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54:26

유표(촉한)

劉豹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정사 삼국지3. 삼국지연의4. 미디어 믹스

1. 개요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인물.

2. 정사 삼국지

의랑을 지내다가 양천후가 되어 220년 조비 황제를 칭하고 연호를 황초로 바꾸고 헌제가 살해되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자 유비가 국상을 발표하면서 헌제의 시호를 추증하고 여러 가지 상서로운 징조가 보고되면서 상거, 장예, 황권, 은순, 조작, 양홍, 하종, 두경, 장상, 윤묵, 주군[1] 등과 함께 상주문을 올려 유비가 황제에 오를 것을 권했다.

3. 삼국지연의

삼국지연의》에서도 유비가 황제에 오를 것을 권하는 것은 같지만 제갈량이 거짓으로 병에 걸린 척 해서 유비가 집으로 찾아오게 했다가 황제에 오르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는데, 이 때 허정, 미축, 상거, 조조, 양홍, 두경, 장상, 뇌공, 황권, 하종, 윤묵, 초주, 은순, 장예, 왕모, 이적, 진복 등과 함께 병풍에 숨어있다가 제갈량이 병풍을 치자 다른 문관들과 함께 땅바닥에 엎드려 절하면서 대왕(유비)께서 허락하셨으니 좋은 날짜를 골라 대례를 올리길 청한다고 했다.

4. 미디어 믹스

파일:삼국지3유표(촉한).png
삼국지 3 일러스트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3에서만 등장하는데 시나리오 4에서는 재야, 시나리오 5부터 유비군에 소속되었다. 능력치는 육전지휘 12/수전지휘 6/무력 15/지력 51/정치력 63/매력 52.

후삼국지에서는 강호와 관계를 맺기 위해 그 곳을 진무하는 사명을 받고 파견되었다가 이후 촉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황호가 금품을 요구했으나 거절했다가 촉에서 그를 제거하려고 했으며, 강족에서는 그의 덕을 존경하면서 왕으로 추대했다고 한다. 촉이 멸망하면서 촉을 부흥시키기 위해 유연이 그를 찾아가려고 했지만 나라가 너무 멀어서 그를 찾아가는 대신에 북부의 학원탁을 찾아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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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주전> 원문에는 초주가 참가했다고 되어 있으나 <초주전>에서는 초주가 권학종사가 된 것은 유비가 죽은 건흥 연간( 223년 ~ 238년) 제갈량이 명한 것이며 초주의 나이를 상고하면 당시에는 겨우 20대 초반이라 이런 중대사항에 참여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학자들이 고증하고 있다. 《 화양국지》에는 상서로운 도참을 말할때 " 주군(周群)의 부친이 아직 죽지 않았을 때"라고 적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심가본은 "부친 군" 두 자가 베끼다 잘못돼 거꾸로 된 것으로, 응당 "신 군의 부친이 아직 죽지 않았을 때"라고 하는 것이 화양국지의 말과 어긋나지 않는다고 했다. 즉 여기서 나오는 초주의 이름은 주군이 와전된 것으로, 글을 베끼다 군(群) 자를 놓치고, 다시 초(谯) 자를 잘못 더한것이라고 했다. 중국어 위키문헌에 제공하는 화양국지본에서도 같은 이유로 '주군'으로 적고 각주로 '(화양국지의) 각 구본(舊本)과 삼국지에는 동일하게 '초주'라고 적혀있다. 고찰하건데 당시 초주는 아직 벼슬자리에 나가지 않았다(尚未入仕), 이 표 안에는 주군(周群)이 밝혀져 있다. 당시 전사(傳鈔)하면서 잘못 쓰여 주군이 초주가 되었다. 이곳을 개정하니 상세한 주를 그대로 따른다.'라고 교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