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6-10 11:44:08

유춘갑

<colcolor=#fff><colbgcolor=#0047a0> 덕보(德甫)
본관 진주 유씨[1]
출생 1895년 11월 23일
함흥부 함흥군 고천사 인흥리
(현 함경남도 신흥군 신흥로동자구)
사망 몰년 미상 12월 27일
묘소 함경남도 신흥군 신흥로동자구
상훈 건국포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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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2020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1895년 11월 23일 함흥부 함흥군 고천사 인흥리(현 함경남도 신흥군 신흥로동자구)에서 아버지 유칠겸(柳七謙, 1869 ~ ?)과 어머니 해주 최씨[2] 사이의 1남 1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신흥공립보통학교에 재학 중이었는데, 전국적으로 3.1 운동이 일어나자 신흥공립보통학교 학생 총책을 스스로 맡아 재학생 170명에게 먼저 독립운동의 실행을 권유했다. 모두의 찬성을 얻은 뒤에는 신흥군 동고천면 인흥리와 하원천면 흥경리 등지를 돌며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해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다가, 결국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형을 선고받았으며, 이에 공소하였으나 5월 2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같은 혐의에 대해 공소가 기각되었다. 또한 상고하였지만 7월 3일 고등법원에서 같은 혐의에 대해 상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 병보석으로 석방되었고, 출옥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다만 12월 27일에 별세했다는 것과 묘소가 8.15 광복 이전에 신흥군 동고천면 인흥리에 있었다는 것이 진주류씨 인터넷족보에 남아있을 뿐이다.

202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에 추서되었다.

[1] 토류계 대사성공파 24세 갑(甲) 항렬. [2] 최상기(崔尙基)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