 것임을 알았음에도 일행들을 구하기 위해 멸살법에선 '실패한' 방법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미리 이야기를 들은 유상아는 울면서도 김독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채 지켜보았다. 김독자는 척준경과 파천검성, 그리고 키리오스가 만들어낸 작은 성흔으로 몸을 던졌다.
새카만 안개 속으로 진입하자 '이계의 신격'이 드러났다.
'형용할 수 없는 아득함'. The Nameless Mist.
스타 스트림의 성간을 떠도는 재앙의 이름.
엄말히 말하면, 이 안개는 신격의 원형이 아니라 분신 중 하나였다. 그럼이도 이처럼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다.
김독자는 말을 걸어보았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다.
김독자는 유일하게 자신을 도울수 있는 존재, 은밀한 모략가를 불렀다. '이계의 언약'을 맺겠다며.
이계의 언약을 맺은 유중혁의 모든 회차는 불행해졌다.
그러나 방법은 이것 뿐이었다.
다음 순간, 김독자는 모르는 어떤 은하에 서 있었다.
그는 김독자를 '종장'을 추구하고 '영원'을 갈망하는 존재라 불렀다.
실제로 김독자가 거대 설화를 얻었을 때 들은 메시지였다.
—당신은 '영원'의 자격을 얻었습니다.
—당신은 '종장'의 자격을 얻었습니다.
김독자는 은밀한 모략가에게 일행을 구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자 은밀한 모략가는 물었다. '다른 세계'는 어쩔 셈이냐고.
무슨 말인가 싶던 순간, 바닥의 우주가 트럼프 카드처럼 뒤집히며 빛나고 있었다.
그곳에 김독자가 읽은 멸살법의 세계가 있었다.
수많은 회차들의 유중혁의 이야기들이 눈앞에 있었다.
그리거 김독자는 그 모든 회차의 결말을 알고 있었다.
은밀한 모략가는 한 번 더 질문했다.
【네가 구원하지 못한 그 세계들은 모두 어떻게 되는 것이냐?】
김독자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김독자를 보던 은밀한 모략가가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러면서 손가락 하나의 희생으로[101] 모든 화신에게 '개인 시나리오'를 발송했다.
은밀한 모략가는 그 대가로 누군가를 죽이라고 조건을 제시했다. 김독자는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고. 어쨌든 일행은 무사히 지구로 돌아갔다.
[새로운 '서브 시나리오'를 획득했습니다.]
[<스타 스트림>의 시나리오 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해당 시나리오의 정보를 재구성 중입니다.]
[새로운 설화의 가능성을 획득했습니다!]
[당신에게 <스타 스트림>이 이해할 수 없는 설화가 발아하고 있습니다.]
은밀한 모략가가 오른손을 들어올리자 작은 포털이 열리기 시작했다. 은밀한 모략가는 몇가지를 말해주었다. 김독자와 같은 언약을 행한 존재가 있었고, 무사히 시나리오를 마치면 별 탈 없이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다른 신격이 이송해줄 것이라고.
그 말과 동시에 김독자는 포털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김독자가 마주한 것은 끝없는 우주를 메우고 있는 거품들과 중심을 차지한 원형의 문이었다. 문이 커다란 눈을 뜨고 김독자를 보는 순간 [제4의 벽]이 경기를 일으키듯 발동했다.
문이 김독자를 보며 모략이 보냈는지 묻고는 문을 열어주었다.
김독자는 가기 전에 비유를 두고 차원문 속으로 들어갔다.
['이계의 언약'이 발동합니다!]
[당신은 <스타 스트림> 바깥으로 추방됐습니다.]
[당신의 별자리가 <스타 스트림>에서 사라집니다.]
김독자는 어딘가로 흘러가는 느낌 속에서 일행들에 관한 꿈을 꾸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에 웅크리고 헛구역질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새로운 시나리오 지역에 입장했습니다!]
[관리국의 도깨비들이 당신의 존재에 의구심을 가집니다.]
김독자는 최대한 빠르게 몸을 풀었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멸살법의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긴장해야 했다.
[<스타 스트림>이 당신의 수식언을 인식했습니다.]
[밤하늘에 당신의 자리가 새로이 마련됩니다!]
[<관리국>이 당신의 존재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히든 시나리오가 할당됐습니다!]
[히든 시나리오 - '세계 적응'을 획득했습니다!]
[새로운 설화를 획득했습니다!]
김독자는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망가진 도시.
그러나 김독자는 이곳을 알아볼 수 있었다. 바로 서울이었으니까.
햔재 95번째 메인 시나리오가 진행 중이라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김독자는 '아론다이트'를 획득하고는 아이템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무려 설화급 성좌의 성유물이 길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몇 년을 건너뛴걸까. 일행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전지적 독자 시점]으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때, 주변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유중혁이 나타났다.
반가운 마음에 입을 열었지만, 유중혁은 김독자의 말보다 빠르게 다가와 공격했다. 정말로 김독자를 모르는 눈을 한채로.
유중혁은 오 초 안에 '아론다이트'가 어디있는지 말하라고 냉혹한 목소리로 물었다. 김독자는 [등장인물 일람]으로 확인해보고는 망연자실하고 만다. 이곳은 김독자가 바꾼 '3회차'의 스타 스트림이 아니었으니까.
김독자가 끝을 알지 못하는 회차가 하나 있었다.
모든 동료를 잃고, 마침내 이야기의 마지막 장을 눈앞에 둔 사내.
셀 수 없는 배신과 무수한 회귀속에 모든 감정이 닳아버린 괴물이 김독자를 보고 있었다. 오 초가 지났고, 유중혁의 칼날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멸살법 1,863회차.
김독자가 아는 유중혁의 마지막 회차였다.
[Ep.54 마왕 살해자]
1,863회차의 유중혁은 막을 수 있는 존재가 없는, 이 세계의 절망 그 자체다. 그렇기에 김독자는 아슬아슬하게 죽지는 않았지만 유중혁을 이길 수는 없었다.
유중혁이 수천 번의 회귀를 거쳐 가공할 수중에 이른 [현자의 눈]을 사용했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제4의 벽]이 막아주었다. 쉽지는 않았던 모양이지만.
[제4의 벽]이 멋대로 김독자가 바꾼 '3회차'의 기억을 유중혁에게 보여주었다. 무엇인지 물으며 분노하던 유중혁이 등 뒤에서 발생한 폭발에 김독자를 놓쳤다.
마왕들이 '마왕 살해자' 유중혁을 잡기 위해 온 것이었다.
숨어있던 성좌들까지 합세해 몰려왔다.
그러나 순식간에 유중혁은 오직 왼손만으로 성좌들을 해치웠다.
그리고 메시지가 들려왔다.
드디어 '은밀한 모력가'의 개인 시나리오가 도착한 것이다.
클리어 조건은 업데이트 중으로 알 수가 없었고, 보상은 엄청났다. 이 회차에서 획둑한 설화, 스킬, 아이템을 각각 하나씩 가지고 본래 회차로 귀환 가능. 심지어 필요한 개연성마저도 은밀한 모략가가 부담.
잠깐 시나리오 창에 정신이 팔린 사이 유중혁의 몸이 둔해지고 있었다. [제4의 벽]이 보여준 모습에 '회귀 우울증'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김독자는 유중혁에게 다가가며 다가오는 성좌들을 향해 마구잡이로 검격을 쏘았다.
김독자는 코트 바깥 주머니에 꽃힌 두 송이의 꽃을 보며 말했다.
도와달라고. 처음엔 몰랐었지만 '세계선'을 넘어오며 깨달았다.
두 송이의 꽃은 대천사 가브리엘과 요피엘이었다.
다음 순간, 꽃에서 꽃잎이 하나씩 떨어지며 김독자에게 두 대천사가 현현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마왕과 성좌들이 소멸했다.
요피엘의 성흔, '죄업의 눈동자'가 발동하며 김독자에게도 유중혁에게 쌓인 죄업이 보였다. 수치로 환산할 수도 없는 수많은 죄업.
그러나 김독자는 유중혁을 죽이면 안된다고 설득한다.
그리고 유중혁에게 다가가 말을 건다. 그동안의 유중혁이 겪었던 일들을 상기시켜주고는 물었다. 지키고 싶던 것들은 모두 지켰냐고. 유중혁은 공허한 눈빛으로 망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등장인물 '유중혁'에 대한 이해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유중혁은 너무도 죽고 싶어 했다. 김독자는 유중혁에게 자신이 그의 이야기를 끝내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중혁은 흐릿한 하늘 위에 있는 업데이트가 완료된 시나리오 창을 보고 있었다.
클리어 조건이 유중혁을 죽이는 것인.
1,863회차에 들어온지 하루가 지났고, 가브리엘과 요피엘은 돌아갈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독자는 유중혁에게 흙을 먹으라고 시험 삼아 시켜보았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진짜로 흙을 먹었고 김독자는 당황했다. '회귀 우울증'으로 당분간은 바보 상태일 것 같았다.
김독자는 유중혁을 재우고 멸살법 파일을 읽었다.
이상하게도 원작 그대로의 내용이 나타났다.
김독자는 1,863회차의 이야기를 꼼꼼히 읽어나갔다.
계속해서 누군가를 잃는 이야기를.
그때, 등줄기에 서늘한 느낌이 스쳤다. 뒤에서는 죽은 사람이어야 할 이지혜가 있었다.
이지혜는 공격해왔고, 김독자는 계속 맞서고 있었다. 그러다 이현성이 나타나 이지혜를 저지해주었다. 김독자는 자신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유중혁을 보여주며 그들의 리더에게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이현성을 따라 도착한 본거지에는 김독자와 똑같은 코트를 입은 사내가 있었다. 김남운이었다.
김독자가 건물을 살펴보니 초반 회차의 유중혁이 구상했던 건물이 있었다. 끊임 없이 환자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고, 훈련된 의료 스킬을 가진 자들이 모여있었다.
김독자는 1,863회차의 95번 시나리오를 기억하고 있었다.
창공을 덮은 새카만 수정구. [묵시룡의 봉인구]였다.
흩어진 다섯 개의 열쇠를 획득해 '묵시룡'을 해방하는 것.
'묵시룡'이 풀려나면 지구에 멸망이 찾아오고, 시나리오를 완수한 이들은 자동으로 다음 시나리오로 넘어가게 된다.
그런데 이 1,863회차는 김독자가 아는 것과는 너무 달랐다.
계단을 올라가자 은둔한 그림자의 왕, 한동준이 상황실에서 모든 상황을 관리하고 있었다. 메시지로 오가는 익숙한 이름들. 민지원과 차상경. 원작의 1,863회차에서는 죽었어야 할 사람들이 모두 살아 있었다.
이지혜는 사부는 최상층에 있다며 유중혁을 두고 엘리베이터를 타라고 했다. 김독자는 타기 전에 행복한 생각을 하면서 기다리라고 말하고 올라탔다.
최상층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탁자에 놓인 한 자루 검. 잘 아는 검이었다. '부러지지 않는 신념'이었으까.
의자에 앉은 인물이 반가면을 쓴채로 김독자와 마주보았다.
김독자는 [등장인물 일람]을 발동했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본래는 이 스킬이 발동되지 않았던 사람. 그러나 정보가 보였다. 김독자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여자가 김독자에게 누구인지 물었고 김독자는 오히려 질문했다.
그녀가 한수영의 '아바타'인지.
[Ep.55 행복한 기억]
한수영의 분신이 김독자를 보며 말했다. 한수영이 가지고 있지 않은 기억을 가진 자신이 진짜 한수영이라고.
김독자와 한수영은 '신성한 삼문답'을 진행했다. 특이하게도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두 사람은 [거짓 간파]와 [포커페이스]를 서로 사용하며 비밀을 숨겼다.
유중혁은 허공에 떠오른 거대한 대형 패널을 보고 있었다. 홍염 속에 불타오르는 눈부신 천사가 전진하고 있었다.
유중혁은 그 천사를 본 적이 있었다. 행복한 기억속에서.
그녀는 인형이었다. 그러나 그 기억은 자신의 기억이 아닌 허구. 그럼에도 어째서 그 허구를 이토록 또렷이 기억하는지 유중혁 자신도 이해하지 못했다.
김독자와 한수영의 삼문답이 시작된지 이십여 분이 흘렀고 몇 가지를 추론해냈다.
1,863회차의 한수영은 '이계의 언약'을 통해 은밀한 모략가와 거래했으며, 3회차의 분신이 아닐 수도 있다고. 게다가 1,863회차의 한수영은 3회차의 한수영보다 아는 정보도 많고 조금 더 똑똑했다.
마지막 질문을 하던 도중, 굉음이 들리더니 일행이 소리치며 올라왔다. 한수영은 김남운에게서 돌려받은 코트를 입고 내려갔다.
우리엘이 있었다. 우리엘의 격에 이끌린 '이름 없는 것들'까지.
우리엘은 분노하고 있었다. 유중혁을 보고는 고함까지 질러댔다.
<에덴>이 멸망한 이유가 눈앞에 있었으니까.
우리엘이 유중혁을 공격했고, 가브리엘이 참다못해 진언을 토해냈다. 무슨 일이냐고. 그러나 말해줄 순 없었다.
한수영이 세 번째 질문에 답을 해주었다. 이 시나리오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설화 [예상 표절] 덕분이라고.
한수영의 빛에서 흰 빛이 새어나왔고, 그녀의 눈동자는 다가오는 괴수들의 패턴을 전부 읽고 있었다. [미래시]와 비슷한 능력. 그것도 원작에는 없던 능력이었다.
한수영이 말을 이었다. 자신은 일류 작가. 그리고 멸살법은 클리셰가 집합한 소설이니 전개를 예측하며 살아남았다고.
김독자는 이해할 수 없었다. 멸살법은 복잡한 설정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한수영도 인정했다.
다음 순간, 한수영의 몸에서 빛이 솟아나며 무수한 분신이 뛰쳐나왔다. 한수영이 손에 쥔 검을 휘두르자 수백 명의 한수영이 모드 '부러지지 않는 신념'을 쥔 채로 차분히 '이름 없는 것들'을 베어나갔다.
[전용 스킬, '전지적 독자 시점'을 발동합니다!]
과부하가 걸릴 정도로 많은 목소리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김독자는 그것이 한수영의 머릿속 풍경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수한 한수영이 그곳에서 머리를 맞대고 세계를 구상하고 있었다.
무수한 한수영이 그려낸 세계의 시뮬레이션.
이 세계는 그런 한수영이 계획한 결과물이었다.
그 어떤 동료도 죽지 않고.
그 어떤 멸망도 찾아오지 않으며.
모두 힘을 모아 '마지막 시나리오'에 도달할 수 있는 세계.
한수영이 말했다. 자신은 유중혁을 죽일 방법을 알고 있다고.
김독자는 고개를 돌려 우리엘과 유중혁의 전투를 바라보았다.
한수영이 꿈꾸는 세계에서, 이 전투의 해답은 다음과 같았다.
「이곳에서 염화의 대천사는 죽는다.]
그러나 김독자가 읽고 싶은 이야기은 이런 게 아니었다.
김독자는 대천사들의 힘을 빌려 마왕과 천사의 격이 한 존재에 머물게 되었다.
김독자는 빠르게 우리엘에게 달려들었고, 요피엘의 [선악의 구속구][102]라는 능력을 사용해 우리엘을 붙잡았다.
잠든 우리엘을 안고 유중혁과 불길 밖으로 나섰다.
한수영이 동료로 들어올 것을 제안했으나 김독자는 수락하지 않았다.
한수영이 일주일 안에 확실히 결정하라며 돌아섰다.
김독자는 유중혁을 보며 생각했다. 유중혁을 죽여야만 자신의 회차로 돌아갈 수 있지만, 정말 그게 유일한 방법일까.
어둠 속에서 눈을 떴을 때, 한수영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희미하게 튀는 스파크가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녀는 허겁지겁 스마트폰을 켜 자신의 소설 파일을 읽었다.
《SSSSS급 무한 회귀자》.
얼마나 읽었을까, 조금씩 그녀의 곁애서 튀던 스파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존재 자체가 스파크에 삼켜질 뻔했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기억을 갉아먹는 개연성의 후폭풍.
이유는 그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김독자는 대천사들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에덴>이 멸망했다고. 또한 가브리엘이 <에덴>을 배신했다고도. 메타트론도 알고 있었다면서 돌아가서 물어보라고도 말햐주었다.
대천사들이 얘기를 나누는 동안 김독자는 품속에서 우리엘의 인형을 꺼냈다. 앞으로 닷새간은 힘을 사용할 수 없을 것이었다.
김독자는 일행을 따라 '이름 없는 자들'을 해치우러 함께 나섰다.
모두 강한 탓에 금방 해치웠다. 한수영이 이야기한 모양인지 다른 일행은 김독자가 다른 세계선에서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김남운이 김독자에게 슬쩍 다가와서 나중에 코트 한 번만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하는 거 봐서, 라며 넘기고는 '이름 없는 자들'을 해치우고 얻은 아이템을 일행과 줍기 시작했다.
김독자는 수거한 아이템을 전부 살피고는 김독자는 미소를 지었다. 95번 시나리오를 클리어하려면 열쇠가 되는 '다섯 자루의 명검'이 필여하다. 그런데 검을 뽑아 든 순간 김독자가 깜짝 놀라고 만다. 김독자는 싸한 예감이 들었다.
한수영이 찾아와 폐허 사이에서 웃고 있는 화신들을 보여주었다.
이 풍경을 누군가에게 보여준건 처음이라며. 김독자는 깨달았다.
자신은 저 일행들에게 갈 자격이 없다고. 그들과 동등한 '등장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닐 이후 한수영은 종종 김독자를 불렀고 시나리오에 대해 자문했다. 두 사람은 이 이야기가 끝나면 스타 스트림이 멸망할 것처럼, 계속해서 이야기 했다.
이현성이 다가와 어쩌면 김독자가 온 것도 이야기의 일부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했고, 그제서야 유중혁을 죽일 방법을 떠올렸다.
그리고 한수영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김독자는 그날 내내, 멸살법을 읽다가 잠들었다. 그리고 유중혁은 텅 빈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중혁의 눈빛이 되돌아 오고 있었고, 유중혁은 김독자에게 다가가 목에 검을 겨누었다.
그런 유중혁을 [제4의 벽]이 가로막았다. 유중혁이 가만히 바라보다 잠시 킥킥대며 웃다가 [제4의 벽]은 그가 한 번도 겪지 못한 세계의 이야기를 활자로 보여주었다.
잠들었던 김독자가 깨어났을 때, 유중혁은 텅 빈 눈으로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김독자가 비틀대며 일어났다. 창밖을 보니 이미 95번 시나리오의 클리어를 위해 일행들이 모여 있었다. 일행들 중심에서 하얀 코트의 한수영이 보였다.
오늘은 유중혁이 죽는 날이었다.
[EP.56 독자와 작가]
진군이 시작된 것은 그날 정오었다.
이현성은 살짝 긴장하고 있었고, 김남운은 김독자가 빌려준 코트를 입은 채 이지혜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번 시나리오 끝나면 뭐 할거냐면서.
한수영이 새하얀 코트를 휘날리며 말했다.
'묵시룡'을 해방하면 한반도는 멸망하지만 우리는 죽지 않고 살아서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 갈 거라고. 화신들이 한수영의 이름을 연호하며 함성을 질렀다.
모두 한때의 유중혁이 했던 일들이었다.
95번 시나리오, '묵시룡의 재림'.
<에덴>의 멸망 당시 봉인되었던 '묵시룡'을 깨우는 시나리오였다. 지구 각지에 흩어진 다섯 자루의 '명검'을 모아 봉인구의 열쇠 구멍에 꽃아 완수하는 시나리오. 실제로 유중혁은 이 시나리오를 완수해 거대 설화의 '결'을 획득했다.
한수영은 품속에서 검을 한 자루씩 꺼냈다. 총 네 자루의 검. 아직 이 시나리오를 클리어 하기엔 한 자루가 필요했다. 김독자가 가진 용살검 아론다이트가 마지막이었다. 한수영은 이어서 유중혁을 봉인구로 보내라고 했다.
그 순간, 김독자는 한수영의 '이계의 언약'의 조건이 자신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김독자는 한수영이 뭘 할지 잘 알고 있었다.
성검 아스칼론, 천둥검 그람, 단룡검 리딜, 투룡검 네일링, 영살검 아론다이트. 이 다섯 검 중에서 다른 검이 하나 있었다. 투룡검 네일링. 용살의 설화를 가지지 않은 이 검을 사용하면 봉인은 해제되지 않고 어히랴 지구 전체를 봉인으로 덮는다.
