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장마리 바스티앵티리 Jean-Marie Bastien-Thi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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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27년 10월 19일 |
프랑스 뫼르트에모젤 뤼네빌 | |
사망 | 1963년 3월 11일 (향년 35세) |
프랑스 이브리쉬르센 | |
학력 |
에콜 폴리테크니크 프랑스 국립고등항공우주대학교 |
직업 | 군인 |
최종 계급 | 중령 |
참전 |
제2차 세계 대전 알제리 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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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군인으로 프랑스의 대전차 미사일인 SS.10, SS.11를 개발한 뛰어난 인재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비밀군사조직과 접촉하여 샤를 드골의 암살을 시도한 테러리스트이기도 했다.2. 생애
1927년 뫼르트에모젤의 뤼네빌이라는 코뮌에서 태어났으며 에콜 폴리테크니크와 국립고등항공우주대학을 졸업한 뒤 프랑스 공군에 입대했다.1957년 프랑스 공군의 공병 기술자가 된 그는 프랑스의 대전차 미사일 SS.10과 SS.11의 개발에 관여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드골주의자로 프랑스 인민연합의 당원이었으며 장 또한 드골주의자였지만 알제리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59년 샤를 드골이 알제리에 민족자결 원칙을 적용할 것을 천명하자 여기에 반발했고 프랑스의 극우성향 준군사조직인 비밀군사조직(OAS)과 접촉했다.
에비앙 협정이 승인되어 샤를 드골이 알제리의 독립을 결정한 이후인 1962년 8월 22일, 파리 프티클라마르에서 샤를 드골의 암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샤를 드골과 그의 측근들은 부상을 입지 않아서 암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고 장은 1962년 9월 영국에서 돌아오던 도중 체포되었다. 재판에서 장은 사형 선고를 받았고 1963년 3월 11일 총살형이 집행되었다. 이 총살형은 프랑스에서 마지막으로 집행된 총살형이었으며 군대에서도 반란에 따른 불명예 강제 퇴역으로 계급이 박탈되었다.
법정에서 알제리인들이 프랑스계를 상대로 벌인 오랑 학살을 언급하고 마지막까지 알제리의 독립을 반대하며 일갈했지만 이 주장에 공감하고 지금까지도 공감하는 건 극단적인 극우 일부 뿐이다. 1961년 파리 학살을 비롯한 알제리인을 학살한 사건들이 더 엄청난 프랑스로서는 이를 따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