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13 21:23:58

작진


국적 신라
이름 작진(酌珍)
관등 각간(角干)(?)
성씨 이(李)?
아내 왕교파리(王咬巴里)

1. 개요

신라의 인물. 삼국유사에 인용된 이제가기(李磾家記)에서만 등장한다. 아자개의 아버지로,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의 할아버지.

2. 가계

이제가기에 의하면 그의 가계는 다음과 같다.
  • 증조부: 진흥왕
  • 조부: 구륜공(仇輪公)
  • 부친: 파진간(波珍干) 선품(善品)
  • 아내: 왕교파리
  • 아들: 아자개

여기서 적어도 진흥왕 & 백숭부인[1] 김구륜 → 김선품까지는 연대와 계보가 그럭저럭 맞아들어가는 것부터 생각해보아야 한다. 물론 진흥왕과 아자개의 활동시기가 300년 넘게 차이 나는 걸 보면 김선품 → 작진의 연결성은 상당히 신뢰도가 떨어지며, 작진 & 왕교파리 → 아자개까지 연결 또한 정말로 그랬을지는 상당한 의문이 나는 게 사실이다.

당연히 어느 정도 술작은 들어갔을 개연성이 크다. 그러나 그냥 보기에도 상당히 어설프고 백제와의 연결성도 따지고 따져봐야 무려 수백 년 전 조상 할머니인 백숭부인에서 끝나서 그냥 내세우면 웃음거리가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견훤 일가가 이걸 대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조작했을 가능성 또한 크게 떨어진다. 게다가 진흥왕의 부인 백숭부인과 작진의 부인 왕교파리는 여성인데도 굳이 가계도에서 언급하는 걸 보면 상당히 신분이 높은 집안 딸로서 아자개와 견훤 일가 가계도에서 중요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선품과 아자개 사이에 생략된 인물이 대단히 많고, 그중에 중요한 인물이 작진과 왕교파리라고 보는 게 합리적인 추측이 되겠다. 작진이 선품의 아들이었는지, 아니면 아자개의 아버지였는지, 아니면 선품과 아자개 사이에 있는 인물이었는지는 현재로서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사실이다. 일단 아자개가 김씨는 아니고 이씨였던 이상 아자개로부터 김선품까지 부계 직계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분명 어려운 상황이니, 작진이 아닌 왕교파리 측이 선품과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3. 기록

李碑家記云, “真興大王妃思刀謚曰白𪀚夫人. 第三子仇輪公之子, 波珎干善品之子角干酌珎妻王咬巴里, 生角干元善, 是為阿慈个也. 慈之弟一妻上院夫人, 第二妻南院夫人, 生五子一女. 其長子是尚父萱, 二子将軍能哀, 三子将軍龍盖, 四子寳盖, 五子将軍小盖, 一女大主刀金.”
≪이비가기(李碑家記)≫에는 “진흥대왕의 왕비 사도(思刀)의 시호는 백융부인(白𪀚夫人)이다. 그 셋째 아들 구륜공(仇輪公)의 아들 파진간(波珍干) 선품(善品)의 아들 각간(角干) 작진(酌珍)이 왕교파리(王咬巴里)를 아내로 맞아 각간(角干) 원선(元善)을 낳으니 이가 바로 아자개(阿慈个)이다. 아자개의 첫째 부인은 상원부인(上院夫人)이요, 둘째 부인은 남원부인(南院夫人)으로 아들 다섯과 딸 하나를 낳았다. 그 맏아들이 상보(尙父) 훤(萱)이요, 둘째 아들이 장군 능애(能哀)요, 셋째 아들이 장군 용개(龍蓋)요, 넷째 아들이 보개(寶蓋)요, 다섯째 아들이 장군 소개(小蓋)이며, 딸이 대주도금(大主刀金)이다”라고 하였다.
삼국유사 제2기이 후백제 견훤

[1] 소비 부여씨일 가능성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