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9 12:56:37

이기화

{{{#!wiki style="margin:14px" <tablebordercolor=#b39758><tablebgcolor=#b39758><tablealign=center> 파일:태광산업 로고 화이트.svg 태광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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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이임용
(1973~1996)
제2대
이기화
(1994~2004)
제3대
이호진
(2004~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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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39758><colcolor=#ffffff> 태광그룹 제2대 회장
이기화
李基和 | Lee Ki-hwa
파일:2019123017105930525_00_460.jpg
출생 1934년
경상북도 영일군 청하면
(現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청하면)
사망 2019년 12월 30일 (향년 85세)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영천 이씨[1]
직업 기업인
학력 부산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화학공학 / 학사)
부모 부친 이동섭, 모친 김남출
형제자매 2남 2녀 중 장남
배우자 강순옥
자녀 1남 1녀

1. 개요2. 생애3. 약력4. 관련 기사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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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기업인. 태광그룹 제2대 회장.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의 형이다.

2. 생애

1934년, 경상북도 영일군(현 포항시 북구) 청하면 필화리에서 태어났다. 부산고등학교[2]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동신화학공업사'에 입사하여 근무하다 1959년 1월 태광산업에 합류했다. 당시 '동신화학공업사'는 직원 2,000명을 거느린 회사로, 신생 기업인 태광산업이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자형인 태광산업 이임용 회장이 도움을 요청하여 이직하게 된 것.

매일경제신문은 "이기화 전 회장은 당시 <동신화학공업사>에서 실력을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사장의 신임이 두터운 상황이었다"며 "대학 졸업 전부터 여러 회사가 채용을 원할 만큼 식견이 높고 수재로 불렸다"고 보도했다. 이기화는 태광산업에 입사하라는 제안을 거절했으나, 누나인 이선애 여사가 '동신화학공업사'를 직접 찾아 담판을 벌인 뒤 태광산업에 상무로 입사한다.

태광그룹에서 금융 등 신규 사업 진출은 물론 회사 성장 과정에서 이임용과 함께 오늘날 태광을 만들어낸 일등 공신으로 꼽혔다. 재계에서 이임용과 이기화를 창업 동지로 인정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태광산업이 섬유에서 석유화학으로 확장되면서 국가 기반산업을 닦고, 에로이카로 유명했던 태광전자를 육성했으며, 흥국생명 인수까지 태광그룹의 발전에 핵심적으로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1세대 경제계 인사로 국내 섬유 산업 발전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는 주요 산업 소재인 아크릴, 스판덱스 등 수입에 의존하던 화학 섬유를 처음으로 국산화하는 업적을 남겼고, 1990년대 말에는 울산광역시에 태광산업의 석유화학 1, 2, 3 공장을 잇달아 준공하며 국내 최초로 섬유산업의 수직계열화를 완성시켰다.

1980년부터 태광산업 사장으로 재직하던 중 1996년 매형인 이임용 회장이 사망하자 외조카 이호진이 아직 어리다[3]는 이유로 본인이 1997년 1월 태광그룹 회장에 취임하여 7년간 태광그룹을 이끌었으며, 2004년 외조카 이호진 회장에게 이임하며 물러났다.

태광그룹 회장 재직 시절 매달 부산, 대구, 경주 등 공장을 찾아 현장 근로자들과 구내식당에서 식사도 하고 결재도 현장에서 진행하는 등 현장 경영을 중시한 최고경영자로 알려져 있다.

2019년 초, 세화여자중학교, 세화여자고등학교, 세화고등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일주세화학원에 90억 원을 기부했다. 일주세화학원은 이임용이 1977년 설립한 태광그룹 산하의 학교법인이다.

2019년 12월 30일 향년 85세로 사망하였다.

3. 약력

  • 1959년: 태광산업 상무
  • 1964년: 태광산업 전무
  • 1969년: 태광산업 부사장
  • 1980년: 태광산업 사장
  • 1992년: 태광산업 대한화섬 사장
  • 1995년: 태광그룹 부회장
  • 1997년: 태광그룹 회장
  • 1997년: 일주학술문화재단 이사장

4. 관련 기사



5. 관련 문서



[1] 상장군공파 33세손.( 족보) [2] 1953년 졸업, 박용옥 흥국생명 대표이사와 고교 동기생이다. 박용옥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로 진학했다. [3] 이호진은 이 시절 34세였다. 본래 이호진의 형들도 있었으나 작은형 이영진은 1994년 사망, 큰형 이식진은 지병이 있어서 2003년 사망했다. 1970~80년대에는 오너의 말이 곧 법이어서 쌍용그룹 김석원, 한화그룹 김승연, 삼미그룹 김현철 같이 만 29세에 회장직을 물려받는 사례가 있었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대국민 눈치가 있어서 최소한 삼촌이나 내/외부 전문경영인이 섭정 비스무리하게 회장직에 잠시 세웠다가 2세가 40대가 될 때쯤 2세가 직접 회장직에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