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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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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관련 문서

1. 개요

/ At-large, nationwide constituency

과거 대한민국에 존재했던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출제도로, 전국을 하나의 단위로 선거구로 선출하는 제도다.

2. 상세

지역구와는 구분되는 의미이며,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때부터는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비례대표제로 개칭되었다.[1]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1인 2표제가 아닌 1인 1표제를 채택했기 때문에 지역구 선거에서 특정 후보를 찍으면 그 특정 후보가 소속된 정당에 표를 같이 던지는 개념으로, 무소속 후보를 찍을 경우에는 따로 정당투표를 할 수 없게 되니 사표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선출 방법은 각 지역의 후보자가 얻은 정당 득표를 총합산 해서, 그 비율만큼 여당/ 야당에 의석을 할당하는 것이다. 전국구 의원 후보는 미리 명단을 정해놓는다.

메이저 정당의 앞줄 명단에 서게 되면, 거의 100% 국회의원 배지를 달 수 있기 때문에 공천 장사에 지극히 유리한 제도였다.

하지만 아래에서 볼 수 있듯이 문제가 아주 심각했다.
  • 정당에 대한 지지율과 후보자 개인에 대한 선호도는 상당히 다를 수 있다.[2]
  • 무소속 후보를 찍으려는 유권자는 정당공천 후보를 찍는 경우와는 달리 정당에 대한 지지를 원천적으로 전혀 할 수 없게 된다.
  • 양대정당이 아닌 정당의 지지자의 경우, 소속 지역구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후보자를 내지 못하면 이 역시 원천적으로 선택권을 박탈당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로 인해 심각한 부조리가 존재한다는 문제 제기가 10년 넘게 지속되었다. 그 결과, 2001년에 헌법재판소가 이 방식을 위헌으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부터[3]는 정당명부 투표를 별도로 해 정당명부에 등재된 후보 순번대로 당선시키는 식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현행 한국의 비례대표 의원제도는 전국구 의원의 후신에 해당하는 셈.

한국에는 5.16 군사정변 직후 5차 헌법개헌 당시 도입됐다. 중앙일보에 연재된 ' 김종필 증언록'에 따르면, 도입 이유는 혁명주체들 중 상당수를 차지했던 이북 출신들의 기득권을 보장해주기 위한 도구였다고 한다. 이북 출신 군인들은 지역기반이 없었기 때문에 민정 이양의 선결조건인 개헌에 강하게 저항했는데, 이를 무마하기 위해 지역 기반이 필요없는 제도인 전국구 제도를 만들었다고. 출생 의도는 불순했으나, 2001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그나마 제 역할을 하게 된 제도인 셈.

10월 유신으로 세워진 제4공화국 때는 전국구 의원(전체 의석의 1/3)을 정당 지지가 아닌 대한민국 대통령의 추천을 받은 통일주체국민회의 의원 가운데서 뽑도록 했다. 이들은 유신정우회라는 교섭단체를 만들어 사실상 정당 구실을 했으나 민주공화당과 같은 여당이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여소야대를 불가능하게 만든 것. 실제로 박정희가 죽기 직전에 치러진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유신체제에 반감을 갖는 유권자들의 표로 야당인 신민당의 득표가 여당 민주공화당보다 많았다. 제5공화국 시절에는 유신정우회를 폐지하는 대신 전국구 의원 2/3를 지역구 1당이 가져갈 수 있도록 변경했는데, 덕택에 11대 총선 12대 총선에서 민주정의당은 35%대의 저조한 득표율을 기록하고도 과반수는 그럭저럭 가져갈 수 있었다.

그러다가 민주화가 이루어진 후에 치러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부터는 1/2로 완화되었다. 제14대 국회의원 선거부터는 지역구 의석비율에 비례해서 배분되는 것으로 변경되었고, 15대 총선 16대 총선에서는 지역구 득표율에 비례해서 배분되는 것으로 변경하였다.

3. 관련 문서


[1]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부터 지방의회의원도 비슷한 개념(해당 의회의 관할 지역 전체를 대표하는 의석)이 생겼는데 처음에는 광역구라고 칭했지만 명칭을 통일하기 위해 개칭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광역자치단체 의회만 광역구가 의원이 있었으며, 기초자치단체 의회는 정당 공천이 없는 관계로 존재하지 않았다. (기초자치단체 의회가 정당 공천을 실시한 것은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부터.) [2] 가령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양시 갑 선거구의 경우는 더불어민주당의 비례대표 득표율이 높았지만, 더불어민주당 박준 후보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당시 구 새천년민주당의 당직자로 탄핵소추안 서류를 제출해 조중동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사람이었던 지라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더민주 친노 성향 지지층들의 표까지 끌어와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3] 지방선거로 확대하면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광역의원 선거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