그렇게 된다면, 이곳의 시간은 멈추고 지구는 묵시룡과 봉인된다. 그리고 그것이, 한수영이 유중혁을 죽이는 방법이었다. 봉인구에 갇힌 유중혁은 회귀하지도, 고통을 겪지도 않고 새로운 세계선도 만들어지지 않게 된다. 그것이 바로 한수영이 말하는 유중혁의 '죽음'.
김독자는 다른 방법을 시도해본다. '사인참사검'으로 유중혁의 링크를 끊는것. 만약 배후성과 일시적으로 연결이 끊어진 상태에서 이번 시나리오로 새로운 설화를 얻으면 '성좌 유중혁'이 되어 '화신 유중혁'이 죽게 된다. 그러나, 도리어 '사인참사검'이 부러졌다.
순간, 아득한 우주가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다. 헤아릴 수도 없는 거대한 의지.
[화신 '유중혁'의 배후성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김독자는 유중혁의 배후성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아기 웃음소리 같은 것이 귓가에 맴돌았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사인참사검이 반 토막나서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한수영이 다가와 말했다. 자신도 이미 시도해 본 방법이었다고.
심지어 이 방법은 유중혁도 동의했었다고. 김독자는 망설이다 [전지적 독자 시점] 2단계를 발동했다. 이해도가 충족되어 유중혁의 머릿속이 들려왔다. 수 없이 「죽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멍하니 선 김독자에게 다가와 한수영이 아론다이트를 코트 속에서 꺼내 갔다. 그때, 김독자에게 어떤 말이 들려왔다. 아주 희미한 목소리.
「살고 싶다.」
김독자는 부러진 '사인참사검'을 품속에 넣고 한수영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고는 유중혁을 불렀다. 그 외침에 벼락같이 달려든 유중혁이 한수영에게 일격을 먹이고는 한수영이 가지고 있던 네 자루의 검을 수습했다. 용살의 설화를 지닌 검들.
김독자는 한수영을 막으며 유중혁에게 묵시룡을 해방하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품속에서 한 자루의 검을 끄집어냈다. 초체검. 언젠가 피스 랜드에서 야마타노오로치를 사냥하고 얻었던 검. 이 검도 용살의 설화를 오롯이 계승하고 있었다. 김독자는 초체검을 유중혁에게 던졌다.
[바람의 길]을 타고 쏘아진 검을 유중혁이 받았다. 유중혁은 다른 일행들이 막아서도 피를 흘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하여, 김독자는 결심을 마쳤다. 떠나지 않고 이곳에 남아서 결말을 보겠다고.
한수영이 그 결심을 듣고는 분노해 김독자와 유중혁을 향해 공격을 감행했다. 한수영도 성좌가 되어있었고, 김독자의 것보다 성능이 좋은 '부러지지 않는 신념'을 쥐고 있었다. 그러나 김독자는 어째선지 모를 가브리엘의 도움을 받아 한수영을 막아섰다.
마침내 유중혁이 봉인구에 도달했다. 다섯 자루의 검이 열쇠가 되어 꽃혔고, 잠든 용을 깨웠다.
고개를 돌리자 유중혁이 어느새 다가와 곁에 서 있었다. 선연하게 뜬 눈은 너무도 명백한 의식을 가지고 보고 있었다. 김독자의 머릿속에 언제부터 '회귀 우울증'이 풀린 건지 하는 생각이 스치며 소름이 돋았다.
유중혁은 머릿속으로 물었다.
「네가 살았던 '그 세계'는 정말로 존재하는 것인가?]
김독자는 [제4의 벽]으로 자신이 살던 세계를 보았음을 깨달았다.
입을 열려는 순간, 한수영이 다가와 김독자를 처박았다. 이어지는 한수영의 목소리에 악이 담겨 있었다. 이곳에서 그는 죽고, 그녀는 새로운 세계를 얻는 약속을 깼냐고.
한수영은 김독자의 머리채를 잡은 채로 소리를 질러댔다.
한수영의 한 마디 한 마디마다 김독자의 가슴에도 못이 박히는 것 같았다. 이 유중혁은 자신이 알건 원작의 유중혁이었으니까.
이곳에서 유중혁이 죽으면, 김독자가 알던 멸살법은 완전히 사라지기에. 김독자는 그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유중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죽고 싶다"고.
그러나 김독자에게만 분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고 싶다.」
유중혁의 몸이 진동했다. 통증이 심해지는지 머리를 붙잡고 주저앉았다. 주저앉은 유중혁의 몸에서 1,863회차의 유중혁이 겪어온 기억들이 허공을 떠다니며 김독자와 한수영을 스치고 지나갔다.
유중혁은 자신을 죽여달라며 한수영을 돕겠다고 약속했다.
겉으로 보기엔 완벽했던 약조. 그러나 단 한 사람의 희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유중혁은 모든 것을 잃었다. 이 회차에서 그는 여동생을 잃었고, 하나뿐인 스승과 사저를 잃었으며, 스스로의 의지로 이 세계의 악이 되었다.
김독자는 유중혁에게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그 '세계'는 존재한다고. 온 힘을 다해 선언했다. 그러자 유중혁이 답했다. 이상하게도, 유중혁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그는 김독자가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 자신이 죽기로 결심했다.
[등장인물 '유중혁'이 특성 개화의 계기를 맞이합니다!]
[등장인물 '유중혁'이 새로운 특성을 획득했습니다!]
흘러넘치는 설화 속에서 유중혁이 정확히 두 명으로 나뉘었다.
김독자는 그 스킬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아바타].
오직 '작가' 특성을 가진 존재만이 쓸 수 있는 스킬.
당황한 한수영의 속내가 [전지적 독자 시점]으로 전해졌다.
만약 한 사람의 존재가 정확히 절반으로 나뉠 수 있다면 어느 쪽을 '진짜'라 부를 수 있을까. 그것은 한수영의 경험이었고, 지금 유중혁이 겪는 일이었다.
눈부신 광휘 속에서 둘로 분열한 유중혁이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유중혁이 말했다. 죽고 싶다고. 그러자 다른 하나가 말했다. 자신은 살고 싶다고. 다른 유중혁은 쓰러진 김남운의 곁에 있는 김독자의 하얀 코트를 입었다. 그리고 서로를 마주보았다.
두 명의 유중혁이 서로를 향해 진천패도를 겨누었다.
하나의 존재가 둘이 되어도 배후성은 하나.
저것이 유중혁이 찾아낸 답이었다.
검은 코트의 유중혁이 죽음을 택했고, 맞은편의 하얀 코트의 유중혁이 [회귀]를 선택했다. 그는 원작에는 없었던 1,864회차를 살아갈 것이었다.
하얀 유중혁의 손끝에서 보답으로 설화 중 일부를 김독자에게 주었다. 유중혁이 흩어지기 시작하더니 빛속에서 스러졌다.
뒤에서는 한수영이 절망한 얼굴로 주저앉아 있었다.
[당신은 '이계의 언약'의 클리어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유중혁이 죽었다. 그는 소설속 등장인물에서 벗어났다.
왜 갑자기 '작가' 특성을 얻었는지, 왜 스스로 죽음과 회귀를 선택했는지. 알 것도 같았지만 납득하기는 버거웠다.
김독자가 알던 원작의 유중혁은 더 이상 없다.
충격에서 벗어나자 천천히 감각이 되돌아왔다.
다행히 '묵시룡의 해방'의 마지막 열쇠를 '초체검'을 사용한 덕에 해방이 늦춰져 시간을 벌었다. 다음 날, 김독자는 본부 상황실에서 이현성에게 상당량의 정보를 넘겼다.
그리고 한수영과 대화를 나누었다. 김독자가 내일 떠날것이라 말하자, 한수영은 떠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제 유중혁이 죽었으니 이곳은 더 이상 소설이 아니라면서[103]
떠나기 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몇 가지 남아 있었다.
그중 하나는 우리엘이었다. 구속구가 끝나면 다시 깨어나 모든 생명체를 불태우려 들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요피엘이 남겠다고 했다. 자신만 '선악의 구속구'로 통제할 수 있으니까. 다시 돌아가지 못해도 상관없다면서[104] 요피엘은 대신 돌아가면 <에덴>을 방문해 서기관에게 이곳에서의 일을 전해달라고 김독자에게 부탁한다.
다음 날 아침, 김독자는 일행들의 배웅을 받았다. 김독자는 유용할정보 몇 개를 추려서 한수영에게 건네주었다. 한수영의 몸에서 희미하게 튀어 오르는 스파크. 아마 한수영의 '등장인물화'와 관계되어 있을 것이었다
인사를 마치고 돌아서려는 순간, 무언가가 뒤통수로 날아왔다. 한수영의 '무한 차원의 아공간 코트'였다. 김독자는 어이가 없었지만 한수영의 얼굴을 보고는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스쳤다.
한수영이 김독자에게 물었다. 왜 3회차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었냐고. 김독자는 그 곳에 있는 한수영을 믿었다고 대답해주었다.
뒤돌아선 김독자는 허공을 올려다보며 은밀한 모략가를 불렀다.
잠시 후, 김독자는 바닥에 떨어졌다.
['이계의 언약'이 완료됐습니다!]
[보상을 정산 중입니다.]
정확히는 바닥은 아니었다. 김독자의 몸은 우주의 공허를 떠다니는 중이었으니까. 눈을 깜빡이자, 바닥에 끌리는 검은색 케이프 자락이 보였다. '은밀한 모략가'였다.
2.12. #45 - 금의환향, #46 - 별의 증명
Episode 57. 금의환향 ~ Episode 60. 파멸의 맛 |
[Ep.57 금희환향]
'은밀한 모략가'가 김독자를 응시하자마자 [제4의 벽]이 움직였다.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은밀한 모략가'는 [제4의 벽]을 '최후의 벽의 파편'이라 불렀다. 원작에는 나오지 않지만, 짐작가는 것이 없지는 않았다. 멸살법에는 여러 종류의 벽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김독자는 보상으로 한수영이 준 코트와 그 안에 든 아이템, 유중혁이 건네준 설화, 그리고 스킬은 얻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보상을 얻기로 했다.
보상을 수령하던 그 때, 뒤쪽에서 누군가가 침투하려 하고 있었다. 김독자의 짐작으론 아마 관리국의 대도깨비일 가능성이 높았다. '은밀한 모략가'는 김독자의 발 밑에 포털을 만들어 김독자를 보내버린다.
정신을 차렸을때, 김독자는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러나 지구가 아니었다. 김독자는 본래 세계선의 시나리오를 떠나 있었기 때문에 다시 진입하려면 대가가 필요했다.
뒤이어 김독자에게 맞는 시나리오가 검토되었다는 메시지를 보게 되었다. 김독자는 귀환자가 된 것이다.
몸을 일으키자, 주변에서 다른 귀환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부분 무림 출신이거나 중세풍 이세계 출신의 귀환자들.
그중에는 유중혁의 동료가 되기도 하는 비천호리, 왕 웨이롱도 있었다.
마침 허공에서 나타난 도깨비들이 '귀환자 전용 시나리오'를 받을 것이며, 가장 격이 높은 존재가 리더가 될 것이라 안내해주었다.
[지구 귀환이 시작됩니다.]
눈부신 빛살과 함께 귀환자들이 한꺼번에 지구로 이동했다. 위치는 한국. 성질 급한 귀환자가 지나가던 일반인에게 날짜를 물었다.
['귀환자 트리거'가 발동했습니다!]
[새로운 메인 시나리오가 도착했습니다!]
[메인 시나리오 #45 - '금의환향'이 시작됩니다!]
사람들이 도망치기 시작했고, 건물의 유리벽에 귀환자들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누가 봐도 끔찍한 괴수의 모습으로 변하는 모습. 적의에 찬 눈으로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수영은 꿈속에서 싸우는 두 명의 유중혁과 김독자, 그리고 자기 자신을 보았다. 소름이 끼쳐 일어난 한수영의 곁에는 이수경이 있었다.
유상아에게 가보니 [헤르메스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한수영이 그만하라고 외쳤다.
[헤르메스 시스템]은 스타 스트림 각지의 정보를 입수해 미래를 예측해내는 <올림포스>의 빅 데이터 네트워크. 다만 사용자의 수명을 극단적으로 단축시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알면서도 유상아를 만류할 수 없었던 것은 유상아가 계측한 미래 변수가 없었더라면 시나리오를 클리어하지 못 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김독자가 사라진 지 벌써 삼 년이. 돌아올 것이란 희망마저도 점점 희미해져가는 상황이었다.
시끄럽게 울려대는 재앙 경보에 한수영이 이수경과 텔레비전을 확인해 보니 부산에 재앙이 발생했다고 한다. 화면 속에서는 촉수 괴물들과 화신들이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한수영이 무언가가 떠올랐다고 알려주자 이수경은 자신의 성유물에 떠오른 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굳어 버렸다. 한수영은 한참이나 그릇을 들여다보다가 부산으로 가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김독자는 시나리오 창을 바라보았다. 주요 거점 지역에 당신이 돌아왔다는 표식을 남기시오. 시나리오가 진행되는 동안은 마물의 형태를 하게 되는데다 화신들은 귀환자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도 없다는 조건까지 붙어있었다. 보상은 코인과 재앙화 해제.
화신들의 공격에 반격하려는 귀환자들을 김독자는 자신의 격을 드러내 막았다. 리더로써, 김독자는 설명했다. 이 시나리오가 실패하면 귀환자 모두가 사망한다며 전투를 최대한 피하고 '목표 거점'에 표식을 남기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자고.
그러나 늘 그렇듯, 일이 쉽게 풀릴리 없었다.
부산 연합이 왔다는 사람들의 외침과 함께 뱃고동 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이지혜와 이길영이 다가오고 있었다.
싸우지 않고 해결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써보지만, 어떠한 방법도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지혜를 도발하는 결과를 만들어냈을 뿐.
두 사람이 공격을 해오자 참다 못한 김독자가 격을 해방하려는 순간, 창공에서 용의 표효성이 들려왔다. 창공을 바라보자, 그리운 얼굴이 있었다. 키메라 드래곤을 타고 나타난 신유승이 바닥으로 착지했다.
김독자는 공격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신유승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김독자는 모두가 바라보는 가운데, 신유승을 향해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마치 용서를 구하듯이.
신유승은 김독자의 머리 위로 작은 손을 얹었다. 고개를 들자 한없이 맑은 눈동자가 보였다. 그리고, 신유승이 그를 불렀다.
잠시 후 열 명의 귀환자들이 모두 키메라 드래곤을 타고 허공을 날고 있었다. 이지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김독자 쪽을 연신 흘끔거리며 확신하는지 재차 신유승에게 불었다.
십여 분 전, 신유승은 이지혜와 이길영에게 괴수가 김독자라고 선언했다. 이지혜와 이길영은 지금까지 개구리나 괴수를 보고 김독자라고 했던 것이 몇 번이냐며 믿지 않았다.
경기 연합[105]이 그들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이지혜가 장검을 꺼내들어 에테르 블레이드를 둘렀다.
그런데 이지혜가 나서기도 전에 비행정들이 잘려나갔다. 그러더니 반가운 얼굴이 다가왔다. 정희원 이었다.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그녀가 김독자가 말한 모든 것을 지켰다는 것을. 김독자의 생각보다도 강해져 있었다.
정희원은 김독자가 누군지 알아낼 방법이 있다며 칼날에 마력을 둘렀다. 김독자라면 살아날 거라고. 신유승이 도망가라고 외쳤고, 김독자는 귀환자들과 달려갔다. 어떻게든 여의도에만 도착하면 되니까.
[바람의 길]과 비천호리의 [답설무흔]이 발동하며 귀환자 모두가 순식간에 경기권의 창공을 뚫고 서울에 진입했다. 멀리 보이는 여의도의 정경. 그곳에 그들이 표식을 남겨야 할 거대한 비석이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간발의 차이로 무지막지한 파괴력을 가진 검강이 창공을 휩쓸고 지나갔다. 검강은 이내 천공에 균열을 내고 사라졌다.
고개를 숙이자 김독자를 올려다보는 서늘한 시선과 마주쳤다.
김독자가 아는 어떤 존재보다 강력하고, 굳건한 의지를 가진 화신이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닥에 꽂아 넣은 흑천마도.
유중혁이었다.
김독자는 [전지적 독자 시점]을 발동해 보지만, 삼 년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이해도가 부족해 발동이 되지않았다.
김독자는 할 수 없이 1,863회차의 한수영이 쓰던 '부러지지 않는 신념'을 꺼내들었다. 솟아오른 '신념의 칼날'의 에테르가 검은빛을 띄었다. 유중혁의 동공이 잠시 흔들렸지만,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김독자는 '한낮의 밀회'를 사용해 대화를 시도했다.
메시지가 외곡되긴 했지만, 분명 유중혁도 메시지를 받았다.
유중혁은 김독자를 잠시 바라보더니 초월격을 개방했다.
김독자는 그가 눈치채지 못할리 없음에도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에 당황했다. 그리고 머릿속에 한 줄기 의문이 솟았다.
「어째서 '한낮의 밀회'가 발동한거지?」
'한낮의 밀회'는 기간제 아이템. 일정 시일이 경과하면 추가 코인을 지불해야 사용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그런데 김독자는 '한낮의 밀회'를 어떤 지연도 없이 사용했다. 즉 누군가가 그 기간을 계속 연장하고 있었다는 뜻.
김독자와 유중혁은 서로 최선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그것만이 서로 나눌 수 있는 대화의 전부라는 듯이.
김독자는 이렇게까지 강해진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싸워도 표정 변화가 없는 유중혁을 보며 웃음을 흘렸다. 유중혁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유중혁은 김독자를 알아본 것이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유중혁은 계속 김독자를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김독자는 알 수 있었다.
신유승이 유중혁을 가로막았다. 그러자 장내가 침묵에 잠겼다. 김독자가 고개를 돌리자, 정희원과 이지혜, 이길영과 이수경의 시선이 느껴졌고, 아일렌, 마르크, 한수영까지 있었다.
그러나 그중 누구도, 싸움에 간섭하는 이는 없었다.
정희원이 신유승을 안고 물러났고, 정희원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순간에 김독자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돌아보니 유중혁이 다가오고 있었다. [파천검도]가 유중혁의 칼끝에서 휘몰아쳤다. 김독자가 검을 고쳐 쥔 순간, 유중혁과 김독자의 격이 정면으로 부딪쳤고, 눈이 멀 듯한 섬광이 폭발했다.
재차 폭음이 터졌을때, 김독자는 격통을 느끼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김독자는 헛웃음이 나왔다. 순수한 힘의 대결에서 그는 유중혁에게 밀린 것이다. 유중혁이 다가와 김독자를 내려다보았다.
이것이 유중혁의 진짜 삼 년이자, 진짜 하고 싶은 말이었다.
유중혁의 뒤쪽에 있는 비석 위에서 비천호리가 김독자를 불렀다. 깜짝 놀란 유중혁이 돌아선 순간에는, 이미 비천호리가 빠른 발길질로 비석 위에 표식을 새기고 있었다. 김독자가 미리 부탁했던 문구로.
[163번째 귀환자 그룹이 시나리오를 클리어했습니다!]
[당신을 더 이상 '재앙'이 아닙니다.]
일행들 동공에 바닥에 너부러진 김독자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신유승과 이길영이 다가와 안겼다. 김독자는 아이들을 끌어안은 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독자는 비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돌아온 기념 선물이라고.
비석의 꼭대기에 새겨진 표식은 다음과 같았다.
—김독자 컴퍼니
[당신이 소속된 '성운'의 터가 정식으로 공표됩니다.]
[당신이 소속된 '성운'의 터가 마련됐습니다.]
다가오던 일행들이 어이없다는 듯 김독자를 보고 있었다.
가입해줄 거냐고 물으며 달려오는 일행들을 향해 팔을 벌리는 순간, 뒤통수에 아찔한 통증이 작렬했다.
조금씩 희미해지는 시위 속에 김독자를 가두라고 말하는 정희원의 얼굴이 들어왔다.
[Ep.58 별자리의 맥락]
지난 삼 년 동안 정희원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팬클럽이 생겼고, 각종 미디어에서는 그녀의 삶을 기사화하거나 이야기로 가공해 상품으로 만들어내려는 이들도 나타났다. 검을 쓰는 화신이라면 누구나 그녀를 동경했다.
그녀는 배후성이 종적을 감춘 이후, 다른 화신보다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강해진 그녀 앞에, 사라졌던 배후성이 돌아왔다. 정희원도 왜 우리엘이 삼 년 동안 근신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섭섭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정희원은 김독자가 어떤지 궁금해하는 우리엘에게 김독자가 있는 최상층 방을 보여주었다. 웬만한 5성 호텔의 스위트룸 뺨치는 방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푹신한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김독자가 보였다. 걷힌 소매 아래로 드러난 팔뚝에는 설화 팩 공급을 위한 카테터가 꽂혀 있었다. 팩에는 이설화가 만든 수면제가 잔뜩 들어있는 상태였다.
