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델 퍼티그 Wendell Fertig |
|
|
|
출생 | 1900년 12월 16일 |
미국 콜로라도주 라훈타 | |
사망 | 1975년 12월 16일 (향년 74세) |
미국 콜로라도주 | |
복무 | 미합중국 육군 |
최종 계급 | 미국 육군 대령 |
복무 기간 | 1941~1954 |
학력 | 콜로라도 광업대학교 |
[clearfix]
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콜로라도주 라훈타 출신으로 대학교를 졸업 후 1928년부터 필리핀으로 이주해 엔지니어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주민들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다. 1941년 우연히 공병 장교 모집 공고를 보고 많은 나이였음에도 지원해 대위로 임관했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고 중령으로 진급했으나 일본군에 의해 패배했다. 하지만 봍잡히지 않고 스스로를 준장으로 자처해 살아남은 필리핀 게릴라와 미군들을 모아 게릴라 작전을 펼쳤다.[1] 더글러스 맥아더를 포함한 수뇌부들은 인정하진 않았으나 꾸준히 군수물자를 보내줬다.처음엔 극소수로 게릴라를 운영했고 본국과의 교신에도 힘들었으나 점점 세가 증가해 8,000명이 넘는 수가 되었고 필리핀 주둔 일본군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1943년 대령으로 진급했고 수훈십자장을 수여받았다. 필리핀 탈환전이 끝나고 미군에 합류하며 게릴라는 해체되었다.
전후 명예 훈장 추천명단에 있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군생활을 지속하며 전우였던 러셀 볼크먼, 도널드 블랙번, 애런 뱅크와 함께 미합중국 육군 특수작전부대의 설립에 기여했다. 1954년 퇴역했다.
퇴역 후 광산을 운영하다가 1975년 사망했다.