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몰년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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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국시대 위나라, 서진의 장수.2. 정사 삼국지
263년 5월에 위나라의 조환이 칙령을 내려 촉의 정벌( 촉한멸망전)이 시작되면서 종회에게는 한중으로 들어가게 하고 등애, 제갈서에게 각기 3만여 명을 이끌게 하여 강유를 추격해 포위하여 잡으라고 했다. 그러나 강유는 공함곡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기동으로 제갈서를 따돌렸다. 강유를 포위해는데 실패한 등애는 곧바로 음평을 넘어 촉의 내지로 들어가려 하였고 제갈서는 백수로 향한다.종회는 백수에서 제갈서와 병력을 합친 다음 등애의 계획에 일단 동의했는지 장군 전장 등을 파견하여 검각 서쪽으로부터 쫒아서 곧바로 강유관으로 나아가게 했다. 그리고 자신은 제갈서와 함께 검각을 친다. 백 리를 이르지 못해 전장은 먼저 촉한의 매복한 복병 세 진영을 격파했으며, 곧이어 등애와 합류한 것으로 보인다. 등애는 전장을 선봉으로 삼고 먼 거리를 몰아 앞으로 전진하게 했다. 이렇게 전장의 증원군을 받았음에도 원준의 원자와 《 진서》 <문제본기>에는 강유로 들어갈 때 등애의 군사가 1만명 정도만 남았다고 하니 전장 역시 촉한의 복병을 격파하고 험한 산을 넘느라 고생하고 손실이 많았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268년 10월에는 후장군으로 오나라의 만욱이 양양을 공격하자 호열과 함께 물리쳤다.
270년, 진나라에서 호열이 독발수기능에게 전사했다( 독발수기능의 난). 전장은 안서장군, 도독진주제군사(석감열전에 따르면 도독농우제군사)인 석감을 따라 분위호군이 되어 약란니를 토벌했고, 독발수기능을 토벌하려 했으나 석감이 면직됨에 따라 이기지 못했다.
2.1. 전장이 격파한 복병의 정체는?
<종회전>에 따르면 미처 강유관으로 백리도 가기전에 촉한의 복병 3진영(三校)을 격파했다고 한다. 여기에 복병을 둔건 누구였을까?백수부터 강유관까지의 직선거리
백수부터 강유관까지 차로를 이용한 거리
백수부터 강유관까지 도보로 이동한 거리
종회가 전장을 파견한 백수 지역부터 강유관까지의 직선 거리는 81킬로미터다. 하지만 이건 말 그대로 등애마냥 진령산맥의 험지를 악전고투로 넘어야 하는 곳이므로 영 가기 부담스럽다. 그리고 전장은 북쪽에서 내려온 등애와 합류해 먼 거리를 전진했으므로 강유관의 북쪽으로 등애와 합류하기 위해 이동했을 가능성이 높다. 현대의 찻길로도 백수에서 강유관까지는 128킬로미터가 걸리며 도보로 이동할 시에는 최단거리로도 147킬로미터가 걸린다. 어쨌거나 한대의 1리는 415.8미터였으므로 100리는 41.58킬로미터가 되니 직선거리로 절반을 채 가기도 전에, 찻길이나 도보를 이용한다고 치더라도 그길의 1/3, 1/4을 가지도 못하고 촉한의 복병을 세번이나 만난 셈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한대의 백 리가 41킬로미터를 좀 넘는 정도이므로 전장은 백수에서 출발하고 나서 그곳에서 불과 3~40킬로미터 이내에 있던 촉한군의 복병 진영들과 마주쳐야 했다. 이렇게 전장이 복병을 만난 시점은 백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며 강유관에서는 좀 멀리 떨어진 곳이다. 거기다 세워진 목적 자체가 음평고도(陰平古道) 마천령(摩天嶺)을 넘는 북쪽에서의 침입을 대비해야 하는 것인 강유관이 서쪽에서 오는 병사들을 고려해서 백수 근처까지 복병을 두었다고 보기도 어려우니 다른 촉한군이 병력을 매복시켰다고 봐야 하고 중간에 백수를 거친 병력을 지휘하는 장군이 근처에 복병을 두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종회가 백수에 도착해 전장을 파견하기 전, 먼저 거기에 도착한 촉한의 장군이 있었으니, 바로 강유였다.
강유는 답중에서 돌아와 음평에 도착하여 요화와 함께 병사들을 모아 합쳐서 관성으로 가려고 했으며 미쳐 도착하기 전에 관성이 이미 격파되었다는 것을 듣고 물러나 백수로 갔고, 이후 장익, 요화 등과 공동으로 검각을 지키며 종회에게 대항했다. 종회보다 먼저 백수, 검각으로 후퇴하는데 성공해 이제부턴 검각을 방어해야 하는 강유 입장에선 만약 종회가 검각 서쪽으로 우회병력을 보내 돌파하려는 시도를 한다면 이를 막고 적병의 움직임을 탐지해 본대에 경고를 해줄 병력이 필요했을 것이고, 따라서 백수에 있었을때 따로 병사들을 파견해 촉한군의 복병진영을 구축하라고 했을 가능성이 높다.
3. 삼국지연의
촉 정벌에 출정하는 장수의 명단에서 위관, 호열, 전속, 방회, 원정, 구건, 하후함, 왕매, 황보개, 구안 등과 함께 언급되어 80여명의 장수들이 모였다고 한다.4.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삼국지 9 일러스트 |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3, 삼국지 9에서만 등장하며, 삼국지 3에서는 262년에 재야 장수로 등장한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66/무력 64/지력 42/정치력 46의 3류 장수. 분전, 제사, 투석을 가지고 있다.
삼국전투기에는 휴고로 등장한다.
검각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제갈서와 함께 움직였으며, 제갈서의 부대가 종회에 의해 화살받이로 써먹힐 때, 전장도 화살받이 신세가 되기도 했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 제갈서와 함께 만신창이가 되었고, 이에 제갈서가 종회에게 따지러 갔다가 죄를 뒤집어쓰고 수도로 압송된 후에는 전장 혼자서 다시 화살받이 신세가 된다. 전장 본인은 차라리 자기도 수도로 압송해달라며 울었다(...) 종회의 명령에 강유관으로
거의 없다시피 한 인지도임에도 의외로 클론무장으로 참전했다. 그가 가장 두각을 드러낸 시나리오는 뜬금없이 종회의 난(성도 대도살)의 트릴로지 첫 번째인 성도 탈출전인데 여기서 종회의 계략에 속아 등애 일행을 붙잡으려는 역할로 등장한다. 다만 나중에 전투를 치른 후 등애의 설득으로 아군으로 되어 마륭과 함께 성도 외성 정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