김독자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깨어날 수 있었지만, 그를 걱정하는 일행이 있었기 때문에 편안히 잠을 잤다.
이길영과 신유승, 이지혜는 경기 연합 건물들로 향하고 있었다. 건물 안을 보니 노예처럼 다루어지는 도민들이 고통 속에 울부짖고 있었다. 이길양은 다섯 마리의 4급 충왕종을 불러냈다.[106]
그런데 다른 곳이 붕괴하며 비행정들이 추락하고 있었다.
한바탕 광풍이 몰아친 자리에는 폐허만 남았다.
그곳에 있는 사람은 유중혁이었다.
경기 연합 간부러 보이는 사내가 인질이 있다고 외쳤다.
그 말에 유중혁의 칼이 처음으로 멈칫했다. 사내는 계속해서 외쳤다. 월하현제 유상아가 최상층에 있다는 것을 안다며 연합의 정예 암습조가 결계를 뚫고 침투했다고.
그러나 유상아의 방에는 결계가 없었다.
같은 시간, 경기 연합의 정예 암습조원은 공단 성채에 침입해 술식을 해제하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물었다. 흑염마황[107]이 있지는 않겠냐면서.
그러나 그들이 모두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안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문을 막고 있던 술식이 풀렸다.
밖에서는 쉽게 뚫리는 천제결계였던 탓이었다.
침투를 준비하며 문고리에 손을 대는 순간, 그들의 배후성이 그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띄웠다. 문 너머에서 느껴지는 가공할 격의 향연. 열린 문 사이로 백색 코트를 걸친 사내가 싱긋 웃으며 나오고 있었다.
암습조 아홉이 자리에 드러눕기까지는 삼십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김독자가 점혈하기 전에 독단을 깨문 몇몇 암습조원들이 녹아내렸다. 암시가 걸린 사람들 같았다.
김독자는 암습조가 침입한 루트와 그들의 행색을 꼼꼼히 확인했다. 깨진 창문 너머로 달아나는 한 사람이 보였다. 화려한 경신법을 보아 예상되는 시람이 있었다. 십악 조진철. 멀어지는 조진철을 쫓아가는 몇몇 인원이 보였다. 귀환자 비천호리도 그 중 하나였다.
추격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탁 트인 서울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
'은밀한 모략가'와의 계약을 통해 공단은 텅 빈 서울 중심으로 옮겨졌다.
[성좌, '젊은이와 여행의 수호자'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젊은이외 여행의 수호자. 성운 <에덴>의 대천사, 라파엘.
라파엘이 이미 가브리엘을 회수했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요피엘이 돌아오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김독자는 46번 시나리오가 끝나는 대로 <에덴>에 방문해 설명하겠다고 대답했다.
김독자는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했다. 비형에게서 온 메시지가 있었다. 바쁜 일이 있어 끝나는 대로 찾아 온다는 내용과 비유를 잘 데리고 있다는 내용이 담긴 장문의 메시지.
김독자는 우선 일행을 찾으러 나서기로 했다. 그리고 십여 분 동안 길을 잃고 헤맸다[108]. 얼마 지나지 않아 쟁반에 식사를 담아온 이현성과 한수영을 마주치게 되었다.
한수영과 정희원을 보니 일행들 사이에 불화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김독자는 그 사이에서 축 처진 이현성의 등을 가볍게 토닥여주고는 유상아가 있는 곳을 물어보았다.
김독자가 유상아의 방 앞에서 문을 두드리자, 문전박대를 당했다.
김독자는 들어가지 않고 잠깐 대화를 나누었다. 미노 소프트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어느 새 두서없이 이어지는 유상아의 말이 이어졌고, 김독자는 방문을 강제로 열었다.
김독자는 어두운 표정의 세 사람과 눈이 나주쳤가. 이설화, 아일렌, 그리고 어머니. 세 사람은 침대 근처에 서 있고, 침대에는 유상아가 누워 있었다. 굳게 닫힌 그녀의 입술 대신 떠드는 것은 그녀에게서 새어나오는 부서진 설화들.
잠시 후, 김독자는 일행들과 유상아의 병실에 모여 앉았다.
유상아는 <올림포스> 성운 자체를 배후성으로 두고 있는 상황이라 비정상적인 '배후계약'으로 '이야기의 수명'이 깎인 상황이었다.
이설화는 삼 개월 정도 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고 이곳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김독자가 생각해낸 방법은 하나뿐. 46번 시나리오를 돌파하는 것. 그것은 유중혁의 생각으로도 유일한 방법이었다.
47번 시나리오 지역에는 성좌들의 성간 도시, '별자리의 맥락'이 있다. 그 성좌들을 만나러 가야 했다.
잠시 후, 일행들은 각자 장비들을 정비하며 김독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이수경을 보며 김독자는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이고서야 입을 열었다. 죄송하다고. 이수경도 한참을 망설이다 그 책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지하살인자의 수기》.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먼서 사회는 가정 폭력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관련 처벌법에 관한 강화 법안도 등장했다. 그러나 그 이야기 속에서, 인간 '이수경'과 '김독자'는 완전히 해부당했다.
김독자는 커다란 이야기가 개인을 말살시키는 일을 없애겠다며 나갔다. 잠시 후 커튼 너머에서 한수영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책으로 번 인세를 김독자의 생활비로 보태려고 했다는 말을 안한 이유를 물었다. 이유는 친척들에게 부탁해서 전하려고 했던 돈이 결국 김독자에게 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유중혁이 김독자에게 말했다. 귀환자 집단에게 공단 보호에 관한 계약을 맺고 왔다고. 방랑자 세력과 파천검성도 있기로 했다고 한다.
김독자가 유중혁을 처음 만난 날 했던 말,
—46번 시나리오는 혼자서 깰 수 없어. 알고 있을 텐데?
어느새 그 말을 실현할 날이 찾아왔다.
잠시후 일행들이 다가왔고 메인 시나리오가 도착했다.
46번 메인 시나리오, 별의 증명.
얼마 지나지 않아 허공에서 시나리오를 진행하는 도깨비들이 나타났다. 정장을 걸친 도깨비 영기가 시나리오에 대해 설명했다.
이 시나리오는 '개인' 자격으로 참가할 수도 있고, '성운' 자격으로 참가할 수도 있다고.
만약 '성운' 자격으로 참가했을 때, 그 성운이 이미 46번 시나리오를 완료하였을 경우, 바로 47번 시나리오로 직행할 수도 있다며 안내했고, 성운들에게서 초대가 도착했다[109].
김독자는 성운 자격으로 참가하겠다며 일행들에게 성운에 들어와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자 모든 일행이 <김독자 컴퍼니>에 가입했다.
그러나 다른 성운들의 반대로 일행이 나누어지게 되었다.
김독자는 흩어지기 전에 일행들에게 말했다. 믿는다고.
눈부신 빛살과 함께 시나리오 지역으로 이동했다.
그와 동시에, 허공에 시나리오 내용이 떠올랐다.
방의 중심에 비치된 '별'을 입수해 사용하거나 제한 시간 동안 상대방이 '별'을 입수하지 못하게 막으시오.
방에 비치된 별의 보상이 나타났다. 먼저 '별'을 획득해 사용할 시, 상대방이 가진 모든 스킬과 설화를 획득하거나 무기한 생사여탈권을 가지는 등의 보상 중 선택해 사용하는 것이었다.
김독자는 보상 내역을 읽다 말고 별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중심에 도착한 유중혁이 별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Ep.59 김독자 컴퍼니]
유중혁은 더 이상 김독자가 마음대로 희생하지 못하게 하려고 별을 가지려고 하고 있었다. 그래야만 일행들도 일부러 죽으려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김독자가 유중혁을 바라보자, 자신이 기억하는 오만하고 자신감 넘치는 유중혁의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겁을 먹은 것 같은 모습. 유중혁은 이 세계에는 자신이 아니라 김독자가 필요하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김독자의 머릿속으로 유중혁이 했어야할 일들을 자신이 빼앗아 대신 해온 자신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장난처럼 자신을 유중혁이라 되뇌인 말들이 고스란히 돌아왔고, 별다른 생각 없이 빼앗은 역사들이 지금의 유중혁을 만들었다.
지금의 유중혁은 김독자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저렇게 자신감이 떨어져 있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유중혁은 강해졌다.
그럼에도 유중혁은 41회차의 신유승에게 받은 정보가 떨어지기 시작해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니 알려주어야 했다. 유중혁은 고작 그 정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김독자는 1,863회차의 유중혁이 전승해 주었던 설화를 사용했다.
[당신의 독해 수준으로 해석 가능한 회차를 가늠합니다.]
[당신이 독해 가능한 '유중혁'의 최대 회차는 '41회차'입니다.]
['41회차'를 선택하시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이자, 유중혁의 닳아버린 감정들과 우울이 김독자를 공격해왔다. 김독자는 그 모든 것을 참고 견뎠다.
[해당 회차의 '유중혁'의 재능이 당신에게 깃듭니다.]
41회차의 유중혁이 말했다.
「내 특기는 '창'이다.」
새카만 그림자로 존재하는 창이 눈앞에 나타났고, 김독자는 망설이지 않고 그 창을 쥐었다.
신화급 설화, '지옥불멸의 지옥도'.
1,863회차의 유중혁이 전해준 설화였다.
유중혁의 '역사'를 잠깐동안 빌려올 수 있는 설화.
41회차의 유중혁은 파천검성을 찾는 대신 사라진 '제0 무림'의 유산을 찾았다. 오래전에 이미 멸망한 세계의 무공을.
멸혼신창. [파천검도]에 비견되는 극강의 마공.
41회차의 유중횩은 이 창 한 자루로 귀환자를 멸살했다.
창을 쥔 손이 덜덜 떨렸다. 과도하게 집적된 격. 겨우 41회차에 유중혁은 이미 이런 경지에 올랐던 것이다. 스킬이나 성흔을 넘은, 인간 유중혁이 자신의 삶을 바쳐 축적한 힘. 밀려오는 현기증에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계속 버텼다.
유중혁도 이젠 김독자가 진심임을 눈치챘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쇄도하는 창 끝이 유중혁에게 말을 걸었다. 유중혁과 유중혁이 대화하고 있었다. 41회차의 유중혁이 말했다. 강해지라고.
김독자는 생각했다. 아마 이것이 자신의 역할일 것이라고.
그는 주인공이 될 수도, 누군가를 구원할 수도 없다.
하지만 자신이 아는 이야기를 전할 수는 있었다.
그 모든 창격에 김독자가 읽어 왔던 문장이 담겨 있었다.
끔찍하던 3회차, 통한의 41회차, 지옥 같던 1,863회차가.
그렇게 3회차의 유중혁은 41회차를 통해 성장하고 있었다.
진화한 [파천검도]의 궤적이 포기하지 않고 [멸혼신창]의 흐름을 따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 자신을 넘어섰다.
[설화, '영원불멸의 지옥도'가 이야기를 마칩니다.]
지옥도가 사라지고 희뿌연 먼지 속에서 흑천마도의 칼날이 김독자의 목에 닿아 있었다. 그리고 김독자의 '부러지지 않는 신념' 또한 유중혁의 심장 근처에 닿아 있었다.
어느새 시나리오의 제한 시간이 모두 경과했고, 허공에서 별이 터지며 은빛으로 흩어졌다.
46번째 시나리오, '별의 증명'. 이 시나리오는 참가자 모두가 서로를 해하지 않을 때에야 제대로 클리어할 수 있다.
[당신은 '신뢰'를 증명했습니다.]
[새로운 설화를 획득했습니다!]
[시나리오의 클리어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유중혁이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김독자가 갔던 다른 세계선의 자신이 실패했는지 물었다.
김독자는 허공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성공했다고. 비록 자신은 끝을 보지 못했지만.
그러나 아직 시나리오는 끝나지 않았다. 다른 방은 늦게 투입된 모양이었다. 김독자와 유중혁은 도깨비가 띄운 화면으로 다른 방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화면 속에서 한수영과 정희원이 격돌하고 있었다.
한수영이 첫 번째 사도라는 것을 알아채고 정희원이 분노한 탓이었다.
정희원이 먼저 쓰러졌고, 한수영은 잠시 무슨 말을 중얼거리더니 발치에 놓인 별을 걷어찼다. 다른 방에서는 이길영과 신유승이 서로 머리칼을 움켜쥔채 울고 있었고, 이설화,이지혜,이현성이 들어간 방에서는 너무 평화로워서 이현성이 잠에 들 정도였다.
어느새 각자의 방에서 '믿음', '우정', '신의'를 증명하며 시나리오가 종료되었다. 일행들이 소환되었고, 서로 부축했다.
고개를 들자 하늘이 열리고 있었다. 그곳에 보이는 건 스타 스트림의 하늘. 그리고 다음 순간, 밤하늘에서 작은 별 하나가 빛났다.
「구원과 마왕의 사이.」
그 빛을 받아 몇몇 행성도 함께 빛나기 시작했다.
「악마와 심판의 사이.」
「강철과 주인의 사이.」
「심연과 흑염룡의 사이.」
텅 비어 있던 우주의 사이사이를 잇는 새하얀 선이 보였다.
그 순간, 김독자는 '수식언의 맥락'을 이해했다.
별과 별 사이에 이야기가 있었다.
아직 성운의 별자리엔 빈자리가 많았다.
그리고 그 중 하나는 유상아의 것이다.
몸이 두둥실 허공으로 떠올랐고, 곧 그들은 하나의 빛이 되었다.
무수한 스타 스트림의 별이 곁을 스쳐 지나가고, 광대한 성간 도시의 정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부신 빛이 잦아든 곳에 거대한 그림자가 있었다.
비형과 비유였다. 비유가 허공을 날아 김독자에게 안겼다.
비형은 47번 이후 시나리오부터는 48번부터 65번까지의 시나리오를 선택해서 수행할 수 있다고 일행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십 분 정도 가면 성간 도시로 들어갈 것이라고도.
화려한 빛살이 김독자와 일행들을 감싸더니 성간 도시를 향해 천천히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때, 정희원이 물었다. 지난 삼 년간 어디있었냐고.
김독자는 1,863회차에서 있었던 일을 대충 궁금증이 풀릴만한 지점만 골라서 이야기해주었다. 코트가 바뀌었다는 것을 알고나서 한수영이 코트 안주머니에 덥석 손을 집어넣고는 깜짝 놀랐다.
좋은 아이템들이 몇 개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간 도시, '별자리의 맥락'에 진입했습니다!]
[새로운 메인 시나리오가 대기 중입니다.]
일행은 거대한 도시의 광장에 착륙했다.
딱히 그들을 주목하는 이는 없었다.
현재 유상아는「의식의 흐름」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에 삼 개월이 지나면 설화가 빠져나가 그녀의 영혼이 공허 속에 소멸할 터였다. 그 전에 유상아를 살려야 했다.
유중혁은 이설화와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유중혁이 갈 곳은 뻔했다. 지금 이곳에 온 화신은 그들만이 아닐테니까.
유중혁이 사라진 후, 김독자는 일행과 광장 중심에 비치된 포털로 향했다. 이곳에는 거의 모든 세계와 통하는 포털이 있었다. 김독자는 그 포털로 <올림포스>에 정식으로 방문 요청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모든 방문객의 입장을 거절하고 있다는 메시지만이 뜰 뿐.
그때, 포털 맞은편에서 중후한 진언이 들려왔다.
그는 모습을 보니 틀림없이 '장판파의 호신' 장비 장익덕이었다.
그는 일행과 악수를 한 뒤 사라졌다.
김독자는 일행들과 광장 쪽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성좌와 화신으로 도떼기시장을 이루고 있었다. 47번 이후시나리오에서는 본격적인 '설화 쌓기'가 가능하기 때문이 위인급 성좌들도 간이 파티를 구성해 시나리오 공략에 참가한다.
김독자는 하늘에서 번쩍거리는 '시나리오 광고판'을 올려다보았다. <올림포스>의 <기간토마키아>를 광고하고 있었다.
<기간토마키아>는 <올림포스>에서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대형 시나리오였다.
그러나 일주일 뒤에 있는 <기간토마키아>까지 그냥 기다릴 시간은 없었다. 김독자는 한수영에게 코인을 주면서 일행과 '경매장'에 가라고 말했다. 가는 김에 장비랑 애들 옷도 좀 사주라면서.
김독자는 그 뒤를 쫓으려는 정희원을 붙잡고는 곧장 주변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별자리의 맥락'에 있는 '도깨비 마트'의 지점 중 하나였다.
임구에서부터 커다란 도깨비 하나가 플래티넘 멤버 이상만 출입할 수 있다며 가로막았다. 김독자는 '도깨비 보따리'를 열어 다이아몬드 멤버임을 확인시켜주고 들어갔다.
김독자는 매장 한쪽 구석의 정장 두 벌을 꺼내 들었다. SSS등급 방어구에, 실용성도 나쁘지 않았다. 김독자는 격식을 차리는 곳에 가야한다고 말하며 두 사람 다 정장을 입었다.
김독자는 코인을 지불하고 정희원과 옥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짧게 시선을 교환하고는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지상을 향해 반쯤 추락했을 무렵, 김독자는 허공을 노려보았다.
[마왕, '구원의 마왕'이 숨겨진 포털을 바라봅니다.]
[포털이 암호를 요구합니다.]
암호는 '추락하는 모든 것에는 날개가 있다.'.
암호를 말하자 두 발이 바닥에 닿았고, <에덴>에 도착했다.
김독자가 대천사 미카엘에게 죽을 뻔 하지만, 우리엘과 메타트론 덕분에 벗어났다. 고개를 돌리자 우리엘이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천사 우리엘. <에덴> 제복을 갖춰 입고, 십자 문양 귀고리를 낀 우아한 모습. 평소의 장난스러운 모습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고결한 격이 전신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김독자와 정희원은 곧바로 <에덴>의 궁으로 안내되었다.
<에덴>은 소소한 장식뿐인 단출한 모습이었다.
우리엘은 정희원에게 궁을 안내한다며 김독자를 남겨두고 사라졌다. 대신 김독자의 앞에는 라파엘이 나타나 응접실에 이어진 통로로 안내했다.
외각의 회랑을 걷는 동안, 창 너머로 어린 양들이 풀을 뜯고 있는 동산의 정경이 보었다. 라파엘은 양을 우리엘이 데려온 것이라 알려주었다.[110]
어느새 서기관 집무실이 눈앞에 있었다.
서기관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김독자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가장 먼저 보인것은 사람 키 높이만큼 쌓인 책의 향연.
김독자는 책을 조심히 피해 집무실 테이블에 앉아있는 잿빛 머리카락의 대천사에게 향했다.
안경테를 밀어 올린 메타트론이 김독자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김독자는 1,863회차의 세계선에서 있었던 일을 메타트론에게 말해주었다.[111] 메타트론은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자 메타트론은 태연하게 <에덴>의 멸망을 말했다.
김독자는 가만히 메타트론을 바라보다 물었다.
자신을 부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무엇일 것 같은지 되묻는 메타트론에게 김독자가 답했다.
스타 스트림 역사상, 마계와 <에덴>의 관심을 동시에 받는 존재는 아마 김독자가 유일할 것이었다. 그렇기에 <에덴>의 멸망을 막을 <마계>와의 전쟁의 중재자로써, 메타트론에게는 김독자가 필요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메타트론 뒤쪽에서 휘황한 빛이 떠오르더니 존재를 파고드는 위험한 힘이 느껴졌다. [제4의 벽] 덕분에 눈을 가리던 스파크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그 모습을 보던 메타트론이 감탄한 목소리를 냈다.
'최후의 벽의 파편'이 선택한 존재가 역시 김독자였다 면서.
김독자는 메타트론 뒤쪽에서 일렁이는 은빛의 벽을 보았다.
선악을 가르는 벽. 대천사 메타트론 또한 '벽'의 소유자였다.
[EP.60 파멸의 맛]
[제4의 벽]도 저 벽을 아는 모양이었다.
멸살법에도 잠깐 언급된 적이 있기는 했다.
[선악을 가르는 벽]은 이 세계의 선악을 나누는 기준이다.
저 스킬이 누군가를 '악'이라 명명하면, '절대선'에 속하는 성좌는 그 결정에 대해 표결권을 가지게 되고, 그 결과는 즉각적으로 반영된다.
아무래도 이번 회차의 메타트론은 어렴풋하게나마 멸살법의 존재를 아는 듯했다. 김독자는 그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김독자는 '최후의 벽'이 무엇인지 물어보았고, 메타트론은 채널의 꺼달라고 부탁했다. 채널이 닫히자, 메타트론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최후의 벽'은 이 세계의 본질을 구성하는 벽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으나 끝내 무너져버린 벽.
메타트론은 김독자를 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맺었다.
김독자가 '정해진 멸망'을 바꾸기를 바란다고.
