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15 21:38:01

이대원(1566)

이대원
李大源
<colbgcolor=#94153e'><colcolor=#ffc224,#db9e00> 출생 1566년
경기도 평택현 승랑면 내기리
(現 경기도 평택시 포승면 내기리)
사망 1587년 (향년 22세)
전라도 흥양현 삼도 손죽도(現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손죽리 손죽도)
호연(浩然)
본관 함평 이씨
부모 부친 - 이춘방(李春芳)
모친 - 이경(李璟)의 딸 전주 이씨(全州 李氏)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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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의 무관.

2. 생애

1566년 평택현 승랑면에서 태어났으며 1583년 18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해 1586년 선전관에 임명되었고 그 해 녹도만호로 파격 승진했다. 1587년 정해왜변당시 선발대로 침략한 왜구를 무찌르고 적장을 생포해 당시 전라좌수사 심암에게 넘겼다. 심암은 전공을 자신에게 넘겨라는 제안을 했으나 거절해 미움을 받았다.

얼마 안 가 왜구의 본대가 손죽도로 상륙했고 100명의 부하들과 전투를 치렀으나 중과부적으로 부대는 궤멸당하고 본인도 포로가 되었다. 왜구들은 항복을 권유했으나 거부하고 절명시를 남긴 후 살해되었다.
日暮轅門渡海來
兵孤勢乏此生哀
君親恩意俱無報
恨入愁雲結不開.
해 저문 진중에 바다 건너와
슬프다, 외로운 군사 끝나는 인생
임금과 부모님 은혜 갚을 길 없어
원한이 구름 속에 얽혀 풀리지 않네.

당시 전라도 관찰사에 의해 심암의 부당한 행위가 조정에 보고되었고 심암을 파면하고 이대원을 전라좌수사에 임명하라는 어명을 보냈으나 어명이 도달하기 전 이대원은 이미 전사했다. 결국 병조참판에 추증되었고 손죽도에 충렬사가 만들어졌고 고향인 평택에도 충신정문이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