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유스타스 드 베시 Eustace de Vesc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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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1169년경 ~ 1216년 | |
출생지 | 잉글랜드 왕국 미상 | |
사망지 | 잉글랜드 왕국 더럼주 바너드 성 | |
아버지 | 윌리엄 드 베시 | |
어머니 | 버지 드 스튜트빌 | |
형제 | 모드, 리처드, 워린, 세실리 | |
아내 | 마거릿 | |
자녀 | 윌리엄 드 베시 | |
직위 | 알릭 성의 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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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 귀족, 군인. 제1차 남작 전쟁에서 존 왕에 대항하는 귀족 반란군의 일원이었다.2. 생애
알릭 성의 영주이며 노섬벌랜드와 랭커셔의 보안관인 윌리엄 드 베시와 로버트 3세 드 스튜트빌의 딸인 버지의 장남이다. 형제로 모드[1], 리처드[2], 워린[3], 세실리가 있었다. 그의 집안은 친할아버지 유스타스 피츠존이 헨리 1세 치세에 잉글랜드 북부 주의 보안관을 맡은 이래 잉글랜드 북부에 광대한 토지를 거머진 기사 가문이었다. 외할아버지인 로버트 3세 드 스튜트빌은 헨리 2세 치세에 코팅엄 남작이자 요크셔 보안관과 노섬벌랜드 및 컴벌랜드 순회 판사를 역임했다.1184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잉글랜드 북부에 걸친 가문의 광대한 영지를 상속받을 대상자가 되었지만, 1190년 성인이 되어 왕에게 1,300 마크를 바칠 때까지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다. 이후 제3차 십자군 원정에 참여했으며, 1194년 잉글랜드 국왕 리처드 1세와 스코틀랜드 국왕 일리엄 1세가 그의 소유인 말튼 성에서 접견했으며, 같은 해에 앙주에서 군 복무를 했다. 1199년 잉글랜드 새 국왕 존 왕과 불로뉴 백작 르노 사이의 동맹 협약에 증인으로서 이름을 올렸다. 1200년 폰테프랙트 남작 로저 드 레이시, 초대 헤리퍼드 백작 헨리 드 보훈 및 여러 귀족들과 함께 스코틀랜드로 가서 일리엄 1세가 존 왕에게 봉신으로서 충성 서약하라고 요구했고, 일리엄 1세는 이에 따랐다.
유스타스는 존 왕 치세 초기에 헌장에 종종 서명했다. 1209년 더럼 주교단의 수호자 중 한 명이었으며, 다음 범 잉글랜드 방문 중에 일리엄 1세를 만다. 1210년 존 왕의 아일랜드 원정에 참여했다. 그러나 그는 얼마 안가 존 왕에게 등을 돌렸는데, 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1212년 로버트 피츠월터와 함께 웨일스 원정에 나선 왕을 죽이거나 웨일스인에게 넘기려는 음모를 꾸민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에 스코틀랜드로 도망쳤고, 그의 영지는 몰수되었다. 하지만 존 왕은 1213년에 교황 인노첸시오 3세와 화해하고 조약을 체결할 때, 망명자들을 사면해야 한다는 조건에 따라 그를 사면했다.
이후 본국으로 귀환한 유스타스는 1213년 7월 19일 공식적으로 영지를 돌려받았다. 그러나 1215년 존 왕에게 반기를 든 귀족 집단에 가담했고, 마그나 카르타에 서명하라고 강요했으며, 왕이 조항을 준수하는 지를 감독하는 위원 25인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존 왕이 마그나 카르타를 무시하고 교황이 존 왕에게 반기를 든 자들을 파문하자, 그는 반란에 재차 가담한 뒤 처남인 스코틀랜드 국왕 알락산더르 2세와 합류한 뒤 더럼의 바너드 성을 포위 공격했다. 그러나 유스타스는 전투 중에 화살에 맞아 죽었다. 그 후 그의 영지는 몰수되어 시몽 드 샹레미, 필립 둘레코, 윌리엄 다르쿠르에게 분할되었다.
3. 가족
- 마거릿: 스코틀랜드 국왕 일리엄 1세의 사생아, 알락산더르 2세의 이복 누이.
- 윌리엄 드 베시: 아버지의 영지를 물려받았으며, 솔즈베리 백작 윌리엄 롱게스피의 딸인 이자벨과 초혼했고, 제5대 더비 백작 윌리엄 3세 드 페러스의 딸 아그네스와 재혼했다. 1253년 10월 헨리 3세의 가스코뉴 원정에 참여했다가 도중에 사망했다. 아들 윌리엄 드 베시는 1291년 스코틀랜드 여왕 마르그레트 에이릭스도티르가 사망한 뒤 스코틀랜드 왕위에 도전했지만 존 발리올에게 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