김독자는 어떻게 자신을 이용하더라도 상관 없으나 자신은 유상아를 살리려고 온 것이라 말했다. 그러나 성유과나 성유액이 필요한 상황에서, <에덴>에는 방법이 없었다.
삐걱거리며 집무실이 열리더니 한 사내가 들어왔다.
눈부신 광휘에 덮인 화신체의 모습.
정희원은 우리엘과 <에덴>을 구경하며 다른 천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엘은 계속 김독자를 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희원은 웃으며 보러 가라고 했다.
그때, 서기관의 집무실로 향하는 누군가가 있었다.
지난 '마왕 선발전'을 악몽으로 만든 장본인.
정희원은 우리엘과 가보기로 한다.
수르야. 그가 <에덴>에서 하청 시나리오를 수주받은 모양이었다.
김독자는 긴장하고 있었지만 자기 볼일만 보고 집무실 출구로 향하는 수르야를 보며 허탈함을 느꼈다.
수르야가 갑자기 멈춰서더니 돌아보지 않은 채로 입을 열었다.
자신이 도와줄 수 있다고.
<베다>의 성유액 소마. 그것이라면 유상아의 상태를 호전시킬 가능성이 있었다. 그것의 조건은 <기간토마키아>를 이용한 <올림포스>의 파멸.[112] 김독자는 받아들였다.
그러나 김독자의 성운만으로는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김독자는 메타트론에게 제안했다. <기간토마키아>의 '거대 설화'의 지분을 나누어주는 대신, <에덴>의 성유물을 받아가겠다고.
잠시 후, 수르야와 계약을 마친 김독자는 <에덴>의 출입 포털에 섰다. 김독자는 일주일 정도 있다가 오라며 정희원을 두고 포털 너머로 사라졌다.
메타트론과 가브리엘이 대화를 하던 중, 메타트론을 향한 메시지가 도착했다. 놀랍게도 메시지의 발신인은 '붉은 코스모스의 지휘관', 요피엘.
—이계의 신격, '은밀한 모략가'의 정체에 관한 보고.
무수한 상인들이 온갖 아이템을 파는 경매장으로 가는 길목을, 유중혁과 이설화가 함께 걷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유중혁의 발걸음이 멎었다. 분노가 유중혁의 표정을 지배하고 있는 모습이 이설화의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 보이는 경매장 입구. 그리고 그곳으로 들어가는 한 무리의 화신들과 금발 머리의 여자. 이설화는 본능적으로 유중혁의 팔을 붙잡았다. 금발 여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스카르드의 예언자'. 지난 회차의 유중혁이 저 여자에게 당해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비꼬는 목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한수영이 있었다.
한수영이 김독자에게서 훔쳐온 물건으로 유중혁 대신 여자에게 한 방 먹여주겠다며 악동 같은 미소를 지었다.
경매장은 '도깨비 보따리'나 일반 '거래소'에서는 구하기 힘든 성유물급 아이템을 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였다. 그리고 예언자 '안나 크로프트'는 이곳에서 반드시 얻어가야 할 아이템이 몇 가지 있었다.
안나 크로프트는 셀레나 킴[113]과 함께 있었고, <올림포스> 성좌들의 경호를 받는 중이었다. 안나 크로프트는 준비를 마치고 경매장에 들어갔다.
경매를 진행하는 것은 단상의 준상급 도깨비였다. 안나 크로프트와 셀레나 킴은 자리에 앉아 경매에 참가했다. 순식간에 몇 가지 아이템이 팔려나갔고, 안나 크로프트도 몇 가지를 샀다.
안나 크로프트가 산 것은 주류 희귀한 재료 아이템들. 모두 [미래시]로 확인한 아이템이었고, 목록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고신병을 제작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아이템들.
목록 점검을 마치고 일어서려는 안나 크로프트의 귀에 특별 상품이 들어왔다는 도깨비의 목소리다 들려왔다. 안나 크로프트는 '예언'에서 보지 못한 아이템의 등장에 표정이 굳어지고 말았다.
올라온 아이템은 '헌 집 두꺼비'. 안나 크로프트는 망설임 없이 '대악마의 눈동자'를 사용했다. 앙나 크로프트의 망막에 '헌 집 두꺼비'의 숨겨진 기능이 떠올랐다. 기능 자체는 간단했다. 낡은 아이템을 먹고, 동급의 다른 아이템을 뱉는다. 간단해 보이지만 그 응용은 무궁무진한 아이템이었다. 반드시 사야했다.
60만 코인을 불렀지만 더 높은 가격을 부른 사람이 있었다.
유중혁이 70만 코인을 부른 것이었다. 두 사람의 경쟁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안나 크로프트가 300만 코인을 부르며 낙찰받았다.
[미래시]의 제한치를 다 사용한 상황에서 찜찜한 느낌이 이어졌고, 경매품 앞에 섰을 때 안나 크로프트는 반사적으로 출품자를 물었다. <김독자 컴퍼니> 소속이라는 말에 안나 크로프트는 출품자 본인의 경매 참가로 인위적인 가격 경쟁을 유도했다며 낙찰을 취소하려 했지만, 출품자의 이름은 다름아닌 김독자. 낙찰을 취소할 수는 없었다.
다음 순간, 경매장 문이 활짝 열리며 미소를 지은 사내가 다가왔다. 김독자였다.
때마침 김독자가 나타났던 것은 한수영이 보낸 '한낮의 밀회' 메시지 덕분이었다. 한수영이 이미 '헌 집 두꺼비'를 빼갔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김독자는 경매장도 확인해볼 겸 해서 온 것이다.
완전히 표정을 잃어버린 안나 크로프트의 모습이 보였다.
안나 크로프트는 물건을 받지 않는 대신 위약금을 지불하겠다고 제안했다. 김독자에게도 헌 집 두꺼비를 가지고 있는 것이 더 이득이라 받아들였다. 위약금은 50만 코인.
그런데 안나 크로프트는 잠시 뭔가 생각하더니, 코인을 꺼냈다. 그런데 꺼낸 코인은 100코인. 내기를 해서 김독자가 이기면 100코인을 주겠다고 한다. 김독자는 자신이 이기면[114] 셀레나 킴에게 걸려있는 '주종 서약'을 풀어준다는 조건으로 내기를 받아들였다.
내기 내용은 허공에 띄운 코인을 김독자가 직접 가져가는 것.
그러나 그렇게 쉬울 리 없었다. 안나 크로프트는 절대로 자신이 질 내기를 하지 않으니까.
경매장은 대표적으로 <올림포스>같은 성운의 힘이 극대화되는 장소. <올림포스>의 몇몇 성좌의 화신체가 [바람의 길]로 날아오르는 김독자를 가로막았다.
그러나 김독자는 거대 설화의 격을 꺼내 [전인화]의 마력에 깃들게하여 포브스의 화신체를 향해 주먹을 힘껏 휘둘렀다. 포브스의 화신체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바닥 깊숙이 처박혔다.
이곳은 <올림포스>의 법권 지대라 스킬을 사용하면 안되지만, 개연성의 구속은 곧바로 발동하지 않는다. 김독자는 다른 화신체들이 머뭇거리는 사이 허공으로 뛰어올라 코인을 낚아챘다.
아래쪽을 보니 안나 크로프트가 김독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려 100만 코인을 잃었음에도 낙담하지 않았다. 이다음에 일어날 일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법권 지대에서 난동을 부린 성좌는 <올림포스>의 구속을 받는다. 하지만 안나 크로프트는 몰랐다. 김독자가 처음부터 그걸 노렸다는 것을.
[<올림포스>의 개연성이 당신을 구속합니다.]
[당신의 화신체가 <올림포스>의 재판정으로 이송됩니다.]
김독자는 한수영에게 싱긋 웃어주고는 사라졌다.
그런데 차원 이동을 혼자 한 것이 아니었다.
유중혁이 김독자의 어깨를 붙잡고 있었다.
은은한 어둠속에서 두 개의 옥좌가 드러났다. 옥좌에는 두 개의 인형이 일렁거렸다. 옥좌에 앉아 있던 한 여인이 다가왔다. 바로 '가장 어두운 봄의 여왕' 페르세포네.
페르세포네는 옥좌 위의 다른 성좌를 소개했다. 의념만으로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게 할 정도로 강력한 '격'을 지난 존재.
어둠 자체로 보이는 한 사내가 있었다.
<올림포스> 신화에 늘 함께 언급되지만, 사실 <올림포스>에 속하지는 않는 존재. 멸살법 전체를 통틀어 가장 외롭고 고독한 성좌.
이번 <기간토마키아>를 무사히 마치고 유상아를 살리기 위해 반드시 저 성좌의 손을 빌려야했다.
김독자에게 오싹한 기류가 압박해왔지만 밀려서는 안되었다.
<김독자 컴퍼니> 대표로 이곳에 온 것이었으니까.
김독자는 입을 열었다. 명계의 왕, '부유한 밤의 아버지'에게.
자신과 함께 진짜 <기간토마키아>을 일으켜보자고.
2.13. #60 - 기간토마키아
Episode 61. 기간토마키아 ~ Episode 66. 선악의 저편 |
[Ep.61 기간토마키아]
거대 성운 <올림포스>가 주최하는 <기간토마키아>.
타르타로스의 갇힌 하위 격 거신 대여섯 머리를 풀어놓고 그것을 사냥하며 오래된 승리감을 만끽하는 스타 스트림의 축제.
또다시 거신들이 들고 일어날까 두려워한 <올림포스>의 성좌들로 인해 계속해서 만들어진 <기간토마키아>는 이미 진정성을 잃어버린지 오래였다. 그 어떤 성좌도 진심으로 두려워하지 않는 '시나리오'가 되어버렸다.
하데스는 자신의 감옥에 갇힌 거신의 거통을 오랫동안 지켜봐오며 그들의 고통을 이해했다.
그러니 진짜 중요한 것은 거신들이 직접 원하는 것.
김독자는 원하게 만들겠다고 가만히 웃으며 답했다.
김독자와 유중혁은 곧장 타르타로스의 1층에 내던져졌다.
<명계>는 이 시나리오에 참전할 수 없었다. 참전할 경우 이 전쟁의 규모와 개연성 제한치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때문. 그래서 페르세포네는 응원만 해주었다.
김독자와 유중혁은 1층을 가로질러 지하 2층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지하 2층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머리 셋 달린 개, 켈베로스가 있었다. 그리고 켈베로스의 머리 하나를 쓰다듬고 있는 거대한 거신병이 있었다. 김독자가 손을 흔들자 거신병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바로 김남운. <기간토마키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김남운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다.
김남운이 도와주기 싫다고 제안을 거절했다. 유중혁이 단번에 [파천검도]로 켈베로스를 쓰러뜨리고 김남운과 켈베로스를 지나쳐갔다. 김남운이 허겁지겁 뒤쫓아왔다. 마치 신이 난 것 같은 모습으로.
김독자는 아래로 내려가며 비유에게 정보 발설 금지 서약을 하는 성좌만 입장이 가능하도록 부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명계 2층 출입구가 나타났다. 그곳에도 켈베로스가 지키고 있었고. 김남운이 이 켈베로스는 쓰러뜨리지 말라며 궤도 엘리베이터로 데려다 주었다.
궤도 엘리베이터. 오직 심판관들만 사용하는 운송 기구. 하지만 멸살법에도 엘리베이터의 정확한 위치는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김남운은 몰래 타고 내려가본 적이 있다며 위치를 알고있었다.
궤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순식간에 77층에 도착했다. 광활한 공동을 연상시키는 공간. 그 공간 중심에 커다란 문이 있었다.
세 사람은 문에 다가갔다. 문에 들어가려면 제물이 필요했지만, 이미 준비는 마친 상태였다.
타르타로스의 거신에도 종류가 있다. 하나는 '태고의 거신' 티탄이고, 다른 하나는 거신 기간테스들이었다. 김독자가 불러야 할 이들은 기간테스.
순간, 바닥에서 지진이 일어나더니 문이 갑자기 열리고 거대한 손들이 세 사람을 붙잡았다. 원래 문은 안쪽에서는 열 수 없다. 그래서 제물을 준비해 왔는데도 쉽게 열렸다.
거신이 고작 손가락 하나로 제물의 개연성을 대신했다.
이자는 티탄. 틀림없는 '태고의 거신'이었다.
김독자와 유중혁은 거신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왔다.
김독자는 이 티탄 거신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굳센 폭풍, 브리아레오스. 돌진하는 기암, 코토스. 변화하는 수족, 귀에스.
유중혁은 자신들을 먹으려고 하는 티탄 앞에서 [거신화]를 사용했다. 이 스킬은 지난 회차에서 브리아레오스에게 배운 것. 게다가 파천검성이 타르타로스에 방문했을 때 김독자와 유중혁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며 말을 들어보기로 결정했다.
김독자는 <기간토마키아>로 당신들을 해방시키겠다고 곧장 본론을 꺼냈다. 하지만 그들이 거절했다.
김독자로써는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구보다 이 감옥을 증오하고, 12신좌에 대해서도 깊은 원망을 품은 자들이니까.
거신들의 설화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60번 시나리오, <기간토마키아>. 그 시나리오에서 거신들은 몇 번이고 전쟁에 끌려나가 성좌와 화신의 사냥감이 되었다. 피 묻은 상흔이 거짓이 되고, 그들의 용맹이 조롱거리가 될 때까지. 그런 일이 천 번도 넘게 반복되었다. 유중혁의 회귀가 그러했던 것처럼.
오랜 세월이 지나며, 거신들은 첫 번째 <기간토마키아>의 분노를 잊었다. 거신들은 세계에 저항하는 대신, 이 세계에서 잊히는 쪽을 택했다
김독자는 마치 유상아처럼, 그들을 설득했다. 그들의 절망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과 비슷한 처지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한 사람을 알고 있었으니까.
김독자는 [제4의 벽]을 협박해 일부를 해제했다.
김독자가 가진 설화 중 일부가 목소리를 쏟아냈다.
[설화, '영원불멸의 지옥도'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전용 특성, '시나리오의 해설자'가 이야기를 통제합니다']
김독자가 눈을 끔뻑이자 자신에게서 쏟아지는 활자들이 보였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가 읽어온 멸살법의 이야기였다. 그곳에 유중혁이 있었다. 이제는 없는 원작의 유중혁이.
김독자가 기억하는 회차들 일부가 헤카톤케이레스 삼 현제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그곳에 <올림포스>와 대적하는 유중혁이 있었다. 유중혁의 회차가 흘러가며 점점 더 많은 신좌들을 죽여갔다.
터져나가는 신좌들 머리를 보며 거신들의 눈빛이 경악으로 변했다. 유중혁이 신좌 하나를 죽일 때마다 거신들의 주먹이 떨리며 그들의 동공에 오래전 잃어버린 뭔가가 깨어나고 있었다.
[전용 스킬, '제4의 벽'이 발동합니다!]
이윽고 설화가 끊겼고, 힘이 빠져 주저앉으려는 김독자를 두 사람이 붙잡았다. 거신들이 김독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뒤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모습. 시나리오를 증오하면서도, 다음 시나리오를 궁금해하고 있었다.
김독자는 뒤가 궁금하면 직접 알아내보라고 말했다.
대답은 한참 뒤에 돌아왔다. 무수한 기간테스가 헤카톤케이레스 삼 형제를 중심으로 부복해 있었고, <기간토마키아>에 참전하기로 결정했다.
그때, 허공에서 페르세포네의 진언이 들려왔다. 이미 <기간토마키아>는 시작되었다고. 거신 넷이 잡혀갔다고 거신들끼리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멸살법에 따르면 올해 참전한 거신은 총 다섯.
스타 스트림의 모든 거신은 타르타로스에 갇혀 있다. 딱 하나, 그들이 아는 그 '거신족'만 제외하면.
귀환자 연합이 다가오고 있었고, 키리오스와 장하영, 파천검성, 파천신군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파천검성의 몸이 빛으로 물들었다.
[화신 '남궁민영'에게 깃든 '거신의 운명'이 발현합니다!]
다음 순간, 파천검성이 사라졌다.
유중혁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으니까. 원작의 파천검성은 거신의 운명을 각성하지 않기 때문에 <기간토마키아>의 제물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다행히도 <기간토마키아>에서 '거신 사냥'은 맨 마지막 순서. 그 전까지는 파천검성도 안전한 상태일 것이다. 오히려 진짜 문제는 지구. 여전히 그곳에서는 45번 시나리오가 진행 중이고, 지금쯤 '귀환자 연합'의 진군이 시작되었을 것이었다. 초월자인 천마와 혈마를 상대할 수 있는 것은 파천검성이나 키리오스뿐. 파천검성이 없으니 서울이 위험했다.
유중혁이 브리아레오스에게 맹세의 증표로 받은 '거신갑'을 들고 페르세포네의 도움을 받아 타르타로스를 탈출했다. 하지만 김독자는 수감된 상태라 나갈 수 없었다.
일행은 여덟 시간 전부터 <기간토마키아>에 진입해 있었다.
그리고 이후 한 일은 <올림포스> 테마파크를 구경하는 것.
갑자기 테마파크 중심에 있던 '트로이의 슬픔' 아킬레우스가 본격적인 시나리오의 시작을 알렸다[115]. 아킬레우스의 말 이후에 테마파크의 중앙 홀이 개방되더니 거신의 모습이 드러났다. 문제는 드러난 거신이 일행이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
그들의 첫 사냥감은 유중혁의 스승인 파천검성이었다.
어떤 화신도 움직이지 않았고, 아킬레우스가 먼저 달려들었다.
시범을 보여주겠다면서. 그리고 다음 순간, 파천검성이 달려든 아킬레우스의 머리를 주먹으로 쥐고 으깨버렸다.
김독자는 탈옥을 시도했다. 페르세포네가 뾰로통한 목소리로 한 번만 봐주겠다며 지상으로 가는 출구를 그냥 열어주었다. 김독자는 설화 '거신의 해방자'를 얻은 것을 확인하고서 페르세포네가 열어준 포털 속으로 뛰어들었다.
밀려오는 귀환자들을 방랑자들과 장하영, 키리오스가 막고 있었다. 그러나 귀환자들이 쏟아내는 검기 세례에 방랑자들의 전열도 조금씩 밀려났다.
귀환전쟁의 핵심은 각 세력의 리더를 쓰러뜨리는 것. 이번에 서울을 침공한 귀환자들의 목표도 서울의 리더를 해치우는 것이었다. 서울의 리더는 바로 이수경.
이수경은 한 손에는 부러진 팔주령을, 다른 한 손에는 비파형동검을 쥔 상태로 귀환자들을 바라보았다. 지난 암흑성의 전투로 '시조의 어머니'가 발하던 격이 대부분 소실되었고, 그를 알고 있는 귀환자들이 이수경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싸울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수많은 성좌들의 반대도 무시하고, 이수경은 비파형동검으로 '천제의 풍신'을 불렀다.
천재의 풍신. <홍익>의 최고신을 받드는 세 명의 설화급 성좌 중 하나. 지금 이수경은 자신의 수명을 담보로 마지막 도박을 하고있는 중이었다.
그녀의 오른손에,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바람의 거력이 깃들었다. 그녀의 일격에, 귀환자는 대부분 사멸했다. 문제는 모두 죽은 것이 아니었다는 것.
다행히도 누군가가 나머지 귀환자들을 죽이며 이수경을 업고 달렸다. 이수경의 눈에 보인 사람은 바로 유중혁.
유중혁의 등에 업혀 있어도 그녀의 안색은 점점 파리해졌다. 여전히 튀어오르는 개연성의 스파크가 그녀를 태웠고, 그녀의 설화가 증발하고 있었다. 조금 후, 그녀는 정신을 잃었다.
파천검성이 나타난 테마파크에는 피바람이 불고 있었다.
아킬레우스는 다시 살아났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킬레우스는 과거 <기간토마키아>의 참전자도 아니었고, 심지어 거신의 혼혈이기도 했기에 '무대화'가 발동하지 않았다.
[설화, '파천의 길'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파천검성이 걸어온, 오직 하늘을 부수기 위한 길.
[하늘을 깨부순 태고 거신의 힘이 '파천검성'을 가호합니다.
[파천의 힘이 더욱 강화됩니다!]
파천검성의 전신에서 무시무시한 기류가 발생했다.
화신들이 뒷걸음치던 그 순간, 아르고호가 바다를 가르며 달려왔다. 배에 탄 이들은 정말 <기간토마키아>에 참전했던 영웅들.
그보다 멀리서 설화급 성좌들까지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오고 있었다.
마침내 '무대화'가 시작되려 했고, 파천검성의 기세가 급격히 사그라들었다. 그에 용기를 얻어 파천검성을 비웃는 아킬레우스의 머리를 누군가가 허공에서 나타나 떠뜨려버렸다. 거체를 쓰러뜨린 사내가 망설임 없이 아킬레우스의 아킬레스건까지 베었다.
