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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규/선수 경력/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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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용규의 국가대표 경력을 담은 문서.

2. 참가 대회

2.1.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이용규의 커리어 첫 국제대회 참가는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이었다. 당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2006 WBC 4강 신화에 힘업어 국민들의 높은 기대를 받고있던 팀이었다.

하지만 당시 김재박 신임감독은 정예 선수들이 아닌 어린 미필 선수들을 중심으로 엔트리를 꾸렸고, 대만, 일본[1]에 패배하며 동메달을 획득했다.

2.2. 2008 베이징 올림픽

2008년 3월에 열린 2008 베이징 올림픽 대륙별 플레이오프에서 이용규는 주전 외야수이자 1번타자로서 당당히 활약했다.

이 때의 활약을 바탕으로 이용규는 베이징 올림픽 본선에서 역시 주전 외야수로 활약하게 되었다.

이 대회에서 이용규는 31타석 동안 0.481/0.581/0.556의 환상적인 슬래쉬 라인과 4타점, 8득점 알찬 영양가를 보여주며 팀의 전승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일본과의 준결승전 마지막 플라이 타구를 잡고 엎드려 기도하는 세레모니는 지금도 회자된다.[2]

쿠바와의 결승전에서도 결승 2루타를 기록하여 우승의 일등공신이 되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승엽의 선취홈런과 정대현의 병살유도만 기억한다는게 문제(...)

이 대회의 맹활약을 통해 이용규란 이름 석자가 전국의 야구팬들에게 확실히 각인되게 되었고 이후 이용규는 전국구 스타이자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주전 외야수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2.3. 2009 WBC

2009 WBC는 이용규의 통산 3번째 국제대회 참가이자, 첫 번째 메이저 국제대회 참가였다.[3]
지난 2008 베이징 올림픽 에서 1.137의 엄청난 OPS를 기록한 이용규였지만 이번 대회는 내내 타격 슬럼프를 겪었다. 이용규는 대표팀이 치른 9경기에 모두 출전했지만 0.222/0.348/0.222 의 타격성적을 기록하면서 베이징올림픽 때에 비해서는 다소 공격력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중요한 상황에서는 계속해서 출루해주었으며. 본인의 장기인 빠른 발을 이용한 넓은 외야수비와 주루능력을 통해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WBC 역대 최고성적인 준우승에 기여했다.

한편 대회 동안 일본에게 유독 견제를 많이 받았던 타자 중 한 명 이었다. 3월 20일 본선 1조 순위 결정전 때 일본과 네 번째로 맞붙던 중 3회에 우츠미 테츠야에게 초구에 뒤통수 쪽으로 사구를 맞으면서 빈볼 시비 여부도 생겼으나, 이후 우츠미가 직접 한국말로 사과를 해왔다고 한다. 또한 3월 24일 결승에서도 6회에 도루를 시도하다가 일본 수비수의 다소 위험한 포구 위치선정으로 인해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 도중 헬멧이 깨지는 일이 있었다.[4]

2.4.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지난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 이어 커리어 2번째 아시안게임에 참가하게되었다.

이 대회에서 역시 이용규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주전 외야수로서 활약하며 한 수 아래로 평가받는 상대팀 마운드를 맹폭했다.

결국 조범현호 역시 5전 전승으로 금메달 탈환에 성공하면서 4년전 이 대회에서 당한 굴욕을 어느정도 만회할 수 있었다.

2.5. 2013 WBC

대표팀 붙박이 외야수답게 이번 2013 WBC에도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참가했다. 이용규의 개인 통산 두 번째 WBC 출전이다.

이번 대회 류중일호 네덜란드 야구 국가대표팀에게 발목이 잡혀서 2승 1패를 기록하고도 2라운드 진출에 실패하게 되었다. 이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사상 첫 WBC 1라운드 탈락이다.

팀으로서는 아쉬운 성과인 것이 분명하나 이용규 개인으로서는 전혀 부족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용규는 대표팀이 치른 3경기에 모두 출전하여 0.250/0.538/0.250, 2타점, 1득점을 기록하였다. 특히 5할이 넘는 출루율을 기록하면서 팀의 테이블세터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고 평가받았다.

2.6. 2015 프리미어 12

아마추어 대회를 표방했던 야구 월드컵[5]이 폐지되고 WBSC는 새로운 프로 국제대회인 프리미어 12를 2015년 개최했다.

이용규는 2015 WBSC 프리미어 12 역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테이블세터이자 중견수로서 참가했다.

이 대회에서 이용규는 7경기에 출장하며 팀의 주전 외야수로서 활약했지만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총 31타석에 들어섰지만 0.214/0.333/0.250의 성적을 기록하며 극심한 타격 슬럼프를 보여줬다. 장기인 도루 역시 단 1개도 기록하지 못한 채 대회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팀이 김현수[6], 정근우, 김재호, 김광현. 장원준 등 팀 동료들의 맹활약에 힘업어 초대 대회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이용규 역시 프리미어 12 우승반지를 얻게 되었다.

2.7. 2017 WBC

2017 WBC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참가하며, 통산 세 번째 WBC 무대를 밟게 되었다.

이번 대회 역시 주전 외야수로서 팀이 치른 3경기에 모두 선발출전했지만 팀의 두 대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을 막지 못했다.[7]

하지만 이용규 개인으로서는 이용규는 총 15타석에 들어서 0.273/0.467/0.273을 기록하며 테이블세터로서 분전한 대회였다.

이 대회 이후 이용규는 대표팀의 세대교체 단행과 개인적 노쇠화, 한화 이글스에 대한 트레이드 요청 파문까지 겹치며 대표팀과 점차 멀어지게 되었다. 사실상 마지막으로 참가한 국제대회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1] 아시안게임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은 프로가 아닌 실업 야구 선수들이다. 하지만 일본의 사회인 야구 선수들은 NPB의 2군 외국인선수 무제한 보유규정 때문에 사회인 야구에다 갖다 놓는 경우가 많다. 당장 우리나라도 프로리그 출범 전에는 실업야구 출신으로 금메달을 가져온 사례가 있었다. [2] 다만 당시 마무리 투수였던 기아 타이거즈 동료 윤석민은 그 세레모니 때문에 자신의 세레모니가 완전히 묻혔다며 불평하기도 했다. [3] 올림픽, 아시안게임은 아마추어대회이다. 하지만 WBC는 메이저리거들이 총출동하는 유일한 메이저 국제대회이다. [4] 이로 인해 귀국 후 사진을 보면 눈가 옆에 상처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5] 대한민국은 이 대회에 KBO 2군 + 군복무 + 대학선수들을 중심으로 출전했었다. [6] 초대 대회 MVP [7] 1승 2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