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의사연구회 회장 (1908~1910) | ||||||
초대 김익남 |
}}}{{{#!wiki style="margin: -6px -1px -10px" | 조선의사협회 간사장 (1930~1939) | |||||
1930~1932 박계양 |
1936~1939 이갑수 |
}}}{{{#!wiki style="margin: -6px -1px -10px" | 대한의사협회 회장 (1947~2010) | ||||
초대 심호섭 |
제2대 윤일선 |
제3대 윤일선 |
제4대 심호섭 |
제5대 심호섭 |
|||
제6대 심호섭 |
제7대 윤일선 |
제8대 심호섭 |
제9대 심호섭 |
제10대 심호섭 |
|||
제11대 정구충 |
제12대 윤치왕 |
제13대 정구충 |
제14대 김두종 |
제15대 박주병 |
|||
제16대 임명재 |
제17대 박주병 |
제18대 명주완 |
제19대 명주완 |
제20대 한격부 |
|||
제21대 조동수 |
제22대 손춘호 |
제23대 한격부 |
제24대 문태준 |
제25대 문태준 |
|||
제26대 문태준 |
제27대 김재전 |
제28대 김재전 |
제29대 유성희 |
제30대 유성희 |
|||
직무대행 김두원 |
제31대 김재정 |
직무대행 한광수 |
제32대 신상진 |
제33대 김재정 |
|||
제34대 장동익 |
직무대행 김성덕 |
제35대 주수호 |
제36대 경만호 |
제37대 노환규 |
|||
직무대행 김경수 |
제38대 추무진 |
제39대 추무진 |
제40대 최대집 |
제41대 이필수 |
|||
비대위 김택우 |
제42대 임현택 |
비대위 미정 |
}}}}}}}}} |
<colbgcolor=#1968b3><colcolor=#fff> 제29·30대 대한의사협회 회장 유성희 柳聖熙 | Ryu Seong hee |
|
|
|
출생 | 1935년 3월 25일 |
충청북도 괴산군 | |
사망 | 2001년 7월 11일 (향년 66세) |
평양시 친선병원 | |
장지 | 충청북도 음성군 선영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재임기간 | 제29·30대 대한의사협회 회장 |
1994년 ~ 2000년 | |
가족 |
배우자 정재옥 슬하 2남2녀 |
학력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 의학 / 학사) |
경력 |
제29·30대
대한의사협회 회장 서울시의사회 회장 동서울병원 병원장 유성희정형외과 병원장 가톨릭대학교 성바오로병원 정형외과 과장 |
상훈 | 국민훈장 모란장 (2001년 수훈)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정형외과 의사이자 제29·30대 대한의사협회 회장을 역임했다.2. 생애
1960년 서울의대를 졸업한 뒤 가톨릭의대 성바오로병원 정형외과 과장으로 봉직의 생활을 출발, 1969년 동대문구 제기동에 유성희 정형외과를 개원했다. 이후 1978년 동대문구 신설동에 현 동서울병원을 신축, 병원을 확장 이전했으며 1985년~1988년 서울시의사회장, 1994년~2000년 1월까지 제29, 30대 의협 회장을 역임했다. 1997년 30대 의협회장에 재임했으나 의약계와 시민단체간 의약분업 협상 당사자로 의료계 내부의 비판을 받으며 3년 임기를 못채우고 지난 2000년 1월 회장직에서 물러났다.또한 그는 대북의료사업에 무척이나 관심을 가졌던 인물로, 의협의 대북의료사업을 전적으로 추진해왔다. 그는 지난 1998년부터 대북의료지원 사업을 추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는 개인 자격으로 미국내 북쪽과 손이 닺는 사람을 통해 이뤄졌다. 평소 지인들에게 "빨리 북쪽의 동포들에 인술을 전해야 하며 북한의 의료 실정을 알아야 나중에 통일이 되면 시행착오를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자주했고 한다. 본격적인 대북 접촉은 1999년부터 이뤄져 당시 한차례 방북, 라진·선봉지역의 병원을 시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안이 민감해 의협내에서도 그를 제외한 2~3명정도만 내용을 파악할 정도로 극도의 보안속에 진행됐다. 또한 그는 방북 이후 실질적인 대북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북경을 두 번 방문, 두차례 걸쳐 북한의 대외협력창구인 아태평화위원회와 접촉을 가졌다. 하지만 첫 번째 만남은 현지서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번째 만남서 양자는 합의를 했고 그의 이같은 부단하고 끈질긴 접촉을 통해 의협은 이번 대북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의약분업시행을 앞두고 의료계의 강경기류에 밀려 2000년 1월 의협 회장직 중도 퇴진을 맛보면서 사실상 중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