흩어지는 백색의 코트, 김독자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무거운 발걸음 소리. 굉음과 함께 무수한 산들이 돋아났다. 산 꼭대기에 선 김독자가 말했다.
진짜 <기간토마키아>를 시작해보자고.
[Ep.62 신의 천적]
60번 시나리오 <기간토마키아>를 보고있던 도깨비들 사이로 디오니소스가 김독자를 응원하고 있었다. 비형과 독각은 누가 가서 중계할지 싸우고 있었고[116]
시나리오를 부수겠다는 김독자에 말에 그를 지켜보던 장비가 그를 돕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그로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함께온 거신은 열 명도 되지 않고, 핵심 전력인 브리아레오스도 아직 참전하지 못했으니까.
[<기간토마키아>의 '무대화'가 진행됩니다.]
「영웅과 신의 합공에 지고의 거신들은 무릎을 꿇으리라.」
<올림포스>의 위인급 성좌들과 아르고호에서 내려온 인간 영웅들의 맹공격으로 기간테스들이 하나둘 무릎을 꿇었다. 김독자와 일행은 도우려 했으나, 바다에서 날아오는 포탄 세례에 운신이 자유롭지 못했다. 게다가 해상 쪽으로 접근하는 것조차고 힘들었다.
하지만 그들에겐 이지혜의 배후성, '해상전신'이 있었다.
'해상전신'이 위인급 성좌인 이유. 그가 설화급이 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자신의 길을 향해 나아가기로 결정했고, 다음 순간 그는 설화급 성좌가 되었다. 이지혜가 소환한 열두 척의 배. 배들은 어느새 더 커져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아르고호가 밀렸다. 결국 아르고호의 영웅들이 상륙했다. 하지만 일행들은 그들보다 약하지 않았다. 고작 열 명 남짓한 성운의 구성원이 거대 성운의 성좌와 맞서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키가 2미터나 되는 괴물이 나타났다. 헤라클레스.
김독자는 조용히 시동어를 외쳤다. 김남운을 소환하기 위해.
허공에서 포털이 나타났다. 김남운의 목소리도 들려왔고. 그러나 소환진이 망가졌다며 곧바로 나타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시간을 끌어야 했다.
메인 시나리오의 내용은 '거신'이나 <올림포스>에 있는 한 쪽의 수장 두 명을 죽이는 것. 헤라클레스가 바로 <올림포스>의 수장 중 하나였다. <기간토마키아>에서 거신들의 수장을 죽인 장본인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김독자는 헤리클레스를 보며 입을 열었다. 헤라클레스는 '대홍수' 시대 이후에 태어난 인물. 그런데 어떻게,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기간토마키아>에 참전할 수 있었을까.[117]
그것은 '헤라클레스'라는 영웅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 번개의 신 제우스는 거신의 부흥을 두려워했고, 세계선을 넘나들며 영웅 설화를 모았다. 그리고 그는 설화를 모아 '단 하나의 인물'을 창조했다. 이내 그 인물은 하나의 설화 병기가 되었다. 거신병, 헤라클레스.[118]
헤라클레스는 거신병. 그 말은 그 안에 누군가가 타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김독자는 그게 누군지 알고 있었다. '흉포의 군신', 아레스. 헤라클레스가 김독자에게 주먹을 휘둘렀고, 그 주먹을 강림한 거신병 플루토가 받아냈다.
김독자는 플루토의 콕피트로 스며들었다. 헤라클레스와 플루토는 맞붙었다. 그럼에도 플루토는 밀리지 않았다. 김독자는 자신의 설화를 폭발시켰다. 게다가 플루토의 효과로 격이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증폭하기까지 했다. 김독자는 이를 악물고 개연성의 스파크를 견뎠다.[119]
김독자는 이현성을 부르곤 이현성을 붙잡고 휘둘렀다. 그러자 이현성의 [강철화][120]가 발동되었다. 이현성의 전신으로 자란 [강철화]의 표피가 자라서 하나의 검이 되었다. [강철화]가 발동한 이현성은 살아 있는 '최강의 명검'과 다름없었다. 이현성은 앞으로 '강철검제'라 불릴 터였다.
하지만 이현성은 처음 검이 된 상태라 제정신이 아니었다. 김독자는 의욕을 고취해주기 위해 말을 걸었다. 헤라클레스가 쥐고 있는 방패를 이현성에게 주겠다고. 어느새 적응을 마친 이현성이 자신의 몸을 거신병의 손과 일체화했다.
김독자는 엄청난 개연성을 소모하며, 경고 메시지까지 무시하고 헤라클레스와 충돌했다. 강철검제와 헤라클레스의 방망이가 정면으로 부딪혔다. 계속해서.
'무대화'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이야기가 그들을 지켜주고 있었다. 한때는 적이던 김남운 또한 설화의 일부가 되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비열하던 영혼이 강철의 거신으로 태어났으니.」
끝내, 김독자는 헤리클레스를 쓰러뜨렸다. 그리고 엄청난 폭발과 동시에 플루토가 부서졌다. 김독자 대신 개연성을 감당한 결과였다. 김독자는 재빨리 벗어났고, 다행히 동력부는 무사해 보였다. 더 이상의 전투는 가능할 것 같지 않았지만.
김독자처럼 아레스도 간발의 차이로 콕피트에서 빠져나와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김독자의 목적은 아레스를 헤라클레스에서 내리게 만드는 것이었으니까.
유상아가 말해주었다. 아레스는 '헤라클레스의 장창'에 맞은 적이 있다고. 비록 헤라클레스는 만들어진 존재이지만 그의 설화, '가짜 설화'는 힘을 발휘했다.
김독자는 헤라클레스가 쓰러지며 떨어뜨렸던 헤라클레스의 장창을 집었다. 장창에 깃든 설화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창은 단 한 번의 관통으로 전쟁의 신을 무력화하였으니」
그러나 창은 너무나 무거워서 혼자 던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 순간, 창이 가벼워졌다. 누군가가 등 뒤에서 함께 창대를 쥐고 있었다. 돌아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유중혁이었으니까.
두 사람은 동시에 창을 던졌다.
창은 검푸른 빛살을 남기며 날아갔다. 「영원불멸의 지옥도」를 겪고 창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한 유중혁이 있었던 탓에 위력이 더 강해진 상태로 날아가고 있었다.
설화가 깃든 창은 아레스의 허벅지를 꿰뚫었고, 추락하는 아레스의 화신체는 초월의 격을 드러낸 유중혁에게 짓밟혔다.
유중혁은 아레스의 화신체를 바로 죽이지 않고 넥타르가 있는지 물었다. 아레스는 넥타르가 없다고 답했고, 유중혁의 흑천마도가 그대로 아레스의 심장에 꽂혔다.
아레스의 화신체가 사라졌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올림포스>의 수장 중 하나를 물리친 것이었다.
보상으로는 코인과 전설급 설화, '전쟁의 신을 패퇴시킨 자'를 획득했다.
불길한 느낌에 김독자는 유중혁에게 지구에 무슨 일이 생긴건지 믈었다. 하지만 유중혁은 단호한 목소리로 <기간토마키아>에 집중하라고 말할 뿐이었다.
아르고호가 갈라놓은 바다의 길을 따라 거신병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양산형 '헤라클레스'. 이전이었다면 거신병들의 기세에 겁먹은 거신들이 달아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헤라클레스는 <기간토마키아>의 주역. 그런데 그런 헤라클레스가 가짜였다는 사실을 안 이상, 해당 설화는 거신에게 영향을 끼칠 수 없다. 흔들리는 '무대화'가 그 증거였다. 브리아레오스까지 나타나며 거신들은 함성을 질렀다.
그러나 멸살법에 따르면 이곳에 참전할 12신좌는 최소 둘이 더 있었다. 하나는 '정의와 지혜의 대변자', 아테나. 그리고 또 하나는 '전능의 태양', 아폴론. 둘은 멀리서 허공을 격하고 날아오는 중이었다.
김독자는 유중혁에게 다른 사람과 아테나를 상대하라고 맡긴다.
유중혁은 김독자의 말과 동시에 창공으로 뛰어나갔다. 유중혁은 이데 완전한 초월의 경지를 누리고 있었다.
아테나가 멈춰선 것과, 검붉은 마력의 충돌이 발생한 것은 거의 동시였다. 아테나는 그녀의 얼굴에 분노를 띄우고는 창과 방패를 들었다. 하지만 그녀가 최강의 전투력을 가진 성좌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올림포스>에 한정된 이야기.
허공에서 화려한 불꽃이 강림하며 새로운 화신이 전장에 참가했다. 새하얀 백색의 날개를 펼친 우리엘이, 정희원의 전신에 강림하고 있었다.
<에덴>의 대천사와 <올림포스>의 여신이 충돌했다. 개연성을 넘어선 격을 내뿜는 아테나의 맹공으로 정희원이 밀리는 듯했지만, 곧 유중혁의 참전으로 비등해졌다.
이제 문제는 마차를 타고 달려오는 아폴론이었다[121]. 그러나 수르야가 나타나며 태양 마차와 태양 열차가 충돌했다[122].
'무대화'가 기울자 승세는 조금씩 기울었다. <김독자 컴퍼니> 쪽으로. 모두 잘 싸우고 있었으나, 김독자는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올림포스> 측 남은 수장이 보이지 않았다.
김독자의 눈에 한 영웅이 띄었다. '미궁의 영웅', 테세우스. 테세우스는 이런 짓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며 싸움을 말리고 있었다. 대체 무슨 영문인지 김독자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테세우스의 머리 위에 그가 <올림포스>의 '수장'임을 알리는 적색 화살표가 떠올랐다. 그리고 다음 순간, 폭발이 발생했다.
김독자는 폭발에 휘말려 드높은 파도와 암벽을 뚫고 한 절벽의 동굴이 처박혀 있었다. 상처를 점혈하고 빠져나가는 설화를 막고선 비틀거리며 일어나 동굴 바깥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전장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물안개 속에서 거대한 물안개가 일어났다. '해역의 경계를 긋는 창', 포세이돈.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신화급 성좌인 그가 개입하면 <올림포스>의 개연성과 격이 크게 손상될 뿐 아니라 시나리오 전체가 날아가버리니까. 그런데도 그는 이곳에 나타났다.
무의식중이 꽉 쥐고 있는 스마트폰이, 진동을 일으켰다.
[Ep.63 신화의 종말]
김독자는 스마트폰을 굳게 움켜쥐었다. 4차 수정본은 나타나지 않고, [제4의 벽] 도서관의 사서들의 말이 나타났다. 문제가 생겨 보내지지 않았다고. 그들은 일부만이라도 김독자에게 4차 수정본을 보여주었다. 후회로 가득찬 문장들. 그 중 눈에 띈 문장.
「만약, 그때 유상아가 아니라 이수경을 살렸더라면......」
그 때, 김독자의 뒤에서 디오니소스가 나타났다. 아직 이수경은 죽지 않았다면서. 디오니소스는 결계로 자신과 김독자를 숨긴채로 말했다. 디오니소스는 화면을 띄워 일행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라크네의 거미줄]에 묶인 채 [헤르메스의 산책법]으로 모두 까마득한 상공에 모여 있었다.
디오니소스는 말을 꺼냈다. 지금의 <올림포스>는 가짜라고. 그리고 이걸 끝내고 새로운 <올림포스>를 만들고 싶다고. 김독자는 자신이 돕겠다며 디오니소스에게서 넥타르를 받아냈다. 그리고 몇 방울을 찍어 혀에 가져다댔다. 그러자 곧바로 화신체가 수복되었다.
김독자는 포세이돈을 향해 달려가는 유중혁을 발견했다.
하지만 도약 준비를 하는 김독자를 디오니소스가 막아섰다.
['개연성 적합 판정'이 종료됐습니다!]
[해당 시나리오의 개연성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명됐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60번대 시나리오에 신화급 성좌가 나타났는데도 개연성에 문제가 없을리 없으니까.
뒤늦게 결계에서 빠져나온 김독자가 소리쳤지만, 유중혁은 이미 포세이돈 코앞에 있었다. 허공에서 개연성의 스파크가 쳤고, 그 반동으로 유중혁은 뒤로 밀려났다.
누군가가 포세이돈의 앞을 막고 있었다. 바로 페르세포네.
페르세포네가 포세이돈을 말렸고, 다음 순간 포세이돈의 창, 트리아이나가 페르세포네의 심장을 찔렀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창을 받아낸 것은 하나의 거대한 손. 김독자는 관리국이 '개연성 적합 판정'을 통과시켰는지 이해했다.
<올림포스> 3주신 중 하나, '부유한 밤의 아버지'.
명왕 하데스가 <기간토마키아>에 강림했다.
막기 위해 달려나간 모든 성좌가 두 신화급 성좌의 충돌에서 터져나온 격에 튕겨나갔다. 누구도 두 성좌의 싸움을 막을 수 없었다.
신화급 성좌 같은 대존재가 하위 시나리오에 강림할 때는 반드시 명분이 필요하다. 포세이돈의 경우, 명분은 자신의 아들인 테세우스였다. 그렇다면 하데스는 무엇일까. 페르세포네가 대답했다. 자신들의 후계를 지키기 위해 왔다고.
김독자는 갑자기 여러 가지가 이해되었다.
멸살법의 481회차에서 하데스가 유중혁에게 명왕의 후계로 삼고 싶다고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성좌, '부유한 밤의 아버지'가 당신을 '명왕'의 후계자로 삼고 싶어합니다.]
김독자는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김독자는 조건을 하나 제시하고 <명계>의 후계가 되기로 결정했다. 하데스가 조건을 받아들였고.
하데스와 포세이돈이 전투를 벌였다. 멸살법에서도 보지 못한 장면, 너무도 아름다운 장면.
그러나 싸움이 계속된다면 이곳의 모든 존재가 후폭풍으로 절멸할 것이었다. 그리고 이곳의 배경은 지금 바다이기 때문에 승패는 사실상 뻔한 이야기였다.
김독자는 파도에 결계에 휩싸인 테세우스를 바라보았다. 비겁한 방법이지만 현재로썬 최선의 방법이었다.
성화. 수많은 존재가 힘을 모아, 자신의 설화를 태워 만드는 불꽃.
그 정도는 해야 파도 결계를 부술 수 있다.
김독자는 우선 '헌 집 두꺼비'를 꺼냈다.
'헌 집 두꺼비'의 진짜 능력은 재물만 있다면 망가진 아이템을 똑같은 '새 아이템'으로 교체해주는 것. 김독자는 방금 전투로 얻은 하급 성유물을 주고 플루토를 고쳤다.
2미터 남짓한 크기로 작아진 플루토가 튀어나왔다. 흠집 하나 없는 완벽한 모습으로. 옆에서 유중혁이 일어났다. 큰 타격을 입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김독자가 해안 동굴 안쪽을 바라보자, 어둠속에서 횃불 같은 것이 하나둘 켜졌다. 안나 크로프트와 셀레나 킴, 그리고 그녀의 일행들이었다. 역시 예상대로 그들 또한 <기간토마키아>에 참전해 있었다.
김독자는 협상 끝에 80만 코인을 주고 '리코메데스 왕의 가죽 장갑'을 안나 크로프트에게서 얻어냈다.
김독자는 김남운에게 두 명을 태울 수 있는지 물었다.
허공에서 바라보던 일행들에게 거신병이 빠르게 다가왔다.
플루토에서 튀어나온 김독자가 일대의 성좌와 화신들을 일별했다. 성화 봉송을 하겠다고 말하면서.
김독자는 12신좌와 수르야의 도움 없이 성화를 만들겠다고 설명했다. 뒤를 돌아보자 [강철화]를 발동한 이현성을 [지옥 염화]와 함께 정희원이 끌어안고 있었다.
이현성이 불길에 충분히 달구어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했기 때문에, 김독자는 거신병의 어깨에 걸터앉아 일행들에게 몇 가지 지침을 일러주었다.
마침내 '성화'의 예열이 끝난 '강철검제'가 플루토의 손에 쥐어졌다.
[거대 설화, '마계의 봄'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김독자 컴퍼니>의 모든 담화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옥의 염화를 품은 강철의 검이 드높은 창공을 향해 치솟았다.」
그들이 쌓아온 역사가 하나둘 '성화'의 불길에 모이고 있었다.
포세이돈은 그들을 바라보다 파도를 방벽처럼 둘러 허공을 덮어버렸다.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이 방벽 하나를, <김독자 컴퍼니>가 전력을 다해도 뚫을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마침 그들에게는 조력자가 있었다.
[거대 설화, '마계의 봄'이 이야기가 확장됩니다.]
['무대화'가 발생합니다!]
「그리하여 환하게 빛나는 태양이 그들의 길을 밝혔으니」
한 때는 적이던 그 열차가 이제 그들을 태우기 위해 창공을 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열차가 파도와 충돌하며 전진해도, 파도의 벽은 여전히 두꺼웠다.
「또 다른 종막을 꿈꾸는 여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니」
한수영이 푼 붕대에서 피어난 [흑염]이 용의 형상을 이루며 파도를 뜯으며 전진했다.
「상처받은 검귀가 자신의 인연을 지키기 위해 검을 들었다」
이지혜가 검집을 치켜들자 유령 함대가 흑염룡이 만든 통로를 향해 포결을 개시했다. 그리고 플루토가 돌진했다. 양손으로 강철검제를 쥔 채, 그리고 그 안에서 [지옥염화]를 공급하는 정희원을 보호한 채로.
「지옥에서 돌아온 강철의 거신이 검을 휘두르니」
「멸악과 강철의 염화가 불타올랐다」
[지옥염화]로 불씨를 피우고, 모든 일행의 설화로 불을 키운 검.
성화의 불꽃에 수많은 파도의 벽이 일제히 기화하고 있었다.
무엇으로도 뚫을 수 없을 것 같던 방벽이 깨져나갔다.
찰나의 사이, 포세이돈이 던진 트리아이나의 창극이 하필 김독자가 타고 있던 자리를 스쳤다. 그 탓에 플루토가 움직이지 못했고, 그는 피를 토했다.
김독자는 유중혁을 불렀고, 그가 달려나갔다.
테세우스까지 조금을 앞두고 포세이돈의 격이 유중혁을 향해 쇄도했다. 무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김독자는 [전지적 독자 시점]을 사용했다.
그러더니 '1인칭 주인공 시점'이 발동되었다.
김독자는 머릿속에서 멸살법의 페이지를 넘겼다.
[설화, '영원불멸의 지옥도'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머릿속이 엉망이 되고 충혈된 두 눈이 아파와도 김독자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넘겼다. 그리하여 넘길 수 있는 최대의 페이지에 도달했다.
363회차의 유중혁. 비록 포세이돈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강하다. 왜냐하면 362회차의 유중혁은 포세이돈과 처음으로 맞서 싸운 유중혁이니까.
362회차의 유중혁이 3회차의 유중혁을 움직였다.
유중혁의 [파천붕권]이 최후의 결계를 부수고 테세우스의 화신체를 꿰뚫었다. 그러나 지금 유중혁은 3회차의 몸이기에, 포세이돈의 결계를 부수고 테세우스의 화신체를 멸하기에는 부족했다.
그리고 그 부족함을 메워줄 아이템.
안나 크로프트에게서 구매한 '리코메데스 왕의 가죽 장갑'.
리코메데스 왕은 신화 속에서 테세우스의 살해자로 알려진 인물.
성유물을 확인한 테세우스의 안색이 변했다. 그럼에도 그는 마치 죽여달라 간청하듯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유중혁의 [파천붕권]이 다시 작렬하며 테세우스의 화신체가 소멸했다. 마지막 순간, 테세우스의 표정에는 안도의 미소가 스쳤다.
김독자는 피를 토하며 다시 자신의 몸으로 돌아왔다.
망가진 플루토의 내부. 소환 시간이 끝는 플루토가 <명계>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포세이돈이 폭주하고 있었다. 쏟아진 포세이돈의 격 일부가 무방비 상태의 유중혁을 향해 쇄도했다. 하데스가 유중혁을 구했고, 급류에 휩쓸린 김독자를 한수영이 구했다.
그러나 아직도 포세이돈은 돌아가지 않고 분노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김독자와 하데스는 나서지 않고, 동시에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커다란 벼락이 떨어지며 포세이돈이 퇴장당했다. 그리고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도 잠시 후 퇴장했다. 제우스가 나타난 것이다. 대성운 <올림포스>에서 유일하게 '마지막 시나리오'에 도달한 존재. 그는 잠시 12신좌들을 바라보다 사라졌다.
어느새 시나리오가 종료되었다. 파천검성과 거신들이 커다란 몸을 배처럼 띄워 일행들을 태웠다. 김독자가 정말 오랫동안 준비한 계획이었다. 그랬기에 김독자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 수 있었다.
