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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비정통 황제 · 반란 지도자 · 할거정권 군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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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張樂行 / 張洛行병음: Zhānglèxíng, 장러싱 / Zhāngluòxíng, 장뤄싱
1811년 ~ 1863년 2월 18일
청나라 말기 반란 세력 염군의 주요 지도자 중 한명이다. 태평천국의 천왕 홍수전에 의해 정북주장(征北主將)에 임명되었고 옥왕(沃王)에 봉해졌다. 그의 뒤를 이은 염군의 2대 지도자 장종우는 장낙행의 조카이다.
2. 생애
안휘성 박주 장노가(張老家)에서 태어났으며 소금 밀수로 생계를 이었다고 한다.1852년, 안휘성 북부에 기근이 발생하자 염군을 조직했고 수령으로 추대되었다.
1855년 여름부터 염군의 세력이 화중 지방을 장악하며, 북경 중앙정부와 남쪽의 태평천국과 싸우는 청조의 진압군 간의 연락을 끊는 활약을 했고, 장낙행은 1855년부터 대한명왕(大漢明王)이라 칭한 후 1857년에 태평천국의 진옥성과 연합 작전을 펼친 공으로 홍수전으로부터 회북장군 칭호를 받았다.
1856년, 염군은 5개 집단으로 나누어졌다. 그들은 각각 청, 홍, 황, 백, 흑색 깃발을 사용하였으며, 장낙행은 그중 황색 군대를 이끌었다. 하지만 5개 군대는 유기적인 작전 수행을 하지 못하여 이후 장낙행이 위기에 처했을 때도 나머지 4개 군은 나몰라라 했다.
염군은 기병이 주축이 된 게릴라 전법을 구사하여 청군을 괴롭혔다.[1] 1858년 11월의 삼하 전투, 1861년의 안칭 전투 등에서 염군은 태평천국을 도왔으며 1862년에는 장낙행의 조카 장종우가 태평군과 함께 섬서성으로 진군하기도 했다.
1862년 5월에 진옥성이 체포되며 염군의 기세가 꺾이자, 청 조정은 태평천국을 격파한 전력이 있는 몽골인 장수 보르지기트 셍게린첸을 파견, 장낙행과 맞서게 하였다. 셍게린첸의 군대는 서구의 신식 무기를 지니고 있었고, 안휘성 북부에서 분전하던 장낙행은 산동성으로 피신하려 하다가 옛 부하인 이가영의 집에 의탁하였다. 하지만 이가영은 이미 청조 편으로 전향한 상태였고, 그가 청군에 연락하자 장낙행은 결국 체포되었다. 장낙행은 셍게린첸 앞에서도 당당히 청조의 무능을 꾸짖다가 1863년 4월 28일에 의림집에서 처형되었다.
[1]
당시 염군의 행렬을 본 사람들은 "염군은 그 행렬이 20리나 늘어선 대규모 기병들의 무리였다."라고 말했다. 출처: 중국을 말한다 15권/ 신원문화사/ 1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