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6-08 04:21:07

장난꾸러기 왕자의 오로치 퇴치

1. 개요

1. 개요



わんぱく王子の大蛇退治
토에이 애니메이션에서 1963년 3월 24일 개봉한 극장판 영화 애니메이션. 감독 세리카와 유고. 연출 보조 타카하타 이사오, 야부키 키미오(矢吹公郎). 작화감독 모리 야스지.

스사노오 야마타노오로치를 퇴치하러 가는 일본 신화를 동화처럼 각색해서 만들었다.

제작비 7000만 엔. 총 스태프 180 명. 작화 매수 25만 장 [1] [2], 그림물감 1 톤이 사용된 희대의 애니메이션. 거의 24 풀프레임으로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으로 당시 일본의 인건비가 싸서 이 정도의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 지금이라면 나올 수 없는 작품.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정점에 달한 작품으로 꼽힌다. 지금 봐도 우수한 작품이다.

당시 토에이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은 대충 애니메이터가 그린 걸 모아서 짜맞추면 된다는 주먹구구 식으로 작품을 만들었는데 세리카와 유고는 그러면 안 된다면서 자신이 직접 작품 전체의 컨셉과 질을 관리하는 감독 일을 했고 사실상 일본 애니메이션의 감독 시스템이 이 작품부터 자리잡게 된다. [3] 또한 작화 분량이 많아 전부 관리할 순 없었으므로 세리카와가 콘티를 그리고 타카하타 이사오와 야부키 키미오가 현장을 지휘하며 연출 보조를 하는 시스템도 여기서 정립되었다.

그리고 원화 작화감독이 수정해서 그림체와 분위기를 통일시킨다는 작화감독 제도가 최초로 도입된 작품으로 [4] 일본 애니메이션의 신 모리 야스지가 작화감독을 맡았다. 오오츠카 야스오가 원화를 그리고 츠키오카 사다오가 동화를 그려넣은 클라이막스 전투신은 원화 300컷, 동화 1만장이 사용되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면이다. 오오츠카 야스오는 자신의 인생 최고의 작화로 이 장면을 꼽으며 다시는 그릴 수 없다고 회고하였다.

세리카와 유고는 당시 본인이 콘티를 잘 그리지 못해서 대부분의 영상은 자신이나 스태프, 토에이의 배우를 불러서 한 번 리허설 연기를 해서 그걸 애니메이터에게 보여주고 이렇게 하라고 지시해서 만드는 연출을 했다고 한다. 불 지르는 장면을 연출할 때는 진짜 불장난을 벌여서 소방서에서 항의가 오고 난리가 났었다고.

그리고 작품을 만들던 중간에 세리카와 감독의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죽었다고 한다. 중간에 정신이 이상해진 걸 모리 야스지가 격려해서 살려주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마치 죽은 그 아이가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았고 그래서 더 집착하며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츠키오카 사다오 말로는 세리카와 유고 감독은 이 작품을 만들면서 너무 만들기 어려운 작화를 시킨다고 애니메이터들에게 엄청난 욕을 먹었다고 한다. 반성해서 이 작품 이후로는 그렇게 뛰어난 작화는 추구하지 않게 되었으며 연출에 집중하는 감독이 되었다고 한다.

현대 일본 애니메이션의 제작 방식을 확립한 애니메이션이다. 이 작품 이후로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이 획기적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작품이 나온 1963년은 철완 아톰, 철인 28호도 제작되어 일본 애니메이션 사의 기념비적인 해로 기록되었다.

여성 애니메이터 오쿠야마 레이코가 원화로 참여했으며 오쿠야마 레이코를 모델로 한 드라마 나츠조라에 언급되기도 한다. 저작권 문제로 이름은 살짝 변경. 카타부치 스나오는 이 작품을 보고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왜색이 짙어서 한국엔 한 번도 수입 및 방영되지 않아 인지도가 낮다.

2020년 2월 4K 화질로 복원되어 블루레이 박스가 발매되었다.

세리카와 유고 감독은 이 작품의 OST를 종종 다른 작품에도 사용했다.

젤다의 전설 시리즈 젤다의 전설 바람의 택트를 시작으로 하는 소위 “ 툰링크” 시리즈의 캐릭터 디자인이 이 작품의 캐릭터 디자인과 매우 비슷해, 이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했던 코타베 요이치가 닌텐도에 와서 툰링크를 디자인했다는 헛소문이 정설인 것처럼 여러 매체에 실리기도 했다. 실제로는 코타베 요이치는 바람의 택트 캐릭터 디자인에 참여한 적이 없다.


[1] 감이 안 오는 사람들에게 설명하자면, 그 유명한 AKIRA(1988)의 작화 매수가 이것의 60% 정도인 15만 장이다!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 모노노케 히메조차도 14만 장을 썼는데 이것도 엄청나게 많이 쓴 것이다. [2] 25만 장의 그림이 들어간 애니메이션을 지금 돈으로 만든다면 70억 엔 이상의 제작비가 필요할 것이다. [3] 아주 최초는 아니고 그 전에도 총괄하는 사람이 있기는 했는데 방식이 확립되기 전이라 그때그때 하는 일이 달랐다. [4] 이 작품에선 원화감독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