[새로운 '거대 설화'를 획득했습니다!]
[새로운 설화 3개를 추가로 획득했습니다!]
[당신의 두 번째 거대 설화가 '승'을 완성했습니다!]
[히든 시나리오 - '단 하나의 설화'의 두 번째 조건이 완수됐습니다!]
기다리던 '승'이 자신을 맞이할 것이고.
[성운, <김독자 컴퍼니>의 명성이 <스타 스트림>에 널리 알려집니다.]
자신들의 승리를 축하하는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 퍼질 것이다.
채널의 4인방이 축하할 것이고, '마지막 시나리오'의 존재들이 자신을 주목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그 이야기를 만든 사람들은 자신을 찾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그는 그곳에 없을 것이다.
[Ep.64 길이 아닌 길]
거신들의 리더인 브리아레오스와 12신좌의 임시 대표 디오니소스는 극적인 타협에 성공했다. 더 이상 싸움을 반복하지 않기로.
[<스타 스트림>이 '신화 붕괴'를 인정합니다.]
[60번 시나리오에 새로운 설화가 피어납니다.]
그곳에 김독자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무슨 방법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일행들은 1시간 동안 시나리오 지역을 이탈할 수 없었으니까.[123]
김독자가 처음 <기간토마키아>를 전복할 계획를 세울 무렵, 여러 성좌에게 연락했다. 대부분 참가는 어려워했다. 그런데 개중 한 명, 특이한 제안을 한 존재가 있었다. 그 혼자만 도망칠 길을 열어즐 수는 있다고.
그 제안을 한 것이 지금 김독자가 타고 있는 차를 운전하고 있는 양산형 제작자였다. 양산형 제작자는 <김독자 컴퍼니>와 계약하고 싶다고 제안해왔다. 신제품 광고를 맡기겠다고. 김독자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거대 설화, '신화를 삼킨 성화'가 당신의 설맥을 타고 흐릅니다!]
김독자는 이 설화를 앞으로 싸우게 될 거대 성운들에 대한 카운터 역할로 사용할 상각이었다.
어느새 새카만 차원로 건너편에서 세 개의 포털이 나타났다.
양산형 제작자가 설명했다. 하나는 지구로 가는 길, 하나는 양산형 제작자의 '별자리의 맥락'으로 통하는 길, 그리고 마지막은 '길처럼 보이는 길'. 마지막 길은 막힌 길이라고.
김독자가 탄 페라르기니가 포털을 지나쳤다.
그리고 차원의 정경이 바뀌었다. 김독자는 어느새 지상에 착륙해 있었다.
김독자는 서울에 도착하자마다 병동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만난 키리오스는 자신이 혈마와 천마를 모두 죽여싿고 담담히 이야기했다.
멀리서 아일렌이 달려오고 있었다. 멀리서 두 개의 병실이 눈에 들어왔다. 유상아와 이수경의 병실. 두 사람다 상태가 심각하다는 말을 듣고 김독자는 '소마'와 '넥타르'를 아일렌에게 건넸다.
김독자는 잠시 정신을 잃었고, 정신을 차렸을 때엔 아일렌이 눈잎에 서 있었다.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두 사람의 병세가 너무 빨리 악화돼서 한 사람만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독자는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동원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두 사람을 다 살릴 방법을 찾을 수는 없었다.
김독자는 [제4의 벽]을 바라보았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는 천천히 그 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일행들은 그로부터 한 시간 후에 지구로 돌아왔다.
일행들은 의원들을 통해 모든 사정을 전해 들었다.
지금은 이수경이 처치에 들어간 상태라고. 김독자도 수술실에 있고.
아일렌이 성유액으로 설화를 이어붙였으나, '테마'가 손상되어 있었다. 모든 영혼에 존재하는, 그 영혼의 본질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이야기. '테마'는 그 영혼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수복해야 했다.
아일렌이 붓을 주었고, 김독자는 붓을 움직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붓을 멈췄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더 알지 못했다.
그래서 더 이상 붓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수경의 설화들이 떠돌았다.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더니 방랑자들과 일행이 나타나 마저 설화 파편을 이어 붙였다. 모두의 시선 속에 이수경이 완성되고 있었다.
김독자가 병실 밖으로 나오니 일행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유상아의 병실로 향했고, 믿고 싶지 않은 진실과 마주했다.
이대로면 유상아는 반드시 죽을 터였다. 다른 방법은 없으니까.
김독자는 일행들을 내보내고 유상아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다시 살아나고 싶다고 말했고, 그는 [제4의 벽]에게 유상아의 설화들을 먹으라고 말했다.
과거에 이수경이 [제4의 벽]에게 먹혔다가 뱉어졌을때, 손상되어 있었던 영혼 일부가 수복되어 있었다.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모험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제4의 벽]은 김독자의 의도를 알고는 거부했다.
김독자는 눈 앞의 벽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벽을 부수기 위해서. [제4의 벽]은 실체가 아니다. 김독자가 구현한 '스킬'일 뿐.
김독자가 '벽' 한곳에 시선을 집중하자 [제4의 벽]의 귀퉁이에 작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스킬을 완전히 끄는 것만 생각했는데, 만약 스킬의 '일부'만 끌 수 있다면 어떨까.
급솓도로 갈라지는 벽과 함께 일순간 아주 작은 틈새가 발생했다.
곧이어 틈새는 주변 설화를 빨아들이기 시작했고, 유상아의 설화가 벽 너머로 빨려들어갔다.
유상아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시 존재를 발견했다. 그리고 니르바나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며 깨어났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도서관의 정경이 보였다.
장서를 향해 다가가던 유상아의 손끝이 멈칫했다.
김독자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도서관의 힘이 유상아의 영혼을 수복시키고 있었다.
김독자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러면서 김독자는 니르바나에게 유상아를 사서로 만들지 않겠다며 다시 꺼낼거라고 말했다.
니르바나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불사의 특성'은 단둘뿐이라는 것을. 하나는 회귀자 유중혁, 그리고 다른 하나는 니르바나 뫼비우스. 김독자는 니르바나에게 '만다라의 수호자'가 있는 곳을 물었다.
최초의 환생자.
이제 이 이야기의 세 번째 주인공을 만날 때가 왔다.
[Ep.65 선과 악]
'만다라의 수호자'는 신비한 성좌다. 채널에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일정한 주기를 두고 화신을 선택해 '환생자' 특성을 부여한다. 니르바나 또한 그렇게 태어난 환생자였고.
니르바나는 그가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미 예상하고 있는 곳이 있는 것 아니냐며 김독자에게 물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김독자와 니르바나가 대화를 하던 중, 갑자기 김독자의 몸이 도서관 밖으로 퇴출당했다.
김독자가 정신을 차렸을때, 그는 개연성 폭풍에 휘말려 있었다.
움직일 수 있으려면 이틀은 지나야 하는 상태. 그래도 그나마 이 정도 피해에서 그친 것이 지금으로썬 기적이었다.
[제4의 벽]이 빠르게 자신을 수복하고 있어서, 다행히 김독자의 정보에 관한 피해는 최소화한 모양이었다. 물론 유상아를 이대로 방치할 수도 없지만.
가만히 있어야하는 것에 지루함을 느끼던 그때, [제4의 벽]이 말을 걸어왔다. 앞으로 그러지 말라고. 김독자는 [제4의 벽]을 달래주었다. [제4의 벽]은 '최후의 벽'을 모아달라고 요구했고.
유중혁 앞에 아스모데우스가 나타나 '멸살법'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유중혁은 곁에 있던 한수영도 뿌리치고 [주작신보]를 빌동해 사라졌다.
유상아는 일에 적응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제4의 벽]은 그녀에게 제법 흥미가 있어 보였고, 이 틈을 타 대화를 나누었다. [제4의 벽]은 김독자가 부순 구멍을 책으로 막고 있는 것을 보여주었다. 유상아는 구멍을 들여다보다가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누군가의 목소리로 인해 김독자는 깨어났다. 주변을 살펴보니 느낌이 이상했다. 공단 바깥이 시끄러웠고, 사람들이 <김독자 컴퍼니>에게 항의하고 있었다. <김독자 컴퍼니>가 자본 독점에 시나리오 선점을 하고 있다고.
시나리오가 나타나 두 그룹이 싸우게 되었다. 그들의 리더는 세 명의 마왕들.[124] 김독자는 그 마왕들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마왕들이 전부 시나리오에서 퇴장했다. 그런데 '거대 설화'가 김독다를 노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강력한 설화는 주인을 선택하고, 막대한 영향을 끼치며, 최후에는 주인 그 자체가 되려 한다.
김독자는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약속했다. 이것이 그들에게 가짜 희망이 될 지언정 그들에겐 가짜 희망이 필요했다.
다음 순간, 아스모데우스가 나타나 '선악의 이중주'에 참가하라고 전했다.
선악의 이중주. 이 시나리오가 시작되었다는 것의 의미는 간단했다. 이 세계선의 멸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아마 이 멸망의 척 희생양은, <에덴>이 될 것이다.
일단 김독자는 아스모데우스를 제쳐두고 일행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일행은 아직 유상아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유상아를 살리려면 '섬'이라 불리는 곳에 가야한다는 사실도 설명했고.
유상아가 [제4의 벽]을 넘어 김독자에게 말을 걸었다. 자신은 괜찮으니 지금은 '선악의 이중주'에 참석하라고. 다음 순간, 일행들의 몸이 빛살에 휩싸이며 시나리오로 강제 전송 되었다.
'선악의 이중주'는 말 그대로 선과 악의 연회. 그간 있었던 시나리오의 '선악'을 판별하는 연회였다. 이 '판별'은 이떤 성좌에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선악의 판별 결과에 따라 다음 분기에 이어질 절대선과 절대악의 위상이 달라지기 때문.
김독자는 일행들과 성채의 도개교의 앞에 서 있었다. 무수한 인파가 그곳에 있었고, 일행들도 긴장했다. 그건 김독자도 마찬가지였지만, 일행들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준비를 대강 마치고 도개교를 걸어갔다.
일행의 입장과 함께, 그곳의 모든 존재가 김독자에게 집중되었다.
일행들은 우리엘의 안내에 따라 유중혁이 있는 대천사의 자리로 이동하고, 김독자는 마왕들의 자리로 이동했다.
첫 번째 순서는 특별 게스트 공연을 보는 것.
게스트는 디오니소스와 아프로디테. 김독자는 그제서야 디오니소스가 <기간토마키아>가 끝나고 했던, 당분간 <올림포스>가 고생 좀 하겠다던 말을 이해했다. 물론 둘은 많은 코인을 받을테지만, 얼마를 받든 수치스럽기는 마찬가지일 터였다.
공연이 끝나고,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는 '베스트 케미상'.
신유승과 이길영이 받았다. 신악상은 <황제>의 거대 설화,「치우의 후예」. 신선상은 <파피루스>의 거대 설화, 「스핑크스의 수호자」. 최우수상은 안나 크로프트의 '차라투스트라'였다.
어느새 남은 것은 대상뿐. 김독자는 뭔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 연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상. 대상이 선과 악 중 어떤 설화인지에 따라 선과 악의 권력 위상도 결정되는 것이다.
마침내 도깨비의 입술이 열리며 대상이 발표되었고, 김독자는 햔실감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번 시즌의 대상 수상작은 성운 <김독자 컴퍼니>의 거대 설화,「신화를 삼킨 성화」입니다!]
[Ep.66 선악의 저편]
대상을 받았지만, 김독자는 불안한 마음이 앞섰다.
불안의 정체는 곧 밝혀졌다. 이 거대 설화는 아직 선악이 판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 성좌들이 싸우기 시작했다. 그들의 싸움에, 김독자와 일행들이 쌓아온 역사가 난도질당하고 있었다. 김독자가 성좌들을 막았다.
그들이 싸움을 그만두었지만, 선악을 판별하라고 김독자에게 요구해왔다. 김독자는 고민하다 결정을 내렸다. 그가 입을 열었을때, 그보다 먼저 선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중혁이 말하고 있었다.
유중혁이 가진 22.8퍼센트의 지분으로 선으로 기울었고, 반론이 없으면 선으로 확정된다는 메시지에, 김독자는 악이라 입을 열었다. 김독자의 지분은 33.8퍼센트. 악의 방향으로 기울었다.
김독자는 유중혁에게 이곳에서 선악이 결정되면 안된다고 '한낮의 밀회'를 날렸지만, 그는 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유중혁이 움직였다. 유중혁이 칼을 뽑았고, 반사적으로 든 '부러지지 않는 신념'과 '흑천마도'가 충돌했다.
김독자는 어떻게든 유중혁을 설득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유중혁은 김독자를 노려보며 물었다. 그것은 '멸살법'이란 책에 나오는 정보냐고. 김독자가 흔들렸고, 유중혁은 대답을 재촉하며 초월자의 격을 개방했다.
일행들이 그들사이에 끼어드려고 했다. 그러나 선악을 분별하지 않으면 끼어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길영이 가장 먼저 악을 선택했다. 김독자는 재빨리 모두 선을 선택하라고 소리쳤다.
일행이 한 명씩 선택했고, 이제 남은 사람은 이지혜뿐. 선과 악의 차이는 선이 3.1퍼센트 높고, 이지혜가 가진 지분은 5.8퍼센트였다. 양쪽의 평형을 맞추고 싶어도 현재 지분 증여가 불가능한 상황. 김독자는 이지혜에게 선을 선택하라고 소리쳤다. 이지혜는 곧바로 선택했다.
김독자는 심연의 흑염룡을 불렀다. 그때, 홀 천장에 금이 가며 폭음이 터졌다. 유중혁은 천장 무더기에 깔려버렸다. 흙먼지 속에서 유중혁을 짓밟고 올라선 한수영이 웃었다.
시스템은 '판결을 진행 중인 담화자끼리는 지분 증여가 불가능하다'고 말했었다. 그 말은 아직 참가하지 않은 담화자는 지분 증여가 가능하다는 뜻. 한수영은 정확히 8.9퍼센트의 지분을 가지고 나타났다. 그리고 악을 선택했다.
선악의 저울이 완전한 평형을 이루었고, 그에 반발한 마왕과 대천사가 대치했다. 기다렸다는 듯 허공에 도깨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도깨비 바람. 대도깨비는 선악의 위상을 가릴 '성마대전'을 여는 것을 제안했다. 무대는 직접 정해보라면서.
휴회로 주어진 막간 동안, 성좌와 마왕들은 제각기 새로운 '성마대전' 무대를 어디로 할지 떠들어댔다. 다행히 도깨비의 개입 덕분에 김독자 일행에 쏟아지던 적대적 시선은 한결 가신 듯 보였다.
김독자와 한수영은 짧은 대화를 나누었고, 두 사람은 최상위권 성좌는 대부분 '멸살법'을 알게 되었을 것이라 결론 지었다.
그래도 일단 중요한 것은 '성마대전'. 김독자는 반드시 참가해야 한다고 한수영에게 말했다.[125] 문제는 개전장소.
휴회가 끝나자 모든 성좌들이 자신들이 유리한 곳을 무대로 삼으려 했다. 그리고 김독자 역시 무대로 삼고 싶은 장소가 있었고.
그때, 머릿속으로 유상아의 메시지가 들려왔다. 벽 안에서 재미있는 걸 찾았다고. 잠시후, 머릿속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홀에 어수선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대도깨비 바람이 말하길, '계시'가 내려왔다고. 무대가 정해졌다는 대도깨비의 말에 김독자는 멍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리고 별안간 머릿속에서 톨증이 일더니 메시지가 떠올랐다.
[<스타 스트림>의 개연성이 당신을 의심합니다!]
김독자는 무시무시한 시선이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을 느꼈다. 시선은 잠시간 계속되다가 이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스타 스트림>이 당신에게서 시선을 돌립니다.]
김독자는 조심스레 유상아를 불렀다. 유상아는 성좌들이 미래를 읽은 방법을 아는지 물었다. 물론 알고 있었다. 성좌들이 미래를 읽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헤르메스 시스템]처럼 데이터를 모아 미래를 예측하는 방식, 다른 하나는 모이라이 세 자매나 <에덴>, 그리고 일부 마왕처럼 신묘한 '계시'를 받는 방식이다. 잠시 말을 찯던 유상아가 웃으며 답했다. 자신이 신이 된 것 같다고.
그 시각, 관리국의 비형은 '선악의 이중주'의 시나리오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대도깨비가 '제2차 성마대전'의 무대를 '환생자들의 섬'으로 선언했다. 스타 스트림의 의지가 움직여 만든 결과였다.
계시가 들어왔다며 새로운 패널에 어떤 화면이 준비되고 있었다. 비형은 화면을 보기 전에도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계시의 판'. 오직 '계시' 관련 능력을 잊수한 성좌나 마왕만 볼 수 있다는 미지의 판. 그것에 대해선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었다.
스티 스트림의 성좌들이 '계시의 판'을 통해 미래를 읽어내는 방식은 간명했다. 가끔 '계시의 판'에 구멍이 생기고, 그 구멍을 통해 미래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설화 파편이 떨어진다. 이것을 알아챈 성좌들과 마왕들은 이 단어를 조합해 미래를 예언하거나 운수를 읽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성흔이 바로 '계시'.
본래 '계시의 판'은 불확실하고 불분명한 미래를 보여주어 시나리오 개연성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지 않지만, 몇 년 전부터 이 '판'에 균열이 발생하며 온전한 미래 정보가 넘어오기도 했다. 심지어 며칠 전에는 구멍까지 뚫리며 넘어와서는 안되는 정보가 넘어왔다.
뚫린 구멍 사이로 보인 문자열.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
이 '계시'가 풀린 후로, 오래된 종말론이 퍼졌고 스타 스트림의 끝을 예고하는 낭설이 오갔다.
잠시 후, 화면에 '계시의 판'이 나타났다. 그리고 판 중심에 돋아난 아두 작은 구멍이 보였다. 다음 순간, 그 구멍 안쪽에서 누군가의 입이 나타났다. 관리국이 대혼란에 빠진 사이, 입은 계속해서 떠들었다. 계시을 주겠다고. 그리고 잠시후, 구멍 사이로 설화 파편이 넘어왔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 그 세 번째.」
「그 방법은 '환생자의 섬'에 있다.」
설화 파편이 허공에 흩어지자 목소리가 작별을 고하더니 구멍이 닫히며 목소리의 주인도 사라졌다. 충격에 관라국 도깨비 중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곳곳에서 울리는 벨. 성좌들의 문의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선악의 이중주'가 끝난 뒤, 일행은 곧장 지구로 귀환했다.
일행들은 들뜬 모습이었다. 정희원과 이지혜는 받은 상패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126] 게다가 500만 코인 교환권까지.
일행들은 각자의 이유로 기분이 좋아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모두 김독자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김독자와 유중혁이 왜 싸웠는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먼저 묻지 않았다. 일행들 나름의 배려였다.
김독다는 유상아에게 설명을 들었다. [제4의 벽]에 난 구멍으로 멸살법 내용을 흘려보냈다고. 그리고 성좌들은 그것을 '계시'로 받아들인 것이다.
'제4의 벽'은 본래 '무대 바깥'을 의미하는 말이다. 무대 바깥. 그것은 김독자가 살던 '현실'이었다. 멸살법의 내용은 현실에서 만들어 졌으니, 어찌보면 이 벽 안쪽에 멸살법이 있는 것은 당연했다. 즉 '계시'란 현실에서 소설 속으로 흘러온 '스포일러'인 셈이었다.
김독자는 유상아의 설명을 듣고서야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갑자기 성좌들과 마왕들이 멸살법에 관해 알게 된 것도, 원작에 없던 전개가 펼쳐진 것도, 모두 [제4의 벽]에 뚫린 구멍 사이로 새어나간 것이었다.
곁에서 걷던 한수영이 '한낮의 밀회'를 걸어왔다. 김독자는 한수영에게 말했다. 이제 일행에게도 말할 때가 왔다고. 진짜 동료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일행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공장에 도착했고, 각자 휴식을 취했다.
그날 저녁, 김독자는 쓰러진 유중혁을 제외하고 <김독자 컴퍼니> 일행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비유를 통햐 이미 채널을 차단하고 다른 성좌가 듣지 못하고록 두꺼운 방벽까지 깔고.
김독자는 그들에게 이야기 했다. 어느날 자신이 읽던 소설이 현실이 되었고, 그곳에서 자신이 일행들을 만나게 되었던 이야기를. 모든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거짓말을 하지도 않았다.
만나기 전부터 일행들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 혼자만 정보를 독점한 채 일행들을 기만했던 것. 김독자는 그 모든 이야기를 토해냈다.
김독자의 이야기가 끝났고, 일행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김독자는 고개 숙여 사과했다. 이번만큼은, 일행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도 [전지적 독자 시점]을 사용하지 않았다. 자신의 힘으로 부딪치고 싶었다.
