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잭 프로갓 (Jack Froggatt) |
생년월일 | 1922년 11월 17일 |
사망년월일 | 1993년 2월 17일 (향년 70세) |
국적 | 잉글랜드 |
출신지 | 셰필드 |
포지션 | 아웃사이드 레프트 포워드, 레프트 윙 하프 |
신체조건 | 173cm | 78kg |
소속팀 |
포츠머스 FC (1946-1954) 레스터 시티 FC (1954-1957) 케터링 타운 FC (1957-1963) |
국가대표 | 13경기 2골 (1949-1953) |
감독 | 케터링 타운 FC (1958-19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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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의 전 축구 감독.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프로갓의 친척 중에는 축구 선수들이 있었고 삼촌 프랭크와 사촌 레드펀(Redfern) 또한 축구 선수들이었다.프로갓은 제2차 세계 대전 때에 영국 공군에서 복무했고 아버지의 정육점에서 일을 하다 1945년, 포츠머스 FC와 수비수로 계약했다. 하지만 당시 포츠머스의 감독 잭 틴(Jack Tin)이 프로갓을 설득해서 그의 포지션을 아웃사이드 레프트 포워드로 바꿨고 지미 디킨슨, 지미 스쿨라와 함께 포츠머스의 공격진을 이끌었다. 포츠머스는 1949년과 1950년에 1부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이것이 까지 포츠머스의 유일한 1부 리그 우승 기록이다.
1954년 3월, 8년간 팀의 사정에 따라 포워드와 하프백을 오갔지만 포츠머스에서 입지가 좁아진 프로갓은 레스터 시티 FC로의 이적을 택했고 1957년까지 레스터 시티에 머물렀다. 1957년 9월, 프로갓은 케터링 타운 FC의 유니폼을 입었고 이곳에서 3번의 해트 트릭을 기록했다. 또한 그는 1958년부터 1961년까지 케터링 타운의 선수 겸 감독직도 맡았다.
프로갓의 마지막 경기는 그의 친정팀 포츠머스와의 자선 경기였다.
2.1.2. 국가대표
프로갓은 1949년 11월 16일, 잉글랜드가 북아일랜드를 9:2로 대파했던 1950년 월드컵 지역 예선전에서 데뷔했다. 그는 이 경기에서 잉글랜드의 2번째 골을 자신의 데뷔골로 넣었다.그러나 프로갓은 2주 후에 있었던 이탈리아와의 경기를 끝으로 1950년까지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다. 월드컵 본선 명단에도 그의 이름이 없었다.
1951년 이후 프로갓은 한동안 대표팀에서 고정 멤버로 뛰었지만 1953년 6월 8일의 미국전이 그의 대표팀 마지막 시합이 되었다.
2.2. 이후
프로갓은 파트릿지 그린(Partridge Green)에서 호텔을 운영했다.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프로갓은 빠른 스피드와 탁월한 볼 컨트롤, 강력한 공중볼 경합 능력을 가진 선수였다.4. 수상
4.1. 클럽
- 잉글리시 풋볼 리그 디비전 1 우승 2회: 1948-49, 1949-50( 포츠머스 FC)
- FA 채리티 실드 우승 1회: 1949( 포츠머스 FC)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