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1-02 19:22:15

유스타스 드 베시

성명 유스타스 드 베시
Eustace de Vesci
생몰년도 1169년경 ~ 1216년
출생지 잉글랜드 왕국 미상
사망지 잉글랜드 왕국 더럼주 바너드 성
아버지 윌리엄 드 베시
어머니 버지 드 스튜트빌
형제 모드, 리처드, 워린, 세실리
아내 마거릿
자녀 윌리엄 드 베시
직위 알릭 성의 영주

1. 개요2. 생애3.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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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 귀족, 군인. 제1차 남작 전쟁에서 존 왕에 대항하는 귀족 반란군의 일원이었다.

2. 생애

알릭 성의 영주이며 노섬벌랜드와 랭커셔의 보안관인 윌리엄 드 베시와 로버트 3세 드 스튜트빌의 딸인 버지의 장남이다. 형제로 모드[1], 리처드[2], 워린[3], 세실리가 있었다. 그의 집안은 친할아버지 유스타스 피츠존이 헨리 1세 치세에 잉글랜드 북부 주의 보안관을 맡은 이래 잉글랜드 북부에 광대한 토지를 거머진 기사 가문이었다. 외할아버지인 로버트 3세 드 스튜트빌은 헨리 2세 치세에 코팅엄 남작이자 요크셔 보안관과 노섬벌랜드 및 컴벌랜드 순회 판사를 역임했다.

1184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잉글랜드 북부에 걸친 가문의 광대한 영지를 상속받을 대상자가 되었지만, 1190년 성인이 되어 왕에게 1,300 마크를 바칠 때까지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다. 이후 제3차 십자군 원정에 참여했으며, 1194년 잉글랜드 국왕 리처드 1세와 스코틀랜드 국왕 일리엄 1세가 그의 소유인 말튼 성에서 접견했으며, 같은 해에 앙주에서 군 복무를 했다. 1199년 잉글랜드 새 국왕 존 왕과 불로뉴 백작 르노 사이의 동맹 협약에 증인으로서 이름을 올렸다. 1200년 폰테프랙트 남작 로저 드 레이시, 초대 헤리퍼드 백작 헨리 드 보훈 및 여러 귀족들과 함께 스코틀랜드로 가서 일리엄 1세가 존 왕에게 봉신으로서 충성 서약하라고 요구했고, 일리엄 1세는 이에 따랐다.

유스타스는 존 왕 치세 초기에 헌장에 종종 서명했다. 1209년 더럼 주교단의 수호자 중 한 명이었으며, 다음 범 잉글랜드 방문 중에 일리엄 1세를 만다. 1210년 존 왕의 아일랜드 원정에 참여했다. 그러나 그는 얼마 안가 존 왕에게 등을 돌렸는데, 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1212년 로버트 피츠월터와 함께 웨일스 원정에 나선 왕을 죽이거나 웨일스인에게 넘기려는 음모를 꾸민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에 스코틀랜드로 도망쳤고, 그의 영지는 몰수되었다. 하지만 존 왕은 1213년에 교황 인노첸시오 3세와 화해하고 조약을 체결할 때, 망명자들을 사면해야 한다는 조건에 따라 그를 사면했다.

이후 본국으로 귀환한 유스타스는 1213년 7월 19일 공식적으로 영지를 돌려받았다. 그러나 1215년 존 왕에게 반기를 든 귀족 집단에 가담했고, 마그나 카르타에 서명하라고 강요했으며, 왕이 조항을 준수하는 지를 감독하는 위원 25인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존 왕이 마그나 카르타를 무시하고 교황이 존 왕에게 반기를 든 자들을 파문하자, 그는 반란에 재차 가담한 뒤 처남인 스코틀랜드 국왕 알락산더르 2세와 합류한 뒤 더럼의 바너드 성을 포위 공격했다. 그러나 유스타스는 전투 중에 화살에 맞아 죽었다. 그 후 그의 영지는 몰수되어 시몽 드 샹레미, 필립 둘레코, 윌리엄 다르쿠르에게 분할되었다.

3. 가족



[1] 기사 토머스 드 무챔프와 초혼, 아담 드 카를리올로와 재혼 [2] 침리의 기사 [3] 냅튼의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