서서히 고개를 들었을 때 이지혜와 눈이 마주쳤다. 일렁이는 눈동자를 본 순간, 불현듯 깨달았다. 자신은 이미 저 눈동자를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처음으로 유중혁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지혜의 눈과 정확히 똑같았으니까.
이미 원작을 읽었기에, 이어져 나올 말을 예상할 수 있었다.
「"당신한테 우린 대체 뭐였는데?"」
그러나 이지혜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울면서 물었다. 왜 자신들을 위해 몇 번이나 목숨을 던진거냐고. 그들이 그저 '등장인물'이라면 왜 자신들을 위해 몇 번이고 죽었던 거냐고. 김독자가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그렇기에, 대답할 수 없었다.
이지혜는 두 눈을 닦으며 김독자를 지나갔다. 한수영이 충격을 받은 듯한 이설화의 등을 토닥여주며 김독자를 내보냈다.
김독자는 어머니의 병실로 향했다. 그녀는 잠시 김독자의 이야기를 듣더니 병실 문 앞에 누군가 찾아왔다고 말해주었다. 뒤돌아보니 정희원이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잠시 병동 복도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소설속에 나오지 않았던 자신이 여기까지 온 것에 그에게 고마워했다. 그리고 '소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눈치챘다.
그 후 이틀 동안 김독자는 종일 유중혁의 병실에 있었다.
유중혁은 여전히 깨어나지 않았다. 김독자는 무심코 입을 열었다. 뭔가 이야기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의 기억을 떠올리며 혼자 이야기하다가 졸음이 밀려왔다.
꿈속에서, 김독자는 멸살법에서 유중혁이 안나 크로프트에게 배신당하고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들었다. 자신을 향해 살기를 뿜어내며 서있는 유중혁에게.
「"나는 너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김독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깨어난 김독자는 한참을 헐떡인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병실 어디에도 유중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성마대전'까지 남은 시간은 이십육 일.
그날, 유중혁은 <김독자 컴퍼니>를 떠났다.
2.14. #80 - 환생자들의 섬
Episode 67. 시나리오의 망자 ~ Episode 72. 세 가지 방법 |
2.15. #80 - 성마대전, #84 - 성마결전
Episode 73.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 ~ Episode 76. 묵시록 |
[Ep.73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
눈부신 헤드라이트에 신유승은 눈을 떴다. 떠다니던 드론 한 기사 신유승의 얼굴 근처에서 돌더니 멀어져갔다.
현기증에 비틀거리며 일어나보니 근처에서 일어난 이길영과 이지혜가 보였다. 서로 확인하며 대화를 나누던 세 사람은 동시에 약속이나 한 듯 반사적으로 담벼락에 붙었다. 그리고 간발의 차이로 날아다니던 드론이 방금까지 그들이 서있던 골목을 비추었다.
시스템 메시지에 따르면 그들이 있는 곳은 넥스트 시티.
이곳의 서브 시나리오를 해결해야 성마대전에 참가할 수 있다.
그들이 숨어 있던 담은 생각보다 고지대에 있어서, 도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밤거리를 밝히는 광전자. 푸른 빛을 내뿜는 안드로이드들이 거리를 배회하는 모습. 어떤 세계관인지 단번에 알 수 있는 광경이었다.[127]
도시를 순찰하는 가드들이 인근 지역을 배회하는 것이 보였다. 그들을 자세히 관찰하자, 정보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지금의 그들보다 4배 강한 상대. 로봇들이 이렇게 강한 이유는 이 세계관에서 세 사람이 약해진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눈치챈건지 갑자기 가드들이 세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
하늘에서는 드론도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의 설화를 탐지해서.
이지혜가 장도를 꺼내들었지만, 가드들이 든 광선검에 그대로 팔이 베이고 말았다. 이지혜가 뒷걸음질 쳤지만, 검이 더 빠르게 다가왔다. 신유승은 이지혜를 밀치며 끼어들었다.
신유승의 정수리로 내려꽂히는 광선검. 하지만 스파크와 함께 가드의 광선검이 코앞에서 멈췄다.
[이 시나리오는 18세 이용가입니다.]
[해당 세계관은 심의에 따라 아동 및 청소년 유닛에 대한 살해 행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이런 세계관이라면, 아마 그들은 이 시나리오가 끝날 때 김독자가 놀랄만큼 강해질 것이었다.
포털너머로 그들을 기다리는 성좌들이 보였다. 유중혁, 한수영, 이현성, 정희원, 그리고 김독자가 뭉쳐섰다.
곧이어 메시지가 떠오르며 <김독자 컴퍼니>가 성마대전에 참가했음이 곳곳에 퍼졌다.
고려제일검 척준경이 일행에게로 다가왔다. 그들의 설화에서 깊이가 느꺼진다면서. 실제로 카이제닉스 제도를 클리어하고 <김독자 컴퍼니>의 설화들은 변화를 겪었다.
'카이제닉스 제도' 출신 환생자들이 성좌들의 조소를 보고는 당황했다. 그들을 보호하는 것은 한수영.[128]
성마대전은 선과 악 중 편을 골라서 진행되는 시나리오.
아직 중립을 지키는 성좌들도 많았다.[129]
한참 고민하던 척준경이 김독자에게 입을 열었다. 김독자를 만나고 싶어 하는 성좌가 있다고. <홍익>의 고위급 성좌.
잠시 후, 성좌들의 대열이 갈라지며 새하얀 섭선을 쥔 신선이 김독자를 향해 걸어왔다. 천제의 풍신, 풍백. 그는 <김독자 컴퍼니>를 <홍익>의 휘하에 들어오게 하려 했지만, 김독자가 단칼에 거절한다.
분노해 말문이 막힌 풍백을 대신해 그의 뒤에서 거대 설화, '설화목 산단수'가 <김독자 컴퍼니>를 향해 뿌리를 뻗어왔다. 하지만, 산단수는 김독자가 아는 것보다 조그만 소체. 양분이 부족해 형제를 유지하지 못하는 거대 설화의 모습이 보였다. 이것이 지금의 <홍익>이 가진 전부였다.
<김독자 컴퍼니>의 거대 설화들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거대 설화, '마계의 봄'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거대 설화, '신화를 삼킨 성화'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심지어 그들 것이 아닌 거대 설화까지도.
[거대 설화, '카이제닉스 제도'가 못마땅한 듯 이야기를 거듭니다.]
날아들던 거목의 뿌리가 부서져갔다. 뿌리를 거둔 산단수의 형체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경악한 풍백은 뒷걸음질 쳤고.
기다렸다는 듯 나타난 비유와 함께 채널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수히 떠오르는 성좌들의 간접 메시지. 김독자는 성좌들에게 선언했다. 그들은 자신의 길을 스스로 정하겠다고.
풍백은 한참이나 김독자를 바라보다 섭신을 접으며 사라졌다.
척준경은 앞으로 지켜보겠다며 돌아섰고.
드디어 '성마대전'의 시나리오 메시지가 떠올랐다.
절대선이나 절대악 진영 중 하나를 선택해 '성마대전'에서 승리하시오. 승리조건은 '선악 수치'를 먼저 100으로 올리는 것. 특이한 것은 이번 시나리오의 제한 시간은 '혼돈 수치'의 영향을 받는 다는 점이다.
헌재 현황은 절대선과 절대악이 각각 56으로 같고, 혼돈수치는 51. 멀리서 두 개의 선악이 부딪치는 격전지가 보였다. '성마대전'의 전장 중 하나인 113번 국지전이 개막한 것이다. 그리고 그 최전선에 서있는 성좌는 다름아닌 우리엘이었다.
우리엘은 급하게 진체의 절반만 소환해 참전한 상태인데다 갑자기 이번 국지전에 참가한 마왕 수가 늘어나며 우리엘은 고전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공격이 그녀를 도와주었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 정희원과 김독자였다.
[마왕, '구원의 마왕'이 '마왕승격전'에서 승리했습니다!]
[마왕, '구원의 마왕'이 '50번째 마계의 왕'이 됐습니다!]
[마왕, '구원의 마왕'이 자신의 소속 진영을 결정했습이다.]
힘껏 팔을 뻗은 우리엘이 정희원과 김독자를 부둥켜안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김독자의 지적에 정신을 차린 우리엘이 마왕군을 바라보았다.
그곳의 마왕들은 김독자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성마대전' 중 마왕승격전은 가능한 일이었기에 김독자는 뻔뻔하게 넘겼다. 실제로 김독자가 한 일은 1차 성마대전에서 마왕 아스모데우스가 저지른 일과 같았다.[130]
김독자의 마왕의 격과 전인화가 겹치며 김독자의 격이 급격히 증가했다. 마왕들이 당황했고, 우리엘은 의기양양해졌다. 그러나, 김독자는 서글픈 표정으로 우리엘에개 물러나라고 말했다.
[마왕, '구원의 마왕'이 선택한 진영은 악입니다.]
이 전쟁은 '성마대전'이 아니라 <김독자 컴퍼니>의 싸움이 되어야 했다. 유중혁의 이 말을 한수영은 바로 이해했다.
두 사람은 죽은 환상자들을 보다가 자신들의 진영을 선택했다.
[화신 '한수영'이 선택한 진영은 악입니다.]
[화신 '유중혁'이 선택한 진영은 선입니다.]
메타트론은 막사 안에서 다른 주천사들에게 현황 보고를 듣고 있었다. 현재까지 전쟁은 무난히 흘러가고 있었다. 이번 '성마대전' 한정으로 특수하게 붙은 제약을 제외한다면.
혼돈 수치. 이것이 무엇인지는 도깨비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100이 넘어가면 안 된다고 말해주었을 뿐.
메타트론이 <김독자 컴퍼니>를 해치우자는 미카엘을 막고 있던 그때, 메시지가 들려왔다.
['성마대전'의 113번 국지전이 강제 종료됐습니다.]
처음 보는 '강제 종료' 메시지에 뒤이어 메시지가 더 떠올랐다.
[혼돈 수치가 5만큼 증가했습니다.]
[현재 혼돈 수치는 56입니다.]
[경고합니다! 혼돈 수치가 55를 넘었습니다!]
(...)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에서 무언가가 몸을 뒤틉니다.]
[모든 것의 종말을 결정하는 묵시록의 재앙이 태동하기 시작합니다.]
[Ep.74 성마대전]
현재 작성중 입니다.
2.16. #89 - 묵시록의 최후룡
Episode 77. 최후룡 ~ Episode 79. 은밀한 모략가 |
2.17. #94 - 서유기 리메이크, #95 - 서유기의 주인
Episode 80. 최강의 우리 편 ~ Episode 87. 강철의 심장 |
2.18. #98 - 후보 결정전
Episode 88. 신화급 성좌 ~ Episode 91. 단 하나의 설화 |
2.19. #99 - 탈주
Episode 92. 마지막 시나리오 ~ Episode 97. 볼 수 없는 별 |
2.20. 최종장
Episode 98. 지켜야할 것은 모두 지켰나 ~ Episode 99. 가장 오래된 꿈 |
2.21. 에필로그
Epilogue 1. 제로의 세계 ~ Epilogue 5. 영원과 종장 |
「
이것은,
단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한 이야기다.」
[Ep.1 제로의 세계]
김독자는 창가에 기댄 채, 창 너머로 보이는 은하의 어두운 풍광을 하염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살았던 지구는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멀어졌다. 물론, 그곳에 김독자는 있었다.
[아바타] 스킬로 만든 49퍼센트의 김독자가.
아바타를 50퍼센트로 만들지 않은 이유, 김독자가 2퍼센트 높은 이유. 그 2퍼센트는 김독자가 아바타보다 일행들을 더 잘 기억하고 있다는 증명이자, 그들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맹세였다.
김독자는 [제4의 벽]과 대화를 하다가 깨달았다.
멸살법과 관계된 모든 세계선은 '가장 오래된 꿈'의 꿈이란 것을.
지하철의 모든 창문이 일제히 화면으로 뒤바뀌며 다른 세계선에서 펼쳐진 무수한 시나리오가 그곳에 나타났다. 김독자는 그제야 자신이 '가장 오래된 꿈'이 되었음을 실감했다.
이 세계의 모든 '이야기'는 독자가 읽기에 비로소 존재한다.
김독자가 보지 않으면, 세계는 멈춘다. 김독자는 두려웠지만, 차라리 아무것보 보지 못하는 것보단 볼 수 있는 쪽이 나았다. 김독자는 모든 세계선을 관음할 수 있는 궁극의 성좌가 되었으니까[131]
김독자는 자신이 너무도 그리워 하는 세계를 보았다. 보고 싶으나 볼 수 없었다. 보고 나면 반드시 돌아가고 싶어질 테니까.
[제4의 벽]은 이미 김독자의 무의식이 보고 있으니 무리해서 볼 필요 없다고 했다. 그러나 김독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저 모든 세계선은 그의 죄업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보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속죄였다. 김독자는 화면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김독자의 몸은 바닥에서 떠올라 있었다. 주변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김독자를 못보고 통과해 지나갔다. 김독자가 있는 곳은 지하철 플랫폼. 현재 시각은 시나리오 시작까지 오 분 남은 상황. 김독자는 다가오는 불광행 열차에 탑승했다.
불광항 3434호 열차, 3707칸. 멍하니 지하철 밖을 바라보는 유중혁이 있었다. 김독자는 자신이 아는 3회차의 기억을 떠올렸다. 상황은 김독자의 기억대로 흘러가는 듯 했다. 유중혁이 타고 있던 칸에 테러범 최한규가 나타났으니까. 그런데 유중혁이 그런 사내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본래 최한규의 폭탄을 빼앗아야 하는데.
오후 7시. 시나리오의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폭탄을 들고 있는 테러범과 가만히 있는 처음보는 멍청한 표정을 짓고있는 유중혁. 김독자는 깨달았다. 이 세계선은 유중혁의 0회차라는 것을.
유중혁은 부모님의 정보를 알아냈다는 흥신소의 소식을 듣고 오랜 만에 밖에 나온 참이었다. 그는 부모에 대한 기억도, 어린 시절 추억도 없이 홀로 존재했다. 유중혁은 지하철 안에서 고민했다. 자신은 누구일까.
유중혁은 소란을 조금 후에 알아챘다. 그리고 이 테러 상황도.
지하철이 암전된 것은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유중혁의 수많은 고민을 허공에서 나타난 덩어리가 없애버렸다. 훗날 자신을 도깨비라 소개할 존재들.
메인 시나리오가 도착했고, 지옥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시나리오를 받은 3707칸이 소란스러워졌다.
최한규가 허리춤에서 망치를 꺼내 사람을 살해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무슨 상황인지 몰라도, 자신이 죽지 않으려면 남을 죽여야 한다는 사실만은 깨달았다.
김독자는 유중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뇌하던 유중혁이 달려가 최한규를 공격했다. 전용 특성 [프로게이머]가 개화하며 최한규의 목을, 유중혁이 든 스패너가 정확히 명중했다. 그러나 최한규는 코인을 체력에 투자해 검붉은 자국이 생길 뿐이었다.
유중혁은 최한규에게 멱살을 붙잡힌 채로, 바닥에 떨어진 수제 폭탄을 발견했다. 그는 스패너를 폭탄을 향해 던졌다.
김독자가 그 장면을 바라보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의문이 폭발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유중혁의 배후성은 어디에 있는가. 어린 시절의 김독자가, 멸살법 0회차를 제대로 상상할 수 있었을까. 유중혁의 0회차에 나타난 배후성은, 대체 누구인가.
폭탄이 터졌고, 비산하는 조각들이 사람들의 몸에 꽂혔다. 파편 조각 중 몇 개가 유중혁을 향해 쇄도했다. 김독자는 개연성을 무시하고 날아드는 파편을 움켜쥐었다.
시나리오 정산과 함께 사람들의 머리가 폭발했다. 그리고 유중혁은 '배후선택' 메시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술과 황홀경의 신, 손톱을 먹는 쥐, 심연의 흑염룡, 구원의 마왕.
유중혁은 심연의 흑염룡이 강해보인다고 생각했고, 구원의 마왕은 거만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유중혁이 결정하고 입을 여는 순간, 김독자가 유중혁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김독자는 한수영이 깨워서 일어났다. 일행들의 모습을 보며 김독자는 오늘이 무슨 날인지 기억해냈다. 시나리오가 끝났으니, <김독자 컴퍼니>가 처음으로 나들이를 가는 날이었다.
한강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유중혁의 요리를 기다리는 동안, 한수영이 말을 걸어왔다. 한수영은 김독자가 멸살법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수영의 단도가 김독자를 향했다.
지난 삼 개월간, 한수영은 기묘한 예감을 느끼고 있었다. 한수영과 유중혁은 시나리오가 끝났음에도 스킬이나 성흔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을 보며 작가 tls123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독자는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답했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독자가 그렇게 말할리 없었다.
그때 한수영은 김독자가 가짜임을 직감했던 것이다.
검을 든 한수영에게서 일행들은 김독자를 지키려고 했다.
한수영은 이 김독자가 아바타일지도 모른다고 하고선 사라져버렸다. 김독자는 최근에 기억이 통째로 사라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일행들에게 이야기했고.
유상아가 한수영을 따라갔다. 유상아는 [제4의 벽]의 장서관에서 보았었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 자신을 절반으로 나눠서 세계를 지킨다는 김독자의 생각을. 하나는 세계를 지켜볼 '독자'가, 다른 하나는 '등장인물'이 되는 것.
한수영도 알고 있었다. 모두 시나리오에서 해방되던 그날에, 여전히 다른 쪽의 김독자는 그 열차에 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진짜인지가 아니라, 그곳에 아직 김독자가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멀리서 일행들이 있는 곳에서 소란이 일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멀쩡하던 김독자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김독자가 쓰러진 지 일주일째. 누구도 갑자기 김독자가 저렇게 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한수영은 유중혁에게 도움을 구하기로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유미아를 따라 공단 서쪽 주거 단지로 향했다. 카이제닉스 구.
그곳에서 유리 디 아리스텔을 만났다. 한수영이 유리에게 유중혁이 있는 곳을 묻자, 그녀는 바로 옆을 가리켰다. 곁을 지나가는 거대한 그림자. 검정 트레이닝복을 입고 달리는 유중혁이었다. 어떤 스킬도 쓰지 않고 달리고 있는[132]
한수영이 유중혁을 따라 달리면서 대화를 나눴다. 유중혁은 예전일이 기억나지 않는다며 한수영에게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물었다. 한수영이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그저 회귀자가 될 유중혁이었을 거라는 말뿐.
유중혁도 김독자가 아바타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김독자를 구하려면 다시 최후의 벽 너머로 가야한다는 것도.
세 개의 파편을 모으기 위한, 그리고 김독자를 구하기 위한 방법. 오직 유중혁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화신 '유중혁'의 성흔이 진화 중입니다.]
유중혁이 한수영에게 도움을 청했다.
[성흔, '회귀'가 '집단 회귀'의 가능성을 획득했습니다!]
김독자가 0회차를 바라본지도 어느새 두 달이 지나갔다.
지금까지 3번의 배후 선택을, 유중혁은 전부 선택하지 않았다.
처음 배후 선택에서 김독자가 뒤통수를 갈긴 이후, 성좌들을 경계하고 있었다.
차츰 비형의 채널도 커졌고, 김독자가 아는 수식언을 가진 성좌들도 등장했다.
비형이 유중혁이 배후성을 선택하도록 성좌들에게 특별 후원 기회를 주었으나[133], 한껏 기고만장 해진 유중혁은 숨겨진 정보들을 알고 있는 '구원의 마왕'과 다른 성좌들을 비교하며 배후성을 선택하지 않았다.
구원의 마왕이 유명해진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쁘진 얺은 일이었다. 유명세 덕분에 코인을 벌었으니까.
유중혁의 0회차는 어찌보면 김독자의 세계선과 비슷했다.
이현성, 김남운, 이지혜, 본래는 그곳에 없었을 정희원.[134]
유중혁은 김독자가 전해준 정보들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막대한 개연성을 희생해서 건네준 수많은 정보들.
유중혁도 처음엔 의심했지만, 김독자가 전해준 정보가 맞아떨어지자 차츰 신뢰를 보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배후성을 선택하지 않았지만.
유중혁은 정보를 얻기 위해 무려 30만 코인을 들여 일대일 비밀 통신을 개설했다. 김독자는 내심 기특해 개연성의 소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보를 전해주었다.
[제4의 벽]이 말했다. 이런 행동을 하더라도, 유중혁은 [최후의 벽]일 넘을 수 없다고. 김독자는 그에게 '진실'을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온당한 '종막'은 보여줄 수 있었다.
유중혁은 절대왕좌의 앞에 서서 사인참사검의 힘으로 왕좌를 부쉈다. 유중혁의 뒤에서 백호 형상을 띤 설화가, 김독자를 바라보았다.
[화신 '유중혁'의 새로운 설화가 생성됩니다.]
[설화, '왕이 없는 세계의 왕'이 탄생했습니다.]
그 세계에 김독자는 없다. 그럼에도, 그것은 김독자가 정말로 쓰고 싶었던 이야기. 김독자는 결심했다. 원작에도 없던 이야기를, 자신이 쓰겠다고.
김독자는 페이지에 뭔가를 써갔다. 시나리오가 지나가고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김독자의 손가락이 작아졌다. 그는 그 손가락으로 계속 계시를 써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마침내, 0회차의 유중혁은 시나리오의 최종장에 도달했다.」
유중혁은 정말 열심히 싸웠다. 그의 뒤에는 그와 함께 시나리오를 헤쳐온 일행들이 있었다. 이지혜, 이현성, 정희원, 신유승, 김남운, 이설화, 공필두, 서울 7왕, 장하영, 그리고 다른 나라의 화신들과 안나 크로프트까지. 유중혁이 만든 연합, 파천맹. 김독자가 알고 있는 멸살법의 모든 것이 집약된 설화들이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설화, '왕이 없는 세계의 왕'이 기염을 토합니다!]
[거대 설화, '마계의 봄'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거대 설화, '빛과 어둠의 계절'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마침내 부서진 방주 너머에서 경악한 도깨비 왕이 보였다.
유중혁과 일행들은 망설이지 않고 달려들었다. 도깨비 왕은 그들을 상대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세계는 멸망하지 않았다.
다음 순간, '최후의 벽' 위에 문장이 떠올랐다.
「<스타 스트림>의 전설, 패왕 유중혁.」
어느새 0회차에서도 시나리오가 종결된지 오 년이 지나갔다.
시나리오가 끝나고 일행들은 이 세계를 재건해갔다.
시나리오가 끝나고 칠년이 지났을 무렵, 유중혁은 이설화와 결혼했다. 아이는 가지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시설을 세워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돌봤다.
시간이 흐르며, 유중혁은 정직하게 나이를 먹었다.
유중혁이 얻었던 특성 때문이었다.
전설급 특성, [전력의 삶]. 정해진 수명을 사는 대신 자신의 모든 재능을 폭발시키는 특성. 회귀하던 유중혁은 선택하지 않았던 특성이다.
<스타 스트림> 시스템이 있는 한, 불사의 꿈도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유중혁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누구도 희생하지 않는 이야기는 없다.」
그리고 이십오 년. 드디어 반백의 머리가 된 유중혁이 도시를 떠났다.
그 장면을 바라보는 김독자에게 [제4의 벽]이 말을 걸어왔다. 하나의 꿈에 오래있으면 힘들어진다고 경고했다. 김독자는 '가장 오래된 꿈'이기에, 모든 세계를 공평하게 돌아볼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쉽사리 벗어날 수 없었다.
유중혁이 김독자에게 말을 걸었다. 아직도 이야기가 보고 싶으냐고. 김독자는 이 이야기를, 자신이 바라던 이야기를 아직 더 보고 싶었다. 유중혁의 등 뒤에서 그의 설화가, 한때 김독자가 얻었던 설화들이 김독자를 바라보았다.
유중혁은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김독자가, 그 벽 너머가 궁금하다고. 그는 손가락을 움직여 언젠가 그에게 도달했던 메시지를 꺼냈다.
[성좌, '구원의 마왕'이 당신의 배후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제안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이 제안을 이제 받아들이겠다고.
그러나 그는 [최후의 벽]을 넘을 수 없었다. 그에겐 [제4의 벽]이 없으니 모든 '벽의 파편'을 모을 수 없을테니까.[135]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김독자는 유중혁에게 그 너머를 보고 싶다면 '회귀'를 해야한다고 말해주었다. 김독자의 전신이 스파크에 뒤덮였다. 세계선이 알려주고 있었다. 하면 안되는 말이라고.
하지만 김독자는 세계선의 저항을 떨쳐냈다. 반드시 유중혁에게 진실을 말해야 했다. 김독자는 말했다. 그는 1864번의 회귀를 할 것이고, 그 수많은 회귀로도 성공하지 못할 수 있다고.
심지어 지금 유중혁은 '본래의 세계선'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그렇기에 회귀해도 [제4의 벽]을 가진 김독자를 만날 수 있을거란 보장이 없었다.
[제4의 벽]이 말했다. 기억을 지우면 된다고.
김독자는 소름이 돋았다.
만약 '원작'에 남아있던 0회차의 기억 단편을 주고 유중혁을 다음 회차로 보낸다면 어떨까. 그러면 세계선은 이 유중혁을 '원작의 유중혁'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그는 이곳에서의 기억을 잊은채 1회차와 2회차를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 그는 불행해질 것이다.
유중혁은 그럼에도 회귀하겠다고 결정했다. 김독자는 오랜만에 진언을 사용했다. 그리고 진실을 말해주었다. 회귀하면 이곳의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 그 말에 유중혁이 대답했다.
「그들은 분명히 이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김독자는 그 순간, 이것이 0회차의 완성임을 깨달았다.
김독자는 꿈 장악력을 모아 하나의 성흔을 빚어냈다.
유중혁의 모든 비극을 일으킬 성흔을.
[성흔, '회귀'가 생성됐습니다!]
[당신의 성흔이 당신의 화신에게 전해집니다!]
유중혁은 그 성흔을 받아들었다.
그는 조금씩 사라져갔다.
그는 언젠가 '은밀한 모략가'가 될 것이고, 동시에 김독자가 알던 1,864회차의 유중혁이 될 것이다. 그를 원망하게 될 것이며, 세계의 진실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유중혁의 화신체가 은빛 가루가 되어 이 세계선을 떠났다.
[당신의 화신이 당신의 수식언을 잊습니다.]
[당신의 화신이 당신과 관련된 기억을 잊습니다.]
[당신의 모든 정보가 '???'로 표시됩니다.
어디에도 기록되지 못할 그의 기억은 이제 영원히 사라질 것이었다. 김독자는 그 반짝임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멍하게 서있는 유중혁의 뒤통수를 내리치며 한수영이 물었다. 집단 회귀는 어떻게 하는건지. 유중혁은 멍청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갑자기 0회차의 기억이 떠올랐다고.
[Ep.2 어디에도 없는]
현재 작성중 입니다.
3. 외전
이 이야기는 '전지적 독자 시점'의 외전이지만, 본편 이외의 것은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여전히 김독자의 이야기지만, 단 한 사람의 김독자를 위한 것은 아닙니다.
오래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전지적 독자 시점'을 시작합니다.
2023년 2월 싱숑.
이 이야기는 여전히 김독자의 이야기지만, 단 한 사람의 김독자를 위한 것은 아닙니다.
오래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전지적 독자 시점'을 시작합니다.
2023년 2월 싱숑.
3.1. 프롤로그
Prologue. 이것은 공지가 아니다 ~ Episode 1. 완결 이후의 세계 |
3.2. #1 - 가치 증명
Episode 2. 다시 쓰기 ~ Episode 5. 악당 |
3.3. #2 - 조우, #3 - 그린 존
Episode 6. 성유물 ~ Episode 12. □□ |
4. 연재본 vs 단행본
- 연재본에서는 주인공이 처음 읽고 있던 웹소설의 제목과 작가 필명이 멸망 이후의 세카이와 싱샹숑으로 작품명과 작가명을 살짝 개조한 수준이었는데, 단행본에선 아예 대놓고 멸망 이후의 세계, 싱숑이라고 그대로 언급하면서 자학 드립과 광고를 동시에 했다.
- <서브 시나리오 - 강제 계승식>의 이름이 왕좌 탈취로 변경되었다.
- 명일상의 흑염포 스킬의 이름이 적염포로 변경되었다.
- 연재본에서는 피스랜드에서 재앙과 적대할 시 발생하는 <메인 시나리오 # 6 - 작은 구원자>가 언급되지 않았다.
- 야마모토 하지메의 칭호가 총리에서 총수로 바뀌었고 그의 배후성이 구한말의 침략자에서 만년백각오공으로 바뀌었다.
- 피스랜드에서 김독자가 야마모토 하지메를 물리치기 위해 간평의로 불러낸 성좌가 민족의 독립 운동가에서 모순의 음양사로 바뀌었다.
- 이복순의 배후성이 하얼빈의 저격수에서 무당왕으로 바뀌었고 무당왕의 성흔으로 연재본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오공원 두꺼비라는 성좌의 힘을 빌렸다.
- 신유승이 피스랜드에서 처음으로 같은 재앙들끼리 싸웠을 때 연재본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매트 스파이더라는 괴수가 등장했다.
[1]
성좌가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고 시나리오에 개입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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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로 뛸 시 엄청난 속도를 낼 수 있는 성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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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모략가가 그의 호구력에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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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형도 모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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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만 사용할 수 있는 절대적 관여 스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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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캐시 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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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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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독자의 박식함에 소수의 성좌가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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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급 이상 괴수종에게 발견되는 에테르 코어. 가공해 섭취하면 코인 없이도 마력을 높일 수도 있다.
[10]
성좌들에게서 받은 후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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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형은 성좌들이 배후성이 없는 화신을 후원할 때 지불하는 막대한 수수료를 받는 조건
[12]
두 시간 동안 강제로 숙면을 취하게 만드는 대신 피로와 상처를 빠르게 회복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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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분 동안 정화 장치 대용품으로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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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 성좌가 김독자의 준비성에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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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검지를 맞대고 줄 코인을 속으로 생각하면 코인을 거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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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살법이 인기가 없던 이유는 작가가 설정꾼이기 따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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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로도 코인을 준다며 일행이 신기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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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아는 스킬 '통역'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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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독자는 뒤늦게 악마종은 다른 종의 체내에 새끼를 수태시킨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20]
최상급 배후성의 지원을 받는 화신의 주력 기술이자, 무림계 긔환자가 흔히 검강이라 지칭하는 기술
[21]
굉장히 맛있었다.
[22]
성좌들도 군침을 흘렸다.
[23]
김독자만 들리도록 말을 하는 것. 물론 화신인 김독자에게 사용하는 것은 명백한 규정 위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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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이나 스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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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 '대머리 의병장'이 김독자를 용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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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아가 화장실에 가고 싶어한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27]
유중혁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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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존' 없이 버텨낸 '끝나지 않는 새벽' 업적 달성으로 주는 1000코인.
[29]
일행들은 이현성의 기운을 북돋아주기 위함 이라고 생각했다.
[30]
이현성이 단순한 캐릭터인 덕분에 영혼 없는 칭찬도 소용이 있었다.
[31]
괴물은 거의 줄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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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이 확장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형은 더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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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0코인을 소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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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타노 프테라. 트라이아스기의 곤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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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가 유중혁 편이라 김독자는 앰플을 주고 싶지 않아 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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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던전에서만 사용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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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공격 피해가 10 퍼센트 감소하고 적을 감지하는 능력 향상과 민첩해지는 방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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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A급으로, 영화 소품이기에 진짜 성유물급의 성능은 아니지만 나름 레플리카(복제품)버전의 특색을 갖춘 아이템. 이 정도 수준의 A급 아이템이라면 초반에는 '사기 템'이라 볼 수 있다.
[39]
대상의 움직임을 보고 해단 인물의 종합 능력치를 어림할 수 있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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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이 남긴 소절이 깃드는 성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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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빌지는 않았다. 유성우가 끔찍한 악몽을 만들게 될것임을 알았다.
[42]
김독자는 큰 죄책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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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도의 배후성은 광해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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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김독자는 이미 알고있던 정보였다.
[45]
배후성은 국정 농단의 달인으로 조선의 관료였던 사람. 김독자도 누군지 기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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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독자가 생각하기에 어머니는 나쁜 사람을 더 나쁘게 만드는 걸 가장 잘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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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독자의 표현으론, 죽어도 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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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간엔 어느 성좌도 후원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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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독자는 사실 무엇이 나올지 이미 알고 있었다.
[50]
인물에 몰입하는 연습을 하면 이해도를 쉽게 올릴 수 있다고.
[51]
미치오 쇼지는 김독자란 이름을 김 도게자라고 알아들었다.
[52]
김독자는 웃음이 나왔다.
[53]
본래는 '뱀'을 잡을 때 부르려 했었다.
[54]
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지네장터> 이야기의 교훈은 '자나 깨나 불조심'이라고.
[55]
아스카 렌의 눈동자가 커졌다.
[56]
공필두의 성흔이 10레벨을 돌파하여 '무장지대'에서 '무장요새'가 되었다.
[57]
김독자 스스로 추리해냈다.
[58]
키리오스 로드그라임에 대한 이해도를 계속 상승시키기 위해 이 주 동안 수련 해온 것이다.
[59]
유중혁은 그런 걸론 양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60]
김독자에게 구경만 할 거냐며 외쳤지만 김독자는 때를 기다리며 여유롭게 체력 관리를 할 뿐이었다.
[61]
야마노무라쿠모노츠루기 시리즈의 두 번째. 용살의 힘이 담겨 있다.
[62]
디오니소스를 먼저 불렀지만 응답이 없었다.
[63]
선지자들과 싸울 때 김독자의 편을 들어준 하차자 중 한 명.
[64]
피스 랜드에서만 얻을 수 있는 한정판 스킬이었기 때문.
[65]
노래 가사는 다음과 같다. '피스 랜드를 구해낸 영웅 그의 이름 도쿠자도 도게자도 아닌 독자 오오 독자라네' 김독자는 뭐 저딴 가사를 붙였냐고 생각했다.
[66]
자신이 쌓은 설화로 배후성에게 힘을 빌리는 기술.
[67]
기억 일부를 버리고 위험에서 탈출하는 성흔
[68]
회차를 거듭할수록 유중혁이 망가져가기 때문.
[69]
0.00001% 확률로 나오는 SSS급 중에서도 가장 극악한 확률로 나오는 아이템
[70]
'스타 스트림'을 잇는 지류 중 하나. 도깨비들이 이 길로 차원을 이동한다.
[71]
김독자는 별의별 곳에 히든 시나리오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했다.
[72]
본래 특성은 '불살의 왕'이었어야 했으나 김독자에 의해 바뀌었다.
[73]
'스타 스트림'에서도 완벽하게 비밀이 보장되는 장소로 꼽히는 곳. 이곳에서의 일은 도깨비조차도 알 수 없다.
[74]
'부활의 축일' 설화를 준다고 했다.
[75]
'번개의 사육제' 설화를 계승하라고 했다. 운명을 보았다고.
[76]
'메시아의 길'을 선택하라고 했다. 다만 메시아의 길은 고자가 된다.
[77]
우리엘은 김독자를 매우 반가워하며 끌어안고 비비기까지 했다.
[78]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으며 설화급 성좌들은 묘한 눈빛을 띄고있었다.
[79]
그후 이계의 신격들의 말들중 하나. 【드디어 '마지막 이야기'가 시작되려는가.....】
[80]
하루에 세 번만 형성된다.
[81]
아이템 '상급 악마의 증명'과 10000코인을 획득했다.
[82]
김독자의 이름 덕분에 죽진 않았다.
[83]
텐타치오는 여전히 김독자가 유중혁이라 알고 있었다.
[84]
'도깨비의 알'과 '부러지지 않는 신념' 등
[85]
설화 흡수율은 낮지만 약점도 흡수하지 않는 특성
[86]
동료에게 뒤통수를 맞은 소드 마스터의 오른팔, 끔찍하게 뜯어 먹힌 그랜드 위저드의 전두엽, 이계의 신격에게 찢겨 죽은 어린 골드 드래곤의 심장
[87]
마계의 도시. 부서진 설화 파편으로 에너지를 만드는 공장과 주거 지역이 있는 곳
[88]
김독자는 전지적 독자 시점으로 특수한 포지션임을 확인해둔 상태였다.
[89]
한명오는 아스모데우스와의 계약 내용을 발설해서 기절했다.
[90]
잘라낸 다리가 재생되고 있는 중이었다.
[91]
신유승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92]
3회차 38권의 기록
[93]
본래 100레벨 이상으로 종합 능력치를 올리는 것은 구간당 코인 폭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져서 가성비가 안좋다.
[94]
더 커다란 '격'을 견딜 수 있고, 공기 저항 완화와 막혀 있던 혈도가 개방되었다. 근력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95]
<에덴>의 대천사는 품격 유지를 위해 성운 측에서 자체 필터링을 걸어놓는다고.
[96]
유중혁이 이름부터 바꿔야 겠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97]
거짓은 아니었다.
[98]
일행, 특히 유상아의 표정이 볼만했다고.
[99]
처음엔 유상아도 당황했으나 이내 질 수 없다는 듯 냉정한 표정으로 맞섰다고.
[100]
<에덴>의 천사들도 싫어한다.
[101]
본래는 엄청난 개연성을 소모하는 일이라 손가락 하나만으로 대신하는 것은 엄청난 것이다.
[102]
타락한 천사를 사냥할 때 쓰는 요피엘의 성흔.
[103]
김독자는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104]
가브리엘이 막으려했지만 '선악의 구속구'로 잠들고 말았다.
[105]
사실 구성원은 대부분 경기도 출신이 아니다. 그저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약탈자들일 뿐. 경기 연합을 이끄는 수장은 다름아닌 십악 중 하나다.
[106]
티타노-MK II 라고.
[107]
흑염여제가 흑염마황으로, 월하신녀가 원하현제로 별명이 바뀐 것은 1년 전 있었던 '성남 대참사' 때문이었다.
[108]
김독자는 원래 자주 길을 잃는다고.
[109]
물론 가장 많은 메시지를 받은 것은 김독자와 일행들이었다.
[110]
우리엘이 '하늘의 서기관'의 임무를 시나리오로 받았을때, 신도, 즉 화신 열 명를 데려오라는 '어린 양 열 마리를 데려오라'는 메시지를 진짜 착각해 진짜 양을 데려왔다고.
[111]
모든 것을 다 말하지는 않았다.
[112]
수르야는 <올림포스>도 <베다>도 좋아하지 않아서 이것을 원했다.
[113]
미식협 이후부터 잘 웃지 않게 되었다.
[114]
원래는 내기를 받아들일 이유가 없지만 안나 크로프트가 도발했다.
[115]
이 시나리오의 보상으로는 <올림포스> 12신좌의 간택될 기회를 얻을 수 있고, '고대 거신' 사냥 이벤트를 통해서는 '거대 설화'의 지분도 얻을 수 있다고 소개하면서.
[116]
원래는 도깨비가 중계하지 않는 시나리오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에 중계할 도깨비가 필요했다.
[117]
유상아가 했던 말이었다.
[118]
진실을 안 성좌들이 충격에 빠졌다.
[119]
60번 이후 시나리오는 개연성의 후폭풍이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세다.
[120]
설화가 쌓일수록 어떤 금속보다도 단단해지며, 몇 번이고 부러져도 다시 재생이 가능한 성흔이다.
[121]
아주 잘생겨서 유중혁의 뺨을 두 대 정도는 칠 수 있을 정도라고.
[122]
<베다>를 탈퇴하고 이곳에 온 목적은 오직 최고의 태양신을 가리기 위함이라고.
[123]
시나리오의 안정화 때문.
[124]
마왕 안드로말리우스, 단탈리온, 암두시아스
[125]
본래 '성마대전'은 80번대 시나리오라 한수영은 지금 자신들의 수준으로 입장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김독자도 그렇게 생각했다.
[126]
본래 스타 스트림에서 '격'은 설화의 축적으로만 상승한다. 하지만 극히 드문 성유물 중에는 설화의 축적 없이도 격을 올려주는 것이 있다. 비로 이 상패가 그러했다.
[127]
신유승은 질서가 잘 갖춰진 이 SF 세계관이 환생자들의 섬에 있는 이유, 즉 멸망한 이유가 무얼일까 고민했다.
[128]
'카이제닉스 제도'의 환생자들이 존경의 염을 담아 한수영에게 고개를 숙였다.
[129]
사실 때가 되었을때 자신들의 세력을 가장 좋은 조건으로 팔기위함이다.
[130]
아스모데우스가 김독자의 행동에 흥미로워 했다.
[131]
김독자는 '가장 오래된 꿈'도 성좌의 역할을 할 수 있으니 일행과 어떻게든 접선해보고 싶었지만, 그렇게하면 그 세계선에 김독자와 일행들이 힘겹게 없앤 <스타 스트림>이 다시 부활하기 때문에, 김독자는 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다. 꿈에 대한 장악력이 부족하기 때문.
[132]
주변에서 들리는 말들로 보아 벌써 세 달째라고 한다.
[133]
김독자도 후원하고 싶었지만, 코인이 없었다.
[134]
김독자가 꼭 영입해야한다고 유중혁에게 강조한 탓이었다.
[135]
'제4의 벽'이 유중혁에게 전이되는 것을 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